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8 청소년 설교 (행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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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청소년부 때 저는 조그만 교회에서 학생회를 만들었습니다.
실력은 없지만 찬양팀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을 모았고, 함께 연습을 했고,
같이 언니오빠동생친구들이 모여서 재밌는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찬양팀에 속하지 못한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찬양팀을 하는 아이들과 하지 않는 아이들로 나뉘어졌습니다.
찬양팀을 하는 아이는 열심이 있는 아이,
하지 않는 아이는 열심이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신앙이 좋고,
찬양팀에 참여하지 못한 친구들은
좀 신앙이 약한 아이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도
고정관념이 생기고, 차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찬양팀이 아닌 아이들은 소외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느끼는 아이들은 힘들어졌습니다.
찬양팀이 인싸로, 아닌 아이들이 아싸가 되는 분위기가 되버렸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어떤 조건과 행위들로
사람의 존재와 정체성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가진 가치와 기준으로,
고정관념으로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차별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할 수록,
옳지 않은 자들을 구분하고 멀리하는 것이죠.
마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볼 때 그랬고,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이 더욱 그랬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고정관념과 차별의 장벽을 깰 수 있을까요?

A1. 복음은 고정관념의 장벽을 깬다 (유대인)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고넬료와 그의 가정을 구원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안에서 하나님은 고넬료 뿐만 아니라
베드로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두가지 장벽을 허물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것입니다.
하나는
복음은 유대인을 향한 고정관념의 장벽을 깨는 망치이고,
나머지 하나는
복음은 유대인을 향한 고정관념의 장벽을 깨는 망치입니다.
먼저 본문을 요약해볼게요.
가이사랴에는 고넬료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있었죠.
그는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2절보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유대백성에게 자선도 많이 베푸는 사람이었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이 사람에게도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을 몰랐던 거죠.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십니다.
고넬료는 환상 가운데 천사를 만납니다.
천사는 지금 욥바라는 지역에,
므두장이 시몬에 머무르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그는 경건한 병사들을 불러서 베드로를 모셔오라고 말합니다.
이튿날 경건한 병사들이 베드로를 찾으러 오고 있을 때,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마 시간은 정오쯤 된 것 같아요.
그 때 베드로가 배가 고파서,
뭔가 먹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고넬료와 같이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려오는데,
그 음식은 무엇이었을까요?
유대인들이 율법에서 금지하는 음식들이었습니다.
먹으면 곧 바로 부정해지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음성이 들리죠.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
베드로는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부정한 음식은 한번도 먹은 일이 없어요”
그러자 음성이 다시 들립니다. 15절이죠.
“하나님께서 속되고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부정하다 하지 말아라"
그렇게 세번 일이 있고, 그 그릇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잠시 멈춰서서,
첫번째 포인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목숨처럼 중요했던 것은 ‘율법'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강력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 보다는,
해야된다 하지 말아야 된다에 강력히 집착했습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께서는 이 고정관념의 장벽을 깨부수죠.
사도행전 10:19–20 (NKRV)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성령님이 베드로의 생각을 깨십니다.
“의심하지 말고 그들을 따라가거라, 이방인의 집인 고넬료 집에 가거라. 그들도 복음이 필요하다"
여러분, 베드로는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실수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부활한 예수님을 이미 만났고
사도행전2장에서는 예수님이 보낸 성령님도 경험했습니다.
그는 많이 성숙했고 사도였고,
신앙에 대해서 경험할만큼 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하나님은 훨씬 크신 분인데,
다 파악하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직접 시청각으로 보여주시며
먹으라고 말씀하시는데도 거부했던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동기화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 고정관념과 고집에 사로잡혀있지 않고요,
그 고정관념을 깨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고,
그 성경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읽도록
자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겸손해야 하는 것이죠.
<예화>
저는 청소년시절 하나님도 열심히 믿었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계획과 뜻대로 안되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축구를 왜 하게 했으며,
왜 그만두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 계획은 축구로 성공하여
하나님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은
늘 저의 얄팍한 지혜와 비교가 되지 않았죠.
하나님은 항상 나보다 옳으시죠.
복음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부숩니다.
“공부가 최고의 가치야"
“학원가야 성적은 올라"
“예배보다는 시험공부야"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왜 안들어줘?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지"
“이건 다 그냥 자기 최면이야. 구원따윈 없어"
성령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듯이 이런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십니다.
“의심하지 말고, 나의 말을 따르거라”
복음은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는 망치입니다.

A2. 복음은 차별의 장벽을 깬다 (이방인) (34,35절)

두번째 포인트를 향해 가보겠습니다.
첫째는 복음은 고정관념과 편견의 장벽을 깨는 것이었다면,
두번째 복음은 차별의 장벽을 깨는 망치입니다. _
본문으로 돌아가봅시다.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난 뒤
환상의 뜻에 대해서 생각하며 어리둥절하고 있습니다.
그 때 마침, 밖에 고넬료가 보낸 병사들이 도착하죠.
19절말씀을 볼까요?
사도행전 10:19 (NKRV)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그 때 누가 말씀하세요? 성령하나님께서 말씀하세요.
“일어나서 내려가거라. 그들은 내가 보낸 사람들이니,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거라"
베드로는 그 병사들에게 고넬료에게 있었던 환상과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고넬료의 집으로 함께 갑니다.
고넬료의 가족들은 모두 모여서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죠.
베드로가 이제 그들 앞에서 복음을 들고,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34절 말씀봅시다.
사도행전 10:34–35 (NKRV)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과 십자가에 죽으셔서,
삼일만에 부활하신 복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죠.
그리고 43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10:43 (NKRV)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두번째는 복음은 차별의 장벽을 깬다는 것입니다.
복음 앞에 차별은 없습니다.
차별이란 인간이 세워놓은 기준과 편견 안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피부색, 인종, 성별의 차별이 없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왔을 때 마중을 나가서 엎드려 절하죠. 그 때 베드로가 뭐라고 말하죠?
“일어나세요. 저 역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사람이죠.
하얀 사람, 검은 사람으로 나누어서 보시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들에게 설교할 때 첫마디가 이것이었잖아요.
사도행전 10:34 (NKRV)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외모를 보고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외모는 우리가 가진 모든 외적조건을 말하죠.
어떤 인종이냐, 어느나라 사람이냐,
무슨 일을 하느냐,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 하는 것에서
우리는 사람을 다르게 보고, 차별하여 대우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행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만 택하여
축복하고 구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죽음과 부활이
유대인들의 것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 차별의 장벽을 허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그저 사람을 사람으로 보십니다.
기억하세요.
행10:36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우리는 다른 사람을 차별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어떤 조건과 탁월한 외모의 조건을 갖추었다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죄'를 구원할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예화>

제 아내가 대학생때 동생 치즈스틱을 해주려고 하다가
집에 불을 낸적이 있어요.
3층인가 4층 집이었는데 불이나서
순식간에 옆집까지 집을 홀랑 다 태웠습니다.
몸만 겨우 빠져나왔고
아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타버렸습니다.
불이라는 거대한 불가항력적 힘 앞에서는
소유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옆집에는 아기와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가 계셨습니다.
만일 탈출하지 못하고, 그 안에 있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집이 타고 있고, 나오지 못한다면 곧 죽음이 임박한 것이죠.
그 때 외모가 중요할까요?
내가 가진 조건들이 중요할까요?
누구는 이뻐서 탈출할 수 있고,
누구는 돈이 많아서 탈출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오. 소방관들도 그런것 따지지 않고 구하죠.
제일 중요한 것이 생명이니까요.
소방관이란 정의로운 사명으로,
들을 목숨걸고 구하는 것이죠.
불에 타고 있는 집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동일하게 구원이 필요한 존재죠.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하게 범죄한 죄인이요,
의로울 것이 전혀 없는 그런 죄인입니다.
고넬료가 오늘 말씀에서 경건한 사람으로 소개되지만,
역시 죄인이었고, 그리스도가 필요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베드로도 죄인이고
그리스도가 필요했습니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세요.
여러분의 친구도 죄인이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대통령도, 연애인도, 부모님도 죄인이며,
주님이 필요합니다.
복음은 죄인인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진리입니다.
복음은 그래서 차별의 장벽을 깨는 망치입니다.
편견을 깹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같은 죄인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죠.
나와는 달라보이고 스타일이 맞지 않는 친구들은 배제합니다.
정치색이 맞지 않으면 배제하고,
나에게 유익이 있으면 친하게,
유익이 없으면 무관심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죄인이란 증거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가진 것이 많아도,
오히려 그럴 수록
수많은 편견과 차별의 DNA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무심코 쓰는 언어와 말에도 사람을 나누죠.

<예화>

‘선량한 차별주의자'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읽는데 많이 찔렸습니다.
여러분, ‘결정장애'라는 말을 많이 쓰죠?
이것이 차별적 언어라는 것 알고 계세요?
저자가 이렇게 말해요.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사무실에 이름명패 색이 다르죠.
사소해보이지만 사람들은 이 차별에서 대우를 받기 위해
피터지게 경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차별을 전제하고 하는 말들이 참 많죠.
“한국인 다 되었네요"
“희망을 가지세요"
“한국인 다되었네요” 라는 표현은 이주민을 향한 모욕적인 표현이에요.
얼핏 칭찬같지만 아무리 오래 한국에 오래 살아도
온전히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전제가 깔리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모욕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희망을 가지세요"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말은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말하는 거죠.
“장애인에게는 당연히 희망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가진 가치 기준으로
다른 타인의 삶을 삶의 가치를 매기는 것이 모욕적이라고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고
하나님 말씀처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을까요?

결론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고, 예수님이 필요하며,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조건보다,
그 어떤 큰 죄보다
예수님의 사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에게 우리 모두는 광활하고
거대한 우주의 하나의 점일 뿐입니다.
한 책의 내용을 인용해줄게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는 시속 1,670km의 속도로 빙글빙글 자전하면서
동시에 시속11만 km의 속도로 공전하고 있는
지구라는 비행기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 생생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 지구가 속한 태양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려면
비행기로 1700년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며,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를 횡단하려면
비행기보다 100만배 빠른 속도로 150억년을 가야 한다.
게다가 이런 은혜가가 우주에 1,500억 개 이상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인간의 한계와 무지와 교만의 누추함을 인정하여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광활환 우주 속에 먼지 같은 존재인 우리들이
다른 먼지를 보며 다르게 보고,
차별하고, 배제한다는 것이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 입장에서 얼마나 웃기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한 사람이 바뀌는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으로 이 모든 것이 깨진 세상에
평화의 나라가 오기를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온갖 차별의 감옥으로부터,
편견과 배제의 고문실로부터 나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먼저 이 차별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고정관념과 이기주의의 피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먼저 교만과 차별의 DNA인 죄의 모든 저주로부터 고통을 담당하셨고,
그로 인해 우리가 이 저주를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선한 성품과 도덕으로도 이것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죄의 심각성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에 귀 기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처럼 자기는
“괜찮은 사람, 나 정도면 잘 믿고 있어, 나는 다 알고 있어” 라는 고정관념과 편견 속에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받을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자녀가 되면,
차별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차별하는 자들,
세상의 가치로 사는 그들이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고정관념과, 편견의 감옥에서 나오세요.
복음이 열쇠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 분을 신뢰하세요
복음이 여러분을 자유하게 할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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