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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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삼무엘상 26장의 끝은 사울은 “자기 곳"으로 갔고 다윗은 “자기 길"로 갔다라는 설명으로 끝이 납니다. 사울은 “자기 곳” 즉 자신의 고향인 기브아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자기 길”은 어디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다윗은 가드의 왕 아기스에게로 향합니다. 왜 다윗은 적대국인 블레셋 땅으로 향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 둘이 각자의 길로 가기 이전 사울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이해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사무엘서의 저자는 본문 1절 말씀을 통해 다윗의 속마음을 알려줍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제 다윗이 사울로 부터 위협당하지 않을 것이라 비춰지지만 다윗의 생각은 이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통치아래 있는 유다땅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다면 결국은 사울에게 죽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생각은 사무엘상24-26장의 내용을 보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과 다윗의 입장을 역전시키셨습니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 그러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나 살려준 다윗 이것이 24-26장의 역전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한 다윗은 심지어 “하나님께서 모든 환란 가운데 구원을 하시리라”라는 믿음의 고백과 기도를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 이러한 믿음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의 모습은 믿음의 행위로 볼 수 없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다윗의 사무엘상21-장에서도 사울이 두려워 망명을 결심했었습니다. 두번의 망명 속에서 다윗이 느꼈던 두려움을 우리는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날아오는 창을 여러차례 맞이해야 했으며, 자신을 죽이고자 밤새 집 앞에 매복하였던 사울의 군사들을 보았습니다. 죽음의 위기를 여러차례 겪으며 두려움은 점차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의 두번의 망명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두려움으로 인한 망명이었습니다.
다윗은 많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두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를 가지며, 고난의 상황에서 상황을 역전시키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입을 통해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 자리잡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망명 신청을 하였다는 것은 다윗의 믿음이 연약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즉 다윗도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죄인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다윗의 이러한 연약함이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로도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계속해서 일하고 계셨고,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상황, 여유가 없는 상황, 어려움 없는 평탄한 상황, 등 다양한 삶의 이유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잊어버리는 믿음의 연약함이 우리 모두에게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새벽 우리가 가진 믿음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후 다윗은 자신의 가족과 6백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피신합니다.
사무엘상27: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27장에서의 두번째 망명은 21장에 기록된 첫 번째 망명 시도와 달리 블레셋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순탄하게 받아들여집니다. 3절에 “아기스와 동거하였다"는 말을 통해 다윗이 아기스왕이 베푸는 것들로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무리들이 저항없이 아기스 왕과 블레셋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는 두 번째 망명의 상황이 첫 번째 망명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다윗의 신분이 도망자 신분에서 600명이나 되는 군대를 거느린 장군이 되어 아기스 왕에게 큰 보템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다윗이 가족들과 함께 망명하였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의 안위가 아기스 왕에게 달려있으니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다윗의 망명은 아기스 왕에게 받아들여집니다.
사무엘상27:4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한편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땅 가드로 도망갔다는 소식을 접하며 더 이상 수색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권을 벗어난 다윗을 추적하기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하였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다윗은 왕의 성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이 적국의 수도에서 머문다는 것은 상당히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망명을 통해 쫓기던 불안감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속 될 수록 적국에 수도에서 머문다는 부담과 미래에 대한 고민들이 생겼을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아기스에게 찾아가 말합니다. “왕이시여 만약 나를 좋게 본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종이 어떻게 당신과 함께 왕의 성에서 살겠습니까?" 우리는 다윗의 이 이야기를 통해 하루 빨리 가드에서 벗어남으로 가지고 있던 부담과 걱정들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심정을 볼 수 있습니다.
아기스왕도 이러한 다윗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시글락을 허락하며, 이를 거점으로 유다의 마음을 약탈하고 충섬심을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글락은 본래 여호수아가 시므온과 유다 지파에게 할당하였으나 정복하지 못해 블레셋이 지배하는 영토였습니다. 하나님의 법도에 따르면 유다 땅이 맞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6절 말씀은 다윗이 시글락을 받은 직후부터 그 땅이 유다 왕에게 속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정복하지 못했던 그 땅을 다윗이 점령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싸우지 않고도 그 땅을 점령도록 하신 것입니다. 망명을 하여 블레셋에 속하였던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귀한할 것에 대한 기대와 암시를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써의 사명을 놓지 않고 다시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땅으로 망명하여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으로써의 사명도 미래도 꿈 꿀 수 없었던 다윗이 이스라엘의 와응로써의 사명을 붙잡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잊어버리고 두려움에 잡혀 믿음의 연약함을 보이며,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스스로 망명을 결심하였던 다윗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자신의 사명을 찾고, 이 망명 생활을 끝낼 상황들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을 도와주십니다. 아기스로 하여금 다윗에게 그동안 차지하지 못했던 성읍인 시글락을 차지하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으로 가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묻고 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결국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순간도 그의 일하심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멈추지 않음을 우리가 믿음으로 함께 고백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어디에 있어도, 심지어 잘못 판단하여 블레셋 가드에 들어가 있어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다윗이 믿음의 연약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지 않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십니다.
다윗은 이후 시편 말씀을 통해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망명의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경험하였기에 나온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동행하심을 경험하였음에도 믿음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연약함을 보일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며, 일하심과 역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새벽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아뢰옵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