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한 초심을 잃어버리지 말라 왕상11:1-13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62 views솔로몬은 왕이 되었던 초기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만 섬겼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기도록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
Notes
Transcript
믿음
믿음
할렐루야! 오후예배에도 초양의 가족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향한 초심을 잃어버리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몇 년 후, 몇 달 후, 몇 일 후에 죽는다고 한다면 무슨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묘비에는 어떻게 쓰여지기를 원하십니까?
한 책에서 읽었던 어느 집사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집사님은 중국 교포들이 한국에 밀려왔을 때 중국 교포들을 위해 아주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옷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옷을 구해 주고, 기거할 곳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데려가 재워 주고, 병 든 사람은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해 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중국에도 일년에 몇 번 이상 자주 가면서 연약한 처소교회를 정말 잘 섬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이미 자신이 위암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제 6개월 후면 죽는다고 하니까 남편에게 ‘이제는 하나님만을 위해 살고 싶은데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남편되는 장로님은 아내의 간청에 감동하여 힘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2년동안 죄없이 하나님만을 위하여 매우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사십여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슬픈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죽음은 결코 슬픈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래 사는 줄로 착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허비하며 죄로 뒤범벅이 되어 살면서 한번도 복음을 위해 살지 못하는 사람이 더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과 관계없이 그저 생존만을 위해서 산다면 그것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내가 복음을 위해 사는가, 아니면 그저 살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사는가.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은, 아니 항상 생각해야 될 이야기입니다.
여기 처음은 좋았지만 마지막은 아주 초라한 인생을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솔로몬! 하면 생각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 지혜입니다.
두 여자가 솔로몬을 찾아와서 한 아기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니까 솔로몬은 그 아기를 반으로 갈라서 두 여자에게 주라고 하니까 가짜 엄마는 그렇게 해달라고 하고, 친엄마는 자신의 아기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으니까 그냥 상대방 여자에게 주라고 하자 솔로몬이 친엄마가 누구인지를 가려서 아기를 주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세상 사람들도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지혜를 솔로몬이 어떻게 얻었습니까? 왕상3:3이하에 보면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고 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윗의 법도를 행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되 일천번제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시어 무엇을 구하는가 물으시니 솔로몬은 지혜를 주셔서 백성을 잘 다스리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되 부와 영광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솔로몬의 불가사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보다는 백성을 더 소중히 여겼었는데 어째서 말년에는 그토록 타락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더구나 솔로몬은 동시대의 사람들보다 지혜가 크게 뛰어났을 뿐 아니라 수천이나 되는 잠언과 노래를 짓고 편집한 자입니다. 왕상4:32부터 보면
“32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33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솔로몬은 잠언 전체의 주된 필자입니다. 아가서와 전도서도 그가 지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심지어는 유대인, 아라비아인, 이디오피아인의 민간 전승에도 솔로몬의 지혜와 불가사의한 능력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말년에는 그토록 타락할 수 있었을까요?
특히 잠언에서 말하는 성윤리를 보십시오. 오늘은 보지는 않겠지만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잠언5장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말년에는 그토록 타락할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오늘 본문에서 보면 결국은 성윤리의 타락이 솔로몬에게 있었다는 겁니다. 어쨌든 솔로몬은 말년에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솔로몬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좇지 않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였던 그 손으로 가증한 우상을 위하여 산당을 지었습니다.
그 마음이 여호와를 떠났습니다. 두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다른 신을 좇지 말라고 하셨지만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솔로몬으로 인한 타락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왕상11:9-11을 같이 읽겠습니다.
“9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나라가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그 고생하며 통일왕국을 이뤄냈는데 솔로몬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왕국이 분열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타락하게 되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교회에 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니까 안심이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타락은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올 수도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솔로몬이 왜 타락했을까요? 여러분들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솔로몬시대의 특징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로 풍요와 권력과 명예, 둘째는 육체적인 쾌락을 위한 사랑, 셋째는 외침이 없는 장기적인 평화입니다.
풍요와 권력과 명예는 영혼을 타락시킵니다.
왕상10:14-25까지를 보면 거기에는 당시의 물질적 풍요로움이 있고 그것은 권력과 명예를 중시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의 부귀영화는 이 세상의 어느 왕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관세 수입금만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역에서 벌어들이는 이익금은 더 어마어마 했겠지요. 그 외에도 국내외 왕과 장관들에게서 받는 조공물들은 차고 넘쳤습니다. 금을 입힌 대소형 방패를 수백개나 만들었고 상아로 대형 옥좌를 만들고 순금을 입혔는데 그러한 옥좌는 일찍이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은을 귀금속으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해상무역으로 인해 왕국은 희귀한 것으로 가득찼고 왕은 왕실 소속 무역상들로 하여금 애굽에서 병거와 말을 수입하여 국력을 키웠고, 그것들을 다시 다른 나라 왕들에게 팔기도하여 풍요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왕상10:27을 보면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고 합니다. 여기 보니까 이정도로 이스라엘이 형통케 된 것이 누구때문인가하면 바로 “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왕이 누구입니까?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어떻게 이런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10:23에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 즉 지혜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라고 왕상10:24에서 밝히 말하고 있는대로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한 결과였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9:10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들은 솔로몬과 같은 축복의 길을 가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만을 경외하십시오. 솔로몬은 분명 그가 왕위에 갓 올랐을 때 하나님만을 경외하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약속받았습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만 경외하고자 노력하십니까?
그런데 문제는 솔로몬은 부와 명예가 넘치게 되니까 점점 권력을 남용하기 시작하였고 백성들을 향해 선한 왕의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부족의 경계를 12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한 부족이 일년에 한달씩 식물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가 요구하는 음식은 상당히 부담이 가는 양이었습니다.
또한 노예가 아닌 이스라엘 사람까지 징집해 노역을 시켰습니다. 이런 일들은 백성들을 분노케 했고 노역의 감독자였던 아도람이 살해되는 일까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솔로몬은 처음에 가졌던 순수함이 부와 권력과 명예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타락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둘째로, 육체적인 쾌락 사랑은 영혼을 타락시킵니다.
왕상 11장 앞부분은 솔로몬의 치명적인 결점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다른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맺어서 국제 조약을 체결했는데 그 방법이 이방 왕녀들과 결혼이었다는 겁니다. 3절에 보면 “왕은 후궁이 칠백명이요 첩이 삼백명이라”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 서로 통하게 되면 이방신을 좇게 될 것이니 서로 결혼하지 말라고 했는데 솔로몬은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였더라”는 겁니다. 그로인한 더 큰 문제는 3절에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는 겁니다.
솔로몬과 국제 조약을 체결하면서 왕비와 후비로 들어온 이들은 홀홀 단
신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이방 종교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솔로몬은 그 많은 아내를 다 만족시킬 수 없으니까 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들의 종교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솔로몬이 뿌린 씨는 결국 후세대에 쓴 열매를 생산해 내게 되고 맙니다. 나에게만 영향이 오는 것이 아니라 후세대에도 고통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문제점 중의 하나가 바로 육체적인 쾌락만을 쫓는다는 겁니다. 너무나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우리가 입에 담기에도 창피한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너무나도 흔한 일로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에 대하여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셋째로, 외침이 없는 장기적인 평화는 영혼을 타락시킵니다.
솔로몬 시대에 대 격전을 벌인 일은 없었습니다. 그는 대다수의 동맹국가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는 외교술을 동원하여 오히려 솔로몬의 궁전과 성전 건축을 위해 두로의 히람왕에게 건축기술과 재목을 지원받기도 하였습니다. 국경주변에 벽을 둘러 전략적 도시를 형성하여 병거를 배치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외부의 적의 침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솔로몬을 더욱 교만케 했을 것입니다.
교회사적으로도 보면 핍박과 고난이 있을 때 오히려 신앙이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핍박에 못이겨 변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핍박이 있으면 신앙을 잘 지키려고 합니다.
군대에 가면 교회에 가면 기합을 받고, 때로는 몽둥이로 맞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교회에 가려고 해요. 그런데 제가 있던 부대는 저의 고참들이 참 좋은 사람들이라 주일만 되면 잠자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이 있던 사람들도 교회에 가기를 싫어하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겁니다. 그래서 저의 때에 저의 동기들이 다시 정신 바짝들게 기합도 주고 주일에도 쉬지 못하게 하니까 다시 교회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거예요. 신앙의 자유를 달라고.
‘평탄한 삶은 재앙을 몰고 온다. 반면에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2001년에 미국에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911테러사건, 미국의 심장부가 테러를 당한 것입니다. 초강대국임을 자부하며 태평한 시대를 맞이한 미국인들은 영적 나태에 빠져있었습니다. 교회들은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사회는 점점 타락되어져 갔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음란한 스캔들이 연이어 터졌는데도 미국은 단지 태평한 시대를 맞이하였다는 이유로 그를 인정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경고를 불러온 것입니다.
솔로몬도 위에서와 같은 일로 인해 그의 영혼이 서서히 타락하였습니다. 마치 서서히 끓는 물의 개구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마침내 죽듯이요.
솔로몬의 타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초심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처음 하나님의 은혜를 접하셨을 때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결심을 하셨습니까? 아직까지 그 결심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까?
좀더 나아가서 여러분들이 처음에 주님을 알고서 느꼈던 그 사랑, 그 열정이 아직도 유효합니까? 어떤 사람이 ‘인간의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력은 잊어버릴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만큼은 결코 잊어버려서도, 잃어버려서도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계2:1-5에서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교훈하십니다.
“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처음 사랑, 즉 하나님을 향한 초심을 유지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초심을 유지하려면 솔로몬은 사도 바울과 같이 푯대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가졌던 푯대는 ‘이방인의 복음화’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 중단없는 성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가져야 할 푯대는 무엇일까요? 왕상 8:60-61입니다.
“60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1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솔로몬도 처음에는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잘 나가다가 나중에는 모두가 솔로몬과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까? 아닙니다. 바울과 같은 인물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아무런 근심없이 한 푯대만 따라갔을까요? 아니예요. 바울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도 솔로몬적 갈등이 있었지만 롬7장에서‘마지막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다. 끝까지 순결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롬7:24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경우는 어떻게 끝까지 승리했을까요?
세계복음화의 비젼과 끝없는 영적 성장의 비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 땅에 선포되는 것이 바울의 소망이었어요.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몸이 으스러지고, 죽음가운데 있다할지라도 그의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온 땅에 선포되어지기를 원하십니까? 이웃이, 가족이, 함께 사무실에 있는 동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 그래서 구원을 받지 못함에 대해서 가슴이 아프십니까? 그것이 없다면 끝까지 승리하기가 버겁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울렁거리십니까? 속이 메스꺼워서 울렁거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감동하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십니까? 전하는 사람이 문제라고요? 물론 그렇지요. 그렇지만 비록 전하는 자는 입술이 둔할 지라도 그 말씀 가운데 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바울은 성도들의 중보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승리하였습니다.
바울은 엡6:18절에서 “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설교자의 설교를 능력있게 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은 한 신학생이 그 목사님의 설교의 능력의 출처에 대하여 물을 때 대답하기를 자신이 설교할 때 그 기도방에는 몇십명의 중보기도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담임목사를 위하여, 설교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중보기도를 하십니까? 여러분들의 기도가 사역자들을 승리하게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역사 가운데 솔로몬과 사도 바울 둘중에서 누가 더 영향력이 컸다고 생각되십니까?
솔로몬처럼 초심을 버리는 자가 되지 말고 바울처럼 초지일관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고백을 여러분들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