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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두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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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16. 어른 예배 23. 6. 11 어른 예배
말씀: 창 5:21-24 (구 7)
제목: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창세기 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창세기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세기 5: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창세기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말씀이 기록된 창 5장에는 아담 자손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1절에 보면“창세기 5: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그런데 그 내용은 “누가 몇 세에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고, 00세를 살고 죽었더라”는 말씀이다. 4-5절이다.
창세기 5: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세기 5: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세기 기자는 이 5장에서 아담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이런 패턴을 반복해서 기록한다.
누가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00세를 살고 죽었더라. 모두 이 패턴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록되는 패턴가운데, 다른 패턴을 따르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
모두, 누가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00세를 살고 죽었더라.
이렇게 했는데, 에녹만큼은 그렇게 기록하지 않는다.
오늘 말씀, 21-24절에 보면, 죽었다는 말이 없다. 살아서 하나님 곁으로 갔다는 것이다.
창세기 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창세기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세기 5: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에녹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족보를 갖게 되었는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누가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00세를 살고 죽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서 에녹만큼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다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고 하셨는가.
그래서 오늘은 에녹에 대하여 말씀드린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에 대해 말씀드린다.
1.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22절이다.
창세기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가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세상을 얼마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한다.
요즘에는 100세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 성경이 기록된 사람들은 거의 800-900세를 살았다. 평균 나이가 900세다.
그런데 그런 시대에 에녹은 몇 살까지 살았느냐. 365세를 살았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적게 살았다. 1/3밖에 살지 않았다.
요즘 나이로 계산하면, 100세 시대에 36세까지 살다가 하나님 곁으로 갔다.
그런데 어떻게 갔느냐.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24절이다.
창세기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냐는 것이다.
900세까지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천국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 그러는가. 왜 사는 방법이 더 중요한가.
우리가 천국에 가면 받게 되는 상급이 2가지가 있다고 말씀드린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심판을 하신다.
오늘 말씀에 24절에 보면, 에녹은 이 세상에 살다가 죽지 않고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데려 가셨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축복이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삶이 끝났을 때, 가는 곳이 천국이기를 원한다.
이런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22절, 24절.
한글 사전에 동행이라는 것은 함께 길을 가는 것을 말한다.
어려운 길을 갈 때, 미지의 길을 갈 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우리 인생도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을 간다.
한 번 가본 길이면 좋을 턴데, 그래서 두 번째 간다면, 실패함이 없이 잘 갈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이 시간도 처음 가보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를 한다.
그래서 그 길을 하나님과 함께 가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길을 인도하시니 하나님과 함께 가라는 것이다.
동행하면 생각나는 동물이 있다. 소. 소가 땅을 갈 때 동행을 한다.
봄이 되면 밭에 씨를 뿌리기 위해 땅을 가는데, 쟁기질을 한다.
앞에서 소가 쟁기를 끌고 가고, 뒤에서 사람이 쟁기를 잡고 따라간다.
그런데 어떤 집은 소 두 마리가 쟁기를 끄는 집이 있다.
그 때 보면, 소 두 마리의 어깨에 멍에를 올려놓는다. 두 마리가 함께 보폭을 맞추어 갈 수 있도록 멍에를 올려놓는다.
그런데 이 멍에가 동행이라는 말이다. 히 동행=헬, 멍에다. 같은 말이다.
예수님이 그러시잖아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런데 소들이 이렇게 할 때 왼쪽에 있는 소를 안소라 하고, 오른 쪽에 서는 소를 ‘마랏소’라 한다.
그리고 안소는 나이는 있지만, 경험이 많고, 그래서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 소를 사용하고,
바깥쪽에 마랏소는 힘은 있지만, 안소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가면서 일을 하는 젊은 소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 마랏소는 안소가 이끄는 대로 가면서, 땅을 가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안소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인생을 이끌 사람이 필요하다.
마 11:29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하신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내 멍에를 메 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안소가 되어서, 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동행해 주겠다는 것이다.
처음 가보는 길을 인도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기 바란다.
그래서 동행한다는 것은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같은 목적지를 보고 간다는 것이다.
소들이 어떤가. 멍에를 맨 소.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른 곳을 바라보고 가면 밭을 갈 수가 없다. 목적지를 갈 수가 없다.
요즘에는 참 희귀한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
환경 때문에 그런지 돌연변이들이 많이 나온다.
얼마 전에 낡은 집을 고치다가 머리가 두 개인 도마뱀을 잡았다.
그런데 어떻게 잡혔느냐.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다가 잡힌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과 다른 방향으로 가려면 우리는 잘 갈 수가 없다. 잘 살 수가 없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다스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방향으로 가면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 말씀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싫어하는 것이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죽이지 않고, 천국으로 데려가셨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축복이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 하다가, 천국으로 가는 복이 있기를 원한다.
2. 에녹은 인생의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삼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는가.
5장에 기록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모두가 죽었는데, 어떻게 해서 에녹은 다른 족보를 갖게 되었는가. 죽지 않고 살았는가.
에녹이 특별한 사람이었는가.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에녹이 꼭 그렇게 특별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왜냐, 므두셀라의 이름만 봐도 그렇다.
므두셀라의 이름은 창 던지는 자이다.
창을 던지는 자라는 것은 다시 군사용어이다.
창을 던지는 자란 옛날 고대 부족끼리 서로 싸울 때면 그 마을에서 창 던지는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서 있다가 쳐들어오는 적군을 행해 창을 던져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을 던지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면 그 마을은 곧 함락되고 불에 타 없어졌다.
그래서 창던지는 자가 죽으면 그 전쟁은 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환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적에게 짓밟히고 포로로 잡혀가고 집은 불태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창던지는 자의 죽음은 환란의 시작입니다.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고 창을 던지는 자라는 뜻을 가진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므두셀라, 창 던지는 자가 죽으면 환난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므두셀라가 죽자, 노아 홍수가 시작된 것이다.
노아 홍수는 므두셀라가 죽은 해에 시작되었다.
자녀들의 나이를 보면, 그렇다.
그래서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에녹이 살던 시대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시대는 아니었다.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앙의 구분 없이 죄를 지으며 살던 시대였다.
이 다음 장 창 6장에 보면,
창세기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그래서 이 말씀은 당시 사람들이 믿음의 구분없이 살아갔다는 것이다.
믿는 사람들이, 믿음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 하나님께서 에녹을 부르신다. 에녹을 부르시고, 말씀하신다.
‘에녹아! 세상이 참으로 악해졌구나! 그래서 내가 이 세상을 심판하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심판하겠다.
그리고 그 징표로 장차 너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므두셀라’라 하라.”
므두셀라=무드(죽다) + 셀라=솨할라(보내다)
무슨 말이냐. ‘그 아이가 죽으면 심판을 보내겠다’는 뜻이다. 홍수 심판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았다.
그래서 에녹은 이 므두셀라를 볼 때마다 ‘저 아이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고 했는데’ // 하며, 아이의 이름을 므두셀라, 창 던지는 자라고 지었다.
그리고 나서, 그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심판이 있다고 하자, 그의 인생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는데, 다른 사람하고 똑같이 흥청망청 살았는데,
그가 65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남은 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천국으로 간 것이다.
창세기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세기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이다.
며칠전 8시 SBS 뉴스에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이 보도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예언하고 죽은 것이 있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가 멸망한다.”
그런데 지금 지구 꿀벌의 36%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양봉하는 사람들도 꿀벌이 줄었다고 야단입니다.
미국에도 꿀벌어 사라지니까 아몬드 농장에 아몬드가 열리지 않아 120만 마리를 사서 풀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공해때문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 분석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핸드폰의 전파 때문에 벌들이 집을 찾지 못 하는 것같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예언들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에녹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처럼 아들 딸 낳고 평범하게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 달라졌느냐. 하나님의 심판을 깨달은 순간부터 달라졌다.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의 어려움을 만나 인생이 달라진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물질의 어려움을 만나 인생이 달라진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녀의 문제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로 주님을 만난 사람이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복이 있기를 원한다.
살기는 어렵다 할지라도 그 일들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는 복이 있기를 원한다.
노벨이라는 사람 있다. 노벨상 창시자.
이 사람은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서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프랑스를 여행하다가 신문을 본다. 호텔 방에 배달된 신문 기사에 ‘노벨 사망’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사실, 노벨의 형이 사망했는데, 노벨이 너무 유명하니까, 그 이름을 잘못 기록한 오보였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내용은, 그 헤드라인이 ‘노벨, 죽음의 상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
왜 그랬느냐. 당시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벨은 이 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호텔에 머물면서, 죽음을 생각했다.
“내가 만약 이대로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죽음의 상인이었다고 하겠지,
그리고 충격을 받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했다. 그리고 그 기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노벨상이다.
노벨의 인생은 잘 나가는 인생이었다. 뭐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 인생가운데 자신이 죽었다는 신문의 기사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살다 죽었다면, 오늘날처럼 이름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신문로 인해 자기 자신을 보게 되었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삶의 전환점이 있기를 원한다.
예수님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우리가 죄인이 되었는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는 동명의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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