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우선순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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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기도란?
거룩한 기도란?
본문: 마태복음 6:9-15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누가복음 11:1–4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누가복음판 주기도문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주기도문은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의 요약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말에 대한 부흥운동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1. 바리새인
바리새인들도 ㅎ회개하고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킬 정도로로 하나님께 헌심함으로써 메시아가 빨리 와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 에세네파(쿰란 공동체)
1947년 사해 사본, 사해 지방에 은거한 거룩한 집단, 에세네파
이들은 쿰란 동굴들에 은거하면서 성경 즉 구약을 연구하고, 서로 새롭게 회개하고 율법으르 새롭게 잘 지키기로 헌신했던 사람들입니다.
3. 세려요한(임박한 종말론)
죄를 다 싯어 내는 의식을 주장(세례) 임박한 종말론자
거룩 (완전함)
* 당대에는 상기 무리들이 만들어낸 기도문들이 있었습니다.
ex) 카디쉬, 18번 축복 기도(짧은 형태), 세모네 에스레(긴 기도문)
카디쉬: 유대 회당에서 설교 끝에 함게 낭송한 기도입니다.
18번 축복 기도: 윧인들이 하루에 세 번 즉 아침과 오후가 시작되는 시간 그리고 저녁이 시작되는 시간에 각각 반드시 드려야 하는 기도였습니다.
* 강조점이 다른 주기도문
세례요한은 심판을(금욕, 절제)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자유, 먹고, 마심)
요한과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있는 요한의 제자 하나가 예수님께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누가복음에서의 주기도문의 배경입니다.
주기도문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첫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를 바로 생각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둘째, 너는 지금 어떤 위치에 서서 기도하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말
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무엇을 구하느냐? 그리고 왜 그것을 구하는가 하는 문제입니
다.
넷째, 구하는 일에 대해서 너는 어떠한 책임을 지는가에 대한 문제
입니다.
* 마태복음판 주기도문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산상수훈의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는 주기도문
팔복(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의 정체성) 2.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적용과 실천, 계시의 전달자)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줄 것을 당부하는 배경을 가지고 있음(정체성&사명)
2. 새로운 법(5장17~48절)
모세의 법보다 우월한 법을 제시하십니다. 행위와 동기 모두를 규제하시는 법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입니다.
3. 종교적 삶의 실천들(6장1~18절)
맘몬 신-들의 백화, 하늘에 나는 새-이웃 사랑(이중 계명)
4. 행위의 열매(7장 12~27절)
열매 곧 행위의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모레 위에 지은 집, 반석 위에 지은 집
주기도문을 주신 이유
모세의 율법을 능가하는 완벽한 법을 우리에게 전하신 예수님,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계시해 주시고 전달해 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예수님의 제자로서 해야 할 도리인데, 그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잘 순종하는 동력이 바로 이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주기도문은 제자의 삶에 중심입니다.
유대교의 대표적인 종교 행위인 자선과 기도와 금식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단락에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잘 못된 기도의 모습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기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은밀한 만남과 대화입니다.
통성 기도도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과 대화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해야 합니다.
무엇을 본받지 말라?
외식 2. 중언부언 반복(횡설수설)vain repetition / 방언의 위험
중언부언: 말을 돌려복잡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명료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무엇에 강조점을 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 나라에 강조점을 두어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유대인의 기도와도 다르고, 이방인의 기도와도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만이 비로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ㅇ은 자를, 죄의 빚을 진 사람을 탕감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의 빚을 탕감해 줍소서”하고 빌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함을 늘 감사드립니다.”
주문처럼 주기도문을 외우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서 있을 자리에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식인 것도 의식하고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높으신 분인가 하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문제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그 결과로 남의 죄를 탕감해 주었다는 확실한 자리에서 이런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일찍이 악에 빠졌들어서 잘못되기 쉽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회개했다 하더라도 튼튼한 보루 속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미치 질그릇과 같아서 누가 조금만 때리면 부서지고 맙니다. 그래서 시험에 빠지기 쉬운 나요 그러기 쉬운 우리 연한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 취약점을 가진 나인 것을 인식하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과거에 눈멀어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를 건져내 주셨다 하는 것을 잘 회고해서 깨달아 알고 그 가운데서 구출하신 분은 오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라는 것을 믿고 있는 사람이 이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작은원(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
큰원(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허용해 주시는 기도)
큰원 밖(하나님께서 절대 허용하지 않으시는 기도)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거룩(구분, 다르다)
성경에 거룩이 611
레위기에 걸룩이 94회
창조자는 피조물과 완전히 다릅니다.
사랑, 은혜 2, 신실함, 오래참음, 3, 의로움심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은 구별된 분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구별된 위치, 우리 스스로 침범하거나 마음대로 들락날락하지 못하는 초연하고 신성한 위치를 ‘하늘’이라는 말로 표시했습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우리와 구별되어 우리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위치에 계신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하늘에 계신”이란 말을 썼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인해 아주 가까운 관계가 된 사이가 바로 아버지와 자녀간의 사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6개의 청원으로 이루어진 주기도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청원으로서 이것이 가장 중요한 청원이고, 그 다음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짐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일용할 양식, 죄용서, 사탄의 시험으로부터의 보호 이런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3개는 당신 청원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3개는 우리 청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마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누가: 아버지여
마태와 누가 모두 청원은 동일합니다.
누가복음에 없는 청원: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누가는 5개의 청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교회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개인개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깊이 느끼면서 나의 아버지요 또한 우리들 전체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여섯 가지 간구
청원이라기 보다 신앙고백인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이다”
아빠, 아버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는 것은 예수의 독특한 어법입니다. 이 ‘아빠’라는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아빠’와 똑같은 말입니다. 원래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어린아이의 언어였습니다.
언약 백성들에게 주신 특권(언양적 관계를 그리는 그림들)
왕과 백성, 아버지와 아들, 목자와 양, 농부와 포도원, 사령관과 군대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예레미아스라는 학자
“예수 그리스를 전후한 유대 문서 어느 곳에서도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예가 없다”고 합니다. 사실 거룩한 하나님, 초월의 하나님에 대한 큰 경외심을 갖지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이렇게 친근하게 부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 신학의 틀 속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이라는 자기 이해를 이 한마디 ‘아빠’라는 표현 속에 답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라는 뜻이며, 그분의 그 모든 부요함을 내가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핍-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끌어 쓸 수 있는 관계로의 회복이 아빠입니다. 권한을 부여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경외 받기에 합당하신 이름 아빠, 하나님
하늘에 계신(초월성, 경외)
아빠(친근감)
초월성과 친근감 이 두 가지는 똑같이 매우 필요할 뿐 아니라 아주 중요합니다.
초월성과 내재성
초월(무한하십니다.) 이 초월하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옴’으로서, 그래서 우리에게 친근한 아빠 노릇 해주셔야만 구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빠’라고 부르는 언어는 하나님의 사랑을 제일 먼저 강조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존과 순종을 표현하고 고백하는 언어입니다.
(탕자의 비유)
아버지의 아들에 대하여 끝까지 아비 노릇 해주심으르 신학적 용어로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데, 이 하나님의 의는 항상 아들에 대한 지비로 나타납니다. 이 하나님의 ‘의’ 곧 자기 아들에 대한 신실하은 의롭지 못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용서라는 자비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자비가 아들에게 회개를 일으킵니다. 여리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가 회개에 앞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항상 자비를 베푸시기 때문에 그것이 이 아들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인 탕자의 비유에서 굉장히 강조됩니다.
하나님의 이름
우리는 가각 다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름은 그 사람의 머리를 표시하는 것도 손을 표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인간 전체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무개 하면 아무개라는 사람, 그 인물, 인격, 인권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초월성이 인정되고,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하는 자들은 곧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룩은 피조물과는 다른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으르 나타낼 때 ‘거룩’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우리가 하나님게 바쳐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것은 오로지 초월자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게 바쳐진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삶
적용 생명 존중
생명을 가진 존중심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옵니다. 예)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을 그랄 땅에서 누이라 속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떨어졌을 때 생기는 현상인 것입니다.
오히려 야곱은 창세기 42:1~18절 말씀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형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출애굽기 1:15~21절 말씀에 히브리 산파가 히브리 아이들을 살렸던 것 또한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구약은 항상 생명에 대한 경외를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연결시킵니다. 이 점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음으로 인해 결국 생명에 대한 경외가 없어지고, 사람들ㄹ이 서로를 함부로 대하는 것입다.
거룩(편재, 편능, 편지)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야훼 이레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2. 여호와 삼마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것을 보았으나, 이제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토록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할 것을 보았을 때 ‘여호와 삼마’하고 외쳤습니다. “The Lord is There”
3. 여호와 찌드케누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4. 여호와 쩌바오트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만군의 여호와”즉 만군이 나에게 있다는, 큰 권위와 능력을 필요로 할 때에 필연적으로 나는 여호와가 만군의 여호와이신 것을 믿는다는 점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하나님
엘로힘
힘이라는 뜻을 가진 ‘엘’(힘이 있ㅆ는 분)
야훼(스스로 있는 분)
아도나이(주), 주님
엘 엘룐(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엘샤다이(나는 전능한 하나님)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엘올람 (영원하시는 하나님, 영생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특별히 엘 올람이란 성호는 ‘약속을 했을 때 다른 특별한 새로운 약속을 맺기가지 그것은 항구한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까닭에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대로 변경 못 한다. 세상의 황제는 자기 대에 있ㅆ다가 죽으면 그 칙령이 거두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영웒하시다’하는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우리의 급한 사정이 먼저가 아닙니다. 제일의 관심사는 하나님 당신이고 하나님께 대한 나의 인식과 나의 깨달음과 나의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하겠습니다.”하는 기도가 제일 먼저 앞서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기에 대한 기도자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나 때문에 욕을 받으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교회)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소서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하늘 나라의 영예와 국권을 항상 존중, 또한 나의 책무도 감당
보통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은 참정권이 있고 거주권이 있고 재산권이 보장됩니다. 그 나라의 영통 안에서 거하되 자기의 생업에 종ㅅ사하면서 그 나라의 경제 제도 체제 하에서 재산을 모으고, 주권 재민의 정신에 따라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의무: 납세, 교육, 국방, 선거 참여
민주주의 국가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가 모여서 투표해서 진리를 결정하는 법은 하나님 나라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의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내가 총을 메고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수호한다고 해서 방위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령한 전투에 있어서 나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나서서 싸워야 합니다.
싸울 아비다운 건강함과 성숙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릇된 세계관과 가치관과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자유의지를 가진 자들을 향한 요구)
하늘에서는 일호차착이 없이 이루어지지만 땅 위에서는 반대하고 대적하는 일들이 일어나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할 그 사람들의 속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상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정, 교회, 사회, 나라와 민족 , 세계 안에서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합니다. 2. 행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3. 방법과 계획 4. 의지
하나님 나라
구약 성경에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왕이시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야훼가 다스리신다 등 ‘왕’이라는 명사와 ‘다스린다’는 동사가 구약에 여러 번 나오고, 특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 삼으셨다는 것은 언약신학의 표현을 구약의 중심 사상입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언어는 사실 어느 한 가지 뜻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다양성을 함축한 표현입니다. 이것은 구약과 유대교의 풍부한 배경 속에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연상하게 하는 심벌입니다.
하나님, 통치자, 주권자, 에덴동산, 셋, 다윗, 출애굽, 바벨론, 포로귀환, 종말, 사탄의 통치...
당대 제자들은...이스라엘의 회복(정치적 메시아)
하나님의 통치는 관계의 회복으로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십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