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남자다움(성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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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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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예수님같은 남자가 되자
헌금 :
예배를 위하여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특별히 결혼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말씀 들을 때에 주의 성령께서 말씀을 이해하는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봉헌을 위하여
이 시간 우리의 귀한 물질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우리의 감사헌금과 십일조를 주님께 봉헌합니다. 이 물질을 받으시고 주의 일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찬양 :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본문 : 창 1:26-28 왕(공급) / 창 1:29-30 군사(보호자) / 창 2:16-17 멘토(교사) / 창 2:1-25 친구(연합)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서론
지난 주에 결혼 해야하는가? 결혼 안 하면 안 되나? 이런 부분에 대해 말했고,
이번주에, 그렇다면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고, 하나님이 좋다고 한 것이기에 결혼이 좋은 것이라면은,
그렇다면,
결혼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
우리가 만날 때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남자는 어떤 여자를 매력적인 여자라고 보아야 하고, 여자는 어떤 남자를 매력적인 남자라고 보아야 하는가?
잘 생기고, 키 크고, 이런 거는 세상이 말하는 것인데,
잘 생기고, 키 크고, 너무 남자 입장에서 불공평한데,
여자도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성적인 조건들, 외적인 조건들만 따지다 보니까, 도대체가 이런 세상이 어디있나 싶기도 한데.
아무튼,
성별을 규정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성별을 생물학적 성별을 Sex 라고 이야기하는데, 사회학적 성별을 Gender 라고 하는 것인데,
이제는 Sex가 아니라, Gender를 추종하는 시대라,
너는 남자다워야지,
너는 여자다워야지...
물론 유교, 가부장 사회에서 남자는 너무 권위적이고, 여성은 매우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은 측면에 따라,
우리가
너는 남자다워야지,
너는 여자다워야지.
이런 말이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러나 성경은, Gender보다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성별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면, 어떤 남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나?
어떤 남자를 하나님이 너 참 남자답다, 너 참 괜찮은 남자다.
라고 말씀하시나?
여자도 마찬가지.
이 부분에 대해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나 해서 준비했습니다.
세상은 젠더 사상이 강해서, 성별대로 규정하는 것을 혐오합니다.
여자를 규정하고, 남자를 규정하고,
이런 것은 죄다.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여자도 남자처럼 살고, 남자도 여자처럼 살고,
남자가 여자가 되기도 하고, 반대가 되기도 하고,
젠더 사상이 강해서,
성별대로 규정하는 것은 없다.
사회화된 것이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내 성별 정체성을 규정하면 된다.
그게 젠더인데,
우리가 성별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바꾸어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 남자는 이래도 돼.
남자는 부드러워야 돼.
남자도 여자처럼 행동해야 돼
이렇게 규정해버리면, 남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여자처럼 행동하는 남자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은 아닙니다.
성경은 규정된 성별 정체성이 있고요.
젠더 사상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젠더 사상은 반성경이고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내 성별을 규정할 수 없고, 받은대로 순종하여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깨어지지 않으면, 성경적 결혼, 성경적 데이트, 성경적 가정을 이루기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깨지면 더 이상 성경적 결혼관이 아니라, 젠더 사상에 오염된 결혼관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제
성경이 말하는 남자다움, 여자 다움을 보려고 하는데,
*하나님 말씀
먼저 하나님 말씀 보시겠습니다.
27절에 성별이 나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하나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성별 정체성,
그러니까, 성별을 다르게
남자와 여자, 이 두 성별로 창조하셨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남자를 만드셨고,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셨으니,
하나님이 가장 남자를 잘 규정하시고, 하나님이 여자를 가장 잘 규정하시죠.
이게 믿어져야, 성경적 결혼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27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두 성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십니다.
여기서 남자는 히브리어로 ‘자코르’라고 읽고,
여자는 ‘네카바’라고 읽는데,
남자는 자코르, 여자는 네카바
이 두 단어가 의미하는 부분에서,
남성성의 의미, 여성성의 의미에 대해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자코르는, ‘흔적을 남기다, 영향을 미치다’ 라는 의미입니다.
또, ‘기억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미치고, 기억하고, 이런 의미가 자코르인데,
이게 남자라는 단어입니다.
남자 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 남자는 흔적을 남기는 구나.
아 남자는 영향을 미치는 구나.
아 남자는 기억하는구나.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남자는 누구냐?
하나님이 만든 남자다움은 무엇이냐?
그것은 누군가에게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끼치고,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고대근동에서 ‘자코르’라는 단어는,
왕의 비서실장을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니까, 왕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비서실상인 자코르가 왕에게 중요한 결정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죠.
그게 자코르입니다.
제가 인용하는 책이 있는데,
남자들의 내면세계를 알고 싶은 여자들만 위하여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션티 펠드한이라는 여자가 썼는데,
깜짝 놀란게, 자기는 모르고 있을 줄 몰랐는데, 1200명의 남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면서,
자기가 정말 모르고 있구나.
남자에 대해 정말 모르는구나.
왜냐?
남자는 정말 진심으로 상처를 잘 받는다는 것인데,
표현을 안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정말 모르는 구나.
여자가 바라는 것은 뭐에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랑받는다는 느낌,
나는 누군가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 그 느낌을 항상 매일 쉬지 않고 받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 아닌가요?
그와 마찬가지로,
남자가 정말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코르,
그러니까, 영향을 끼치고 있구나.
내가 나의 아내, 나의 자녀, 나의 가족에게 영향력 있는 존재이구나.
라는 존경심, 존경받음, 존경받는 느낌을 원하는 것이 남자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책을 쓴 션티 펠드한은, 아 정말 모르는구나. 몰랐구나.
하면서 이 책을 정리해서 쓰게 된 것인데,
질문을 했답니다.
대학교에서 질문을 했는데, 여러분은 외로운 상황과 무능해서 무시당하는 상황, 이 두 가지가 있다면, 어떤 상황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남자들에게만 이 질문을 했는데,
여자들이라면, 외롭고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보다는, 차라리 무능해서 무시당하는 상황, 이것도 별로 안 좋지만, 그래도 두 번째를 선택할 것인데,
남자들은, 4분의 3 이상이, 무능해서 무시당하는 상황을 겪을 바에는 차라리, 외롭고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을 겪겠다고 손을 들었다는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외롭고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과 무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상황,
자, 물어볼게요.
좋지 않은 두 가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는데, 둘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습니다.
첫째, 외롭고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을 선택하실 분??
아니면 무능하기 때문에 무시당하는 상황을 선택하실 분??
남자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보다도,
영향을 끼치고 싶은,
자코르
흔적을 남기고 싶은 그 욕구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 때 기분이 나쁘고, 말을 안 하게 되고, 화가 나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죠.
이게 남자라는 것입니다.
영향을 끼치는 존경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
그게 나쁜 것이 아니라,
‘자코르’
남자 라는 단어 속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정리하면,
남자다움이란?
누군가에게 흔적을 남기고, 영향력을 끼치는 것, 이게 남자다움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을 지나 창세기, 2장으로 향하면, 특이한 명령이 있는데,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는 명령인데,
하나님의 최초의 금지명령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명령을 남자는 잘 기억을 해야 하는데,
히브리어에서 기억하다 라는 단어가,
‘자카르’,
그러니까,
남자가 히브리어로 ‘자코르’인데,
기억하다 라는 단어가 ‘자카르’니까,
자음이 같고,
어근이 간다는 것인데,
남자는, 잘 기억하고, 잘 가르쳐야 하는 존재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가 잘 기억했나요?
잘 가르쳤나요?
창세기, 3장에 여자가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 먹었잖아요.
잘 기억하고, 잘 가르치는 사명이 남자에게 있는 것인데,
그것을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영향을 끼치는 존재,
흔적을 남기는 존재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잘 가르쳐서,
여자를 잘 지키고, 보호하고, 도와주어야 했던 것이죠.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실패한 것이죠.
그래서 창세기, 3장에서 타락 사건이 일어난 것이죠.
남자가 남자다워야 하는데,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말씀대로 여자를 가르치고, 보호해주지 못하고, 그러니까, 세상이 타락해버린 것이죠.
그래서 남자는 무엇이냐?
남자는, ‘자코르’
잘 기억해서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끼치는 존재,
그래서 존경을 갈망하고, 존경 받기를 희망하는 존재,
그게 남자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영향을 끼치고 싶어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리고 존경받고 싶은 측면이 강해요.
여자가 무조건적으로 사랑받는 느낌을 받고 싶듯이,
남자 역시,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존경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못 받으니까,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남자가 능력이 있고, 힘이 있고, 그럴 땐 존경도 받는데, 그렇지 못하면, 남자가 존경받지 못하고, 무능하다가 무시당하고, 그러니까, 결혼 관계가 틀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남자든지 그럴텐데,
잔소리가 심하면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주고싶지 않은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죠.
이게 남자가, 존경받고 싶은 그런 욕구가 강해서 그런 것이죠.
*그래서 남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르칠 만한 자질을 갖추어야 하고,
가르칠 만한 성격과 성품도 갖출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도 잘 알아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연약한 부분도 있지만,
남자로서,
남자답게 준비되도록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뜻입니다.
*스튜 웨버가 쓴, 남자의 마음을 받쳐주는 네 기둥이라는 책에는,
남자는
책임을 지는 자이며,
자연의 힘에 맞서는 자이며,
거친 세상 속에서 자기의 작은 문명을 지켜내는 자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왕으로서
필요한 것을 잘 공급하는 사람이 되고,
군사로서 여성을 보호하고,
지혜로운 멘토로서 잘 가르치고,
충실한 친구로서 연합을 이루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그런데 남자가
종으로서 섬기는 왕이 아니면,
다른 사람을 때리고 공격하는 폭군이 되고,
부드러운 군사가 되지 않으면, 상대방을 해치는 야수가 된다.
지혜가 없는 멘토가 되면, 상대방에게 잘난 척만 하는 사람이 되고,
충성심이 없는 친구가 되면, 서먹서먹한 관계, 잘못하면 배신자가 되기 쉽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자는, 왕이지만, 종으로서 섬기는 왕이 되어야 하고,
군사지만, 부드러움을 갖춘 군사가 되어야 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하지만, 겸손하고 지혜로운 멘토가 되어야 하고,
친구로서 충성심이 가득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남자가 남자다운 남자라고 성경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봐도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를 봐도 그러하고,
베드로나, 사도 바울을 봐도 그러하다는 것이죠.
성경이 말하는 남자는,
자코르, 영향을 끼치는 존재인데,
왕으로서,
군사로서,
멘토로서,
친구로서,
선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남자가 좋은 남자이고, 남자다운 남자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남자는 존경받기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물론, 존경할 것이 없을 때도 그렇게 갈망합니다.
여자들이,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남자도 무조건적으로 존경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욕구를 잘 알지 못하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여러가지 이견과 갈등이 생기게 되고,
서먹서먹하고, 어려워지게 된다는 것이죠.
남자는,
히브리어로 ‘자코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새겨서,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잘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잘 공급하고,
하나님처럼, 잘 보호하고,
하나님처럼, 잘 가르치고,
하나님처럼, 성실하게 늘 함께 연합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을 생각하며, 같이 찬양하고 기도합시다.
남자들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남자들도,
자기 스스로, 왕, 군사, 멘토, 친구가 되기 쉽지 않습니다.
은혜가 있어야 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가 있어야,
그 은혜 붙잡고,
남자다운 남자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간절히 바라면서, 찬양합시다.
*기도합시다.
들은 말씀을 가지고
성경적 성 정체성을 가지도록 기도합시다. 특별히 남자들은, ‘자코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그 말씀에 근거해서 주변에 영향력을 끼치는 존경받는 인물들이 다 되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처럼 잘 공급하고, 잘 보호하고, 잘 가르치고, 잘 연합하는 남자다운 남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 자매들은, 이런 남자들의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를 잘 이해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여자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하듯이, 남자는 무조건적인 존경을 갈망합니다. 이런 남자의 특성을 잘 알고, 남자를 잘 섬기고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교회와 지체들을 위해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저와 청년부 리더 순장들을 붙들어 달라고. 교회 안에 병약한 지체들을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달라고. 여름수련회 잘 준비되도록. 우리 청년들의 길을 예비하시고 선한 길을 열어달라고.
*고마우신 하나님, 말씀대로 준비되고 성장.성숙하는 저와 온 청년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 안에 병약한 지체들을 치료하시고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부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남자와 여자
사람은 성적 존재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되라.
이쉬와 이샤 - 사람은 관계적 존재다.
자카르와 네케바
네케바 : 열려 있다.
열려 있어 자기에게로 오는 사람을 받아준다.
그녀는 자신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따뜻하고 즐겁게 에워싼다.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초대하고,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들여 감싸 안는다.
네케바가 말하는 여성다운 여자는 열고 받아들이되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고 그분의 목적을 진척시키는 것만 가려서 받아들인다.
텔루스 : 여자의 젖가슴, 젖꼭지
양육 능력을 갖춘 무엇을 암시한다.
즉 타인에게 양분을 공급하여 생명을 유지시키는 능력이다.
육체적 여성성의 핵심은 주고받는 능력에 있다. 여자의 몸은 열려 있어 밖에서 들어갈 수 있고, 생식을 통해 생명을 낳을 수 있으며, 젖가슴으로 양분을 공급하여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다.
관계적 여성성은 특정한 관계방식이다. 이 관계방식은 타인을 생명력 있는 연합으로 초대함과 동시에 타인 안에 생명력 있는 관계를 양육한다.
남편은 견고하고 강인하고 자상하게 아내를 좋은 쪽으로 이끎으로써 "더 연약한" 아내의 필요에 복종한다(더 연약하다는 표현은 베드로전서 3:7에 나온다). 남자의 복종의 핵심은 사랑에서 비롯된 권위다. 반면에 여자는 남편의 리더십에 따뜻하게 따름으로써 남편에게 복종한다. 여자의 복종은 사랑에서 비롯된 순종을 뜻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에제르 : ‘돕는 자’ 구약 전체에서 하나님을 지칭하여 쓰였다.
여자들은 많은 부분에서 강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남자들보다 더 강하다.
자카르 : ‘흔적을 남기다, 영향을 미치다’ 라는 뜻이다.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 이 단어는 왕의 비서관을 가리킬 때 쓰였다. 점차 자카르는 중요한 일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아르센 : ‘들어올리다, 짐을 지다’ 라는 뜻이다.
남자는 중요한 것을 기억하고 무질서한 상황 속으로 힘 있게 들어가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 낼 때 하나님을 반사한다.
중요한 일을 기억하고, 힘 있게 움직여 그 일을 해낼 때 자부심을 느낀다.
아담은 중요한 일을 기억하고 움직여 그 일을 이루어야 했다. 창세기 이야기에 분명히 암시되어 있듯이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와에게 전해 주어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여자(女子, woman, female) 남자의 상대 개념으로서,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인류인 아담이 그 아내 하와에게 붙인 명칭이다(창 2:23). 여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로는 ① ‘잇솨’(אִשָּׁה) – ‘부드럽고 섬세하다’는 속뜻을 지닌 말로, ‘(남자에 대한) 여자’(창 2:22–23), ‘(남편에 대한) 아내’(창 2:24–25). ② ‘네케바’(נְקֵבָה) – 성(性)의 구분으로서 인간의 ‘여성’(female, 레 15:33), 동물의 ‘암컷’(창 6:19). ③ ‘나쉼’(נָשִׁים) – ‘잇솨’의 복수형으로 주로 ‘부녀들’을 가리킨다(창 14:16). 한편, 헬라어로는 ④ ‘귀네’(γυνή) –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부인’(마 11:11), ‘아내’(마 1:20). ⑤ ‘데레이아’(θήλεια) – 70인역에서 히브리어 ‘네케바’를 번역한 말로 ‘여성’(롬 1:26–27)을 지칭한다. ⑥ ‘귀나이카리온’(γυναικάριον) – 기본 의미는 ‘작은 여자’이며 비난의 뜻으로 쓰여 ‘옹졸하고 어리석은 여자’(딤후 3:6)를 가리킨다.
이쉬 :
주요 질문의 흐름들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가?
왕적 기질
다스리고, 지키고, 정복하는 기질
나쁜 것이 아니다.
존경받고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다.
무조건적 존경 (남자)
무조건적 사랑 (여자)
비전과 인격을 가진 남자 :왕
힘과 능력을 가진 남자 : 군사
믿음과 지혜를 가진 남자 : 멘토
가슴과 사랑을 가진 남자 : 친구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사람을 정의할 수 있나?
현대는 없다고 말한다.
내가 나를 규정한다.
내가 남자로 태어나도 여자라고 규정하면 그것이 나이다.
내가 나를 규정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규정한다.
하나님이 남자다움을 규정한다.
하나님이 여자다움을 규정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남자다움, 여자다움은 무엇인가?
오늘부터는 남자다움을 살펴보겠다.
남자다움은, 크게 네 가지다.
왕, 군사, 멘토, 친구이다.
네 가지를 4주에 걸쳐 살펴본다.
이런 남자가 좋은 남자다.
세상이 말하는 남자다움은 그렇지 않다.
어떤 남자를 선호하는가?
여러가지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들 삽입하기
그것이 남자다움이라면, 하나님은 그것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자다움이 아니기에, 어떤 사람은 있고, 어떤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남자다움은 하나님이 다 주셨다.
그것이 네 가지다.
자코르 / 아르센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
여자의 핵심 공포 - 응답 없는 초대
남자의 핵심 공포 - 영향력 없는 존재
관찰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연구
사람 -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을 닮았다.
남자는 하나님의 어떤 부분을 닮았는가?
반대로, 여자는?
이것을 찾는 것이다.
남자다움 4가지
왕 - 아담 / 다윗
왕 사람 및/또는 영토를 다스리는 권위주의적인 남성 통치자.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주 은유적으로 창조의 왕으로 묘사된다.
성경의 왕권 개념은 고유한 측면이 있지만 고대 근동의 패턴을 반영한다. 이스라엘 왕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만 야훼는 이스라엘과 우주의 궁극적인 왕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권의 모범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새로운 번영의 시대로 이끌어 줄 새롭고 더 위대한 다윗이라고 기대했다.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왕국의 취임식에서 이러한 기대들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이스라엘 왕권은 고대 근동에서 볼 수있는 왕권의 형태와 공통된 특징을 공유했다. 고대인들은 왕을 신의 대표하는 자이자 신의 뜻의 집행자로 보았다.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왕이 야훼의 봉신으로서 정직과 의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는 이스라엘 왕들의 활동은 이상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왕과 백성의 불순종으로 야훼는 언약의 저주를 집행하고 당신의 백성을 이스라엘 땅에서 쫓아내셨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새로운 이상적인 왕권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구약
구약의 이스라엘 왕권에 대한 묘사는 이상적인 모습에서 비난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처럼 왕을 원할 것이라고 말한다(신 17:14). 그러나 이 왕은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택하신 자이어야 한다(신 17:15). 그는 또한 자신의 위대함을 구해서는 안되며 율법을 배우는 자이어야 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신 17:16-20). 고대 근동의 왕들처럼, 이스라엘 왕은 군사 및 종교의 지도자였다. 왕과 백성은 야훼의 규범을 지키지 못하면 불순종한 결과로 그들의 땅에서 추방당했다(신 28:15-68).
이스라엘 왕권은 왕과 야훼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고대 근동의 왕권과 다르다. 이스라엘 밖의 왕들은 보통 자신들이 대표하는 하나의 신을 가졌어도 다른 신들은 그들의 왕국에서 숭배를 받았다.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은 야훼의 봉신으로서 그들의 일신론적 신념을 집행해야했다(예, 고전 17:14; 28:5; 29:23; 고후 9:8).
사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은 왕의 부재 탓으로 돌린다. 사사기(삿 17 : 6; 18 : 1; 19 : 1; 21:25)는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 없을 때 백성들은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고 강조한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이 등장한다. 이는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 (“내 아버지는 왕이시다”)으로, 세겜을 다스렸다. 하나님이나 종교 제도가 없는(삿 9:1–57) 이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임명했다. 아비멜렉은 데베스도시를 장악하면서 살해 당하여 통치 기간이 짧았다.
신약
신약의 왕권은 예수의 메시아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를 유대인(참고, 마 2:2; 21:5; 요 1:49; 1:13–15; 행 17:7)의 새로운 왕이며 다윗의 후손으로 묘사한다(마 1:6).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큰 소리로 그를 왕이라고 비아냥거렸다(마 27:11, 37, 42; 막 15:2, 9, 12, 18, 26, 32; 눅 23:3, 37–38; 요 18:33, 37, 39; 19:2–3, 12–21).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왕국을 기대했지만(요 6:15), 예수의 왕국은 영적인 것이었다. 그는 영원한 왕(딤전 1:17)이요 왕들의 왕(딤전 6:15; 계 17:14; 19:16). 예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시작했다. 그는 또한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를 섬김으로 이스라엘 왕의 이상을 성취했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왕들이 시행한 법령인 희년의 선포에 의해 입증된다(눅 4:18–20). 예수는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시고 재림하실 때 자신의 왕국을 아버지께 넘겨주실 것이다(고전 15:20–28).
어원
히브리어 명사 מֶלֶךְ(멜레크)는 이 경우 토지 또는 사람을 지배하거나 소유한 사람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또한 봉신과 같이 왕에게 종속될 수있는 다른 통치 관료를 지정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이 단어는 대부분의 셈족 언어에 등장하며 동일한 일반적인 의미를 지닌다. 동의어에는 "지도자"(נָגִיד, 나기드), "통치자"(רָזַן, 라잔) 및 "사령관" (שַׂר, 사르)이 있다.
그리스어로 이 명사(βασιλεύς, 바실레우스)는 통치자 또는 권위를 지닌 사람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총독이나 영주(예, 마 2:1의 헤롯)와 같은 통치 관료를 지칭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황제를 나타내는데 가끔 사용된다. 또한 그이 단어는 신약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에게도 적용된다.
출 15:18, 민 23:21, 삿 8:23, 삼상 8:7, 10:19, 12:12
시편 47편, 93편, 96-99편을 야훼의 왕권을 기념하는 즉위 시편으로 규정했습니다.
즉위 시편은 야훼께서 왕좌에 오르시고 신의회, 피조물, 이스라엘에 대한 왕권을 행사하는 것을 다룹니다. 야훼는 태초의 물(시 93:3-4)로 대표되는 혼돈의 세력에 대한 승리로 왕으로 선포됩니다(시 47:6-8; 93:1; 96:10; 97:1; 98:6; 99:1).
야훼는 모든 반대를 제압하고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시 47:3-4, 8-9; 97:3, 7, 9; 98:2; 99:1-2). 질서, 미스파트, 평화, 안전, 안녕을 보장하는 것은 야훼의 왕권의 기본입니다. 그는 신성한 심판자로 묘사됩니다(시 96:10-13; 97:2, 8; 98:9; 99:4).
야훼의 왕권에 대한 주장은 혼돈의 물이나 반항적인 바다 괴물(시 74:12-14; 89:10-11)과 지상의 적들(시 48:3-4; 68:30)에 대한 그의 승리에서 비롯됩니다.
혼돈을 잠재우고, 악을 무너뜨리는 ‘왕권’이다.
하나님의 왕권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왕권을 주셨다. 혼돈을 잠재우시고 질서를 잡고, 악의 침범을 가로막고 선을 장려하기 위해서 왕권을 주셨다.
군사 - 다윗
멘토 - 모세 / 신명기, 6장
친구 - 보아스
권위에 대하여
권위는 책임지는 것이다.
‘누가 이곳을 책임지는가?’
남자는 머리이다.
통제 하에 있는 힘 = 온유
머리됨이란 ‘희생’이다.
왕은 앞서 보고, 필요를 예측하고, 잠재된 위험을 탐지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지혜로운 길을 계획한다.
질서를 잡고, 합리적인 양식과 구조를 세우고 평온감을 유지하려는 강한 속성을 갖고 있다.
왕은 무슨 일을 하는가? 네 기둥, p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