당신을 위한 사사기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27 views

저자: 팀 켈러

Notes
Transcript

요약

사사기의 16장(삼손)
-위험한 성공
은혜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과 실패까지도 우리를 위해 사용하신다. 그러나 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과 하나님이 주신 장점까지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데 사용한다. 우리의 죄악된 마음은 하나님의 축복조차도 우리 삶을 망치는 데 사용할 방법들을 발견할 것이다.
팀 켈러, 당신을 위한 사사기 삼손과 들릴라, 도대체 왜?

C. S. 루이스가 매우 도움이 되는 말을 했다.

필요의 사랑(Need-love)은 … 우리의 빈곤 때문에 부르짖는다. 반면에 선물의 사랑(Gift-love)은 섬기기를 갈망한다.… 필요의 사랑은 한 여자에 대해 ‘나는 그녀 없이 살 수 없어’라고 말한다. 반면에 선물의 사랑은 그녀에게 행복을 주기를 갈망한다. - 《네 가지 사랑》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까지는 동료 피조물을 사랑할 수 없다. - 《천국과 지옥의 이혼》

루이스가 하는 말은 당신의 가장 깊은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떤 식으로든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을 강화하고 입증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런 관계가 없으면, 가장 열정적인 “나는 당신을 사랑해”라는 고백도 사실은 “내가 가치 있다고 느끼기 위해 당신이 필요해”라는 의미에 불과할 뿐이다.

삼손의 내면생활과 동기들은 이러한 하나님 사랑(God-love)의 결여를 보여 주며, 우리 모두에게 경고가 된다. 하나님 사랑이 없으면, 우리도 관계 속에서 덜 노골적이더라도 삼손과 똑같이 할 것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팀 켈러, 당신을 위한 사사기 삼손의 힘이 삼손을 떠났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헌신의 결단 내에서 흐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규칙들’을 따르고 있지 않을 때라도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 역사하실 수 있다. 물론 삼손이 깨닫게 되었듯이 하나님이 항상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우리 마음대로 추정할 수는 없다. 신성한 능력은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세운 규칙들을 따르는 외적 방법으로 획득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께 한 우리의 약속들을 어겼다고 해서 쉽게 당장 잃지도 않는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즉 특정한 기법에 달려 있지 않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사사도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비극이다.

우리는 스스로 마법을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무늬를 가진 마법을 믿기가 매우 쉽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때로 하나님이 그냥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에도 그러셨으니, 오늘도 그러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안일해졌다. 또 어떤 때는 우리가 정확한 버튼을 누르고, 정확한 처방을 따를 때만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고, 교회에 가고, 올바르게 살아서, 그래서 하나님께 축복과 힘을 받으려고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기보다 그냥 기계적으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들(가령 우리의 영적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흘러 나와야 하며, 단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획득하려는 시도이어서는 안 된다.

팀 켈러, 당신을 위한 사사기 왜 삼손의 머리를 놔뒀을까?

왜 삼손의 머리를 놔뒀을까?

“여호와께서 이미 (삼손을) 떠나셨다”(20절). 이제 삼손은 정말로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았다”(7, 11, 13, 17절). 그래서 삼손은 붙잡혀 눈멀고 놋사슬로 묶였다(21절). 블레셋의 곡식을 불살랐던 사람(15:4–5)이 이제 블레셋의 곡식을 가는 처지로 전락했다(16:21). 사사기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사가 패배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22절). 물론 그렇게 되었다. 머리카락은 당연히 자라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기록했는가?

핵심은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머리가 자라도록 그냥 놔뒀다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머리가 다시 길어진다는 사실을 못 알아챌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일단 한 번 머리가 깎인 삼손은 이제 나실인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리라. 이는 사실이다. 나실인 서원(민수기 6:1–21)은 나실인을 정해진 기간 동안 ‘성별’한다. 그러나 머리를 깎으면, 성별 기간이 끝났다(18절). 삼손의 힘은 삼손이 서원으로 여호와께 헌신하는 데서 흘러나오므로, 삼손의 능력이 끝났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삼손의 포획자들이 삼손의 머리를 자라게 놔두고 자신만만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견해의 깊이가 얕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삼손의 힘은 삼손이 한 서원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삼손이 그 서원들을 한 대상인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마이클 윌콕이 이렇게 말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하나님은 뜻밖의 일을 하시고(에훗),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힘이 완전해지고(기드온), 하나님은 결코 말씀을 어기지 않으신다. 그 하나님께서 삼손은 “그가 죽는 날까지”(삿 13:7) 나실인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을 버리신 것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삼손이 하나님의 약속을 아무리 무시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이다. 죄인들의 괴수에게 풍성한 은혜가 넘친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 《사사기의 메시지》

그래서 여기서 우리는 사사기의 한 주제의 괄목할 만한 예를 본다. 바로 ‘조건 대 무조건’의 긴장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오직 ‘조건적’ 신들만 알았다. 그 신들은 마술로 조종되는 신들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을 때도 우리에게 충실하시다. 하나님은 나실인 서원의 조건에 매이거나 제한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손의 머리가 자라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아, 이제 삼손의 머리가 자랐으니까 삼손이 다시 강해질 거야. 왜냐하면 삼손의 힘은 삼손의 머리카락에 있기 때문이야.”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아,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서원을 어겼기 때문에 삼손의 힘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하나님의 종의 순종에 제한되거나, 그것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몰라!”

그러나 삼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고 요청한다(26절). 그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지붕 아래에 큰 무리가 있고, 그중에는 “블레셋 모든 방백들”과 그들의 우상의 신상이 있었으며, 옥상에만도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27절). 무대가 조성되고, 삼손의 평생에 기록된 두 번째 기도가 드려진다.

전에 삼손은 자신이 항상 강할 것이라고 당연히 여겼고, 그의 힘을 자기 자신을 구하는 데 사용했다(14:5–6, 19, 15:3–5, 13–17, 16:3, 8, 12, 14). 그러나 한 번은 그런 당연한 가정이 틀렸다(16:20–21). 그래서 이제 처음으로 눈멀고 약한 삼손이 단순히 구한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

이 기도야말로 삼손의 힘이 돌아온 이유임이 틀림없다. 삼손이 처음으로 믿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주석가들은 28절이 단순히 복수의 요청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맞다. 여기에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거나 하는 언급은 없고, 오직 삼손이 자신의 눈에 대해 복수하겠다는 것뿐이긴 하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의 반대로서, 첫째로, 여기서 삼손의 새로운 겸손이 발견된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주권자(아도나이)이심을 인정한다. 삼손이 성인이 된 후 동침해온 우상 추종자들이 섬기던 그 우상의 신전에 삼손이 서 있음을 기억하라. 더 나아가, 여기서 삼손은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엘로힘)일 뿐 아니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언약적이시며 관계적인 하나님(야훼)이심을 알고 있다. 이는 ‘자신의’ 힘을 당연시하고, 자신의 힘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을 요구했던 삼손과 매우 다르다(15:18).

둘째로, 히브리서 11장 32–34절에서 삼손이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말하는데, 삼손의 이야기 속에서 삼손이 믿음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히브리서 11장 34절의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라는 구절이다. 이것은 큰 통찰이다. 삼손은 낮아질 대로 낮아져 자신이 얼마나 약한지 보았다. 그래서 삼손의 마지막 요청은 이전의 힘의 과시와 다르다.

사사기 16장 28절에서, 삼손이 처음으로 구한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겸손하게 주목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삼손은 자신이 잊힐 만한 짓을 했고, 하나님이 그를 무시하셔도 당연하다는 것을 알았다. 둘째로, 삼손이 구한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여기서 (마침내) 삼손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있다.

삼손이 받은 진짜 유혹은 우리 자신이 대단하고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믿은 것이었다. 은혜로 받은 것을 당연한 삼손 자신의 권리로 보고, 삼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려 했던 것이다. 오히려 들릴라보다 삼손의 진짜 죄였다! 우리가 뭘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기 위해서란 것을 기억하기가 매우 어렵다.

팀 켈러, 당신을 위한 사사기 (삼손과 예수님)
삼손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그의 죽음이다. 그의 삶에서 그가 가장 신실했던 사건은 그의 죽음의 방식이다. 그의 삶에서 최고의 승리의 사건도 그의 죽음이다. 마침내 가장 마지막에 삼손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조하기 시작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천사가 삼손의 기적적 탄생을 알릴 때, 하나님께서 삼손의 어머니에게 설명하셨던 대로 삼손은 했다.그러나 삼손의 죽음은 두 가지 중대한 면에서, 주 예수님의 죽음과 매우 다르다. 첫째로, 삼손이 다곤의 신전에 있는 것은 그 스스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손의 몰락은 삼손의 불순종으로 자초되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항상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셨고, 다른 사람들, 즉 우리들의 불순종 때문에 죽으셨다.둘째로, 삼손의 죽음은 하나님이 삼손을 일으키시며 맡기신 제한적 역할, 즉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는 것”(13:5)을 완수했다. 반면에 예수님의 죽음은 “단번에 완전한” 해방을 이룬 최종 구조였다(벧전 3:18, 히 10:10 참조).그런 한편, 삼손의 결말은 예수님의 죽음의 그림이며 그림자다. 이것을 추적하면, 십자가가 무엇인지 더 깊이 깨닫게 되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을 예배하게 된다. 첫째로, 삼손과 예수님 모두 친구인 척 가장했던 누군가에게 배신당했다. 들릴라와 유다였다. 물론 유다는 들릴라와 삼손의 관계만큼 예수님과 가깝지는 않았지만, 유다가 배신한 분은 삼손보다 훨씬 더 순결하고, 삼손보다 훨씬 더 충성을 받아 마땅한 분이었다. 둘 모두 이방인 압제자들에게 넘겨졌다. 둘 모두 고문당하고 쇠사슬에 묶여 대중 앞에서 조롱당했다. 둘 모두 오락거리를 해 보라는 요구를 받았다. 예수님은 삼손과 달리 거절하셨다. 둘 모두 양팔을 벌리고 죽었다.둘 모두 적에게 완전히 타도된 것으로 보였지만, 둘 모두 죽음으로 적을 무찔렀다. 삼손은 블레셋과 다곤, 예수님은 궁극적 원수인 사탄을 이기셨다.

삼손은 죽음이라는 값을 치러서, 사탄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를 예표했다. 삼손이 죽으면서 많은 적들을 죽였듯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상숭배 배후의 보이지 않는 힘, 그리고 죽음의 힘 자체인 사탄을 “죽였다.”

하나님은 자원하여 나서는 군대를 가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해방할 수 있음을 보여 주셨다. 300명이라는 작은 숫자로도 하나님이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셨을 때, 주께는 단 삼백 명도 필요하지 않음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단 한 명으로도 해방하실 수 있으시다. - 에드문드 클라우니, 《드러나는 신비》

우리 성도들에게 이 말씀이 왜 필요할까?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