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과 잘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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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선택과 잘한 선택은 하나님을 의지했냐 안했냐에 달려 있다.
잘못된 선택과 잘한 선택은 하나님을 의지했냐 안했냐에 달려 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사령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 앞에서 물러나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오른쪽 곧 야셀 맞은쪽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쪽으로 나와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그들 무리가 국내를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여러분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에 놓여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 라는 말을 아시나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가 한 명언인데요.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 곧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늘 선택을 해야합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엊그제 여름 맞이하여 새로 산 흰색 옷을 입을까? 아니면 오늘 학교만 가니까 평상시대로 편한 옷을 입을까? 어떤 옷을 입을지, 오늘 자습시간엔 부족한 영어단어를 외울까? 아 하기싫지만 수학을 할까? 아 화작 비문학 숙제를 할까? 어떤 공부를 할지, 시그노 0.38과 028 어떤거 쓰지? 아니면 편하게 제트스트림 0.5로 할까? 어떤 펜으로 필기를 할지, 점심은 역시 마라탕? 아니면 속편한 쌀국수?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등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대학은 어디를 가지? 어떤 과를 선택해야 할까? 나는 직업으로 무엇을 해야하지? 어느 회사에 취업하는게 좋을까? 결혼은 누구랑 해야하지? 등 인생에 중요한 것까지 우리는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선택은 되돌릴 수 없으며 책임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어른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다른사람의 지혜를 얻는다고해도 모든 사람들의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선택을 하는건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한 사람의 선택과 실수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7만명이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선택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맛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어떤 선택이 잘못된 선택인지, 어떤 선택이 잘한 선택인지 살펴봄으로,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다윗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주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백성을 치시려고, 다윗을 부추기셨다. “너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여라.”
1절에서 “다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라고 말합니다.” 다시라는 것은 21장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인 것으로 말미암아 3년 기근이 있었던 사건 이후를 가리킵니다.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반역함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선택을 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책임을 져야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다윗을 격동하여 인구조사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명분이 되어 이스라엘이 전염병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의 잘못된 선택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라는 결과를 만든 것이죠. 그들은 범죄함으로 인해 심판을 받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2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첫째, 격동시키다는 단어는 충동하여, 선동하여, 이끌어내어, 권하여, 부추겨서 라는 의미입니다. 교육사님 그렇게 본다면 오늘 다윗이 범죄한 건 하나님 때문이 아닌가요? 하나님이 충동해서 그런거잖아요. 다윗의 선택과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지만 같은 사건을 기록한 대상 21:1 을 살펴보면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였다고 말합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여 인구조사를 하게 했고, 다윗은 그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되도록 허용하셨으며 사탄의 충동과 다윗의 선택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려는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구조사를 한 선택은 다윗이 한 것이기에 그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충분히 하나님께 물어봐야 했었고, 충동을 억눌렀어야 합니다. 사탄이 주는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죄를 저지른 것이기에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서는 하늘의 새 한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우리의 선택과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자유의지대로 선택하고 책임을 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죄가 아닌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둘째, 그러면 교육사님 인구조사를 한 것 자체가 죄인가요? 민수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구조사를 했잖아요.(민 1:1-2) 또 당시 율법(하나님의 법)을 살펴보면 인구조사를 어떻게 해야하는 지 규정(출 30:12)이 나와있는데 그러면 인구조사 자체가 잘못된건 아니잖아요. 맞아요. 인구조사를 하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행위는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을 가리켜 죄 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요압은 다윗에게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라고 해요.(삼하 24:3) 이런 말이에요. “왕이시여 인구조사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10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행한 인구조사를 가리켜 큰 죄를 범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삼하 24:10) 더군다나 대상 21:7 에서는 인구조사한 일을 가리켜 “하나님이 악하게 여기셨다고”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악하게 보시고, 이스라엘을 치셨다.
이 일이 악한 이유는 다윗이 이 일을 시행한 동기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이유는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싸울 수 있는 군대는 얼마나 되는 지 등 군사력에 대한 숫자를 확인하고 스스로 통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아닌 숫자를 의지하려는 것입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참 왕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해온 것처럼 전쟁은 군사의 숫자, 크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믿고 의지했어야 합니다. 삼상 17:45 에서 다윗은 골리앗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눈에 보이는 체격, 힘. 숫자,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나아갔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 보다 숫자를 의지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다윗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같지 않나요?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고 있나요? 여러분들의 선택은 무엇을 의지하기 위한 선택인가요? 여러분 왜 공부하고 있어요? 여러분 왜 주일 예배에 나왔죠?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것들, 신앙생활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다. 그 행위가 선한 행위일지라도 말이죠. 예를 들어 이런거에요. 여러분이 헌금을 하는 이유가 헌금을 해야 하나님이 축복해주시고 돈을 더 많이 주시니까. 많은 돈이 있어야 내가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할 수 있잖아요.. 이런 동기와 마음으로 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그 내면의 동기가 다른 것을 붙들고 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다.
삼하 24:10 을 보면, 다윗이 인구조사로 말미암아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인구를 조사하고 난 다음에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래서 다윗이 주님께 자백하였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이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으로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죄를 지었을 때 양심이 찔리는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양심이 찔린다는 말씀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대기야 너 그러면 안돼. 대기야 너 그거 잘못된거야. 대기야 내가 안좋아해.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양심에 가책이 올 때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가책을 계속 무시하다보면 어느순간 무뎌지게 됩니다. 성경은 그런 이를 가리켜 양심이 화인 맞은 자라고 합니다.(딤전 4:2) (화인은 불 인두로 지져져 피부 기능이 마비된 상태를 말한다. 곧 화인 맞은 양심이란 진리에 무감각하고 무던한 상태를 말한다. =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
11절에 다윗이 일어날 때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에게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아마 다윗은 양심에 가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밤새도록 회개했을 것입니다. 회개하며 밤을 지새운 것이죠. 그리고 다윗이 죄를 고백한 다음날 갓에게 하나님 말씀이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찾아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고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1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려고 했습니다. 다윗의 범죄로 명분은 마땅해졌고 사실상 그냥 이스라엘 백성을 치시면 됐습니다. 마치 21장에서 사울이 기브온 자손을 죽인 것에 대해서 곧바로 기근 3년이라는 심판을 내린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죄를 곧바로 회개하자 하나님은 다윗에게 찾아와 선택지를 줍니다. 마치 “맞아 그건 잘못된 일이야. 잘못했지? 그럼 너가 정해 너 몇대맞을래?” 이런거에요. 이때 3가지를 다윗에게 제안합니다. 7년 기근, 3개월 도망신세, 3일 전염병 중에 택해(삼하 24:12-13)
다윗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이때 다윗이 전염병을 택합니다. 다윗이 전염병을 택한 이유가 뭘까요? 다윗의 선택은 마치 “야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몇십년이 걸렸는데, 그 기간을 사울 왕에게 쫓기고,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미친척하고,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맨날 도망가고, 왕이된 이후 아들에게도 쫓겼는데 내가 또 도망가라고? 야 도망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노이로제야! 7년 기근이면 나라가 망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3일간 백성이 아픈 걸로하자” 이렇게 선택한 걸까요? 아닙니다. 다윗이 전염병을 선택한 이유는 14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삼하 24:14
그러자 다윗이 갓에게 대답하였다. “괴롭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자비가 많으신 분이니, 차라리 우리가 주님의 손에 벌을 받겠습니다.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 징계를 원수와 대적들의 손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 긍휼을 의지한 선택입니다. 1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숫자를 의지해 인구조사를 하려던 다윗의 모습과 다릅니다. 다윗의 선택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우리가 다음주에 살펴볼 본민인데 결론만 살펴보면
천사가 예루살렘 쪽으로 손을 뻗쳐서 그 도성을 치는 순간에, 주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신 것을 뉘우치시고, 백성을 사정없이 죽이는 천사에게 “그만하면 됐다. 이제 너의 손을 거두어라” 하고 명하셨다. 그 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었다.
여러분 여기서 주목할 건 “예루살렘 도성을 치는 순간에”입니다. 여러분 다음주에 자세히 살펴볼 거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전염병은 며칠간 있을 거라고 했었죠? 3일간 온 이스라엘 위에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임하기 전에 전염병이 그친거에요. 왜? 전염병으로 아파하는 이스라엘과 다윗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마음이 아프신거에요. 그래서 3일 간 다 채우지 않고 하나님이 먼저 그쳐주신 거에요.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해서 선택했는데 어떻게 됐어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의지한 다윗의 선택이 옳았던 거에요.
여러분 핵심은 7년간 기근이냐, 3달간 도망이냐, 3일간 전염병이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정답이 있는게 아니에요.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뜻인 선택이 있는게 아닙니다. 기근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도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요? 그게 아니에요. 잘한 선택은 하나님을 의지한 선택이라는 거에요.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전염병의 선택이 옳았던 거에요.
여러분 선택의 기로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고민이 많으시죠? 은혜야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할까? 어느 과에 지원해야하지? 어렵지? 사랑하는 다윗 여러분. 옆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선택을 해”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애니메이션 명대사로 한편 패러디 해봤습니다. 다같이 읽어볼까요?
사람이 언제 좋은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돈을 잘 버는 선택을 했을 때?, 취업이 잘되는 선택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 인정을 받는 선택을 했을 때? 아니야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다.
성경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선택을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심하게는 악하다고도 말합니다. 여러분 A대학이냐 B대학이냐 A직업이냐 B직업이냐 A회사냐 B회사냐 A가 좋은 선택이고 B가 나쁜 선택이지 않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선택했냐 아니면 돈을 많이 주느냐, 네임벨류가 있는가? 취업이 잘되는가 등 다른 것을 의지한 선택이냐 입니다. 만약 후자의 선택이라면 악하고 잘못된 선택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명에 의지하고 하나님을 붙들면서 선택한다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선택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수 1:9)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것이 좋은 선택인 것이죠. 사랑하는 다윗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는 선택을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