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9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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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e 6:46–49 NKRV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4월에 미국 교회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여러 교회들을 다녔는데 하나같이 교회의 규모가 어마어마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자 이 교회는 좀 작다? 생각하는 교회 크기가 한 10만평정도가 되었습니다. 큰 교회는 30만평이나 되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교회의 시설은 돌아보며 와~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였습니다. 교회의 사역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드는 생각은 부럽다… 였습니다. 그렇게 큰 교회들을 다니다 보니 정작 청년교회에서 또 공항교회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것은 많은 재정이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를 가이드 하시는 목사님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사역하시는 교회에 적용해보십시오’ ‘될까? 안될까?’를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용해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할 때 혹여나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통해 무언가 하나는 배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적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을 다녀온지 2달이 되어가지만 목사님의 이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 새벽에 갑자기 미국 다녀와서 느낀점을 왜 이야기 하나? 생각 드시겠지만, 저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그 목사님이 하신 무엇이든 시도해보십시오, 될지 안될지를 염려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보십시오.라고 한 말씀이 생각 났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듣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정말 그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지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보는 이새벽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혹시 이것이 우리를 향한 말씀은 아닙니까? 신앙생활을 한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30년 50년 60년이 되어서 나도모르게 말씀은 말씀이고 현실은 현실이지… 하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마태복음 7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Matthew 7:22–24 NKRV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단순히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며 사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이 알지 못한다고 선포하십니다.
우리는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어떤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시는 것인가? 오늘 본문 이전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에서 12명의 사도를 부르시고 복과 화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 하시는 말씀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메시지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여라. 원수가 어떻게 하든지, 너희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라. 누가 너희를 힘들게 하거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여라. 누가 네 뺨을 치거든, 그자리에 서서 맞아라. 누가 네 셔츠를 움켜쥐거든, 네 가장 좋은 외투까지 잘 포장해 선물로 주어라. 누가 너를 억울하게 이용하거든, 종의 삶을 연습하는 기회로 삼아라. 똑같이 갚아 주는 것은 이제 그만하여라. 너그럽게 살아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이 말씀에 순종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세상에서 원수는 복수의 대상입니다. 그것이 일반적 입니다. 오늘날 많은 심리학자들이 말 하길 미워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워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아요, 마땅히 미워해도 되는 사람을 미워하고 비워내야 더 좋은 사람이 들어 올 자리가 만들어지니까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어떻게 보면 맞는 말 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러한 세상의 소리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원수는 복수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물론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연약한 우리 인간의 힘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고 이용하는 사람을 향해 선행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은 방향성입니다. 지금 당장은 넘어져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우리 성도인 것입니다.
결국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그렇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웃이 원수라 할지라도 그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 우리도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 말이 누군가에게 폭력처럼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상황과 환경이 있기에 원수 같은 그 사람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이 전하는 저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원수도 사랑해야 하는 그 길을 포기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이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원수같은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 사랑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해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안타까워 하며 기도하는 사람과, 그길을 포기하여 원수같은 그 사람을 사랑은 커녕 용서하지도 않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천지차이 일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같은 사람을 사랑하길 포기하지 않고 그를 위해 힘써 기도한다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의 길을 포기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럴때 그런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김요석 목사님이라는 분이 남도의 한센병 환자들이 거주하는 동네의 교회를 섬길때의 일입니다. 이웃마을에서 양씨 성을 가진 사람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 양씨가 찾아 왔습니다. 양씨의 어미 돼지 다섯마리가 우리를 뛰쳐나가 옆집 채소밭을 망쳐놨다는 것이었습니다.
손해배상을 재주겠다고 했는데 옆집 남자는 곧 새끼를 낳을 모든 어미돼지 다섯 마리를 다 줘야 한다고 강짜를 부렸답니다.
사태를 파악한 목사님은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주셔야 합니다. 큰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실 겁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양씨는 시무룩하게 돌아갔지만 결국 어미 돼지 다섯마리를 전부 옆집에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번에는 옆집 황소 일곱 마리가 양씨 집 밭에서 풀을 뜯어먹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양씨는 하나님이 지난번 잃어버린 돼지 다섯 마리를 황소 일곱 마리로 갚아 주신 것이 아니냐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목사님이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용서하면 더 많을 것으로 갚아 주신다고 말 했습니다. 양씨는 이번에도 순종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옆집 사람이 스스로 돼지 수십마리를 끌고 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돼지 전부 자네 걸세! 내가 자네 때문에 한숨도 못 잤어, 지난 일로 틀림없이 화가 잔뜩 났을 텐데, 왜 내 황소를 달라고 하지 않는 건거? 자~ 자네 돼지가 낳은 새끼들까지 다 가져가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웃끼리 잘지내보세.”
양씨는 기쁨에 겨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제가 손해 본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주셨지 뭡니까?” 그런데 더 좋은 일은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모든 것이 이해 되지 않을지라도 오늘 이 새벽에 원수까지도 사랑하여야 한다고 다시한번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그냥 흘려버리지 마시고 이 말씀을 살아내게 위해 힘쓰고 애쓰는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송준기 목사님이 쓰신 “끝까지 가라"라는 책에 교회를 이렇게 정의 합니다.
교회란 성경을 펼쳐들고 예수님을 순종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오늘도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서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고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복된 성도의 삶을 넉넉히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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