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복음의 아름다움, 복음을 듣다(롬10: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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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일시 : 2023년 6월 17일 토요일 새벽
본문 : 로마서 10장 14-21절 *신254
찬송 :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Point Message : 1. 복음은 아름답습니다]
15절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보기에도 좋은 말씀이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은 구절이기도 합니다.
복음 들고 전도의 길을 걸어본 성도님들이라면, 복음을 전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그 길이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잘 아실겁니다. 물론 복음이 어둡고 그늘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아름답다 정의내리기엔 고난이, 역경이 있다는 것이지요.
군대 전역 후, 세상을 보니 ‘복음이 필요한 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장 CCC든 어디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복음전도의 방법들을 배웠고, 그렇게 팀을 꾸려 사도 바울처럼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사전에 작은 교회들과 협의하여 전도하는 날 함께 돕겠다 약속도 하고, 저희는 또 저희 나름대로 걷고 또 걸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물론 모든 걸음이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 전도지를 잘 받아주시고, 또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무시는 기본이고 누군가는 욕을 하기도 합니다.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어린 나이에 저희 마음 가운데 예수로 인해 받은 상처가 컸습니다.
하지만, 한 주간의 여정을 보내고 팀원들과 나눔을 하면서 그 누구도 ‘다시는 하지 말자.’, ‘유익함이 하나 없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분명 상처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를 전하며 받은 상처가, 예수가 받은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좋았다. 우리가 전도하러 갔지만, 오히려 우리가 예수님으로 전도 받은 기분이고, 왜 우리가 더 열심히 주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게 저희의 결론이었습니다.
저희만의 이야기로 모두가 그렇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부인하고 배신하고 떠난 자들 아닙니까? 그런데, 십자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삶이 어찌 변합니까? 더 고난의 길이 됩니다. 더 끔찍하고 괴로운 삶을 삽니다. 저는 특히 베드로의 마지막 죽음 앞 고백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유세비우스라는 역사가의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마지막 아내와의 순교 직전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고 합니다. 로마 군인들이 죽어가는 베드로의 아내를 향해, “지금이라도 예수를 부인한다면, 목숨만큼은 살려주고 뿐만 아니라 놓아주겠다.” 라고 말하자, 이를 들은 베드로가 “내 사랑하는 아내여! 주님을 기억하시오!” 라 말하며, 주님을 부인하며 도망쳤던 베드로가 오히려 순교의 죽음을 격려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죽임이 차례로 올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나는 십자가에 그대로 매달릴 자격이 없소! 나를 거꾸로 매달아 주시오!” 라고 말한 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으며, 그 마지막 순간에도 두 손을 들고 주님을 찬양하며 마지막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물론 전승이기에 ‘맞다’ 말씀드리기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그 어떤 제자들도 마지막 순간 아름다운 길은 없었다는 겁니다. 고난이고 역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마지막 고백은 ‘아름답다’ 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참 어렵고 힘들지만, 끝은 아름다움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지요. 이 말씀을 향한 우리 성도님들의 갈망과 마음이 변치 않는 하루이길 소망합니다.
[Point Message : 2. 복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듣도록 전해야 합니다]
또 주님은 우리게 아름다운 복음을 주신 것 뿐 아니라 우리를 사용하시길 가장 원하십니다. 이 좋은 소식을 혼자만 알기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함께 전하고 나누며 모두가 하나로 연합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준비의 과정이 당연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17절을 함께 봅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는 아름다운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들어야 우리는 알게 됩니다. 듣지 않은 사실에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기에 힘써야 하고, 그 말씀 듣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들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과거 우리는 예수를 몰랐지만, 선교사님들의 선교와 순교로 대한민국은 예수를 알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들은 복음을 듣고 그친 것이 아닌, 나아가 외쳤습니다. 나아가 전했습니다.
고난주간 함께 보았던 엘리자베스 쉐핑, 서서평 선교사님의 스토리가 기억에 납니다. 육신의 고통 속에서도 들은 복음을 전하기에 힘썼던 선교사님의 귀한 발걸음이 대한민국의 복음화에 충분히 한 몫을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저 일대기를 담아낸 영화에 불과하다면 불과할 수 있지만, 그 삶이 얼마나 도전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도전이 한 때에 그쳐 현재 제게 그 도전이 하나도 남지 않은 이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들었던 복음이 들음에 그쳐계십니까? 아니면 복음 전도자로써 이어져 가고 계십니까?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이 우리 안에 있음에 얼마나 감사인지 고백하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그 아름다운 보물이 우리 안에 있음에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또 그 복음을 우리게 듣게 하시고, 듣는 귀와 마음을 열어주심에도 감사 아니겠습니까? 바라옵기로는 오늘 하루 살아내심에 있어 복음의 기쁨에 사로잡힌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 복음에 의하여,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1) 우리 이 시간 들은 말씀을 가지고
- 복음을 보며 그 아름다움을 보는 영적인 시야가 뜨여지게 하소서
- 복음을 들음에 감사하며, 듣기를 원하고 바라고 사모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2) 한 번 더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각자 가지고 나오신 기도제목을 가지고
- 복음 위에 세워진 이어진교회와 또 칼빈대학교와 칼빈대학교회가, 흔들림 없이 복음 위에 세워지며 하나되어 연합함에 힘써 걸어가는 교회와 학교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