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판에 새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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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 변비로 고생하는 분들의 눈물의 고백찬송
- '힘써도 못하네'(343장)
◈ 컨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찬송
-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395장)
◈ 형광등 회사의 주제찬송
-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488장)
◈ 감방에 구속된 죄수들의 불평찬송
-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410장)
애송찬송 - '보내주소서 보내주소서'(271장)
◈ 며느리들이 좋아하는 찬송은
-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시어미) 오나 겁없네'(359장)
◈ 돼지꿈 자주 꾸고 로또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찬송
-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542장)
◈ 아내들에게 사족을 못쓰는 공처가 남편들의 애환찬송
-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511장)
◈ 조깅하는 자들의 애송찬송
- <주와 같이 길가는 것>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456장)
◈ 서예가들의 주제가
-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404장)
◈ 목욕탕 주인들이 좋아하는 찬송
- '곧 씻어서 정결케 하옵소서'(215장)
◈ 도둑들이 귀 기울인 찬송
- '동방박사 세 사람 귀한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116장)
◈ 해양경비대 주제가
- '물건너 생명줄 던지어라'(258장)
◈ 학생들이 불러야 할 찬송
- '아무 것도 모르니 나를 가르치소서'(421장)
◈ 가오리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
-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355장)
◈ 산악회원들의 애송찬송
-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502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543장)
◈ 불신자들의 애송찬송
-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518장)
◈ 기복주의 신앙인들이 즐겨부르는 애송찬송
- '나 주께 왔으니 복 주시옵소서'(500장)
◈ 몽유병 환자들이 좋아하는 찬송
- '나 어느날 꿈 속을 헤매며'(84장)
◈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애송찬송
- '시험이 닥쳐와도 나 염려없겠네'(476장)
'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473장)
한국교회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한국교회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23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 조사’(23.2.16)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전국 성인 남여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결과 발표(출처 : 데일리굿뉴스(https://www.goodnews1.com))
2008년 처음 시작한 이래 올해 일곱번째, 2020년 이후 3년만 조사.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를 질문. 신뢰한다(매우+약간) 21.0%, 신뢰하지 않는다(별로+전혀) 74.0%로, 국민 5명 중 1명만이 한국교회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남.
과거 차수의 전반적인 신뢰도를 확인해보면 점점 신뢰하지 않음이 늘어남을 알 수 있음.
게다가 친근감 있는 종교, 가장 호감가는 종교를 조사해보니 기독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중에서 가장 낮게 조사된 것을 알 수 있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큰 복음의 틀만 부여잡고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함.
하지만, 도덕적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매일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윤리적 고민과 치열한 도덕적 성찰을 반드시 해야 함.
그렇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결코 신뢰를 얻을 수가 없음.
‘제57차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정기 논문 발표회’ (2011년 4월 23일, 서울신학대학교 ), 손병호 고신대 석좌 교수 기조연설 ‘교회와 산신각 : 한국 교회의 윤리적 타락 진단’
‘제57차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정기 논문 발표회’ (2011년 4월 23일, 서울신학대학교 ), 손병호 고신대 석좌 교수 기조연설 ‘교회와 산신각 : 한국 교회의 윤리적 타락 진단’
무엇이 도덕인가? 도덕이란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과연 기독교는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집단인가? 십계명은 소극적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소극적 사랑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소국적 사랑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내 몸처럼 사랑한다는 적극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위선이다. 그스도인들은 소극적 사랑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적극적 사랑을 해야 한다.
손병호 교수는 한국 교회가 기복주의 영향에서 비롯된 비윤리적 신앙 형태를 극복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윤리와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함.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도덕성을 회복되어야 기독교는 믿을 만한 종교로 인식되고, 궁극적으로 불신자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통해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임.
십계명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은 매일의 삶에서 치열한 도덕적 고민과 윤리적 성찰을 하지 않게 되었고, 교회가 세상의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된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
개요
개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론적으로나 고백적으로는, 십계명이 하나님의 뜻이 담긴 영원한 법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음.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실제 상황을 들여다보면 심지어는 교회에서조차 그 중요성을 잃어버린 지 꽤 오래됨.
교회사를 살펴보면, 십계명은 사도신경, 주기도문과 함께 중요한 교리 공부의 핵심 주제였음.
특히 개신교의 신앙 교백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1563) : 총 129 문항 중 총 26개 문항(3-4, 92-115문)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1648년) : 총 196문항 중 58문항(91-148문)
소요리 문답 : 총 107문항 중 43문항(39-81문)
십계명을 다루고 있음.
루터
십계명에 대한 주해서(1530) 서언 “모든 약속 중의 약속, 모든 신앙의 원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약속을 포괄하는 지혜의 원천이다.
대요리 문답 “십계명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성경 전체를 아는 것이다”
대소요리 문답에서 십계명을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보다 앞서 다룸
칼빈
처음에는 루터를 따름.
제네바 교리 문답(1545)에서는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 순으로 해설
예식
칼빈이 독일의 스트라스부르그에서 프랑스인들을 위하여 목회할 때(1538-41) 만든 예배 모범인 스트라스부르그 예식서(1540)에는 예배할 때 십계명을 함께 노래하도록 되어 있었음.
죄를 고백하고 사죄 선언을 한 후에 십계명 노래를 부르는 순서가 있었고, 매 계명마다 헬라어 “퀴리에 엘레이손(주여 불쌍히 여기소서)”을 후렴처럼 불렀다고 함.
- 구약의 율법은 아직도 유효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예배 중에 십계명을 늘 노래하도록 집어 넣은 것임.
그러나 예배 중에 십계명을 낭독하는 교회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임.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우는 교회는 아직도 많지만, 십계명은 교회 안에서 어떤 자리도 차지 못하고 있는 현실임.
이렇게 된 이유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현대 교회 풍토가 계율적이고 딱딱한 법령 같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 그래서 현대 크리스천에게 ‘십계명’은 더이상 매력을 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름.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십계명을 쉽게 외울 수 있는 방법 등장.
일 : 일절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 : 이상한 우상을 섬기지 말라
삼 : 삼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얼컫지 말라
사 : 사업장에 가지 말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오 : 오늘 하루도 내 부모를 공경하라
육 : 육신을(육탄 공격으로) 살인하지 말라
칠 : 칠흑 같은 마음으로 간음하지 말라
팔 : 팔로 도둑질 하지 말라
구 : 구차하게 거짓말하지 말라
십 : 십자가를 굳게 잡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이렇게라도 십계명을 암송하려는 것은 십계명에 대한 관심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임.
아쉬운 점은 성경의 원조 십계명은 점차 사라지고 엉뚱한 십계명이 등장하여 교인들의 삶을 지도하려는 점임.
예를 들면 ‘부부 십계명’, ‘사랑의 십계명’ (김대규 ‘사랑과 인생의 아피즘 999’ 중에서)
부부 십계명
1. 두 사람이 동시에 화를 내지 않는다.
2. 불이 나지 않고서는 고함을 치지 않는다.
3. 하루에 한 번 이상 칭찬하고 격려한다.
4. 다른 부부와 비교하지 않는다.
5. 아픈 곳을 건드리지 않는다.
6. 분노를 품고 침상에 들지 않는다.
7. 처음 사랑을 잊지 않는다.
8.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한다.
9. 상대를 고치겠다는 생각을 포기한다.
10. 둘만의 시간을 자주 갖는다.
사랑의 십계명
1. 계산하지 말 것
2. 후회하지 말 것
3. 되돌려 받으려 하지 말 것
4. 조건을 달지 말 것
5. 다짐하지 말 것
6. 기대하지 말 것
7. 의심하지 말 것
8. 비교하지 말 것
9. 확인하지 말 것
10. 운명에 맡길 것
이러한 소위 ‘짝퉁’ 십계명들은 나름대로의 경험에서 나온 삶의 지혜를 담고 있으나, ‘십계명’이란 개념을 피상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음.
일반인은 그렇다고 할 수 있으나, 교인들조차도 십계명에 대한 반감을 가진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일 것임.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은 잘 외우지만, 십계명 전문을 외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 교회 교육과 예배에서 십계명을 등한시 했다는 사실을 반증을 피할 수 없음.
십계명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고 우리를 억합하는 차가운 어감의 ‘계율’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유를 증진하는 ‘자유의 헌장’으로 주어졌다는 사실 부각.
십계명의 주 대상은 5계명을 보고 자녀들이 지켜야할 계명으로 볼 수 있으나, 어떻게 보면 30-50대 장년들 대상임.
제10계명만해도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만 봐도 최소한 아내와 집이 있는 30-50대 가장이 일차적 대상이라는 것이며, 나이가 들어 경제적 능력이 없는 60-80대 부모들을 공경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주장을 하는 크뤼제만 이라는 학자는 주장함.
30-50대 자녀들에게 나이 든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야, 나중에 10-20대 자녀들이 본을 받아 부모를 공경하게 되고, 결국, 본인들이 노년에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임.
결국 십계명은 기존 질서가 젊은이들에게 강요하는 ‘억압적 계명’이 아닌 ‘자유의 규정’임을 알 수 있음.
본문2
본문2
십계명은 열가지 말씀이라고 볼 수 있음.
그 동안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두 돌판에 기록해 주신 말씀은 십계명이라고 불러 왔음.
그러나, ‘계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현대 사회에서 호감을 주기에는 낮음.
실제로 십계명은 ‘~하라’는 말보다, ‘~하지 말라’는 부정적 명령이 더 많음.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심.
또한, 출애굽기 24:12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출애굽기 20:6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 마태복음 19:17-18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신명기 4:13 “13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 신명기 10:4 “4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여기에서 사용된 계명이라는 단어는 모두 말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음. 그러므로 십계명을 열 가지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 좋음.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수여하는 자기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음. 출애굽기 20:2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본인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비단 단순한 열가지 말씀을 수여하는 분의 신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과 연결되면서, 하나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한지, 하나님께서 핵심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임.
이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 내신 출애굽의 역사와 결합되면서 ‘나는 구원자’라는 것임을 말함.
첫번째 말씀 : 너는 나 외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첫번째 말씀 : 너는 나 외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교회를 다니는, 아니 지금 여기 계시는 분 중에 첫 계명인 이 계명을 모르시는 분은 없음. 그리고 우상 숭배가 가장 무서운 죄악임을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임.
그러나, 겉으로 우상을 섬기지 않으나, 고대인들보다 우상 숭배의 유혹이 더 많이 노출 되어 있음.
바알과 아세라 같은 이스라엘의 우상이나, 제우스와 비너스와 같은 그리스 우상들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우상들은 속속 생겨나고 있음.
출애굽기 20:3 (NKRV)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나 외에는’ 라는 말은 내 얼굴 앞에라고 해석할 수 있고, 이는, ‘너는 내 면전에서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해석할 수 있음.
첫번째 말씀의 우상 숭배의 정의는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지 것’이라고 정의 할 수 있음.
이는 첫째,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와와의 ‘나와 너’ 관계가 깨어지기 때문임.
출애굽기 22:20 “20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 , 출애굽기 23:13 “13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 , 출애굽기 34:14 “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 신명기 13:2-3 “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 시편 81:9 “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오직 여호와만 믿고 오직 여호와께만 충성하고 헌신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임.
둘째, 우상 숭배를 하면 진정한 ‘자유를 상실’하기 때문임
인간은 누구나 풍요와 건강과 안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신들’을 만듬.
그런데 이렇게 만든 인간들의 신들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되려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있음.
돈을 예를 들어보면, 경제적 가치 교환 수단임. 이 돈을 통하여 풍요와 건강과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음. 그래서 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돈이 없거나, 사라질 것 같으면 두려움에 휩싸이게 됨.
결국 돈을 잃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돈을 좋아하고, 돈을 사랑하고, 돈을 쌓아놓고, 결국 돈을 섬기게 됨.
그러다보니 ‘돈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돈 때문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해치고, ‘돈 때문에’ 대기업에서는 형제들이 서로 고소, 고발이 난무하며, ‘돈 때문에’ 사람을 팔아 넘기는 인신매매까지 일어나며, ‘돈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기도 함.
또한 이 ‘돈 때문에’ 사회나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불의 앞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기도하고, ‘돈 때문에’ 불의보고도 못 본 체하며, ‘돈 때문에’ 보고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게 되는 ‘노예’가 됨.
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4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하나님께서 주신 첫번째 말씀인 1계명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이 여호와로 인하여 자유를 얻게 되었는데 이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려면, 하나님 면전에서 우상을 섬겨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맛보게 된 자유를 누리고 살려면 결코 피조물을 하나님과 나란히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십계명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임.
이것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 한분만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면 됨.
두번째 말씀 : 너를 위해 어떤 형상으로든 우상을 만들지 말라
두번째 말씀 : 너를 위해 어떤 형상으로든 우상을 만들지 말라
제2의 말씀은 ‘너를 위해 새긴 우상과 형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로 요약할 수 있음.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들은 인간이나 동물 형태를 빚어 놓고 신으로 섬기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그리스도 인들은 더 그러함.
그래서 제2계명이 현실과 동떨어지고,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움.
그러나 우리 현대인의 삶 주변에 우상과 형상들이 가득 차 있음.
트레빈 왁스라는 사람은 자신의 책에서 현대인들에겐느 ‘나 자신, 성공, 돈, 레저, 성, 권력’ 이렇게 여섯 가지 우상이 있다고 지적함.
아이돌이라는 말은 영어로 우상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음.
이는 어원을 따라가보면, 결국 ‘눈에 보이는 어떤 이미지나, 형상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음.
과거 이미지나, 형상으로 만들어진 ‘아이돌’은 현대에 들어서 이미와 형상이 ‘이미지가 곧 진리’라고 불리우는 시대가 됨.
그래서 수려한 외모와, 탄탄한 몸매를 바탕으로 현란한 댄스로 포장한 이미지 가수들을 ‘아이들’이라고 불리움.
단지 소위 ‘아이돌’을 좋아하는 10대 20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현대인들은 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됨.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원본 없이 우리가 만든 이미지의 하나님’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함.
두 번째 계명은 ‘너를 위해 우상과 형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핵심 내용을 품고 있음.
우상은 '허수아비로 만든 형상’을, 형상은 ‘외관’이나 ‘외적 형태’를 말하는 것임.
결론적으로 제2말씀은 ‘너는 눈에 보이는 어떤 외적 형태로든지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로 번역할 수 있음.
그렇다면 누구의 우상을 만들지 마라고 하시는건가? 그것은 ‘여호와의 우상’과, ‘다른 신들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만들지 마라는 둘을 포함한 것임.
15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6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17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18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19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20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풀무불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이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인의 기능을 하고 있으므로, 어떠한 형상을 만들면 안됨.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세번째 말씀 :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세번째 말씀 :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이 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러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넘어가 쉽게 넘어가기도 함.
주기도문에 보면 마태복음 6:9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첫번째 청원은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청원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하다는 단서를 의미함.
그리고 출애굽기 20:7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라며 무서운 경고를 보내고 있음.
유대인들은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 위해 아예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방침을 정하기 도함.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고유명사인 ‘야훼’인데, 이미 고대 이스라엘에서부터 히브리 서역ㅇ에 ‘야훼/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나의 주님이라는 말인 ‘아도나이’로 대신하여 읽기도 하고, 아도나이에 이름이라는 쉠이라는 글자를 붙여 ‘아도쉠’이라고 부르기도 함.
심지여 영어식 표현인 ‘GOD’라는 단어에 영어 스페링 ‘O’를 빼고 ‘G-D’로 써서 아예 읽을 수 없게 표기하기도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학문적인 글을 쓸때 ‘Yahweh’라고 모음을 넣지 않고 모음 없이 그냥 ‘YHWH’라고 쓰기도 함.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불러서 안된다는 생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임.
또한, ‘저주하거나 욕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안된다고 하기도 함.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넣어 하나님의 능력과 힘, 속성이 함축되어 있어 축복이나 저주를 하면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으로 그 축복과 저주가 실제로 실현된다고 생각하기도 함.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오 거짓 맹세하지 말라’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함. 그러나 이런 해석은 지나친 축소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음.
히브리어로 기록된 제3계명을 해석해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명령이라 볼 수 있음.
여호와의 이름을 공허하게, 거짓으로, 남에게 사기 치기 위해, 그리고 남을 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을 금지하는 계명으로,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거나, 남용하거나, 오용하거나, 악용하거나, 사적 사용을 금하는 것이 제 3계명임.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직접 본인의 이름을 언급하신 것으로 자기 백성이 자신의 임재 안으로 들어와 의지하도록 허락하셨음.
시편 9:10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심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을 부르고, 자신과 교제하게 하시며, 자신을 찬양하게 하시고,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함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선물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음.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함.
네번째 말씀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네번째 말씀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은 안식일에 대한 규정을 깊이 들어다보지 않으면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는 커녕 이해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음.
2003년 직장사역연구소에서 263명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주일성수 문제에 대해 질문.
“성도가 주일에 출근하거나 매장에서 영업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도들의 대답은 예배를 우선시하여 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경우가 38%였고 출근하고 매장 문을 열어도 좋다고 응답한 사람이 44%, 예배를 드리고 출근하거나, 퇴근 후 예배를 드리는 등 지혜로운 절충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응답이 19%였다.
“취업을 위해 주일에 치러지는 시험에 응시하거나 주일성수를 제대로 못하는 직장에 취업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도 각각 불가능 33%, 가능 44%, 절충 23%로 대동소이했다.
“주일에 야유회, 경조사, 가족여행 등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35%, 31%, 33%로 직업적인 고유 업무와 관련한 위의 두 질문들과 비교할 때 예배를 중시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비율은 비슷했으나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10% 이상 낮아져 절충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론 조사 결과에 나타나듯 한국 교회 성도들은 주일성수에 대해 예배를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전통적인 주일성수파’와 주일을 융통성 있게 보내야 한다는 ‘적극적인 대처파’, 그리고 ‘절충적인 방식의 주일성수 방안을 찾는 중도파’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음.
물론 교회에서 공적으로 예배를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전통적인 주일 성수 가르침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며, 전통적인 주일 성수를 간증하는 분이 더 많음.
어렸을 때 주일 성수 관련 설교를 듣고 아버지께 이런 말을 한적이 있음. 주일은 안식일이니 쉬는 날이라 주일에는 공부안하고 쉬겠다고. 그러니 아버지께서 그럼 목사님 설교를 잘 들었으니 이제 뭘 할꺼냐는 질문에 그냥 친구랑 놀겠다는 대답을 하니 넌 평소에도 노니 차라리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함.
주일에 여기저기 섬기며 교회에서 하루종일 거룩하게 보내셨던 분들이 들으시면 기가 찰 노릇일 것임. 아마도 친구와 놀아도 놀만한 어린 나이니 놀아도 되겠다고 생각하시면서도 한편으로 경쟁 속에서 자칫하면 뒤떨어질까봐 공부하라고 말씀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아버지도 이런 질문을 받은 여러분들도 주일 성수에 관해서 혼란을 겪으며 지내오셨을 것임.
오늘날 주일에 대한 태도의 혼란에는 율법주의적 태도로 인한 것인데, 청교도적 안식일 사상을 강조하며, 율법주의적인 주일성수 개념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여, 주일성수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임.
“주일날 돈 쓰면 안된다.” “주일에는 버스도 타면 안된다.” “새옷은 교회에 제일 먼저 입고가라” 등 왜그리 안된다고 가르쳤던 것이 많은지.
생각해보면 주일만이 ‘주의 날’이 아니라, 모든 날이 ‘주의 날’인데 실제로 평일을 주일처럼, 주일을 평일과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게 됨.
구약에는 안식일을 강조한 부분이 유달리 많음. 계명 자체로서는 첫 번째, 두 번째 계명을 제외하면 그 어떤 계명보다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음.
그런데 안식일 규정 중 너무 지나칠 정도의 느낌이 들기도 하는 대목이 한 두개가 있음.
출애굽기 35:3 “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 출애굽기 31:15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게다가 영원한 언약으로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기도 함. 출애굽기 31:16 “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선지서에도 안식을 중요시 여기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음.
예레미야 17:27 “27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되게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더럽혔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 갔다고 함.
에스겔 20:21 “21 그러나 그들의 자손이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지켜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따르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힌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내 진노를 이루리라 하였으나”
심지어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더럽힘을 받았다고 선언 함.
에스겔 22:26 “26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제4계명의 핵심은 거룩하게 지키라는데 있음. 이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님. 오히려 안식일을 어떻게 해야 거룩하게 할 수 있는지를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함.
안식일이 거룩한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 날을 ‘다른 날과 구별’하셨기 때문임.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엿새 동안은 일을 하셨으나, 일곱째 날에는 쉬셨음. 이는 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을 모두 마치신 후에 쉬시면서 구별하셨기에 거룩한 날임.
이를 통해 ‘여호와의 안식일’은 ‘평소에 하던 일을 멈추고 여호와께만 드려진 날’이라고 보아야 함.
주일을 7일에 한번씩 돌아오고, 그 안에서 하는 일들의 반복적인 일로 안식일/주일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잊고 사는 일이 아닌지 반성해야 함.
주일 성수와 관련해 양극단인 지나친 율법주의적 태도나 자신의 쾌락과 안일을 추구하는 방종의 태도 모두 지양해야 함.
안식일/주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자발적 순종으로 예배하는 날로 만들어야 함. 엄숙함을 버리고, 기쁨의 날로 삼아야 할 것임.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고 안식하는 날임을 기억해야 함.
결론
결론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부터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약속의 땅에 도착하기전에 하나님의 열가지 계명이자 말씀인 십계명을 주심.
주전 1400년 경에 노예 출신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내 산에서 주신 십계명이 달나라에 사람을 쏘아 보내는 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셨는지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소원함.
오늘 살펴본 말씀을 통해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는 자유, 우상 숭배의 피할 수 없는 죄로부터 해방되는 자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르지 않게 되는 자유, 끊임없는 탐욕으로부터 해방되어 안식을 누리는 자유를 알아보았음.
그 자유 속에 관통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함.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은 자들에게 십계명, 하나님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리에게 주신 것임.
“~하지 말라” “~하라”는 계명이 너무 우리를 억압하는 차가운 어감의 계율이 아니라 진정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느껴지길 소원함.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변화시켜가는 과정임.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17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과 같이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그 수 많은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자기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복을 주신 인간이 비록 선악과를 따먹어 하나님의 벌을내리시지만, 인간에게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자, 고통스러운 처벌이었던 십자가에 하나님이시자,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고, 확증하여 주신 것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늘의 소망을 품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을 실천하며,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건히 서길 소원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