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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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폭탄 던지기 게임
1. 서론: 폭탄 던지기 게임
오늘은 시작하면서 폭탄 돌리기 게임을 하려고 합니다. 시간 제한을 두고 공을 돌릴텐데 타이머가 꺼질 때 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술래입니다. 게임을 재밋게 하기 위해서 벌칙을 정해야겠죠? 벌칙은 인생네컷찍기 입니다. 누구와? 여러분이 좋아하는 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랑 인생네컷찍으러 가는거야 예배 마치고 오키? 총 4게임을 하겠습니다. 4명을 뽑는거죠? 처음에는 60초, 그다음은 50초, 40초 마지막은 30초입니다. 쉽죠? 둥글게 원을 만들어주시고, 선생님들께서도 참가해주시고 그럼 오케이 들어갑니다. 시작~
(폭탄을 돌려 걸린 4명을 정하고 자리에 앉힌 뒤 예배를 시작한다)
이렇게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폭탄을 빨리 돌려야 해요. 자기가 계속 쥐고 있다가 터지면 벌칙을 받아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 넘겨줘야 합니다.
인생네컷이라는 벌칙이 좀 가벼워서 긴장감이 덜했지만, 조폭이 게임을 진행하면서 벌칙으로 백만원 내기를 했다거나, 간 한쪽을 걸었다면 어땠을까요?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 최대한 빨리 폭탄을 넘기려고 했을 거에요. 그리고 만약 이런 벌칙에 걸려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너무나 좌절스럽고 공포스럽겠죠. 벌칙의 무게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는 더 빨리 폭탄을 넘기려고 할거에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인생에도 폭탄과 같은 문제들이 많이 있어요. 우리가 앞두고 있는 시험들, 인간관계 속에서의 갈등들 그래서 이 폭탄을 빨리 넘겨버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요. 어떻게서든 내가 해결하려고 해요. 그래서 꾀를 막 부립니다. 그러나 잘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아요.
오늘 본문에서도 자기에게 찾아오는 인생의 폭탄들을 자기가 짊어지고 자기가 어떻게서든 해결해보려고 꾀를 부리며 살아갔던 인물이 나와요. 그 사람이 바로 야곱이에요.
2. 본문이야기: 야곱, 인생의 폭탄을 짊어진 자
2. 본문이야기: 야곱, 인생의 폭탄을 짊어진 자
1)야곱의 출생 : 발뒷꿈치를 잡는 자가 태어나다
야곱의 이름 뜻은 ‘발 뒤꿈치를 잡는 자, 남을 속이는 자, 남의 것을 빼앗는 자’ 라는 의미였어요. 그는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먼저 태어나서 첫째가 되려고 형 에서의 발 뒤꿈치를 잡으면서 태어납니다. 거의 간발의 차이로 동생이 된거죠.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렇게 다른 사람의 발목을 잡은 야곱은 살면서 항상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누군가를 속여서 이익을 빼앗는 삶을 살아갑니다.
처음에 그는 형 에서가 배고픈 틈을 타서 그의 장자권을 빼았습니다. 장자권이란 집안의 첫째가 갖는 권리로서 아버지의 유산을 더 받을 수 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가문에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었어요. 그것을 그는 달랑 팥죽 한그릇으로 퉁쳐서 쿨 거래해버립니다.
또 이후엔 아버지 이삭이 첫째 에서에게 줄 축복을 거짓말로 속여서 빼앗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버지가 죽기 전 첫째 아들에게 이 가문을 든든히 세워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미래에 복을 빌어주었어요. 이 축복은 상당히 효력이 있었고, 이 축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크게 지원을 해줬죠.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야곱은 에서가 받을 첫째의 축복을 속여서 빼앗습니다. 그래서 이 때문에 형 에서가 야곱을 죽여버릴려고 할 만큼 분노하게 됩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두려워서 그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는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다. 너는 잠시 외삼촌의 집에 가 있어라. 내가 너를 고향으로 평안히 돌아가게 해주겠다’라고 위로해주세요.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라반에게로 가고 그곳에서 20년간 지내며 많은 자녀들과 재산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성하자 외삼촌 라반은 야곱이 자신의 것을 훔쳤다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가 자기를 고향으로 편안히 보내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짐을 챙겨 조용히 밤에 도망가는데 라반은 그사실을 알고 그를 잡으려고 뒤좇아 갑니다.
그런데 라반이 뒤좇아 오는 길에 하나님께서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다치게 하지 말고 평안히 고향으로 보내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야곱을 만나서 하나님이 이러이러하게 말씀하셔서 너를 보내주겠다고 말 한 뒤 그를 평안히 보내줍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를 모면하고 이제 고향을 향해 갑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곳엔 20년전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 에서가 기다리고 있었던 거에요. 자기가 고향에 돌아가면 분명 그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상황에서 야곱은 과연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폭탄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할까요? 에서와 라반의 손에서 지켜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을 의지하려고 할까요? 아니면 이전처럼 자기의 꾀를 사용해서 이 상황을 모면하려 할까요?
3. 본론: 야곱을 얍복하신 하나님
1)야곱이 야곱했다; 자신의 꾀와 하나님을 모두 의지한 야곱
야곱은 이 상황에서 자신의 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까지 의지합니다. 그는 먼저 에서에게 사자를 보내서 본인이 지금까지 외삼촌의 집에서 일을 열심히 했고 그래서 집에 빨리 돌아오지 못했다. 이제 나에게 재산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 재산을 형에게 좀 주고 싶다‘고 말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야곱의 말을 에서에게 전했지만 그들은 야곱에서 돌아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 곳으로 오고 있다’라고 전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야곱은 그의 두려움이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서든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꾀를 씁니다. 먼저 자신의 짐을 두떼로 나누고 앞쪽에는 에서에게 바칠 뇌물을 배치하고 뒷쪽에는 자기와 아내 아이들을 배치해서 만약 형이 뇌물을 받으면 그 때 뒤에서 나와 그와 화해하고, 혹시나 형이 뇌물을 무시하고 자기에게 달려오면 그것을 보고 도망가겠다는 플랜을 짠 것이죠.
이렇게 플랜을 짜고 난 뒤 야곱은 하나님께도 기도합니다. 자기를 지키신 하나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저를 지켜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정말 야곱이 야곱스러께 자신의 모든 꾀를 동원하여 지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상황인 것이죠.
이렇게 기도했지만 그는 온갖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어떻게 잠이 오겠어요. 그를 죽이러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데.
그래서 그는 밤에 일어나 짐들과 아내들을 먼저 보내고 얍복이라는 강가에 멈추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잠시 꾀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요? 아니면 두려움에 패닉이 되어서 혼자 있고 싶었던 걸까요?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는 그곳에 있다가 어떤 알 지 못하는 사람과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어요. 날이 새도록 씨름이 하다가 그 상대는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야곱의 허벅지를 쳐서 넘어 뜨립니다. 그러나 야곱은 결코 그를 놓지 않았어요. 자신을 이긴 그에게 자기를 축복하고 가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강한 힘을 원했던 것이었을까요? 하지만 그는 야곱에게 축복하지 않고 쌩뚱맞게 이름을 물어봅니다. 그리고는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꿔줍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다스리시고 그를 이기게 하신다’라는 뜻을 갖게 됩니다. 야곱은 그제서야 자기가 하나님과 씨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장소를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뜻의 이름으로 부르며 다리를 절뚝거린 채 자기의 가족을 향해 걸어갑니다.
4. 적용: 우리의 꾀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자
4. 적용: 우리의 꾀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자
야곱을 보면 정말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왜 저렇게 행동하지 생각이 들다가도 가만보면 ‘뭐야 내가 저러고 있잖아’라는 생각이 들어서 짠하기도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와 지켜주심을 경험했지만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 보다는 여전히 꾀를 씁니다.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할 수 없었고, 또 그렇다고 하나님을 무시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카드를 사용해서 그에게 넘겨진 폭탄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허벅지를 꺾으시고 더이상 자신의 꾀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누군가의 발 뒤꿈치를 잡고 넘어뜨리며, 속이고 이익을 빼앗는 인생이었던 그를 절름발이로 만드셔서 더이상 야곱으로 살 수 없게 하십니다. 그 뒤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다’는 의미의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셔서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도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의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내가 꾀를 부려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 인생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내가 어찌 해서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일하시도록 맡겨드리기 원합니다.
이 말이 결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인도해주시겠지. 설마 나를 버리시겠어?‘라는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공부를 하나도 안한 다음에 좋은 성적을 기대하라는 말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대단한 믿음이 아니라 무모한 믿음입니다. 믿음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기도를 한다면 해야 합니다. 하나님, 좋은 성적을 주세요 라고 기도한다면, 공부해야죠. 공부도 안하는데 좋은 성적이 얻어질 수가 있습니까? 전혀 그럴 수 없습니다. 기도를 한뒤 믿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십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하는 것과 꾀를 내어서 하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고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든, 꾀를 부리든 둘다 어찌됐든 자기의 문제를 잘 해결해보려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확연히 다릅니다. 언뜻보았을 때 이 둘의 차이점을 찾기란 어렵지만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따져본다면 확실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만 이익이 되는 행동이라면 그것은 꾀를 부리는 행동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내가 손해를 보는 행동이라면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일때가 많습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선생님들이 수업 중에 간혹 ‘이거 중요해‘, 라던지 ‘이거 알아두면 좋아‘라는 식으로 힌트를 흘리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수업을 잘듣는 친구는 ‘오케이’ 체크하고 넘어가지만 수업시간에 졸거나 딴생각을 한 친구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넘어갑니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되서 ‘야 선생님이 방금 뭐라고 그랬어?’ 라고 물어봅니다.
그때 문제를 가르쳐 주면 얘도 시험을 잘 보게되고 그러면 ‘내가 얘보다 성적을 더 잘 받을 수 없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상황에서 내 성적을 올리기 위해 ‘나도 딴 생각하느라 못 들었어. 뭐라고 하셨더라..?’라는 식으로 거짓말 한다면 그것은 내 성적을 위해 꾀를 부리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그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알려 주고 혹시 그 친구가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시간을 내어서 그에게 가르쳐주고 이것이 믿음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그 친구를 도와줄 수 있는 마음. 내가 이번 시험에서 조금 점수를 못 받거나, 또는 내가 가르쳐줘서 그 친구가 나보다 성적을 잘 받게 되더라도 그 점수 하나가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나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고 정직하게 진실되게 사는 것. 이것이 꾀를 부리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런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내가 수고한 것보다 더 큰 은혜로 나의 삶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회사 생활에서도 일을 대충한 뒤 ‘누군가 뒷처리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미루거나, ‘뭐 내꺼도 아닌데’ 라고 생각하며 물품을 함부로 사용하고, ‘뭐 이정도면 어때’ 라고 생각하며 회사 돈을 취하거나 사용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편함과 이익을 위해 꾀를 부리는 행동일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안보더라도 ‘나중에 누군가가 사용하겠지, 내가 좀더 수고하자, 내가 더 소중히 여기자,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양의 돈을 주실 거야’ 라는 믿음으로 헌신하고 정직하게 일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생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야곱과 같이 큰 은혜를 경험한다 해도 우리의 인생이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 인생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난 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나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과 이웃을 위해 살아가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며 어떻게 지금 내 삶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고민하다가 문득 수업을 열심히 들어서 친구들에게 필기를 보여주고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줘야 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수업을 열심히 듣고 필기를 열심히 해서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도와주자 감사하게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성적도 자연스럽게 올랐습니다. 중학교 내내 중위권만 하던 제 성적이 어느새 중상위권, 상위권 이렇게 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어느새 제 마음에 이기적인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 이 성적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필기를 해도 이제 알려주면 안되겠다. 알더라도 모른 척 해야겠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내 이기심을 위해 꾀를 부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이렇게 하려고 해도 친구들이 계속 찾아오고 부탁을 하니까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더 수를 생각한 게 알려주더라도 적당히 알려줘야겠다. 핵심적인 것은 그냥 스윽 지나가야겠다. 필기도 정말 중요한건 나만 아는 암호를 써서 걔네들이 못 알아보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쳤고 결국엔 시험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잘 봤을 까요, 못 봤을 까요? 네, 잘 봤습니다. 근데 이렇게 한번 두번 하고 나니 계속해서 이기적인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이번에도 나만 잘 봐야지 어떻게든 나만 잘되야지 좋은 정보는 나만 알아야해 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가득해졌고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갔습니다. 시험을 칠 때도 ‘시험을 잘 봐야해. 못 보면 큰일나. 못 보면 다른 녀석들이 나는 무시할 거야’ 라는 압박감에 긴장을 하며 시험을 쳤어요. 그래서 고삼때 이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시험성적이 점점 떨어져서, 수시전형에 중요했던 3학년 1학기 중간 기말을 망치게 되었고 그 여파가 수능까지 이어져서 결국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 때 시험 트라우마가 생겨서 재수에서도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재수의 실패는 정말 썼지만, 저 스스로 다시 겸손해질 수 있는 은혜를 경험했어요. 그 동안의 자만과 이기심을 회개한 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한 진로를 정하고 다시 그렇게 살아가고자 노력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제 인생을 평탄하게 인도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나만을 위해 살려고 꾀를 부리게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못하고 나의 작은 지혜도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려고 해요.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인생을 채찍으로 치시며 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게 하세요. 우리의 뻗뻗한 발목을 꺾으시고 넘어뜨리세요. 우리가 나 자신을 위해 꾀를 부리지 않고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시험때만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갈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정직하고 진실하게 또 사랑으로 행동하길 원합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그분, 여러분을 위해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그분, 이 땅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지키십니다. 우리에게 넘겨진 폭탄을 하나님께 넘깁시다. 그분은 그 폭탄을 충분히 감당하시고도 남으시는 능력의 하나님, 구원자이십니다.
5. 결론: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
5. 결론: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
야곱은 브니엘에서 하나님과의 씨름을 경험하고 절름발이가 된 뒤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꾀를 부르며 살아갑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폭탄을 어떻게서든 웅켜지고 해결하려고 아둥바둥합니다. 에서와 대면하기 전 그의 가족들과 짐들을 네 무리로 나눈 뒤 그 뒤에 숨어서 에서를 만납니다. 그 후에 자신의 딸 디나가 이방인들에게 끔찍한 일을 당해도 야곱은 침묵합니다. 혹시나 복수했다가 이방인들이 몰려와서 자기에게 보복할까봐 무서워서 참습니다. 그러다 자식들이 그들에게 복수하자 되려 자식들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했냐며 화를 냅니다.
우리는 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거룩하다고 불러주시고 날마다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초대하십니다.그분은 세상 속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으며 말씀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거룩한 삶,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가 웅켜지려고 하는 폭탄을 하나님께 맡겨드립시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폭탄을 건네 받으시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쉽게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폭탄과 같은 문제들을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겨드립시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은혜도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