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요6:30-40)
Notes
Transcript
생명의 떡(요6:30-40)
[서론]
4, 5번째 표적은 유월절 사건인 만나와 홍해 사건을 재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냄. 요한은 표적의 배치방식도 아주 의도적. 유월절 출애굽이 일어나기 전 애굽 우상 체계를 붕괴시키는 일을 하심. 열재앙.피 재앙부터 신의 아들 파라오를 죽이는 사건을 통해 이것은 신이 아니라는 비신화화 작업을 하고 수많은 민족이 함께 나옴. 신화를 붕괴시키고 만나와 홍해사건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방식 그대로 예수님이 표적사건 배열. 베데스다 연못에서 율법과 속도의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오병이어 사건을 일으키심으로 예수가 누구인가를 드러냄.
[지난주 요약: 예수를 찾은 동기와 수단]
오병이어를 경험한 사람들이 마, 목, 뜻을 다 다해 주님을 찾았고 결국 바다 건너편에서 기어이 예수를 찾음. 엄청난 열심. 그 열심을 보시고 너희들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에 나를 찾은 것이라는 마음의 동기와 목적을 정확히 책망하심. 나를 찾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구나. 표적을 보아도 보지 못한 것이다! 못알아듣고 그러면 뭘 해야 합니까? 어떻게 어제 먹은 그 떡을 오늘 또 먹습니까? 왜 이렇게 못알아 들을까? 떡이라는 번역보다 밥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 떡은 특별한 날만 먹는 음식, 영어로는 빵이라 되어 있고 우리 정서는 밥이 정확.
[육신의 떡을 요구하는 무리들]
30절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불손한 질문. 당신 뭘보고 믿어요? 오병이어 표적은 이미 잊어버림. 오늘 또다른 표적이 필요한 것. 당장 배가 고프니까. 31절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우리 조상들은 40년간이나 만나를 배불리 먹었습니다. 당신은 단회적 사건 아닙니까? 딱 한 번 하고 어떻게 믿습니까? 이정도 표적으로는 저희들 믿게 못합니다. 더 큰 표적 요구. 그 와중에 내가 그 떡이다. 나를 먹어라! 말씀하신 것.
[밥벌이의 무서움]
전쟁 중에도 밥을 먹음, 대치하는 경찰과 시위 군중, 청소 노동자들이 기어이 들어가 밥을 먹음. 식판을 끼고 먹고 배달시켜 먹음. 누구나 먹어야 하지만 자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 내 배를 채워줌. 대신 먹어줄 수 없고 미리 먹을 수 없다, 보편적이지만 개별적. 끼니를 먹는 순간이 삶, 곡기가 끊어지는 순간이 죽음. 삶? 밥을 먹는 것.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새도 나무도 스스로 먹을 수 있는데 인간은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어내지 못함. 밥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인간의 숙명. 속초 심방 먹으려고 줄을 서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먹으려고 줄을 서 있나? 밥 쪽으로 끌려가는 것이 인생. 외국인 노동자 숟가락으로 문을 잠그고 일하러 갔다가 두 아이를 잃음. 왜 모성과 부성을 상실하게 만든 이유? 밥. “하나님 아버지가 먹이시느니라”를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 식물의 엽록소는 이밥과 저밥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짬뽕 한 그릇에도 오만원과 오천원으로 나뉜다. 인간 모든 계층구조, 세계의 작동시스템은 밥을 중심으로 재편. 무리가 먹어야 할 밥은 처절하고 필사적으로 반드시 먹어야 했던 것. 밥의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밥으로 표현하신 것. 엄청난 의미.
[생명의 떡]
3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물러가지 않으시고 말씀. 구약시대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가 준 것. 왜? 조상들이 먹은 만나는 생명의 떡(밥)을 미리 보여준 모형에 불과하다. 의미확장 떡-> 참 떡. 본편이 왔다. 33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생명을 주기 위해. 생명으로 연결. 여전히 못알아 들음. 34절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생명의 두가지 의미]
생명이라는 말의 두가지 의미. 헬라어 단어가 틀림. 첫째, 심장의 박동으로 유지되는 육체의 목숨.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오장육부가 사람답게 유지되는 것. 육신의 생명이 죽지 않게 하려면 지속적으로 먹어야 한다. 1톤 이상. 이것은 소중하다. 이것 잃으면 세상 모든 삶이 끝나기 때문에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 애착. 그러나 오늘 군중이나 대부분의 사람들 문제는 생명이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래서 모든 생각에 최우선순위에 목숨을 가져다 놓는다. 하나님이 되어 버림. 그래서 이 목숨을 유지하게 하는 떡, 돈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오래살고, 건강하고 배부르게만 먹여주면 누구든지 하나님으로 믿겠다고 따르는 것.
둘째는 생명이라는 말은 36번 사용되는 단어, 영적인 생명. 하나님과 교제(니고데모, 아담과 하와, 죽었다는 것은 반응하지 않음, 관계가 끊어진 상태가 죽은 상태 오늘 태어난 아기를 죽었다고 말하는 것, 내동댕이 된 인간, 반응하면 살았다고 말함), 영원한 삶(죽음이 없는 마지막 약속의 축복 54절, 58절) 두 가지로 사용됨. 우리는 죽음 뒤에 영원히 살아야 할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늘 먹을 밥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를 누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리는 생명을 주시는가?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은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영적 생명. 반응하고 영원히 함께 사는 영적 생명.
어떤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도 이 영적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죽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다. 생명 끊어지면 다 없어지는 줄 알고 마지막에 몸부림 치면서 떨고 있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중환자실에서 1시간을 더 살리려고 얼마나 발버둥 치나? 1년 더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엄청난 재산을 사용함. 육신의 생명은 오직 밥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영적인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로! 이것은 과학적 설명이 아니다. 선포. 반드시 먹어야 한다.
[생명의 떡이 되신 이유]
37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절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왜 길이 참으시고 심판을 연기하시는가?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초림의 목적.
육신의 밥은 먹어도 좋고 안먹어도 좋은 것이 아니다. 반드시 먹어야 살수 있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좋고 안믿어도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 영원한 생명과 구원과 연결되어 사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오늘 설교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가 주시는 생명의 밥으로 영생을 살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