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주만 바라보는 믿음(롬9: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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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일시 : 2023년 6월 15일 목요일 새벽
본문 : 로마서 9장 30절 - 10장 4절 *신253
찬송 :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Point Message : 1. 신앙의 장애물을 제거하라]
우리 성도님들이 삶을 살며 목표로 한 것이 있다면, 또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데 발목을 붙잡는, 즉 장애물이 되는 요소에는 무엇들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있어 학업이 최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아이돌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오락이나 세속적인 문화가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학생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청년들을 보아도 나태함이 방해가 된다 말하기도 하고, 침대 위에 널부러져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방해가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쭉 보는 것이 시간이 아깝다 여겨, 너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락 한 작품이 아니고서야 몰아보기로 흐름만 이해하고 맙니다. 그렇다 해서 제게 방해물이 없는 것은 또 아닙니다. 제게 있어 발목을 잡는 요소는 아무래도 제 딸, 아엘이 인 것 같습니다.
전 세대에 이르러 방해요소들이 때때로 달라지고 또 다양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방해요소는 우리의 일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의 신앙 안에서도 존재합니다. 교회 내에서의 권력이, 말씀 외의 교우 관계를 중요시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닌 목회자를 중요시 하는 것이 충분히 방해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니 이스라엘을 향한 사도 바울의 외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1절을 보니 이스라엘을 향해 어찌 말합니까?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무엇입니까? 율법, 율법 노래를 부르며 그리 중요시 여기던 이스라엘은 정작 구원의 은혜를 놓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바로 앞 절을 보니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오히려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이 훗날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를 놀라운 상황이 펼쳐진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 생활은 어떻습니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역자로써의 부르심과 소명의 확신을 가지고 신학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엘이가 아플 때마다 너무 크게 마음이 흔들립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아내로부터 ‘정신차리라’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정진하곤 하지만, 목회자라 해서 방해요소 하나 없는 삶도 아니고, 저 역시 가정이 발목 잡을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신앙 생활의 발목을 잡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떠올리려 하면 다들 최소 하나씩은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믿음은 율법을 따르는 삶도 공로를 쌓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그저 믿는 것 하나로 충분합니다.
바라옵기로는 오늘 하루 살아가심에 있어 ‘오직 믿음’의 은혜를 경험하는 하루 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이지 어떠한 율법도, 어떠한 공로도 우리를 이끌 수 없습니다.
[Point Message : 2. 신앙의 방향을 바로 세우라]
오늘 본문이 주는 두 번째 메세지는, ‘신앙의 방향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장 1절 입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음을 우리는 인지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니 이스라엘이 잘못된 신앙의 방향을 잡았음을 보여줍니다. 10장 3절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들은 율법을 내세워 자기를 더 높임에 힘썼지 하나님의 의를 높이고자 함에 힘쓰지 않았습니다.
이 새벽, 우리의 신앙은 어딜 향해 가는지 점검해 봅시다. 나를 위한 신앙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을 위한 나의 신앙의 행보였는가를 말입니다.
이들은 율법의 마침되신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것을 성취하신 예수님의 놀라우심을 이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기회를 걷어 차 다른 방향을 걸었습니다.
신앙 생활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말씀대로 사는 것’ 입니다. 제가 책을 읽다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 있어 소개 하고자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 안 짓고 살기 어렵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정답은 ‘죄짓고 살기가 어렵다!’ 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요셉도 육신적으로는 그 유혹에 넘어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죄짓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내용을 차용하여, 우리의 삶은 ‘말씀 없이 사는 것이 참 어렵다.’ 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떠나 살려니 얼마나 어려운지, 믿음을 저버리고 살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을 보면 정말 ‘복음’에 미쳤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사도 바울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외에 정답이 없는데,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말씀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라 말하는 그 삶이 더 맞는 삶 아니겠습니까?
바라옵기로는 오늘 하루, 이스라엘처럼 율법에 빠져, 공로주의에 빠져 본질을 잃어 살아가는, 마치 맛 잃은 소금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십자가만 기억하고 또 그것만 바라보는 저와 성도님들의 하루이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살아내심에 그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의 오늘을 살리시고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한 걸음 내딛는 하루이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1) 우리 이 시간 들은 말씀을 가지고
- 내 신앙을 어지럽히는 장애물과 방해요소를 예수 이름으로 떨쳐내게 하소서
- 우리의 신앙이 오직 주께 있어, 주님만 바라보는 우리 되게 하소서
2) 한 번 더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각자 가지고 나오신 기도제목을 가지고
- 각 부서가 수련회를 준비합니다. 준비하는 이 기간이 하나님의 지혜로 준비되게 하시고,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를 경험하고, 말씀의 은혜가 강하게 임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