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2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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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6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본문 시 27:1-14
자비하신 아버지, 이 땅을 살아가며 수많은 어려움들, 갈등들, 위험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붙드사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전능하신 아버지께 간구하게 하시며,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 여러 어려움들에 직면하게 된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고, 인생 속 여러 풍랑들을 경험하기도 하며, 실패와 좌절을 맛볼 때도 있다. 또한 살아가면서 거짓 증인들을 만나고, 주변 사람들의 괴롭힘에 시달리기도 한다. 신앙과 가치관을 무시하고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을 강요받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3절을 보면, 다윗은 이러한 대적들을 가리켜 ‘군대’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수많은 대적들이 군대를 이루어 진을 치고 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원수들이 지속적으로 우리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적들은 어떠한 자들인가? 2절 말씀을 보면,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치 사나운 짐승들이 연약한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둘러싸려는 것처럼, 지금 악인들이 다윗을 먹이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단 한 순간 정신을 놓거나 한눈을 팔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이것이 얼마나 두렵고 견디기 어려운 상황인가? 그리고 이러한 압박감 가운데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낼 수 있는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3가지 교훈을 살펴보려 한다.
첫째로, 하나님을 신뢰하라.
첫째로, 하나님을 신뢰하라.
시인 다윗은 1절에서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강한 신뢰를 드러낸다. 또한 2절에서 악인들이 그를 죽이려 고 덤빌지라도, 3절에서도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라고 고백한다. 원수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고, 그러한 원수들이 군대를 이루어 나를 에워싸 진을 치고 있을만큼 두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다윗은 담대할 수 있는가? 이는 1절에서 강조하고 있듯, 오직 하나님이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요 나의 생명의 능력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지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빛이시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시는 생명이신 주님이시다. 우리 눈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쓸모없이 여겨지는 진흙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창조하시고, 도무지 피할 길이 없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서도 바다를 가르시어 피할 길을 예비하시며, 그분의 택한 백성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시어 친히 이 땅에 종의 형체로 내려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으며 다시 부활하셨다. 이러한 엘샤다이,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돌보시겠다고 친히 언약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의 이름을 걸고 언약을 맺어주셨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깰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바를 막을만한 존재는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를 온전하게 성취하실 것이다. 약속하신 바를 일점일획도 남기지 않고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바 된 여러분, 인생 속 수많은 어려운 상황들은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풍랑들보다 하나님이 더 강하심을 잊지 말라. 그 고난들보다 우리 아버지가 더 위대하심을 기억하라. 삶의 다양한 역경들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구원을 경험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둘째로, 하나님께 간구하라.
둘째로, 하나님께 간구하라.
본문 7-14절 말씀을 보라. 시인은 7절처럼 ‘들으소서, 응답하소서’라고 호소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강청하는 그의 절박함과 간절함이 묻어나고 있다. 8절처럼 자신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을 얻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한다. 또한 9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외면치 마시고, 하나님의 얼굴을 자신에게서 숨기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반복해서 ‘얼굴을 숨기지 마소서, 주의 종을 버리지 마소서, 떠나지 마소서’ 라고 간구하는 것은 그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지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의심치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자신을 결코 내치지 않을 것을 그는 신뢰했다.10절처럼, 설령 부모조차도 그를 외면할지라도 하나님은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사랑으로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확신은 무엇으로 이어졌는가? 하나님을 향한 간구였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함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분이 나의 구원자요, 나를 붙드시는 분이며, 나를 늘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 간구할 수 있는 것이다. 8절 말씀처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셨다. 누구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을 하나님 만나 주시고, 하나님의 자비의 구원을 바라고 소망하는 자들을 외면치 않으신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들의 이름의 권세를 주셔서, 그 아들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하셨다. 전능하신 만왕의 통치자에게 아들의 자격으로 간구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 있든, 그의 출생이 어떠하고, 혈통이 어떠하든, 그가 가진 부가 얼마나 되고, 명예가 얼마나 되든, 이러한 세상적인 기준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직 독생하신 아들의 이름으로 부르짖고 간구하는 자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말씀한다. 우리를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잠시 잊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주의 얼굴을 구하는 모든 자들을 만나주시고 수렁에서 건져주신다. 이 사실을 확신하며 늘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구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
마지막으로,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
오늘 본문에서 가장 여러분들께 강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본문 4-6절 말씀을 보라. 특별히 4절에서 다윗은 한 가지 소원을 하나님께 아뢴다. 4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자.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이 본문을 문법적으로 보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한 가지’이다. 쉽게 의역하자면, ‘딱 한가지, 하나님, 그 딱 한 가지 소원을 내가 여호와께 구합니다’ 라는 의미가 된다. 그 한가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한 가지 소원을 얻기까지 계속 구하겠노라는 단호함 까지도 담고 있다.
그 소원의 내용이 무엇인가? 내 평생토록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주님과 교제 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다시 본문의 흐름을 처음부터 보라. 군대와도 같은 수많은 대적들이 일어나 나를 잡아먹을듯이 에워싸고 있다. 두렵고 낙심할만한 상황 속에서 갑자기 시인이 이해되지 않는 소원을 간청하고 있다. 현실의 긴박함, 괴로움 가운데에서 어떻게 시인은 이러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었을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나를 애워싼 저 군대와 같은 대 적들을 모조리 없애달라고 기도하거나, 나에게 더욱 강한 군대를 주시어 싸우고 이기도록 간구하거나, 아니면 지혜를 주시어 이 상황에서 잘 모면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고 타당 해 보이지 않는가?
시인이 이 한 가지 소원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이 5-6절이다. 5절을 보면,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원문에서는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므로 5-6 절에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이유에 대해 밝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이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기를 사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그 백성을 그분의 초막과 장막과 높은 바위 위에 두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초막, 장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이며, 높은 바위는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자는 하나 님의 임재와 보호와 승리를 경험하게 되고, 환난을 당하는 그분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기에,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즉, 시인은 구원의 하나님을 강하게 신뢰하였고, 승리케 하실 주님을 확신하였기에 이처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여호와의 성전에 머물기를 원했다.
시인이 여호와의 성전에 거하기 원하는 두번째 이유는 6절과 같이,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다. 오직 택하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시며 피할 길을 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마음껏 찬양하고 높일 수 있는 그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기에,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내 평생에 주의 전에 살면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찬송하기를 소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므로,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진정한 평안을 누리고 염려하지 않을 수 있다.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과의 교제를 즐거워할 때, 주께서 환난 가운 데서 피할 길을 주시고, 우리를 숨기시며 안전하게 보호하신다. 원수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주님 안에 거하면 여호와를 찬송하게 되고, 담대히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며, 하나님의 일하심 을 경험하게 된다.
여러분, 환난의 때, 인생의 곤고한 때를 지날 때에, 수많은 대적들이 일어나 나 를 넘어뜨리고 물어 뜯으려고 노려보는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오늘 말씀을 기억하라. 우리가 이러한 중한 압박감 속에서도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는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을 통해서, 그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을 통해서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값으로 구속하신 교회를 지키시고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생에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즐거운 예배로, 그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찬송하는 이 자리의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