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1 주제: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말씀에 순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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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긁지 않은 복권
도입; 긁지 않은 복권
흔히들 긁지 않은 복권이라 해서 조금만 노력하거나 신경을 쓰면 빛을 발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로 지금은 살짝 살이 쪄서 이목구비가 살에 가려진 친구들이나 머리가 정말 좋은데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성적이 안나오는 친구들이 이에 해당하죠.
우리 하림고등부에도 이미 복권을 긁어서 리즈를 갱신해버린 친구들도 많이 있는 거 같아요. 우리 유수는 이미 리즈가 되어버렸고 주은이도 최근에 단발로 자른 뒤에 리즈를 갱신해버렸죠. 아직 복권을 긁지 않은 복권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공부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흥미를 못찾았는지 안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몸에 진주를 품고 있지만 아직는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회장님 준남이가 그렇죠. 준남이의 리즈 시절의 사진을 봤는데 아주 훌륭합니다. 지금 헬스를 다니고 있다고 하는데 어제 물어보니 시험기간이라 한주에 한번 이렇게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여름방학이 되면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요. 우리 하림의 자매들은 그때 땅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지금 준남이 한테 잘하세요. 아주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때 되서 아 내가 더 잘해줄껄, 내가 준남이 피곤해 할 때 초콜릿이라도 하나 줄껄, 이라고 후회하지 마시고 지금 더 잘해주세요. 정말 전 준남이가 살을 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살빼면 사람들이 좇아다녀서 너무 피곤해질 것 같아. ㅋㅋㅋㅋㅋ
오늘 본문에서도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을 하나님의 시험 앞에서 믿음으로 긁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더 큰 은혜를 하나님께 받게 되었는데요 그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서론(내러티브 진행);
서론(내러티브 진행);
아브라함은 75세때 하나님께로부터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젊은 청년이 아니라 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약속이 정말 이뤄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신을 하지 못하는 아내 사라와 내가 ‘자식을 낫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의 조카 롯을 약속의 후손으로 생각하기도 했고, 또 하갈이라는 첩을 통해 낳은 아들인 이스마엘을 약속의 자손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는 99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롯이나 이스마엘이 아닌 네 아내 사라를 통해서 친아들을 낳게 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이삭이며 너희의 근심을 해결하고 웃게 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24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고 하나님께 비아냥 거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분이고, 그런 약속을 지킬 능력도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1년이 지나서 아브라함이 100세 되고 아내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정말 놀랍게도 아들 이삭을 허락하십니다. 아내 사라는 90세가 될 때까지 자식을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불임의 여성이었기때문에 그가 자식을 낳게 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기쁘고 놀라운 일이었죠. 이 사건은 그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던 아브라함에게 그의 신앙을 되돌아 보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도 채 가시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그의 믿음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정말 하나님을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고 전능하신 분으로 믿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네 아들, 내 하나뿐인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충격적인 시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었을까요? 부모님들에게 독자는 굉장한 사랑과 지지, 관심,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거기다 늦둥이라고까지 한다면 말 다 했죠. 그 아이는 부모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자식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 이삭은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늦둥이 중에 늦둥이였기때문에 너무나도 소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욕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우리의 예상을 깨는 행동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명령에 아무말 없이 순종합니다. 본문 3절의 말씀처럼 그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제사를 드리기 위해 필요한 나무와 짐들을 챙기고 아들과 함께 종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우리가 제사를 드리고 함께 돌아올테니 산 아래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아들과 둘이서 산을 오릅니다.
산을 오르던 중에 아들 이삭은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아버지에게 한가지 질문을 합니다. “아버지, 제사에 필요한 불과 나무는 있는데 제물은 어디에 있나요?” 그의 질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친히 준비하실거야”라고 말한 뒤 또 묵묵하게 산을 오릅니다.
이제 그들은 제사드릴 장소에 도착하고 짐을 푼 뒤 제사드릴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이삭이 들고온 나무를 제단 위에 잘 쌓아 올립니다. 그런 뒤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박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못 움직이게끔 단단히 결박하고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 놓습니다. 이 장면은 정말 친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잔혹하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는 이제 칼을 들어 이삭을 찌르려고 합니다. 손을 높이 들고 이삭에게 칼을 꽂으려는 찰나 하나님께서는 다급히 그에게 나타나셔서 멈추라고 소리치십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그가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자기의 약속을 지키고자 한 그의 믿음을 확인하십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아들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릴 숫양을 보여주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감사하며 숫양으로 제사를 드리고 그 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확인하시고 성경 어느 곳에서도 하신적이 없는 당신을 건 놀라운 맹세를 하시며 그를 축복하십니다.
본론(1):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었다.
본론(1):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우리가 어릴쩍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지만, 정말 보면 볼수록 어떻게 아브라함이 그럴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정말 아들을 아무런 감정도 없이 죽이려고 했던 사이코패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였던 것일까요?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한 아브라함의 말을 통해서 그의 마음을 어떠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땅에 도착하자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5절 함께 읽어봅시다.
Genesis 22:5 (NKRV)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아들이랑 함께 제사 드리고 너희에게 다시 돌아올게’ 여러분은 여기서 이상한 점을 찾으셨나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는데 그는 종들에게 ‘아들 이삭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저 종들을 안심시키고 자기의 살인계획을 성공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또 그는 아들과 함께 산을 오르던 중 제물이 어디있냐던 이삭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Genesis 22:8 (NKRV)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왜 자기를 위해서 제물을 준비하실까요? 제물은 이미 이삭으로 정해져 있지 않나요?
우리는 위급하고 급박한 상황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본심이 나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아브라함의 말들 속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져 있겠죠. 그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제물로 받지 않으실 것이며, 설령 받으실 지라도 그를 다시 살려내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100세 노인과 90세 불임병을 가진 할머니가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겠어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일을 경험하고 나서 그는 지금까지 믿지 못했던 하나님의 약속을 드디어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삭을 낳고 난 뒤 그는 21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Genesis 21:33 (NKRV)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에는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어처구니없는 명령에도 묵묵히 순종할 수 있었으며, 종들에게 우리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 이삭을 죽이신다 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살리실 것이고, 혹시나 죽게 내버려 두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스스로를 무능하고 잔혹한 분으로 만드는 것이기에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제물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준비하실거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시험은 정말 쉽지 않은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그걸 아셨는지 처음 쓰여진 성경을 보면 아들을 ‘제사드리러 데려가라’라는 동사에 ‘제발, 부탁이야’라는 의미의 부사가 붙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하나뿐인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한 독자였기 때문에 그를 제물로 드리는 일은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하나님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시험하시면서 그에게 ‘한번 해볼 수 있겠니?’ 라고 어렵게 물어보신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에 맞게 놀랍도록 축복하십니다. 감히 하나님 당신의 이름까지 걸며 맹세하시고 그를 축복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본론(2): 약속을 믿고 순종하라!
본론(2): 약속을 믿고 순종하라!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었던 그를 아무런 조건 없이 선택하시고 의롭다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첫단추를 오늘 보는 바와 같이 아들 이삭을 통해 이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도 아무런 조건없이 교회로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고, 그 기회를 오늘도 허락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에 빠져서 세상의 유행과 가치관들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곳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라는 죄의 형벌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뒤 삼일 후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셔서 구원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죄인이 아닌 의로운 자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자들은 더이상 죄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받아 지옥에 갈 자들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갈 자들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에 그들의 삶을 책임지고 보살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신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이 땅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삶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간혹 시험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중요한 순간 때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아갈 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갈 지를 선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그들의 마음이 진실한지, 그래서 말씀을 정말 지키려고 하는지를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하지 못할 난이도의 시험을 주시고 그들이 지키지 못했을 때 그들을 벌하시고자 시험을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시험하셨습니다.
Deuteronomy 8:16 (NKRV)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적용
적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예배드리고 난 뒤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시험하시며 물으실 것입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고 부담이 점점 커지는데 너 예배 잘 드릴 수 있겠어? 너 정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겠어?’라고 말입니다. 점점 시험에 대한 압박이 커지게 되면 우리는 그때 둘중에 무엇을 선택할 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이때마다 예배는 늘 집니다. 백전백패입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합리화를 합니다. ‘예배는 매번 드리는 거니까 한번 빠지더라도 괜찮겠지 다음주에 드리면 되잖아. 시험은 이번 한번뿐인데 이번에 잘 치는게 좋지. 토요일 섬기는 것도 뭐 시험끝나고 여유로울 때 섬기면 되지. 성적 잘 받으면 그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거잖아. 하나님이 오히려 더 기뻐하실 거야’라고 말입니다. 아니면 예배에 오더라도 ‘내일이 시험인데 예배 참석한 게 어디야 어디 밤새서 너무 피곤하니까 오늘 좀 졸더라도 하나님께서 이해하시겠지’라고 생각하며 예배를 소홀히 대하게 됩니다. 토요일날 예배를 준비하는 것도 소홀해집니다. 말씀 읽는 것은 당연히 뒷전입니다. 시험기간이 찾아올 때마다 예배에 참석하는 친구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저는 마음이 참 아픕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내 뜻따라 사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겠다고 말입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입니다.
1 Samuel 2:30 (NKRV)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시험기간이 다가올 수록 우리의 마음을 쪼아대는 커다란 부담감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얼마나 나를 소중히 여기고 있니? 너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학업, 진로, 성적보다 나를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겠니?’라고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를 소중히 대하십니다. 이 말씀을 지키며, 예배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자들의 삶을 귀하게 여십니다.
마태복음 7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신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 맘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 제 소원들어주세요’ 라는 식의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테니 내 삶을 책임져주세요 라는 의미가 담긴 기도입니다.
Matthew 6:33 (NKRV)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들은 얼마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복주시고자 하는 이 약속들을 믿으며 살아갑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이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이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 노력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아브라함과 같은 시험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지금 현재의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과 하나님을 비교해보며, 나에게 그것과 하나님 중에 선택하라는 시험이 찾아왔을 때 나는 당당히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성적과, 여러분의 진로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히 여기십니까? 하나님을 정말 여러분의 인생을 이끄시는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분으로 여기십니까? 하나님께서 아직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처럼 정말 확실한 기적을 보여주지 않으셔서 잘 믿지 못하겠습니까? 요즘 시대가 참으로 악합니다. 묻지마 폭행과 살인이 너무나도 자주 일어납니다. 다른 이해할 수 없는 범죄가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죠.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토록 악하고 흉흉한 시대에 저와 ㅇ러분이 어려운 일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은 기적이 아닌가요? 예수님을 부정하고 교회를 욕하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떠나는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죄가운데서 구원하고자 교회로 불러주시고 이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은 기적이 아닌가요? 놀라운 창조주 하나님이 지극히 작은 먼지와도 같은 우리를 눈여겨보시고 당신의 아들을 내어줄 만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엄청난 기적아닌가요?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경험했던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여러분도 삶속에서 경험해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라고 왜 그것을 경험하지 못합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는 2019년 12월 29일에 혈혈단신으로 고양시에 올라왔습니다. 한번도 와본적이 없는 곳이었지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이 곳 하림교회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벅찬 마음을 안고 올라왔지만 기대와는 달리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진 돈도 없어서 집도 구할 수가 없었고 밥을 먹는 것도 옷입는 것도 생활하는 모든 게 다 버거웠습니다. 또 시작하자마자 코로나가 유행해서 학교도 제대로 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무식하게 올라온 것을 후회하며 하나님께 ‘정말 저를 목회자로, 사역자로 부른 게 맞나요? 왜 이렇게 제가 어렵게 고생하면서 지내야 하나요 저를 왜 책임져주시지 않나요’라고 따지듯이 기도했습니다. 내려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하루에도 수만번 고민하는 그 순간에도 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을 결코 내버리지 않으신다는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을 믿으며 믿음으로 버텼습니다. 참 무식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코로나 기간동안 머물 수 있는 거처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그곳에서 한동안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일년 뒤에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게 되어 그곳에서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감사하게도 정말 기대한 것없이 올라왔는데 이곳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게 해주시고, 결혼을 해서 지금은 한 아이를 허락해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죠. 그렇다고 ‘지금은 이제 살기 좋아졌다. 편하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삶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매일매일 저를 지키시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그분의 보살피심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믿으며 올라온 제 삶을 보살펴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은 제 삶을 돌보시고, 제게 필요한 것들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당신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이미 예비해두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위해 숫양을 준비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순종을 할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허락할 것입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까?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약속을 지킬 능력이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과 현실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의 문제를 놀랍게 해결하시고 더 좋을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우리가 믿읍시다. 긁지 않은 복권 우리가 믿음으로 긁어봅시다.
Genesis 22:14 (NKRV)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결론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