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다윗이 블레셋 망명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사무엘상 21장에서도 다윗은 사울이 두려워 망명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울이 여러 차례 다윗을 목표 삼아 창을 던졌고 사울의 군사들은 그를 죽이려고 밤새 그의 집 앞에 매복하였다. 그럼에도 첫 번째 망명 시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이것은 본문의 여러 구절을 통해 암시되었는데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묻지 않고 블레셋으로 망명했다는 사실에서 강하게 암시된다(21:9에 대한 해설 참조). 다윗의 두 번째 망명 시도 역시 인간적 염려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첫 번째 망명 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금까지의 이야기의 흐름과 다윗의 망명을 조화시킬 수 있을까? 다윗은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두 번이나 사울 왕을 죽일 기회도 가졌으며, 사울 왕의 입으로부터 “왕이 될 것이라”는 축복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두려움 때문에 현장을 버리고 블레셋으로 망명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다윗의 망명 시도를 ‘의도적인 간첩 활동’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1절에 드러난 다윗의 속마음은 의도적인 간첩 활동과는 전혀 다르다. 갑작스런 두려움—언젠가는 자신이 사울에 손에 의해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망명의 직접적 이유라는 사실(1절)은 그때까지 다윗이 경험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믿음이 연약했음을 보여 준다. 즉 다윗도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죄인이다
엘리야처럼 다윗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결국 다윗은 자신의 가족과 6백 명의 부하들과 함께 망명을 결심한다. 그리고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피신한다.
다윗은 두 차례나 사울을 살려 주었고 사울도 그때마다 다윗의 왕 됨을 인정하고 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다윗은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하자, 즉 하나님의 역사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느끼자 절망하고 망명을 결심했다. 하지만 다윗은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의 사명을 찾았고 하나님은 다윗의 망명 생활이 자연스럽게 끝날 여건을 마련해 주셨다고 사무엘서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