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9. 금요기도회. 예수 이름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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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5:4–5 NKRV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서론

혹시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나 재해를 경험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아픔과 시련을 경험해보신적은요?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는 누구나 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단 한사람도 예외가 없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흔히 항해에 비유하곤 합니다. 항해를 하다보면 늘 날씨가 좋지만은 않은 법이지요. 맑은 날이 있다가 흐린 날도 있는 것이고, 바람이 잔잔한 날이 있다가 바람이 거센 날도 있는 것이고, 기분좋은 봄비가 내리는 날이 있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도 있는 것입니다. 경험이 많고 유능한 뱃사람이라면 이런 날씨와 바다의 변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날씨가 변하고 바다가 날뛰어도 결코 이상한 일로 여기지 않고 노련하게 대처해가지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본향을 향한 순례의 여정을, 천국을 향한 신앙의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 여정 가운데 있고, 항해 중에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유혹과 시험과 고난이 찾아오게 마련이지요. 갑작스럽게 날씨가 변하고 바다가 날뛰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로 인한 고통과 절망을 경험할 때면 믿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내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가?”하며 혼란과 의심에 빠지곤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떻게 완성되어가는지 잠시 잊어버리게 된 것이지요.
구원에는 세 가지 시제가 있습니다. 구원의 과거, 구원의 현재, 구원의 미래입니다. 즉,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구원을 받고 있으며,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이것은 바로 기독교의 독특한 종말론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종말론을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그림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역사를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이미(already)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세상에서 왕 노릇 하는 사탄이 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인 죽음을 꺾은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승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온 세상의 통치자이시며 주님이시라는 선포가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사탄은 등뼈가 부러졌습니다. 사탄은 더 이상 예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탄이 이제 힘이 다 빠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등뼈가 부러진 사탄은 아직 사지에 힘이 많이 남아서 남은 힘으로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를 걸고 넘어집니다. 바로 이 때문에 유혹과 시험과 고난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와 같이 등뼈가 부러진 사탄은 언제 꼼짝 못하게 됩니까? 예수님의 재림 때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사탄을 당신의 발판으로 삼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5:25). 그때에는 사탄에게 남아있는 힘이 완전히 빠져 우리의 구원은 완성될 것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신학자들은 이것을 기가막힌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을 이기신 결정적인 구원 사건을 ‘D—day’라고 했습니다. Decision—Day, 즉 결판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제2차 대전 때인 1944년 연합군이 노르만디 해안에 성공적으로 상륙한 날을 일컫는 것입니다. 연합군이 그때 결정적인 승리를 했습니다. 이 날을 이후로 독일의 전세가 급격히 기울어가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노르망디 해안에 연합군이 상륙해서 독일군을 결정적으로 무찔렀다고 해서 전쟁이 끝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연합군이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함락했을 때에야 비로소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때를 ‘V—day’라고 했습니다. Victory—day, 곧 승리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전쟁이 결판이 난 날과 전쟁이 아주 끝나 승리가 완성된 날까지 사이에는 얼마간의 기간이 있었습니다.이것은 기독교 역사관, 종말관 그리고 구원의 구조를 잘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의 등뼈를 부러뜨리셨습니다. 결정적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승리의 날까지는 시간이 남았습니다. 승리의 날은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아직 완벽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은 상태이므로 우리는 장차 구원받을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구원 받았으나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는 자로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현재 구원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자, 이제 우리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오해가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고 있기에, 여전히 사탄이 남은 힘과 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우리 또한 계속해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갑작스러운 유혹과 시험과 고난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경험이 많고 유능한 뱃사람처럼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일에 대해 잘 대처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겠지요.
바울은 이러한 우리의 삶을 두고 “선한 싸움”이라고 부릅니다.
디모데전서 6:12 (NKRV)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히브리서 저자는 이를 두고 “믿음의 경주”라고 부르구요.
히브리서 12:1 NKRV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선한 싸움”이라고 하던 “믿음의 경주”라고 하던 의미하는 바는 같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분명 애쓰고, 수고하고, 분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취하기 위해서,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 구원의 완성을 향해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본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깃발 아래에 함께 모인 군사들이며, 천국의 결승선을 향해 함께 달리기 시작한 마라톤 선수들입니다.
제가 방금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정체성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군사와 선수인데요, 지금 두 가지를 다 다룰만큼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 오늘은 군사라는 측면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이어가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며 현재 격렬한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살아갑니다. 여기 모이신 성도님들께서 다들 잘 아실텐데요, 지금 우리의 싸움은 무엇을 대항해서 싸우는 싸움입니까?
에베소서 6:12 NKRV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바울이 분명히 이야기하듯 우리는 보이는 세력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력과 싸우고 있습니다. 보이는 영역, 다시 말해서 물질과 자연의 세계의 법칙과 보이지 않는 영역, 영의 세계의 법칙이 다른 것 처럼, 악의 영들을 대항해서 싸우는 우리의 싸움의 방식도 분명 이 세계에서의 방식과는 달라야 합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차라리 사탄이 눈에 보이고 치고 박고 싸울 수 있는 존재였으면 좋겠다. 자꾸만 싸움에서 지는 것만 같고 그것 때문에 내 인생에 고난과 역경이 가득하다고 느끼셨던 분들은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참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한참 혈기가 가득하던 시절에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해서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끓어오르는 정욕을 참지 못해서 유혹에 무너지고, 계속해서 저와 제 가정과 교회에 안좋은 일이 벌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꾸만 고통과 슬픔을 가져다주는 이 영적인 전쟁에서 지고싶지 않은데, 자꾸만 제가 가장 약한 부분을 틈타서 무너지게 만드니 얼마나 억울하고 약오르고 분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두고 기도하면서 아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렇게 기도했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하나님 차라리 지금 제 눈 앞에 사탄을 데려와 주십시오. 싸우다 죽을지언정 이렇게 자꾸만 교묘한 꾀임과 유혹에 속아넘어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치고받고 싸우다 죽을테니 지금 제 눈 앞에 사탄을 데려와 주십시오.”
시간이 지나고 차츰 성숙해가며 돌아보니 우리의 씨름은 절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악의 영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분명 영적인 방법들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은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에베소서 6:13 NKRV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해당하는 것이 각각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일일히 살펴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진리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장 복된 소식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시며 시작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십니다. 영적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요1 5:4-5
요한1서 5:4–5 NKRV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처음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은 지금 누가 세상을 이긴다고 말합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1절을 거슬러 올라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요1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입니다. 둘을 연결하면 이렇게 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며,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 이 진리를 굳게 붙드는 자들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어서 요한은 5절에서 이렇게 다시 선포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말 그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의미입니다.
자! 1절과 4절, 그리고 5절을 함께 보면 이런 고백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1절과 4절에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고 선포합니다. 5절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선포하지요. 어디서 많이 보고 듣던 말씀 아닌가요?
마태복음 16:16 NKRV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기도 하지요.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 약속하셨고, 이 고백 위에 위대한 권세를 허락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18–19 NKRV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굳게 붙들고 신뢰하는 믿음, 이 믿음 위에 교회는 기초하고 있고, 이 믿음 위에 위대한 권세가 날마다 부어지며, 그렇기에 이 믿음에 우리의 영적 전쟁의 승패가 달려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러한 자명한 진리를 4절에서 이렇게 요약합니다. 요1 5:4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은 절대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열심이니라” 이렇게 선포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끈기이니라” 열심히 기도하는 것, 끈기있게 기도하는 것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본질적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입니다.
사탄은 영적 전쟁을 감당하는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 때에 우리의 열심이나 끈기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립니다. 믿음만 무너뜨리면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너진 채로도 아무 문제가 없는 듯 신앙생활을 하며 영적 전쟁을 감당하는 때가 많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열심히 싸우며 끈기있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열심과 끈기가 승리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어요.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믿음으로 맞서 싸워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믿음이 없어도 얼마든지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도 얼마든지 끈기를 가질 수 있어요. 내게 열심과 끈기가 있다면 나에게 여전히 믿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대단히 큰 착각이며, 사탄의 아주 교묘한 전략 중의 하나입니다. 심지어 사람은 열심과 끈기를 가지고 믿음이 있는 양 꾸며낼 수도 있구요.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근본적인 것,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굳게 붙드는 믿음이 없다면 아무리 큰 열심과 아무리 질긴 끈기라도 헛것에 불과합니다.
기도로 모이는 자리, 특히 중보기도의 모임은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의 현장입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는 오늘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가 정말 믿음으로 영적 전쟁을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큰 열심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한다 할지라도, 아무리 질긴 끈기를 가지고 기도한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권세와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크신 손을 펴사 우리에게 권세와 능력을 보이시는 기도는 오직 믿음의 기도 뿐입니다. 믿음의 기도와 그렇지 않은 기도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영상 하나를 보고 설교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라이언킹에 나오는 한 장면인데요, 함께 보시지요.
믿음이 없이는 아무리 큰 열심과 용기와 끈기로 기도한다 할지라도 그 소리는 맹수들 앞에서 울어재끼는 새끼 고양이 소리만도 못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면 비로소 우리의 기도 소리는 모든 적들을 두려워 떨게 만드는 사자의 포효가 되는 법이지요.
예레미아 25:30 (사역)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모든 말로 예언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포효하시고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큰 소리를 내신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계신 처소에서부터 포효하시며 한 걸음에 우리에게 달려오십니다.
시편 89:10 NKRV
주께서 라합을 죽임 당한 자 같이 깨뜨리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원수들을 향해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사 그들을 깨뜨리시고 흩으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믿음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굳게 붙드는 믿음입니까?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로 세상의 모든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예수님은 크고 위대하셔서 전쟁에 능하신 분이시며, 앞장서서 싸우시는 유다의 사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의 선포가 우리의 모든 영적 전쟁에 승리를 가져다줍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마음에 새기십시오.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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