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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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다(11-12), 헛된 것을 바라봄(17-20)
영원한 것은 없다(11-12), 헛된 것을 바라봄(17-20)
어린 시절 저는 만화로 된 한국의 역사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전집을 사주실 정도로, 한 때 한국사에 흠뻑 매료되어 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제가 어린 시절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며 가장 비참하고도 원통함을 느꼈던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병자호란이었죠?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조선의 왕 인조가 당시 청나라의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9번 고개를 숙이는 사건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의 왕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인조는 청나라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도망에 도망을 거듭하다가, 수도 한양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곤 그곳에서 50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항복을 하게 되는 우리 역사의 수치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조선의 백성들은 수도 한양이 청나라 군대에게 짓밟히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 당시 미국에 계셨던 성도님들은 911테러를 잘 아실 것입니다. 당시 한국에 있었던 저도 충격이었지만, 미국인들에게 911테러는 충격과 공포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과연 미국인들이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테러범들에 의해 공격받고 그렇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영원할 것 같은 존재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주변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 쇠약해집니다. 이것이 인생사의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영원할 것 같았던 예루살렘이 불에 타 폐허가 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감히 예루살렘 성전이 불 타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난공불락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예루살렘이 불 타 버린 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 11-1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1절 말씀을 보시면 이 시온이라고 불리는 예루살렘 성전에 불을 지르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아수라장을 만들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재앙과도 같은 일로 인해 낙심하고 시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고난을 견디기 힘들어서 신앙을 떠나기도 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이 과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더 이상 필요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절대 어려움을 주시지 않는 분으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를 끝끝내 망하지 않게 하시는 분으로 신뢰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을 내시며 예루살렘 성전에 불을 지르신 것은, 이스라엘이 이 땅에서 흔적이 없어질 정도로 망하게 하시려는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을 세상으로부터 돌이켜 다시금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불을 지르신 것을 이렇게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불을 지르신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세속적이고도 헛된 마음 다 태우고, 우리 마음에 불 같이 타오르는 사랑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17절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헛되이 도움을 바라보았다고 말합니다. 그 헛된 도움이란, 바로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의지했던 마음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는 애굽에 원조를 요청합니다. 사실 애굽이라는 나라 자체도 문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레미야 2장 1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스라엘이 스스로 웅덩이를 팠지만,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만들긴 만들었지만, 결국 그 자구책이 그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보기에 화려하고 완벽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 그저 자기 잘난 맛에 산다면 그것은 밑빠진 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자구책을 갖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지혜와 경험,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실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보시는건 어떨까요?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하루 새롭게 시작하시면서, ‘주님, 제가 주님을 더욱 의지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보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선지자들의 잘못(13-16)
선지자들의 잘못(13-16)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스라엘의 잘못을 촉발시켰던, 아주 심각한 죄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입니다. 함께 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여기서 선지자들은 누구일까요? 시드기야 왕 옆에서 잘못된 예언을 전했던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며 온갖 이권을 챙기던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타락한 나머지, 애꿎은 의인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지자의 가장 큰 역할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반대하는 것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반대편에 서 보는 것이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다른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선지자의 역할입니다. ‘반대한다’ 라는 히브리어가 ‘네게드'인데, 이 단어가 선지자를 뜻하는 ‘나비'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선지자의 역할은, 돕는 것입니다. 결국 선지자란 반대하며 돕는 사람입니다.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 선지자의 역할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하나님이 하와를 일컬어 말씀하셨던 ‘돕는 배필'입니다. 이 돕는 배필이 성경 어디에 나올까요? 창세기 2장에 보시면, 하나님이 하와에게 ‘돕는 배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배필'이라는 단어가 앞에서 말한 ‘네게드'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선지자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신 것이죠.
우리는 흔히 ‘돕는 배필'을,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돕는, 희생하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돕는 배필'의 성경적 개념은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면 선지자처럼 거슬리는 말이라도 해야 하는 존재가 돕는 배필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역할을 하도록 하와에게 명령하셨지만, 선악과를 먹으려는 아담을 반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도 선악과를 먹고 맙니다.
시드기야 왕 옆에 있었던 선지자들은 시드기야 왕의 잘못에 대해 의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잘못된 정책에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시드기야 왕을 찬양하며 그가 애굽을 지지할 때 함께 지지했습니다.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전에서 바쳐지는 제물에 폭리를 취해 이득을 얻고, 성전세를 거두어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웠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중재하는 제사장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제사장이 자신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영적인 지도자들의 타락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인 리더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취할 때, 그 공동체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곳에나 사람이 모인 곳에는 공동체가 있고 거기에는 리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의 영적인 리더가 잘못된 마음을 품고, 잘못된 선택을 내리게 되는 순간,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피흘리게 됩니다. 특히 교회 공동체의 리더는, 매순간 자신의 힘과 지혜를 의지할 때 그 리더에게 속한 사람들은 심각한 영적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는 목사와 장로, 안수집사, 권사, 그리고 각 부서 부장, 구역장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각 가정의 가장, 부모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리더가 바로 설 때,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외면하고 기도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리더로 인해,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속한 그 곳에서 너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고 있느냐?’, ‘너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매순간 나를 의지하며 네게 맡겨 준 리더의 자리를 감당하고 있느냐?’ 리더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더는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할 때, 그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