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교회 행2: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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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views성령이 오셔서 교회를 바르게 세우실 때 우선순위는 첫째 말씀을 중심하는 교회, 둘째 사명을 성취하는 교회, 셋째 기도에 집중하는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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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성령강림
할렐루야! 오늘 하나님께 주일예배로 영광 돌리는 초양가족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으로 “성령의 교회”라는 제목으로 함께 주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탄생하였습니다(행2장). 성령은 언제나 새시대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환경과 사람을, 성령의 능력을 통해 지금도 교회가 새롭게 세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성령이 임하시면 새로운 교회가 될 수 있는 변화의 힘을 갖게 될 겁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의 변화를 요구하시고 그 변화를 이루시도록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교회의 탄생과 성장을 보여주는 사도행전을 보면 교회에 임하였던 성령의 임재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성령 임재의 표현부터 강력하지요.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역사가 각 사람에게 임하였어요. 이것이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성령의 급진성과 변혁성을 말하는 겁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급진적인 변혁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큰일입니다. 교회세움(Church Planting)은 사람이 주도하여 이루어갈 수 없는 일이기에 성령의 임재가 절대적인 겁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워지려면 성령 충만해야 돼요. 특별히 교회세움을 이끌었던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행2:38)는다고 말합니다.
이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본문 37절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급진적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의 복음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에게 ‘마음에 찔림’이 있었습니다. 성령이 임재하면 먼저 마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다음으로 그들의 반응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하지요. 이것이 성령이 오셔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입니다. 교회의 탄생은 이렇게 성령의 강력한 역사와 더불어 성령 충만한 자들의 복음 선포를 통해 시작되는 겁니다.
이와같이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진리를 깨달아 구원의 확신과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개인을 위한 성령의 사역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은 개인신앙에만 변화를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의 사역은 개인뿐만 아니라 세상과 교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십니다. 이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세상 속에 교회가 탄생된 거예요. 교회는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마음의 변화와 더불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변화된 삶이 시작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성령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큰 뜻을 발견하고 세상 구원을 위한 마음의 변화와 행동의 변혁을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능력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교회가 시작되고, 성장하고, 완성되는 교회세움의 과정은 언제나 철저하게 성령의 역사를 통한 신적 능력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워지는 일이 어렵고 또한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잃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도 전에 사람의 힘과 전략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처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교회는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지도 못하고,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가 견고하게 서지 못하고,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겁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힘을 경험하지 못하는 나약한 교회로 전락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능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교회에 바르게 세우시는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첫째, 말씀을 중심하는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 대중에 처음으로 설교한 말씀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강력한 복음의 선포는 성령을 받고 말씀을 깨달은 과정을 거친 결과로 나타난 겁니다.
현재 세계 교회에 큰 영향력을 주고 있는 매트 챈들러(Matt Chandler)도 “교회는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숙해 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진리성이 교회의 성숙과 부흥의 결정적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왜 성령이 세우신 교회는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까? 막8:29을 보면 예수님께서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것만 보면 베드로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막8:33에서 예수님의 호된 책망을 받아요.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그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입술로 하는 위대한 고백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는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구원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고백은 있었지만 교회를 위한 십자가 신앙을 알지 못했던 겁니다. 이것은 교회를 세우시는 성령의 임재가 경험되어야 얻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단지 믿음의 차원, 고백의 차원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명확히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사람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한 이후예요. 베드로는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체험했어요. 그리고 성령 충만한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시대적 의미를 분명히 증거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행2:32-33 “32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이 임하니 모든 말씀이 사람들에게 능력 있게 부어졌다는 베드로의 증언입니다. 베드로 자신이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그 후에 베드로는 성령과 복음, 그리고 교회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것이 성령을 통한 교회적, 목회적 거듭남입니다.
교회적 거듭남을 통해 교회가 새롭게 세워질 수 있도록 목회적 실행이 일어나는 겁니다. 행4:8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라고 해요. 성령 충만해야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고 어떻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성령으로 완전히 변화되어 교회를 세우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를 세우는 자들은 먼저 성령의 완전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과 뛰어난 신앙고백을 할 줄 안다고 교회를 섬길 준비가 된 것은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성령으로 시작된 교회를 섬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로 성도는 믿음의 고백을 넘어 완전한 교회세움을 위한 변화의 단계로 나가게 됩니다. 그래야 성령으로 탄생한 교회를 섬길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온전한 교회 세움을 시작하십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울 수 없어요. 하나님은 완전한 변화를 경험한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모세가 그랬어요. 애굽의 왕자로서 히브리인임을 깨닫고는 동족을 도우려 하였을 때는 실패하지요. 그런데 광야에서 40년간 양치기를 하면서 완전히 변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었을 때 지도자로 쓰임을 받았던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을 세우실 때도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겁니다. 조금 개선되는 변화가 아니라 베드로처럼 성령으로 완전하게 변화되었을 때 교회세움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말씀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고백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 충만으로 완전한 말씀이 실현되는 체험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교회를 위해 위대한 사람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이렇게 높은 수준의 변화를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교회의 영적, 생활적인 거룩함이 높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을 사람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높은 수준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주도로 세워지는 진리의 교회를 세우게 되는 겁니다.
딤전3:15에서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고 함과 같이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것이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을 따라 세워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 성향대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교회가 진정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교회입니다.
둘째, 사명을 성취하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맡겨진 사명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의 주도하심으로 말씀의 기초가 세워진 교회는 사명을 성취합니다. 이 교회의 사명은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게 됩니다.
사명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교회의 변화를 따르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살아 있는 교회였어요. 이 교회는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성취해 가는 역동적인 교회였어요. 예루살렘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명을 성취한 교회예요. 비록 120명이 시작한 교회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난 변화는 거대한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 41절에서도 성령충만 받은 교회가 될 때 부흥이 일어나는 많은 열매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부흥의 원인은 변화입니다. 죽은 교회는 변화를 원하지 않아요. 그러나 살아있는 교회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사도행전 교회를 보면 적당히 일하는 교회가 아니라 탁월하게 일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사명을 성취하도록 탁월함으로 일하게 하십니다. 교회를 위한 탁월함은 인간적 재능과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힘써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성경의 권위와 진리의 신실성, 말씀의 토대 위에 견실하게 세워가는 신앙을 세우도록 주님의 명령과 사명을 성취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과 재능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성령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사람은 사명에 목숨을 겁니다.
특별히 내가 잘하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 사명입니다. 예배, 전도, 훈련, 봉사, 교제, 선교, 치유, 상담, 목장, 구제, 교회 개척, 건축, 교회이전, 당회, 제직회 등 모든 영역에서 ‘힘써’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리더들, 즉 베드로, 스데반, 브리스길라, 아굴라 같은 사람들은 사명 성취를 위해 힘써 교회를 세운 자들입니다. 우리도 교회를 섬기는 일에 일평생 힘쓰고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남편 때문에, 자녀 때문에, 세상 일 때문에 사명을 미루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비록 교회세움을 위해 상처와 고난과 핍박이 와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사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의 영향력 안에서 살아감으로 사명을 성취하는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성령의 영향력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생각, 습관, 관심이 다 바뀝니다. 성령충만해도 상황과 환경이 바뀌지는 않아요.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갈등이 있어요. 성령을 모르는 사람은 환경과 상황이 그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환경과 상황의 영향력 아래서 끌려다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환경이 좋을 때 뿐만 아니라 어려울 때도 기쁨으로 끝까지 사명을 감당합니다. 즉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열정적 사명자가 성령으로 탄생하는 겁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 나타난 영적인 영향력입니다. 그 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영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중심된 교회의 열매는 복음을 증거하고, 세상을 변혁시키고, 고난을 이기는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이 사명이 우선한 교회가 성령으로 세워짐을 알고 우리 교회도 사명을 성취하는 교회가 됩시다.
셋째, 기도에 집중하는 교회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 말씀 중심의 교회, 사명을 성취하는 교회는 기도에 집중합니다. 기도에 전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삶을 산다는 담대한 선언입니다. 성령은 기도를 통해서 교회와 성도에게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 교회는 시작도 기도이고 마침도 기도입니다. 오로지 기도뿐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자기중심적 기도에서 하나님 중심적 기도로 바뀝니다.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자기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는 다른 겁니다. 성령은 우리들이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성령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겁니다.
롬8:26-27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면 내 필요를 충족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중에 성령의 간구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일이라면 거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로 하나님의 뜻안으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 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기도할 때 자신의 연약함, 무능함, 미련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소원을 품는 기도를 소원해야 합니다.
성령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도를 드릴 때 무분별한 기도를 피할 수 있습니다. 분별없이 드리는 기도는 자기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구하거나, 욕심에 이끌려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자신의 정욕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없는 기도는 성령의 인도를 벗어난 겁니다.
롬8:26에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는 이유는 ‘우
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오히려 기도를 통해 정욕을 채우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이끄시는 기도를 배우는 기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본질은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기도의 목적이 응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의 뜻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가 그분과 깊은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의식으로 통용과 나눔을 실천합니다. 통용과 나눔은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령 안에서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면 결코 자기 것을 내 놓을 수 없습니다.
행4:33-35입니다.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여기서 33절을 보면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드리는 기도를 하면 희생적 삶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들은 성령의 영향력을 받은 사람들이며, 나의 내 일의 주권이, 나의 물질의 주권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님을 믿었습니다. 모든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십일조를 넘어 모든 재물을 하나님을 위해 써도 아깝지 않는 교회의 가치를 가진 성령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진정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교회의 회복과 사람의 변화와 기도의 능력과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 사역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성취되는 일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중심으로 사람을 바꿉니다. 그것도 완전히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고백으로만 교회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완전히 거듭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만이 거룩한 일을 이룰 수 있는 겁니다. 성령의 교회는 하나님 뜻을 이루는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힘써 일하고,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전폭적으로 의지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성령의 교회를 세우는 위대한 부르심에 참여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