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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여름수련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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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멜레온과 같은 신앙인 2. 압박을 받던 그리스도인들을 위함 3. 과거에 묶이지 마라 4. 우리도 할 수 있다 딱 한 걸음

Notes
Transcript

카멜레온과 같은 신앙인

드디어 이번 주 금요일부터 23년 여름수련회가 시작이 됩니다. 아직도 고민하는 청년들 있다면 이제 그만 고민하세요. 청년의 때 그리고 수련회는 매년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함께 할 수 있을 때 수련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 함께 나누는 우리 가온누리가 되기를 바래요.
오늘 본문은 수련회 기간 중 나눌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어요. 오늘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소화시킨다면 수련회 때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될거에요.
이번 수련회를 통해 우리가 함께 진하게 나누고 묵상할 히이브리서 특히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펴볼 11장은 두 가지 키워드가 있어요.
믿음 그리고 인내
무엇이 있다구요? 믿음 그리고 인내
이 두 가지를 이해하고 받아드리기 전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본문이 오늘 본문 히이브리서 10장 32-39절이에요.
오늘 본문을 건너띄고 11장만 읽는다면 히브리서 저자가 왜 그렇게 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기록해 두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일들을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어요. 그렇기에 오늘 본문이 정말 중요해요.
(쉬고)
여러분 혹시 카멜레온이라는 동물 본적 있어요? 그렇다면 카멜레온의 특징을 좀 알고 있나요?
카멜레온은 주위 환경에 따라 자신의 몸 색깔을 바꾸는 능력이 있는 동물이죠.
천적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서 주위 환경과 자신의 몸 색깔을 똑같이 만들죠. 그리고 거의 움직이지 않아요.
주위를 살피다가 자신이 안전해졌다라고 여겨질 때 파파박 움직여서 길을 나서는 것이 카멜레온이에요.
(쉬고)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이런 카멜레온과 같을지 몰라요.
우리는 선택적으로 믿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어때요? 믿음을 어디서든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살아가나요?
부끄럽지만 저도 제 믿음을 보이는 것이 고민되는 때가 있어요.
왜 머리 커트하러 가면, 머리를 만져주시는 분께서 하시는 질문들이 있잖아요. 그 중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어떤 일 하세요?”더라구요.
그 때 저는 찰나의 순간 정말 많은 고민을 해요. 좀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고 싶은데, 질문하면 정신의 흐름에 따라 그냥 대답하고 싶거든요.
만약 저 목사입니다. 라고 하면 “아...”하고 대화가 끊기거나 혹은 “아 그래요? 목사처럼 안보이는데"라고 해요.
그러면 이제 서로 불편한 시간이 흘러요.
“어떤 일 하세요?”라고 했을 때, “아 뭐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칩니다"라고 중의적으로 표현하면, “선생님이세요?”라고 해요. 그러면 거짓말 할 수 없잖아요.
“아 사실은 목사입니다..”라고 하면 “아..”하는 말과 함께 가위질 하는 소리만 들려요.
이젠 물어보면 “아 예. 그냥 이것 저것하고 삽니다.”하고 말을 더 하지 않아요.
그들에겐 단순한 질문이지만, 저에게는 저의 믿음을 드러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믿음을 숨기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이 드러내지 않는 이유사회적인 거부를 당할까봐 혹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들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싫어서 일 수도 있을거에요.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구분되지 않는 삶을 살려는 유혹에 늘 빠져요.
머리는 구별된 존재라는 것을 알지만, 실생활은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죠.
솔직히 편하잖아요.
교회 다닌다고 티 안내면, 신앙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얼마나 편해요.
회식 자리가서 한 잔씩 하면서 주님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고 주일날 놀러가자는 말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누가 물어보지 않는데 굳이 내가 먼저 말할 필요 없다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에요.
다른 말로 스스로 편함을 포기하고 어려운 길을 가겠다! 라고 말한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에요.
세상의 가치를 뒤로하고,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가치를 붙잡겠노라고
기꺼이 좁은 길을 걸어가겠노라고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에요.
우리가 정말 그 길을 걸어가길 원한다면 이런 저런 다양한 핑계들로 내 신앙을 감추어서는 안되는거에요.
여러분 차별 금지법 계속 난리잖아요.
세상은 우리의 신앙 그 믿음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숨기도록 하기 위해 계속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도전장을 던지고 있어요.
세상의 도전 앞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가요?
계속 휘둘리며 살건가요? 아니면 정말 내 신앙을 드러내며 멋지게 살아보고 싶은가요.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면 고난받는 삶이 실제로 존재해요.
제가 중학생일 때 교회 전도사님과 함께 학교 내에 기도모임을 만들었어요.
저보다 한살 위 형이 기도회를 인도하고 저는 반주를 했었어요. 반주를 하기 위해서는 피아노가 필요하겠죠. 음악실을 빌려야 하는데 음악 선생님께서 허락해주실지 잘 모르겠는거에요. 그 때 음악선생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거든요.
방학 동안 조직을 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새학기가 시작이 되었어요. 그리고 음악 선생님으로 다른 분이 오셨어요. 마침 새학기 첫 시간이 음악 시간이어서, 저는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음악실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어요.
음악선생님이 들어오셨어요. 그리고 입을 열어 말씀하셨어요.
“애들아 우리 손 모으고 기도하자"
그 분은 예수님을 믿던 신앙인이었던거에요. 음악실을 빌릴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기도하며 수업을 시작한 것으로 민원이 들어갔고 선생님에게 경고가 내려왔어요.
그런데 그 선생님은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도를 하셨고, 음악실을 빌려 주셨고, 우리의 방패막이 되어주셨어요.
다양한 압박과 고난이 있었지만 선생님은 꿋꿋이 버텨내셨어요.
지금은 그 때보다 더 압박의 정도가 강하겠죠.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면 정말 어려워지게 될거에요.
저도 알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나의 믿음과 신앙을 드러내며 살아야 해요.

압박을 받던 그리스도인들을 위함

히브리서가 누구를 위해 쓰여진 책인지 혹시 알고 있어요? 이번 주 내내 우리가 살펴볼 히브리서는 저와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어요.
낙심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책이에요.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을 믿고 회심하여 돌아온 사람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상황에 빠져 있었어요.
카멜레온.
나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 정말 어려워서 상황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던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어요.
삶의 소망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에 감격하여 그 분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했어요.
그들도 우리처럼 좁은 길을 걷겠노라고 스스로 선언했어요.
우리보다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쳐하게 되는데,
예수를 주로 고백한 것이 알려지자마자 대부분 직장에서 해고 되었어요.
사람들이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아요.
자녀들이 학교에서 회당에서 어느 곳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따돌림을 받기 시작해요.
예수를 믿었을 뿐인데 그들이 감수해야 할 상황들이 너무 많고 다양하고 어려웠어요.
그래서 그들 역시 우리처럼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굳이 드러내야 하는가?” “굳이 고백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어요.
믿음을 감추고 싶은 유혹
무엇이 되었든 우리처럼 구분되지 않는 삶을 살려는 유혹을 그들도 받았다는 것이죠.
그 때나 지금이나 별 반 다를게 없다는거에요.
세상은 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없애려고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히브리서가 기록 된거에요.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말씀하신 것. 너가 들어왔고 지금 알고 있는 그 모든 것들에 계속 해서 귀를 기울여라. 경청하라!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는 지금 보이지 않으나, 영원한 하늘의 복이 있을 것이고,
세상 끝날 때 심판에서 우리는 자유함을 선포받게 될 것이다.
우리 말씀 2구절을 볼까요? PPT를 보고 함께 읽겠습니다.
2장 1절.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라! 라고 말하고 있어요.
들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맞아요. 그리고 또? 10장 36절이에요. “인내"에요.
지금 저자는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지친 그리스도인들이여! 인내하고 물러나지 말아라! 인내하라! 버티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한 과정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거에요.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이유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겠죠.
여러분 우리가 수련회 집회가 있는 토요일, 주일 함께 나눌 11장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
“지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권면"이 가득 담겨 있어요.
수 세기에 걸쳐 믿음으로 인내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와 별 반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똑같이 평범한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믿음을 지켜냈는지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바로 11장에 기록이 되어 있어요.
우리는 수련회 때 하나님과 나를 잇고, 믿음의 조상들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을 잇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동역자들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로 잇는 시간을 가질거에요.
12장 1절을 보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란 표현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안에서 하나로 이어져 가는 우리들의 믿음을 증언해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즉 성경의 믿음의 조상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음을 깨닫는 수련회가 될거에요.
(쉬고)
오늘 본문 32절-33절을 볼까요?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 여기에서 말하는 큰 싸움은 주후 49년에 있었던 실제 역사 이야기를 말해요.
크레스투스. 그리스도를 말한다! 라고 말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 그리스도인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할 수 없는 정통 유대인들간의 싸움이 굉장히 잦았어요.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것을 들은 헬라와 로마 사람들도 많은 갈등과 충돌이 있어어요.
그래서 글라우디오 황제가 주의를 주었고, 그래도 먹히지 않자 결국 그리스도인들을 추방시키게 되어요.
그런데 이 때 그냥 추방시키지 않았어요.
굉장한 놀림거리와 구경거리가 되도록 했어요.
심지어 기독교인들의 무덤을 훼손하고 시체를 꺼내 손상 시키기까지 했어요.
33절. “구경거리가 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거에요.
그리스도인들은 억울 했을 수 있어요.
내가 믿는 그리스도를 전했을 뿐이고, 나는 나의 믿음을 지켰을 뿐인데 내가 왜 이런 치욕을 경험해야 하나. 왜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사람들에게 대해져야 하는가 등 굉장한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되었어요.
33절. “환난"
예수님을 위해 당한 육체적인 고통을 말하는거에요.
사람들이 쫓겨나가는 그들을 가만 두었을까요?
기세 등등해져서 때리기도 하고 돌을 던지기도 하는 등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어요.
쫓겨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니, 정통 유대인들과 로마인, 헬라인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여긴거에요.
자녀들이 부모가 맞는 것을 보았고, 자녀들도 맞았어요.
엄청난 육체적, 심리적 트라우마가 들에게 남게 된 것이죠.
(쉬고)
34절을 보면 이들은 영구한 소유.
지금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 그 영구한 소유를 위해,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했다고 해요.
그들이 어떻게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는데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영구한 소유. 말이 영구한 소유. 천국에서 받을 선물이지 지금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들은 지금 빼앗기는 것을 오히려 기뻐했어요.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특권이 나에게 주어졌다! 라고 하며 그 상황에 오히려 감사했고, 좋아했고 심지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까지 했어요.
그들이 어떻게 그 희생을 “기뻐하고 반길 수 있었"을까요?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넘어서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과거에 묶이지 마라

그리스도에게서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고 첫 사랑을 회복했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거에요.
수련회 때 받을 은혜를 기대하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수련회 장소에서 은혜를 받으면 더 큰 감격이 막 올라오죠.
여러분 그 은혜가 계속 지속되던가요? 1년 365일 모든 순간 은혜가 넘치던가요?
그 은혜가 자꾸 소멸되어 가죠.
그래서 우리는 두려운 것이 없다! 라고 외치다가도 점점 두려워지고, 낙심하고 소심해지고 뒤로 물러나는 사건이 생기는거에요.
그리고 내 신앙이. 믿음이 형편없다고 우리는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언제를 떠올리는 줄 아세요?
나의 믿음이 좋았다! 라고 여겨졌을 때, 내가 정말 성령 충만했다! 라는 생각이 들던 그 시점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해요.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하고 떠올리면서, 현재 내 모습과 비교하는 것이죠.
분명 지금의 믿음이 그 때보다 더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한 그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 좋았던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지금 난 은혜가 없어. 성령충만하지 않아. 왜 내가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하는 자책을 하게 되는거에요.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믿음으로 사는 삶은 과거과 나를 비교하는 삶이 아니에요.
과거에 묶인 삶이 아니라, “오늘을 믿음으로 사는 삶" 그것이 진정한 믿음의 삶이에요.
우리 삶은 시들지 않아요.
계속해서 어려움만 있고, 불확실한 미래를 걸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 오늘 피었다 지는 꽃과 같지 않고, 파도가 바위를 쳐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물안개처럼 의미없는 삶이 아니에요.
지금 나의 삶의 모든 흔적들은 결국 가장 풍성한 복음의 결실을 맺도록 만들어줄거에요.
여러분 정말 복음을 믿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세요?
그럼 왜 그것을 믿어요?
왜 복음이 당신에게 중요해요? 왜 예수님을 고백하며 살아요?
단순히 죽어서 천국을 가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스러운 그 기쁨을 갖기 위해서?
여러분 그러면 그 기쁨은 무엇이에요?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서 소망하는 그 것은 무엇이에요?
아니 내가 그것을 소망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어요?
보이지 않는, 실체가 없는 그 것을 왜 붙들고 살아가려고 그렇게 아둥바둥 애를 쓰고 있어요?
포기하면 편하잖아요.
신앙을 잠시 아주 잠시 내려놓으면 편할 수 있는데 왜 자꾸 붙잡고 있으세요?
바로바로 응답하지 않으시는데, 왜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정말로 사랑하시고, 공의가 넘치시는 분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다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고, 앞에 서서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하는 것일까요?
(쉬고)
하ㅏ박국 2장을 보면, 하ㅏ박국이 분노하고 있는 장면이 나와요.
“하나님 왜 바벨룬 군대를 사용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십니까?”
“당신이 먼저 우리를 선택해 놓고 왜 우리를 버리십니까?”
“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니까!!”
“도대체 당신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저런 이방인이 당신의 백성을 짓밟는 것이 당신의 정의입니까!!”
라고 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답답함을 외쳐요.
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라" 말씀하세요.
그가 원했던 대답이 아니에요.
우리가 원했던 대답이 아니에요.
우리가 원하는 답지금 이 현상에 대한 이유와 뜻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라!”라고 말씀하세요.
38절. 믿음으로 살라. 뒤로 물러가지 말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 이유.
증명할 수 없지만 소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여기까지 왔으면서 그 믿음과 소망을 포기하고, 내 믿음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세요.
(쉬고)
얼마나 슬픈 인생인가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선물로 주셨는데, 자격 없는 내가 그 것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그만큼 사랑하는 나를 바라보며 “더 이상 기쁘지 않아"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인가요.
(쉬고)
히브리서 저자는 어떻게 해서든 인내해야 한다. 그 끝에 다다랐으니 포기하지 말고 견디어 인내하라! 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마라톤 경주를 하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요.
마라톤 주자들이 42.195km를 뛰면서 쉬는 것을 본 적 있나요? 그들은 목표 지점을 향해 빠르던 느리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가요.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마라톤과 같아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힘들고 지치더라도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아내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보고 계셔요.
마라톤은 끝이 있는 운동이에요. 42.195km이기에 결승점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끝이 있어요.
우리의 삶에 대한 모든 일들도 그 끝이 있어요.

우리도 할 수 있다

그 끝을 소망하면서,
그 끝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나에게 끊임없이 힘을 부어주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우리는 지금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야 해요.
“나 너무 힘들어요.”
“너무 지쳐서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 솔직해져볼까요?
여러분 어떻게 지금까지 버티면서 왔어요?
죽을 것 같이 힘든 그 시기들을 어떻게 벗어났어요?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 저와 여러분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어떻게든 버텨내면서 한걸음 한걸음 걸어내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은 39절의 말씀처럼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거든요.
지금 이 자리. 이 시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러분에게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앙을 드러내지 않는 삶을 선택한다면,
내가 하나님 나라에 속해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미안하지만 우린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것에 부끄러운 감정을 가져야 해요.
이제 우린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을 나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감동시킬 것인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살아가면서 내 믿음을 숨길 것인가.
(쉬고)
당신은 어디에 속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사는 이가 당신이 틀림 없나요?
(쉬고)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선택 사항이 아니에요.
구원을 얻는 믿음은 ‘적극적'일뿐 아니라, ‘인내하는 믿음'이에요.
인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에요.
구원의 은혜를 내가 유지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뢰하는 인내의 믿음 위에"
“능력을 더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져요.
그리스도와의 일상적 관계를 통해 인내의 믿음을 더 강하게 하신다는 거에요.
(쉬고)
갈릴리 호수를 가보진 않아서 잘 그려지지 않겠지만, 갈릴리 호수 근처에는 3가지 호수가 있어요.
늘 메말라 있는 훌레 호수
모든 생물을 죽이는 높은 염도가 있는 사해
그리고 그 사이에 있고,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는 갈릴리 호수
(쉬고)
만약 성경을 수없이 읽고 설교를 들었음에도 삶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인내하고 싶지 않고 카멜레온처럼 나를 숨기고 싶다면
그 사람은 비가 와도 채워지지 않는 훌레호수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말거에요.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음에도 종교적 열심을 갖고 살아가다가 결국 메말라서 모든 것을 소진하고 마는 사해호수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말거에요.
카멜레온과 같이 상황에 따라 나의 믿음을 숨기고 드러내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래요.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않기를 바래요.
히이브리서 11장은 바로 당신을 위해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믿음으로 이루어 낼 영적 회복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강한 신앙인들이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해요.
우리도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의 일원이 될 중요한 기회에요.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갖고, 뒤로 물러서지 않는 교회의 일원이 바로 나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여러분에게 주어졌어요.
(쉬고)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을 얻는 믿음은 ‘적극적'일뿐 아니라 ‘인내하는 믿음'이에요.
그 적극적이고 인내하는 믿음을 이루어내어,
세상에 내가 믿는 그리스도를 당당히 선포하며
하나님과 나 그리고 동역자를 잇는 이번 여름수련회가 되기를 함께 기대하며 기도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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