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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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22:1–12 NKRV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우리가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것 중 하나가 너는 나중에 어떤 삶을 살고 싶어? 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질문들 받아 보셨던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라고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꿈꾸어 왔던 삶은 어떤 것인가요?
여러분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삶은 어떤 것인가요?
아무런 문제없이 건강하고 행복한 화목한 가정?
돈 걱정 없이 풍족한 삶?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을 아주아주 잘 따르는 그런 가정?
우리는 모두 한번쯤은 우리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봤던 어떤 삶이 있습니다.
그것이 꼭 무슨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닐지라도 '소박하게'라는 말로 포장하여 그리는 꿈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꿈은 우리가 느끼기에 불행한 것이기보다는 그렇게 되면 더 좋겠다는 느낌이지요.
그런가 하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그분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우리가 생각하는 꿈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얘기를 들으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저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기 원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이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간다면 어떨까요?
내가 어느정도 예상하고 생각했던 선을 넘어간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실제적인 다루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그어놓은 허용범위를 넘어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알려주시며, 동시에 우리를 통해 주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알려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 뜻대로 인도하시는 그 길은 우리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오늘은 아브라함 이야기를 통해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길에 대해 전하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과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인생 전체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한 백성을 세우기 원하심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하시며 순종을 요구하심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땅으로 감
가나안 땅에 기근이 일어나서 애굽 땅으로 감
애굽 땅에서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하며 목숨을 부지하려고 했음
롯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옴
롯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함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함
여종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음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를 통해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하심.
12장에서 21장에 이르기까지의 아브라함의 스토리는 아브라함이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했으며, 때로는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 때마다 주님의 은혜로 상황들을 헤쳐나갑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너의 자손이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겠다. 모든 민족이 너와 네 자손을 통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너와 사라 사이에 아이가 생길 것이다.
아브라함은 주님의 약속을 신뢰했으며, 그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했고, 이야기는 그 약속을 이루는 과정으로 흘러갑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순종해가는 과정 하나하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대로 가정을 이루어가는데는 큰 고뇌도 함께 했습니다.
한가지 예로 21장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는 과정 또한 아브라함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Genesis 21:8–12 NKRV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드디어 아브라함 100세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녀 이삭이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을 사라가 보고, 당장 여종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쫓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니 아브라함에게 이 일이 자신의 아들 이스마엘로 말미암아 매우 근심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 편에서 아무리 여종의 자녀라지만 이스마엘을 내보내는 것이 쉬웠을까요?
창세기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신다고 약속하실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한 때 이스마엘을 자신의 유업을 이을 자녀로 생각했을 만큼 이스마엘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런 그가 아무리 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었다고 해서 이스마엘을 내보내는 것이 쉬웠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근심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Genesis 21:12–13 NKRV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Genesis 21:14 NKRV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대로 여종과 이스마엘을 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인도할테니 아브라함은 걱정말고 그를 하나님께 맡겨두고 여종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는 것입니다.
왜요? 이삭이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이스마엘은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 그를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 편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며, 하나님 편에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인 것을 아브라함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지체 없이 순종합니다. 자신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을 통해 아브라함은 한 번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내쫓겼지만,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스마엘을 보호하시며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다.
자, 이제 모든 것이 세팅된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여곡절 끝에 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게 되었고, 자신이 이전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은 이스마엘도 내쫓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가나안 땅에 살며 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대로 가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이들은 함께 행복하게 잘 살면서 이삭을 잘 키웠다는 결말에 이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결말을 맞이해야할 것 같은 이 이야기에 실은 엄청난 절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아니 모든 것이 하나님 뜻대로 된 것 같은데 도대체 왜요?
이스마엘도 내쫓았는데 이제는 이삭까지?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평생을 헌신했는데 어떻게 이삭까지 바치라고 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자칫 오해할 수 있습니다.
내게 좋은 것을 허락하시고, 그것을 다 뺏어가기를 원하시는 분.
‘어떻게 이것까지 요구하십니까? 너무 하십니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혹은 ‘어떻게 이런 상황을 허락하십니까?’ 라고 원망 섞인 불평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입니다. 하나님도 뺏어가시면 안되는 그것.
그것이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평안일 수도 있고, 안식일 수도 있고 가지 각색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만큼 헌신했는데 하나님 이러시면 안되죠. 혹은 하나님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등 많은 반응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지만 이거는 선을 넘는 것이라는 그 선이 우리를 좀 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이삭에게 이것을 요구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이삭을 아예 뺏어버리기 위해 이렇게 하셨을까요?
아뇨 사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아브라함을 사랑하셨으며, 그 누구보다도 이삭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이 이삭이 가장 좋은 길에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에 가장 좋은 길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그 무엇이 있을 때, 반드시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잘 산다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가장 잘 아시며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 이미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탐욕과 죄성,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우상은 우리를 어그러뜨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상들은 꼭 석상이나 목상 같은 해괴망측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것'들 중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상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해 어그러진 것을 회복하기 원하시며, 우리를 다시 올바른 자리로 이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리로. 그래야 모든 것이 올바로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보다 이삭을 더 사랑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Genesis 22:2 NKRV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칭할 때 ‘너의 아들, 너의 사랑하는 독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냥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러면 자녀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사랑 가득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요?
이 부분을 팀 켈러 목사님이 아주 잘 설명하셨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에서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의 애정은 숭배로 변했다. 그전까지는 삶의 의미가 하나님 말씀에 달려 있었지만, 이제 이삭을 사랑하고 이삭을 잘되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삶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게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가짜 신으로 둔갑시켜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자녀를 참 하나님의 자리에 두면 거기서 우상숭배 같은 사랑이 싹튼다. 그 사랑은 자녀를 숨 막히게 하고 관계의 목을 조른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대로 두셨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틀어질 뿐만 아니라 이삭을 향한 집착 때문에 이삭을 망가뜨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브라함 본인도 망가뜨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어떤 아들이었나요? 무려 100세 때 얻은 아들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입니다. 자신의 모든 유업을 이을 아브라함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장자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이삭을 끔찍이 소중히 여겼을지요.
그 수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삭을 하나님의 자리에 까지 앉혀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어그러집니다. 모든 것을 어그러뜨린 아담의 죄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아브라함에게나, 이삭에게나, 그의 자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정신을 차리고 잘못된 위치에 있던 하나님을 다시 하나님의 자리로 모십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다시 바른 자리로 이끌기 원하심을 알았으며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이삭을 통해 계속해서 대를 이을 것임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은 이삭과 또 그의 자손을 통해 열방이 복을 얻는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분입니다. 그렇기에 이삭을 번제로 바치더라도 이삭은 분명히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 방법은 아브라함이 알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그 일을 이루는 것임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체없이 다음날 아침에 바로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모리아산으로 향하는 여정을 떠났으며, 제삼일에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모리아 산으로 이삭을 데리고 갈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고백
Genesis 22:5 NKRV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린 후에 다시 이삭과 함께 돌아올 것을 종들에게 말합니다.
이는 그가 이삭을 실제로 번제로 바칠 것인데, 또 이삭과 함께 다시 돌아올 것에 대해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과정에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 자녀를 우상 삼지 않고 배우자를 우상 삼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신뢰하며, 주님과 교제하면서 주님의 뜻과 마음과 방법으로 그들을 실제적으로 섬기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부모는 부모로서, 자녀는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족을 교회를 세상을 섬기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삭을 바치기 위해 칼을 빼내어듭니다. 그리고 찌르려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막으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Genesis 22:12 NKRV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아들을 번제로 바치는 방식으로 사랑을 나타내 보이라고 하는가?
물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우리 자녀를 배우자를 혹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데, 아브라함의 마음을 모르셨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 아브라함이 정금같이 단련되는데 필요했던 것입니다. -> 아브라함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더더욱 경험할 수 있었으며,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었으며, 주님의 일을 이루시도록 자신의 온 인생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새 이스라엘인 교회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처럼 우리에게 더 임하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옳지 않은 중심을 드러내시고, 다루시고, 빚어가십니다. 상황과 환경을 통해, 사람을 통해, 혹은 하나님이 아닌 그 무엇을 통해 만족하려는 우리의 눈을 이 모든 환경에서 들어올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통을 가하기를 기뻐하시며, 우리가 힘들어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우리가 알기 원하십니다. 더 좋은 상황과 더 좋은 환경으로 만족하려는 우리로 계속 주님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진실로 가장 좋은 것을 우상이 빼앗아 가지 않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그 자리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은 무엇인데요?
바로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Romans 8:32 NKRV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놀랍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요구하셨던 하나님께서 실은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기뻐하는 것을 찾던 인간의 탐욕으로 우리 인간과 이 세상은 망가져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회복하시며, 무엇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이 진리를 지적으로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으로 이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 우리는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하시는 독자까지도 제게 아끼지 아니하셨으니 제가 이제서야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먼저 아들을 내어주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좋은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이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 무엇도 막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잠기는 기쁨은 이 세상 그 어떤 좋은 것이 줄 수 있는 기쁨보다도 무한히 더 큽니다.
아내의 예)
아내의 일을 통해서 나를 다시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자리로 이끄시며 아내와 가족들을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하신 주님
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길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항상 최선의 길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사랑을 허락하신 것은 그 길이 우리에게 최선의 길,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혹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일들이 있으신가요?
하나님은 그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의 최고의 기쁨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깨닫게 해주기를 갈망하십니다.
모두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 있으면 세상은 뒤집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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