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린 십자가, 피 묻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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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views예수님의 피흘리심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1.죄인은 헌신될 수가 없다. 2.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속량하시는 피이다. 3.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 4.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5.예수님의 피는 약속의 수단이다. 6.예수님의 피는 능력이다.
Notes
Transcript
헌신
헌신
할렐루야! 오후예배에도 초양의 가족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으로 “피흘린 십자가, 피묻은 신앙”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오늘 오후예배는 2남전도회 헌신예배로 드리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초양교회에 4개의 전도회가 있는데 그중에서 2남전도회가 가장 활성화되고 활발하고 헌신도 면에서 다른 기관이 따라 올 수 없다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현재는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어쩌면 제일 걱정하고 있는 기관인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을 2남전도회원들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도 그렇고, 모임도 그렇고,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허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사회적 현상으로 노령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는 반면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보니까 태어나는 아이들이 줄어드는 것만이 아니라 2-40대도 그렇게 건전해 보이지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노동인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라에서도 걱정하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들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허리 역할을 해주어야 할 3-40대 혹은 50대까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허리 역할을 해주어야 할 중간세대가 줄어드니 교회는 점점 더 축소가 되고 마음에 맞는 교회끼리 서로 합하는 일도 생기게 되는 겁니다.
우리 교회도 사실 그 허리 역할을 해야 할 기관이 2남여전도회입니다. 다른 기관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관들이 같이 함께 세워져야 건강한 교회가 되어지고, 미래가 있는 교회가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2남전도회가 더욱 든든하게 세워져서 우리 초양교회가 더욱 주님의 교회로 세워져 갈 수 있도록 힘써 주시고, 우리 교회 모두가 함께 합력하여 기도하며 격려하며 나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기 위하여서 헌신하는 모습이 있어야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 2남전도회와 함께, 그리고 여기에 함께 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과 함께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헌신의 참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신 의미가 우리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살아야 하는 진실된 의미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1. 죄인은 헌신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죄를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이고 기독교는 피로 세워진 종교입니다.
레 17:11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해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즉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니 피를 뿌려서 죄를 속하라는 말씀입니다.
히 9:22에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피 밖에 죄를 씻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의 과실은 다 먹어도 좋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은 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것은 매우 쉬운 것 같지만 호기심 많은 인간에게는 지키기 힘든 언약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 과실을 먹고 죄를 지어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 왔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에게 바쳐진 사람들이 되지 못하고 죽음에 얽매인 사람들이 되었고 그들의 이런 잘못이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전가되어 우리들도 죽음에 매여 살게 되고 말았습니다.
롬 6:23에는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망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를 말하고, 생명에서 끊어진 것을 말하고, 사망의 권세 아래 살게 된 것을 말하고, 사단의 종노릇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죽음이고, 죄고, 어두움이고, 사망입니다.
인간 불행의 결국은 사망이요 죽음입니다.
죽음은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요, 둘째는 육체는 살아 있지만 영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적 사망이요, 셋째는 제 2의 죽음, 큰 죽음인데 영원히 하나님을 떠나서 소망이 없이 절망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죽음이라고 말하는 영과 육의 분리는 사실 영원한 죽음의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일종의 죽음의 가사 상태입니다. 일시적인 죽음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무서운 영원한 죽음은 무감각, 무경험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 영원한 소외, 영원한 어두움인 겁니다.
그런데 이 저주받을 죽음이 사단의 간계로 미화되고 있습니다. 사단은 가짜를 잘 만들어 냅니다. 그들은 가짜 예수님을 만들었습니다. 죽음의 문제는 그의 피로서만 해결될 수 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를 흉내 내서 적그리스도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이 하는 것을 보세요. 그들은 붉은 혁명의 깃발을 앞세워 공산주의를 만들어 내고, 1960년대는 Student Power라는 신좌익 운동을 만들어 일본, 미국,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우리 나라 학생들까지 피를 흘리지 않고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하여 무서운 피의 제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피흘림은 속죄의 피흘림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를 위한 피흘림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문화 혁명이 일어나 “피를 흘리자, 피를 흘리자”라고 피의 숙청을 부르짖었습니다. 이미 망해 버린 구 소련의 국기에는 피 빛 바탕에 별 5개가 있는데 세계5 대륙을 피로 적화해야 한다는 사단의 계략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이교도들의 종교도 대게 피의 종교들입니다. 그들은 피로 죄를 씻는다고 하고, 자기들의 신에게 피를 바친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피를 흉내낸 사단의 장난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흉내내서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의 의미를 흐리게 하고 마치 그들이 말하는 피가 그리스도의 피와 같은 것으로 착각을 하게 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생명의 피요 축복의 피입니다.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위해 하나님이 옷을 입혀 주셨는데 그것은 한 마리의 짐승을 잡아 피를 흘러 만들어 주신 것이었어요,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침으로 피 흘림의 제사를 드렸고,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우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피는 생명입니다. 저 사단의 계략처럼 피를 흘려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바쳐 죄인의 생명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죄인의 구원은 깨끗하게 사는 도덕적 결의로나, 신화, 소설, 문학에서 나 온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는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말씀이 255번이나 나오는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이 구원을 얻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피의 약속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만찬식 때 포도주를 가지시고 “이것은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도 먼저 우리의 죄를 회개하여야 진정한 헌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는 피입니다.
헌신에는 속량의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값을 주고 산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당신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돈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강압적으로, 말로 우리를 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피를 흘리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한 것은 사상이 아닙니다. 요즘 자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정치인들보다도 밑에 내려놓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어떤 특정 정치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팬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를 따르냐 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예요.
제가 말씀 드리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보다도 자기가 따르고 좋아하는 정치인을 더 높이고 숭상한다는 겁니다. 실제 있는 이야기예요. 단순히 저처럼 이렇게 설교시간에 말했는데 ‘나는 목사님과 같은 사람하고는 같이 신앙생활 못하겠습니다’하고는 떠나더랍니다.
아니에요. 사상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의 심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는 겁니다. 그들의 영혼 속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용솟음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살아 계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의 참된 헌신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들이 희생하므로써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혹은 수고로운 짐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량이 없는 헌신은 공염불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이렇듯 고귀한 생명의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우리들도 우리들의 생명을 바쳐 주님 위해 살아야 하고, 주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날마다 헌신해야 하며,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속량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사람이 의로워지는 것은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의로워집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며, 성실한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원이 말씀입니다. 영원한 삶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의인을 요구합니다. 교회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기관이지만 그 죄인을 구원하는 일은 죄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인입니까? 아닙니까? 예, 의인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칭해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칭의’라고 말한다고 지난 수요일에도 말씀을 드렸을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은 의인입니다.
그러면 죄인이 아니란 말입니까? 여러분은 죄가 하나도 없어요? 그건 또 아니지요. 사실 사도 바울은 롬3:10에서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밝히고 있듯이 모두가 죄인이에요.
따라서 그리스도적 의인이란 죄없는 완전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덧입음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그리스도의 보혈로 덧입은 사람은 그 생각과 말과 행동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총으로 인해 의인이 되었으니 의인으로써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재직이 되고 중책을 맡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방법과 수단을 그대로 동원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그리스도적 의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구원받았으니 우리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서, 아니 내 생명을 바치면서 헌신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4.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피가 같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친자 확인이라는 것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때 친자 확인은 4-5가지의 조건이 정확히 맞아야 친자 증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친자 확인은 피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한가지라도 맞지 않으면 친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확실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들의 생명이 새로워져야 하는 겁니다. 단순히 그리스도인의 흉내를 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이 천사의 모양을 흉내낼 수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흉내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2남전도회원과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인 줄 믿습니다.
5. 예수님의 피는 약속의 수단입니다.
우리가 도장을 찍을 때 붉은 인주를 쓰는 것은 피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인주가 없을 때는 피를 내어 지장을 찍었습니다. 이른바 혈서이지요. 붉은 색으로 약속을 하는 것은 “나의 생명과 인격을 걸고 이렇게 약속을 합니다”라는 표시인 겁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5,000번 이상의 약속을 피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에 사용된 붉은 인주는 바로 예수님의 피인 겁니다.
6. 예수님의 피는 능력입니다.
사상, 도덕, 교육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피가 예수님의 피입니다. 죄인을 의인되게 하고, 영원히 구원하시는 능력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죄인을 지옥에서, 영원한 저주에서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들을 지옥에서 완전히 구원하시는 능력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피의 효과를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신장 이식 수술을 하는데 필연적인 두 가지 요소가 맞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신장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이식을 받은 사람이 거부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이 우리의 것이 되려면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생명을 받는 우리가 그 생명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고 믿음으로, 전적인 의탁과 순종으로 “당신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요, 당신의 생명은 나의 생명입니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진젠돌프는 모리비안 교파의 지도자였습니다. 모리비안 사람들은 감리교의 웨슬레에게 은혜를 준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진젠돌프가 박물관에 있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 그림에는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살길을 주었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었느냐”라는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그 그림과 그 글을 보고 있다가 그 자리에 무릎을 끓고 “주여, 나의 모든 생명을 다 드립니다.”라고 헌신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것은 참으로 배은망덕합니다. 적반하장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또 다른 아픔, 또 다른 고독과, 슬픔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기에 달려 돌아가실 때 “테델레스타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값을 다 지불했다는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거래를 하고는 돈을 지불하고는 다 지불했다고 합니다. 또한 세금은 다 지불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신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우리의 생각에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하고, 우리가 세상을 살 때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이 온통 그리스도의 삶이 되어야 하고 우리들의 이상과 꿈이 모두 그리스도의 그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 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내 생명보다 더 귀하시고, 내 자식보다, 내 명예보다, 내 세상보다 더 귀하십니다. 나는 본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어 있는 저주받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없는 세상을 올바른 세상이 아니며, 그리스도 없는 나는 참된 구원을 얻을 없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피의 언약입니다. 지울 수도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생명의 언약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우리 무덤 앞에는 십자가와 함께 단 한마디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주님의 나라에 간 사람’이라는 말이 있어야 합니다.
헌신 예배에 헌금했다고 헌신된 것이 아니며, 예배당 청소를 했다고 헌신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잘 알고 주님의 마음과 진심으로 교회를 섬겨야 헌신된 것입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2남전도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구원받음을 기뻐하며 날마다 교회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며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