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호세아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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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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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키워드 : 일치, 확신, 소망
신앙고백: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하나님 말씀 : 호 1:1-11 (1-10)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에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페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본문 1절은, 이 시대 배경을 보여줍니다.
1절입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형제가 갈라졌습니다.
한쪽은 북 이스라엘, 한쪽은 남 유다입니다.
남 유다는 히스기야가 통치하고 있고,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대입니다.
당시 지도자가 누구냐?
왕이 누구냐?
이것에 따라서 나라 분위기가 달랐고,
성경의 평가가 달랐습니다.
히스기야가 다스렸다.
아, 좋은 시대구나.
하나님을 잘 예배했구나.
여로보암이 통치했다.
아,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던 시대구나.
여로보암 시대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좋았습니다.
나라 경제가 좋아지고,
정치적으로 좋고,
영토를 확장하고 그러면
국민들이 좋아하죠.
국민들이 좋아하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 시대는,
살기 좋은 시대였지만,
영적으로는 굉장히 어두운 시대였던 것이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특별히,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영적으로 어두울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으로 그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1절에,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는데,
호세아에게 임했습니다.
호세아에게 말씀이 임했는데,
그 말씀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 마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아니?
내 마음을 좀 알아주면 좋겠다.
이게 호세아에게 임한 말씀이라는 것이죠.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호세아야,
내 마음 좀 알아주면 좋겠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라’
‘그리고 너는 가서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호세아야,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라
맞이하다 라는 단어는, 결혼하라는 말씀입니다.
낳으라는 것은 아이를 출산하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 땅이 하나님을 뒤로 하고 음란하고 음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음란’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불성실하다, 불충실하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간음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고멜이라는 여자가,
특성상, 이리기웃, 저리기웃하는 특성을 가진, 음란한 여자라는 의미인 것이죠.
너는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는 고멜이라는 여자와 결혼하라.
그리고 그 여자와 결혼해서, 음란한 자녀를 낳아라.
그녀는 불신실하지만,
너는 신실하게 사랑하며,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어라.
하나님이 이같은 명령을 하시는 이유는,
호세아야, 내 마음 좀 알아다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 다오. 라는 의미입니다.
그냥, 말로만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쓰라린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특별히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영적으로는 깜깜한 어둠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것은,
하나님 마음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배신 당하는 자리, 버림 받는 자리, 속이 썩는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상대방을 사랑하고, 상대방을 품고, 상대방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삶인 것이죠.
호세아야,
너는 가라!
그리고 음란한 여자를 취하여라!
그리고 그와 연합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배신 당하는 자리, 버림 받는 자리에 묵묵히 서서,
그녀는 음란하고
불성실하고
불충성스럽지만
너는 그 자리에서, 그녀를 사랑하고,
그와 연합하고,
그를 끝까지 품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 말씀을 듣고 흘리지 않습니다.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말씀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3절입니다.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산하여 아들을 낳으매”
호세아는 말씀을 들은 즉시
그 말씀대로 가서,
고멜을 취하여 그녀와 결혼하였습니다.
특별히, 본문에는 자녀가 3명 등장하는데,
호세아서는 특이하게도,
그 자녀의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인데, 하나님이 흩어버리신다 라는 뜻이고,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인데,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겠다 라는 의미이고,
셋째 아들의 이름은 로암미인데, 이제 너는 내 백성이 아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흩어버리신다 라는 말도 심판이고,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겠다 라는 말도 심판이고,
이제 너는 내 백성이 아니다 라는 말도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말씀을,
호세아가 사랑하는 세 자녀의 이름에다가 붙이도록 했다는 것은,
마치 사랑하는 자녀를 심판하는 것처럼
그토록 끔찍한 하나님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죽 하면 자녀 이름에 심판의 말씀을 넣으셨을까요?
사랑하는 자녀의 이름을 심판 메시지로 지은 호세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절절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끔찍한 심판의 메시지를 외치는 가운데서도, 호세아는 그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 가운데, 그 말씀을 설교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자녀를 향해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의 그 절절함, 간절함, 회개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애타는 마음, 이런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가르치고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예수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가요.
남의 자식이 아니라, 내 자식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해야 하고,
남의 가족이 아니라, 내 가족에게 말하듯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넘치는데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일수록,
사람들 마음이 딱딱해져 갑니다.
타인에 대한 긍휼의 마음은 잃어버리고, 형식적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는 것이죠.
교회도 혹 이럴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로 하나님의 뜨거운 가슴,
절절한 사랑,
애타는 회개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사랑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내 자녀에게,
내 사랑하는 가족을 대하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녀에게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 라는 이름을 지어야 했던, 호세아의 고통스러운 마음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도 녹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답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남 유다 왕, 히스기야가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부르짖었습니다.
수십만 군대가 쳐들어와서, 남 유다 수도를 에워쌌습니다.
답이 없죠.
활이나 칼이나 전쟁이나 말, 마병으로 구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는,
왜냐하면, 앗수르 제국 군사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고,
반대로 남유다 군인의 숫자는 적었습니다.
답이 없죠.
인간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활이나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죠.
그게 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유다 족속을 긍휼이 여기시면, 그게 구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시면, 그게 답인 것이죠.”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부요하지만,
영적인 부요함이 없는, 영적 암흑기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답이심을 굳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활도 아니고, 칼도 아니고,
말과 마병도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이웃을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최첨단 무기나 전략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활이나 칼, 전쟁이나 말과 마병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고안해낸 최고의 무기들 아닙니까?
이것만 있으면 이길 수 있다!
전쟁필승의 무기들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게 답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게 답이 아니야.
활이나 칼이나 말이나 마병이 아니야.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답이야.
7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너가 믿는 거,
활, 칼, 전쟁, 말, 마병, 그게 너의 구원이 아니야.
너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야.
하나님이 바로 너의 답이야.
이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0절과 11절에서
하나님은 소망의 말씀을 하시는데,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답답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소망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9절까지는 절망입니다.
네 자녀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네 딸 이름은 로루하마라 하라,
그리고 막내 아들 이름은 로암미라 하라
절망입니다.
하나님이 흩으시고, 하나님이 더 이상 사랑하시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너는 내 백성도 아니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10절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반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흩으시고,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하나님이 버리신 것 같은, 9절까지의 상황이, 10절에서 반전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살아 계신 이라는 말은 승리의 소망을 불어넣는 단어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이라는 단어는,
살아 있지 않은, 모든 죽은 우상과 대조되는 단어인 것이죠.
아무 것도 줄 수 없고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죽은 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죽은 우상의 자녀가 아니다.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너희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게 될 것이다.
너희는 패배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승리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여러분, 이 반전의 소망을 믿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불러 쓰셨습니다.
그에게 하나님 마음의 자리에 서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고,
여호와의 심정,
여호와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성실한 사람을 품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인 것이죠.
또한 하나님의 구원은 활이나 칼, 전쟁이나 마병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의 최첨단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곧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활을 믿었다가 망했습니다.
자기 칼을 믿고 살다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받습니다.
이 믿음으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셔서, 절망의 자리에 앉은 우리 인생을 역전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이제는 내 백성의 숫자가 바닷가의 모래와 같아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더 이상 죽은 우상의 종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반전의 역사,
반전의 말씀을 믿고 소망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충만하여,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 시간에
들은 말씀을 가지고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달라고, 나에게도 하나님, 이웃에게도 하나님이 답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항상 소망의 은혜 가운데 승리하게 해달라고.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두번째로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금요일)
주일 사역을 준비하고 있는 교역자들을 위해서, 다음 세대 우리 자녀들 양육 훈련 시키는 가운데 은혜 달라고. 교역자들에게 성령 충만함을 달라고. 또한 다가온 새생명축제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을 깊이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말씀의 빛을 가까이 하게 하셔서, 늘 깨어 있는 우리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일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게 하여 주시고, 무엇보다 말씀 준비하시는 목사님, 그리고 부교역자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다가오는 새생명축제 가운데 성령의 충만케 하시는 은혜,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가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병약한 지체들을 붙드시고, 하루 속히 치유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관찰
1 여호와의 말씀이다, 호세아에게 일어난, 브에리의 아들, 웃시야의 시대,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유다 왕이 된 시대, 그리고 여로보암의 시대, 요아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 배경이다.
히스기야가 유다 왕이 된 시대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
이 시대에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이 시대의 특징은?
브에리 : 우물에 속한 자 / 호세아의 아버지
웃시야 : 아마샤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아사랴라고도 하는 웃시야가 단독 왕으로 보좌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웃시야는 주전 740년까지 통치한다. 웃시야는 산당을 제하지는 않았지만 재위 초기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 웃시야는 새로운 성읍들을 건설했고,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에게도 승리하게 해주셨다. 웃시야는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했고, 부유해졌으며, 강한 군대를 갖추었다. 하지만 웃시야는 오히려 힘을 얻은 후에 몰락하고 만다. 그 마음이 교만해졌기 때문이다.
요담 : 웃시야의 아들 요담은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단독 왕이 되어 주전 732년까지 통치한다. 왕은 바르게 행했지만 백성들은 산당에서 여전히 이방 종교의 관습을 따라갔다.
아하스 : 아하스는 남왕국 왕 중에서도 최악의 왕으로 꼽힌다. 그는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했다.아하스는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서 몰아낸 바로 그 민족들과 똑같이 행했다. 아하스는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에게 공격을 받는다. 그 결과 유다에서 12만 명이 죽임을 당했고, 20만 명이 사마리아에 노예로 끌려갔다.
히스기야 : 주전 715년에 홀로 왕위에 올라 주전 686년까지 계속 통치한다. 히스기야는 유다에서 중요한 종교 개혁을 단행한 왕이었다. 히스기야가 재위했던 기간이 남왕국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아버지가 폐쇄했던 성전 문을 열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언약을 세우고, 하나님의 분노가 유다에서 떠나가게 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여로보암 : 하나님은 여전히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는 기간에도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니은 당시 이스라엘이 적들 때문에 심한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잠시 회복시켜 주셨다. 여로보암 2세는 중요한 왕인데, 그 이유는 그가 통치하는 기간에 세 명의 북왕국 선지자들(호세아, 아모스, 요나)이 예언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호세아 : 북왕국이 안고 있는 핵심적인 영적 문제는 우상 숭배였다. 이를 ‘음란’, ‘음행’이라고 묘사한다.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창녀와 결혼하여 그 나라의 영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2 처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가라(할라크 / 명령), 너는 취하라(라카흐 / 명령). 너를 위하여, 여자(이샤)를, 제누님(음란), 그리고 제누님(음란)의 옐레드(자식, 아이). 왜냐하면 음란하고(자나) 음란하기 때문이다(자나). 이 땅(에레쯔)가, 여호와를 뒤로하고(아하르).
너는 가라
너는 취하라
너를 위하여
음란한 여자를
그리고 음란한 자녀들을 낳으라
‘자나’가 두 번 반복. “크게 음란함 이니라”
음란 : 음탕하고 난잡한 생활. 혼외 정사, 매춘, 동성애와 수간을 포함한 각종 변태적 행동, 및 미혼 남녀의 성교 등 모든 비정상적인 성적 문란 행위를 일컫는다. 성경에스 ‘음란’이라 할 때 순결을 지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영적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지 못하는 신앙의 부정이나 우상숭배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3 그리고 그가 갔다, 그리고 그가 고멜을 취하였다, 디블라임의 딸, 그리고 그녀가 잉태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아들을 낳았다.
3절은 ‘동사’가 많다.
갔다.
취하였다.
잉태하였다.
낳았다.
4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하였다, 그에게, 너는 부르라(카라 / 명령).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왜냐하면 조금 후에, 내가 파가드(방문하다, 돌보다, 벌하다 / 미완료)할 것이다, 이스르엘의 피 흘림(담)을, 예후의 집 위에, 그리고 내가 샤바트(멈추다, 안식하다, 그치다, 폐하다 / 히필 미완료)하게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집의 맘라쿳(나라, 통치, 지배)를.
이 사건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너는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지으라.
왜냐하면 조금 후에 내가 예후의 집 위에 이스르엘의 피흘림을 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스라엘 집의 통치를 그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심판이다.
이스르엘 : 피비린내 나는 많은 사건들과 연루된 지명이다.
파가드 : 기본 의미는 주의하다, 관찰하다 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님은 신성한 축복을 내리거나 심판을 내릴 때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주목" 또는 "주목"하시고 그에 따라 행동하십니다.
긍정적인 주목 / 부정적인 주목
5 그 날에, 내가 샤바르(깨뜨리다, 꺾다, 멸망하다, 부수다 / 미완료)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케세트(활, 무지개)를, 이스르엘 에메크(골짜기, 평야)에서.
샤바트 / 샤바르
하나님이 샤바트 하시고, 샤바르 하실 것이다.
케세트는 ‘노아의 언약’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하나님은 무지개를 꺾으시고, 다시금 홍수 심판을 가져다주실 것이다.
6 그리고 그녀가 다시 임신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딸을 낳았다, 그리고 그가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부르라(카라 / 명령), 그녀의 이름을, 로루하마, 왜냐하면 내가 다시는 야사프(더하다, 크게 하다 / 히필 미완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라함(사랑하다, 긍휼히 여기다 / 피엘 미완료)하여서, 이스라엘 집을, 용서하고(나싸) 용서하지(나싸), 그들을. (않을 것이다.)
그녀가 다시 임산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딸을 낳았다.
그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부르라.
왜냐하면 내가 다시 이스라엘 집을 크게 긍휼히 여겨서,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긍휼은 더하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긍휼 없음’이 태어나면서 이스라엘 집에 더 이상 긍휼을 베푸시지 않을 것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북왕국은 거의 200녀난 우상을 숭배한다. 그럼에도 하나니은 긍휼하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셨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그 백성에게 불쌍히 여기시지 않으시리라고 선언하신다.
7 그러나 내가 유다 집을 라함(사랑하다, 긍휼히 여기다 / 피엘 미완료)하여서, 내가 그들을 야샤으(구원하다, 돕다 / 히필 미완료)할 것이다,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베), 내가 야사으(구원하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케세트(활, 무지개) 그리고 헤레브(칼) 그리고 밀하마(전쟁), 말, 기병으로.
이스라엘 집은 라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 집은 라함할 것이다.
이스라엘 집은 야사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 집은 야사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활, 칼, 전쟁, 말, 기병으로 구원하시지 않을 것이다.
8 그리고 그녀가 가말(젖떼다)하였다, 로루하마를, 그리고 그녀가 임신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출산하였다, 아들을.
아들 / 딸 / 아들
‘로암미’ : 하나님은 출애굽 때에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하셨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하지만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내 백성이 아님이라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방 신을 섬겼기 때문에 언약을 맺었던 계약이 파기되었음을 말한다.
9 그리고 그가 말씀하셨다, 너는 부르라(카라 /명령), 그의 이름을, 로암미, 왜냐하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를 위해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역개정은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고 번역하였다.
로암미이다.
‘언약 공식’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언약이 깨진 것이다.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벤 / 아들)의 미스파르(수, 수효)가 바다의 홀(모래)처럼 될 것이다, 측량할 수 없을 것이고, 기록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곳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살아계신 하나님(엘)의 자손(벤 / 아들)이라고.
반전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가 바다의 모래처럼 될 것이다.
측량할 수 없고
기록할 수도 없을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한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도 바울이 호세아, 1장 10절 말씀을 언급하면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말할 때 이 놀라운 사실을 볼 것이다.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계획은 처음부터 모든 민족을 하나님의 전 세계 백성의 일원으로 삼는 것이었다. 호세아 선지자는 저 멀리서도 이 약속을 보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고 말한 후, 본문은 경고나 전환 없이 돌아서서 아브라함에 대한 고대 언약의 약속을 재확인합니다(창 22:17). 이 약속을 상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해변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확언은 호세아 시대에는 거의 비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울프는 주전 738년, 왕하 15:19-20에 따르면 이스라엘에는 약 6만 명의 자유 토지 소유자가 있었고, 확장하는 앗수르 제국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이 이러한 현실의 반전을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11 이에 그들이 모여,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그리고 그들이 씸(세우다, 배치하다)할 것이다, 그들을 위해, 하나의 로쉬(근원, 머리)를, 그리고 그들이 올라갈 것이다, 그 땅으로부터, 왜냐하면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르엘이 반복된다.
11절에서,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연합하는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한 지도자를 세울 것이다.
그들은 그 땅으로부터 올라올 것이다.
'장소'의 모호성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뿐만 아니라 호세아의 자손도 지칭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호세아의 아들은 자신의 공동체에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호세아는 아마도 여기서 로암미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아들로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한 것 같습니다. 백성 전체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인정받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장소'는 특정 장소를 지칭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문구가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 표현은 그들이 자신의 지위를 되찾았고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아들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주장합니다. 둘째,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이스라엘과 열방 사이의 군사적 갈등의 맥락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여기서 "살아 계신 하나님"은 사실상 죽은 우상과는 대조적으로 승리를 주실 수 있는 "참 하나님"을 의미합니다(신 5:26, 수 3:10, 삼상 17:26, 왕하 19:4, 렘 10:10-11, 단 6:26 참조). 셋째, "살아 계신 하나님"은 시 42:2, 84:2에서와 같이 생명의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승리와 생명을 주시는 야훼는 빼앗은 자 바알을 쫓아내고 그의 가족을 되찾아 주실 것입니다(2:5-8 참조).
1:11 [2:2] 호세아는 열두 지파가 두 나라로 나뉘는 것은 근본적으로 비뚤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한 민족이며 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다윗 가문이 민족을 이끌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과 함께 로-루하마 신탁에서 유다에 대한 언급을 확장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주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통일된 나라가 지도자를 임명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민주주의가 신의 권위를 대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오히려 구속받은 백성들의 만장일치 정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윗 가문과 이스라엘 왕들 사이의 오래된 갈등이 끝날 것입니다. 한 지도자, 특히 다윗의 메시아에 의한 민족의 통일은 예언자적 희망의 주요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 땅에서 나올 것이다"라는 번역은 정확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호세아가 새로운 출애굽을 통해 유배에서 돌아온다는 것을 암시하며,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땅에서 올라올 것이다"는 호세아가 이 구절을 끝맺는 이름인 이스르엘("하나님이 뿌린다")을 근거로 땅에서 자라는 식물의 은유를 발전시킨 것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풀처럼 땅에서 자라난다는 것은 호세아가 이전 구절에서 예견한 이스라엘의 방대한 인구를 설명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연구
호세아는 고통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고 어려운 시기에 설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모두 고난의 나날과 영혼을 시험하는 논쟁을 겪으며 살았기 때문에 이 점은 진부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에게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특별한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의 가정 생활은 고난 받는 예언자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독특한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그가 일생 동안 겪은 정치적 격변과 재앙으로 인해 느낀 슬픔도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왜 이스라엘의 나머지 왕들에 대한 언급을 소홀히 했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보입니다. 첫째,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를 조금이라도 정통성을 가진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의 뒤를 이은 왕들은 "왕"이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이 없는 암살자이자 야심가들이었습니다. 호세아의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평가는 7:1-7과 같은 본문에 나타납니다.
때때로 그는 북쪽만큼이나 남쪽을 심하게 비판했지만(5:5, 12), 그들이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도하기도 했습니다(4:15). 가장 중요한 것은 다윗의 계보에서 구원과 통일을 찾았다는 점입니다(3: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레 21:14에서 제사장과 창녀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부도덕한 여자와 결혼하라고 말씀하실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호세아서 어디에도 그가 제사장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내용은 없습니다.
호세아가 야훼로부터 받은 첫 번째 말씀이든 아니든, 그가 이 계시를 그의 예언자 사역의 진정한 시작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부름은 음탕한 여인과 결혼하라는 명령의 형태로 왔습니다!
그는 고의적이고 방탕한 백성과 언약을 맺은 야훼와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신 9:6).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야훼 자신과 같은 종류의 결혼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슬픔을 경험하고 따라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민족에게 말해야 합니다.
세아의 청중에게 이스르엘은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 위치한 같은 이름의 마을과 계곡을 의미했습니다(이스르엘 마을은 길보아 산의 북서쪽에 있는 계곡에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 역사상 중요하고 폭력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과의 재앙적인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이곳에 소집되었습니다(삼상 29:1). 삼하 2:8에 따르면 이스르엘은 이스바알(또는 이스보셋)의 낙태 왕국의 일부였습니다. 이스르엘은 나봇이 이세벨의 부하들에게 모함을 받아 살해당하기 전까지 포도원을 가지고 있던 곳입니다(왕상 21:1). 예후가 요람과 이세벨, 그리고 나머지 아합의 가족과 지지자들을 죽인 곳도 이곳이었습니다(왕하 9:24-10:11). 또한 이스르엘 골짜기는 드보라(삿 4-5장)와 기드온(삿 6-7장)이 싸웠던 전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스르엘은 체르노빌이 현대인에게 핵 재앙을 의미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유혈 사태를 의미했을 수 있습니다.
이 이름이 "하나님이 씨를 뿌리시길"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땅의 생산성과 연관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는 호세아서의 배경에 많이 등장하는 다산 숭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선지자에게는 이 이름이 진정한 생명의 주인이신 야훼와 거짓 다산의 신 바알을 대조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바알의 종들을 처형한 것은 분명 주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지만(열왕기상 18:40 참조), 예후의 다윗 가문에 대한 공격은 너무 지나쳤습니다. 아하시야의 암살은 하나님의 섭리 때문일 수 있지만(대하 22:7), 근본적으로 주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태도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활을 부수는 것은 국가의 군사력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삼상 2:4, 시 46:9, 렘 49:35 참조).
이 예언의 일반적인 성취는 기원전 734-722년에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제국 내의 한 지방으로 축소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왕하 15:29, 17:3-5). 특히 이스르엘 평야는 주전 733년 티글랏-파일레셀 3세가 정복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드온이 군사적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던(삿 6:33, 7) 이 골짜기는 사울이 죽은 후에도 그랬던 것처럼 다시 국가적 치욕과 패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삼상 29:1, 11, 31).
둘째 아이는 "사랑받지 못하는 자"라는 뜻의 로-루하마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한동안 끊어질 것임을 나타냅니다.
남왕국 유다는 이스라엘과 대조적으로 앗수르에서 구원의 형태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활과 칼 등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군사력이 아니라 주님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약속은 주전 701년에 하나님께서 강력한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하룻밤에 초자연적으로 전멸시켜 유다에 대한 공격을 종식시켰을 때 성취되었습니다(열왕기하 19:32-36).
이 말씀은 유배지에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는데, "땅"은 이집트(호세아 2:15 참조)이며, 이는 미래의 포로 생활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참조, 8:13; 9:3, 6; 11:5; 신 28:68). 그러나 호세아서의 다른 곳에서 "땅"('에레쉬)은 이스라엘 땅(참조, 호세아 1:2; 2:18, 23; 4:1, 3)을 가리키거나, 한정된 지리적 용어 없이 정관사와 함께 사용될 때 문자 그대로 땅의 표면(참조, 2:21-22; 6:3)을 가리킵니다.
종교적 혼합주의는 다른 신들이 이스라엘의 충성을 얻기 위해 여호와와 경쟁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유일신??
이스라엘 성서의 정경에서 야훼는 인간이 마땅히 예배드려야 할 유일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지만, 이방신들은 인간이 손수 만든 존재일 뿐만 아니라 야훼가 하신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는 사기꾼으로 간주되어 멸시를 받는다(시 96편; 사 40:12-14, 18-20). 이방신들과 달리 야훼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셨다(사 43:10-13). 야훼는 지금까지 항상 계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실 것이다.
묵상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왜?
말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왜?
말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돌이키기 위해서이다.
가라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취하라.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크게 음란하기 때문이다.
호세아의 징계가 아니다.
공동체의 징계이다.
거기에 호세아가 사용된 것이다.
그래서 갔다.
그리고 아내로 취하였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이름을 지으라.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그리고 또 딸을 낳았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이름을 지으라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그런데 이 사이에 ‘구원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
유다 족속에 대한 긍휼과 구원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이 친히 구원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떼었다는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다.
이스르엘과 로루하마 사이에는 없었던 이야기이다.
왜?
호세아, 1:10의 예언은 언제 성취된 것인가?
질문들
왜 이 본문인가?
호세아서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하나님의 인내심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전한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왜 하나님은 이런 명령을 호세아에게 하셨는가?
무엇보다 호세아는 이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다는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히브리어로 호세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도 안 되는 결혼을 한 것과 같다.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끊임없이 예수를 떠난다.
예수를 버리고, 세상을 좇아 살아간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예수를 통해 다시 회복하기를 반복한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구원을 명령하신 것이다.
한 여자를 구원하라는 것이다.
이 여자는 교회이다.
이 교회를 살리라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이 지적하시는 죄는 무엇인가? 그것이 왜 죄인가?
교회가 예수를 떠나면 그것이 죄이다.
예수를 떠나 세상을 사랑하면 그것이 죄이다.
그것에서 나온 열매들이 죄의 열매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의 말씀은 무엇인가?
선지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는 하나님의 고뇌와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이 고통스러워하는 시대에 태어나, 하나님과 함께 아파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대안적 희망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활도 아니고 칼도 아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고뇌와 고통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의 타락상에 대해 마음 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대와 함께 그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하나님의 대안적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호세아 = 헬라어로, 예수
호세아는 죽고, 고멜은 사는 길
이스르엘 -
로루하마 - 루하마
로암미 - 암미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하나님이 변화시켜주시는 것을 기대함.
나는 죽고 상대방이 사는 길
나는 죽고 예수가 사는 길
호세아는 선명한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신다.
교회는 선명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가 구원이시다.
그 외에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활과 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