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0 양청] 21-22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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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난 시간을 통해 13-20문까지 인간론을, 21-28문까지 기독론(그리스도론)에 대해 공부하게 될 것이다. 몇년 전 전국적으로 CBS 앞에 난리가 났었다. 신천지들이 다 몰려들어서 시위를 한 것이다. CBS 뿐만 아니라 요즘 교회 정문마다 주차딱지마냥 풀칠로 포스터를 붙이기도 하고, 교회에 각종 홍보물과 우편들을 지금도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동성애방지 서명운동, 통일이나 특정 정당활동에 대한 서명운동, 대학에서도 다양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명운동을 통해 연락처를 비롯한 인적 사항을 확보해서 포교활동을 하는 것이다. 저들이 포교활동에 저렇게 목숨을 걸고 활동하는 것은 얼마나 그들이 교리에 무지하고, 얼마나 흑암가운데 있는지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교회나 JMS에서도 엄청난 포교활동을 하고 있고, 신천지만 하더라도 몇년에 한번씩 그들의 포교전략과 교리교육 교재를 리뉴얼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그때마다 그들의 전략을 공부하고 파훼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진리 가운데 머물면서 진리를 알고 진리를 공부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다.
21문.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구속자는 누구십니까?
답.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유일한 구속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니,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인데 사람이 되셨고, 두 개의 구별된 본성이지만 한 인격으로 하나님과 사람이셨으며, 영원히 계속하여 신인이십니다.
22문.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답.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에게 참 몸과 지각있는 영혼을 취하심으로써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 임신되심으로써, 그리고 그녀로부터 죄없이 태어나심으로써 사람이 되셨습니다.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에만 자칭예수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으로만 70명이 넘는다고 한다. 비공식적인 것 까지 포함하면 1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21-22문의 내용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신천지의 경우는 이만희 할아버지를 보혜사라고 부른다. 물론 그들이 포섭한 사람들을 처음부터 이딴 교리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초반 3개월에는 기성교회와 큰 차이없는 방식으로 성경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 3개월동안 그 사람의 마음과 환경을 장악하고 이제는 벗어날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노골적으로 그들의 교리를 가르친다고 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분별을 하지 못하면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그들의 실체를 파악했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끊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도대체 구속자는 어떤 분이어야 하는가, 우리의 구속자는 누구인가, 왜 예수를 우리의 구속자라고 부르는가, 따라서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21문을 보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유익한 구속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니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 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중요한 칭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 때문에 기독교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단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들의 주장을 따르면, ‘아들' 이라는 개념은 언젠가 낳았으니까 아들이 된 것 아니겠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신데 아들은 태어난 존재이니까 그러면 예수는 피조된 존재가 아니냐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속성은 영원으로서,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 영원인데, 아들이라고 한다면 존재의 시작점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시작점이 있다면 그를 성부하나님과 동등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주장들을 따라서 성자하나님을 성부하나님보다 못한 존재로 여긴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 같은 곳에서는 예수를 피조물로 본다. 이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슬람에서도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니, 망령된 소리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두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C.S.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런 논증을 했다. 여러분도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라는데, 곰이 새끼를 낳으면 뭔가? 곰이다. 사람이 새끼를 낳으면 사람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때 이는 곧 하나님이심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믿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얘기할 때, 우리도 하나님이 된다는 얘기인가? 이렇게 해석하면 이단이 된다. 우리는 영원히 피조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 이것은 우리에게 베푸시는 영원한 존귀와 영광과 영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구원을 받더라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한다 할지라도, 영원히 천국에서 그 영광 가운데 있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이해해야 할 두번째는 다음과 같다. 성부하나님께서 성자하나님을 영원토록 낳으셨다는 것이다. 1세기 초대교회에서 나타난 이단 중 하나는 성부께서 낳으신 아들이라면 어떻게 성부와 동등하실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와 동격일 수 있겠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런 표현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기본적으로 성경이 설명하는 것은 우리의 이해의 한계 속에서 설명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원이라는 개념을 모르니까, 시간 속에서, 유한함 가운데 살아가다 보니 우리의 이성과 판단도 유한함 속에서만 생각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때, 언제 그분을 낳으셨는가 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어떻게 설명하느냐, 성부께서 성자를 영원토록 낳으셨다고 했다. 영원히 낳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낳으셨구나 생각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다. 지난 시간에 영원에 대해 잠시 설명했지만, 영원히 낳으셨다는 것은 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과거, 현재,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내용이 어렵고 이해가 안가는게 정상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칼뱅이 기독교강요에서 강조한 바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내 머리로 알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내 이해와 상식과 판단에서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무한하고 불변하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때, 하나님의 수준으로 나타내셨다면 그 누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으랴.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수준으로 낮춰서 말씀하셨다. 이를 적응계시라고 한다. 유치부 꼬마 아이가 아빠한테 묻는다. “아빠! 천 억이라는 돈은 얼마나 큰 돈이야?” 이때 아빠는 말한다. “천 억이라는 돈은 람보르기니 우루스를 333대를 구입할 수 있고, 벤츠 지바겐을 500대나 구입할 수 있단다. 네 수준으로 말하자면 레고 중에 가장 비싸다는 밀레니엄 팔콘 레고 시리즈를 125,000개나 살 수 있는 금액이야" 유치원생 아이에게 이렇게 설명할 사람이 어디있겠나. “얘야, 천 억이라는 돈은 쭈쭈바를 셀수 없이 많이 먹을 정도로 큰 돈이야" 뭐 이렇게 설명하겠지. 하나님께서 한없이 낮은 수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지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인양 생각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내 수준으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교재 3번을 보라. “사람이 되셨다"라는 표현을 잘 이해해야 한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시공간의 제약속으로 들어오셨고, 고통과 번민의 인생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실 수는 있다. 전능하시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낮아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신학적 용어로 “그리스도의 비천”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2주 후에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생각할 때 성자 하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에 집중하지만, 근본적으로 성자 하나님께서 천상의 모든 영광을 떠나 인간의 몸을 입어 이 땅에 내려오셨고, 인간으로써 어린 시절 부모의존적인 삶을 사셨고, 모든 것을 다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팔레스타인의 가난한 지역에서 험한 목수일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신 것, 그리고 고난 받을 이유 없는 그분께서 겸손히 고난받으셨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죽임을 당하셨으며, 죽음 아래에 3일간 거하신 이 모든 것들, 곧 이 땅에서의 모든 주님의 생애 자체가 낮아지심이었다.
4번을 보라. 두 개의 구별된 본성, 한 인격이라고 했다. 어떻게 무한, 영원,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이 유한하고 변화하는 인간의 본성과 한 인격을 이룰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실 수 있나? 이것은 단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정도의 의미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을 때 완전한 사람만 되신게 아니라, 완전한 사람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시기를 한 순간도 멈추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해와 상식을 뛰어넘는 신비이다. 인간이 이런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나?
임산부와 태아를 생각해보라. 엄마와 자식이 혈액형이 같은 경우도 있지만 다른 경우도 있다. 어쩌면 다른 경우들이 훨씬 더 많다. 분명 어머니 뱃속에 아이가 머물고 있다. 그런데 혈액이 다른데도 서로 섞이거나 합성되지 않는다. 엄마와 태아는 두 인격체이면서 태아는 엄마를 통해 양분을 공급받는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굳이 구분하면 영과 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지 사실상은 나눌 수 없는 하나이다. 그러나 영과 육이 나뉘어지는 순간이 있으니 오직 언제인가? 죽는 순간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사람은 영과 육이 한 몸을 이룬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영이 아프면 몸도 아플 수 있다. 몸이 아프면 영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하나이니까. 또한 영이 건강할 때 몸의 컨디션도 좋아지기도 하고, 몸이 건강할 때 영도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친밀한 연합관계이니까.
그러나 영과 육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잘 모른다. 어떻게 서로 다른 이 둘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지 조차도 우리는 모른다. 인간인 우리가 우리 몸에 대해서 다 이해하지 못하고 다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의사들조차 인체의 신비에 대해 다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신비의 영역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다 깨달을 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몸과 영을 믿지 않는다거나 엄마와 태아의 신비를 인정하지 않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라는 것은 인간의 이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성경이 이를 그렇게 말씀하신다. C를 보라. 성자 하나님이 인성을 취하신 것이지 인간 예수가 신성을 획득한 것이 아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하신 것이지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D를 보라. 이는 신학적인 개념을 나열한 것으로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인데. 예를 들어서 병에 물을 담아놓고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처음엔 잉크가 선명하게 똑 떨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섞여버린다. 구별이 안된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이와 같이 설명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분이 아니라 한분이다. 그 한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신성과 인성은 변질되지 않고, 합성되지 않고 혼합되지 않는다. 인성과 신성이 섞여서 구별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5번을 보라. 영원하신 신인이라고 말씀한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까지는 육체로 부활하신 것인데, 승천하신 이후로는 육체를 입고 계실 필요가 없어서 이제는 육체를 벗으시고 하늘보좌에 오르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육신 하신 구속자는 육체로 부활하셨고, 육체로 승천하셨으며 영원토록 영화롭게 된 인성을 입고 계신다. 그리고 주님께서 입으신 그 영화로운 육신[부활체], 썩지 않는 몸, 영광스럽게 된 몸을 구원받은 신자들도 동일하게 입게 될 것이다. 지금 입고 있는 우리의 몸은 왜 썩는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썩는다. 우리가 부활하게 될 때 우리도 이런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6번. 왜 죄인을 구원하실 유익한 구속자는 신인이 되셔야만 하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고 오게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버려두셨으며, 부활하게 하시고, 그분의 부활이 왜 그렇게 중요하며… 왜 기독교는 이렇게 복잡할까?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 하면 안 복잡하다. 예수 그리스도 구속자가 누구냐 하면 복잡해진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시다. 어떻게 이 분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나? 구원의 도리가 복잡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 되셔야만 했는가? 사람이 되셔야 했던 이유, 사람이 범죄한 것을 사람이 그 죄를 담당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담당하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중보자, 우리의 구속자가 왜 하나님이셔야만 하는가?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실 구속자의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라. 첫째는 무죄한 분이셔야 한다. 죄가 있는 분이라면 자기 죄 때문에 죽어야 한다. 둘째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의 죄책을 담당하셔야 하니까. 그러나 죄가 없는 사람이 있나? 죄가 없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죄값을 대신 짊어진다 치더라도 한 사람이 수많은 무한한 죄인들을 속량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의 구속자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신 분이어야 하는데, 온 천하에 그런 존재는 하나님 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과 공의로 만족이 된다. 공의는 무엇인가?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 사랑은 무엇인가? 네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이 두 가지를 함께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인 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하심으로 심판을 당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셨다.
이어서 여러분 교재 7번을 보라. “참 사람이 되심". 22문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22문을 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에게 참 몸과 지각있는 영혼을 취하셨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한다. 취하였다고 한다. 성자 하나님께서 참 몸을 취하셨다. 1세기 이후에 일어난 초대교회이단 가운데 가현설주의가 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실 수는 없고, 그냥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사람의 모습처럼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손님 3명을 영접했는데, 사실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것이냐? 그렇지 않고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도 그와 같다고 말한다. 사람처럼 보일 뿐이지 진짜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도 사람처럼 죽으신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실제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죽으신 척만 하신 것이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또한 성자 하나님은 지각있는 영혼을 취하셨다고 말한다. 단지 인간의 육체만 취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지각 있는 영혼, 보통 인간이 누리는 이성과 감정들도 취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도 괴로움, 외로움, 번민의 정서를 느끼셨던 것이다. 그야말로 완전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8번을 보라. 주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16문에서 공부한 바를 다시 한번 반복하면, 보통의 출생에 의해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인류는 아담의 첫 범죄에 있어서 그 안에서 죄를 지었고, 보통의 출생, 부모로부터 출생하는, 아빠와 엄마를 통해 출생하는, 남자와 여자를 통해 출생하는 모든 인류이다. 예외가 없다. 모두가 그렇게 출생하니까. 그 출생하는 사람들은 다 아담의 범죄 안에서 아담의 원죄를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보통의 출생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태어나셨다. 이 방식을 쓰신 것은 보통의 출생을 통해 원죄를 이어받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인성은 어디서 형성 되었느냐,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리아의 태에서 모든 영양을 공급받으시며 인간으로 나셨다.
다시 22문 이어서 보면,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 임신되심으로써, 그리고 그녀로부터 죄 없이 태어나심으로써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보통의 출생법을 따르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되셨고, 마리아의 태 중에서 마리아의 영양분을 받으며 인성을 취하셨지만, 죄성은 이어받지 않으셨다. 분명히 엄마 뱃속에서 자라났는데 낳고보니까 완전히 아빠를 닮았다. 내 뱃속에서 나왔는데 나는 안닮고 아빠얼굴이다. 말하자면 엄마의 뱃속에서 났지만 역시 부모를 통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의 아버지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참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의 구속자로서의 조건을 완전하게 이루셨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첫째로, 택하신 자들의 유일한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으로서 택자들의 모든 죄에 대한 모든 형벌과 저주와 진노를 완전히 받으시기에 합당하셨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완전하신 구속자로서의 조건을 지니셨다는 것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게 말이다.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하여 주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 그 자체로 완전한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만을 바르게 믿는 여러분 되시길 바란다.
둘째로, 택자들의 유일한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성을 지니셨기에 연약한 우리를 아시고 이해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시다.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셨다는 것은 우리의 중보자,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연약함과 질고와 슬픔과 번민과 우리 인생의 괴로움과 갈등 등 모든 것들을 죄를 알지 못하셨던 분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인간이 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셨기에 이를 아신다는 것이다. 그분이 나를 아시고 이해하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그분께 나아갈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성경이 말씀한다. 히4:15-16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MBTI에서 T형이 F형에 비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걸로 알려져 있다. 저도 T이긴 한데. 어떤 사람이 고민이 있어서 찾아왔다. 그런데 도무지 그 사람의 고민에 대해 공감을 못해준다. 그러면 이게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받으려고 찾아온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아픔과 괴로움에 대해, 모든 부르짖음과 탄식에 대해 조금도 공감을 못하시는 분이라고 한다면, 주님께 아뢰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충분히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한다. 왜? 예수님께서 이 땅을 살아가시며 인생 가운데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다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운지를 다 겪으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 나아가라. 모든 인생의 문제는 예수님께 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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