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사랑
Notes
Transcript
서론
서론
술, 담배? 괜찮은가?
이 단락은 강한 자에 대한 권면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는 교회 안에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강한 자에게 더 무거운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보다 책임이 더 있다.
구약의 모세 율법에 나오는 음식법에는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구별이 있었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구분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선합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유대교의 음식법에 따라 살아온 유대인 신자들에게 오래된 관습을 하루아침에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신자들은 자신들이 부정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먹게 되면 자기 양심을 거스르게 됩니다.
롬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본론
본론
자신의 자유보다는 형제 사랑을 우선
첫째, 자신의 자유보다는 형제 사랑을 우선해야 합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본질적으로 어떤 음식도 부정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강한 자들의 이런 자유는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을 근심하게 할 수 있고, 믿음이 약한 자들을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형제 사랑의 원리를 위배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자유와 형제 사랑이 충돌할 때, 자신의 자유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자유를 행사할 수 있지만, 자신의 자유가 형제를 어렵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강한 자들은 자신의 자유보다는 형제 사랑을 우선해야 함을 이렇게 말합니다.
롬14: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불신자에게 교회가 비방받지 않도록 행동
둘째, 불신자에게 교회가 비방받지 않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신자끼리 불화하고 분쟁하게 되면 불신자들에게 조롱과 비난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강한 자들은 음식 문제와 같은 것으로 약한 자들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신자끼리 자꾸 분쟁을 일으키면 불신자들은 선한 것(복음)을 좋지 않게 여기며, 교회를 비난합니다.
목욕물과 함께 아이를 버리지 말라.
롬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본질적인 것을 비본질적인 것보다 우선
셋째, 본질적인 것을 비본질적인 것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이 왕이신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승천 이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재림 때까지 성령님을 통해 신자들을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을 통해 신자들의 삶 속에서 경험됩니다.
바울은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면서 비본질적인 것으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로마 교회 신자들이 가져야 할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중요성에 비하면, 지금 로마 교회 신자들이 논쟁하면서 분열의 이유가 되고 있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또는 날과 절기글 어떻게 지켜야 하는 것은 사소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 있어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은 무엇일까요?
첫째, 의는 하나님이 신자에게 주시는 의, 즉 그리스도의 의를 신자에게 전가시켜 주는 의를 말합니다. 즉 신자는 그리스도의 의를 자신의 의로 선물받음으로써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게 되고 신분상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신자는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신자는 의의 종으로서 때로는 죄에 져서 불의를 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의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둘째, 화평이란 신자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결과로서 생겨나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과의 화평은 신자 속에서 내적 화평을 가져오게 되고, 신자의 이런 내적 화평은 다른 사람과의 화평을 추구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셋째, 희락이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과의 화평이 생겨나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롬 5:1-2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과 병행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와 화평과 기쁨은 교회 내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윤리적인 삶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추구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습니다.
롬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우선
넷째, 하나님 나라 백성인 신자들은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의 유익을 더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롬14: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그래서 믿음이 강한 자들은 음식과 같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업, 즉 교회 공동체를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믿음이 강한 자들은 자신의 믿음에 따라 고기도 먹을 수 있고, 포도주도 마실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이런 자유를 사용함으로써 약한 자가 영적으로 해를 입을 수도 있다면, 절제하는 것이 신자로서 아름다운 행동입니다.
롬14:20-21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믿음이 강한 자가 무슨 음식이든지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믿음에 따라 고기를 먹는 자유를 누리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믿음이 약해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게 되면 죄책감을 느낍니다.
롬14:22-23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라고 말할 때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생겨나는 확신, 즉 신자로서의 양심을 의미합니다.
양심은 각자의 내면에 있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법
양심이란, 자신의 지식에 기초해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고, 이렇게 행동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개인적인 법률 체계요 도덕심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양심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는 사람의 양심이 반드시 하나님의 법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이 자신의 양심대로 산다고 하지만 타락한 양심, 더럽혀진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법과는 반대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양심이 새로워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양심의 자유를 누립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따라 지식의 정도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는 문제와 관련하여 적용을 해 보겠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모든 음식은 하나님이 만드신 선한 것이며,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금기할 것은 없습니다.
이런 신자는 음식 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바른 지식을 충분히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음식 문제에 있어서 믿음이 강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출신의 신자로서 아직도 모세 율법의 음식법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불충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음식 문제에 있어서 믿음이 약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의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에 따라 옳다고 믿고 있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물론 음식 문제와 날 문제와 관련된 논쟁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구원을 얻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믿음을 이미 가진 사람들에게 허용된 것은 무엇이며, 허용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자들이 각자 자신들이 가진 믿음에 따라 자신의 양심에 부합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 즉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을 가지게 되어 신자로 살아가는 데 큰 피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으로 변화되려면 충분한 지식과 이해가 동반되어야 함을 알고, 믿음이 약한 사람의 지식과 이해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음식 문제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비본질적인 문제에 있어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의견이 충돌할 때, 믿음이 강한 자들은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 즉 약한 자들의 유익을 더 우선해야 합니다.
결론
결론
술담배를 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닌걸까?
그리스도인의 여러 고민들 중에 한 가지. 술과 담배가 있습니다.
성경 속에는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술 취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나옵니다.
이 때문에 혼란스러울 때도 있는데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술과 담배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무엇이 더 건강한 신앙인지 알아봅시다.
술담배를 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존파이퍼목사님은(desiringGod의 질의응답 중) “술과 담배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리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왜냐면 우리는 행동이 아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하고 싶은 데로 놔두라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주변사람을 사랑한다면 술과 담배의 위험성에 대하여 그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습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뜻이지요.
금주하는 이유
그렇다면 교회에 있는 금주문화는 왜 있는 것일까요?
한국교회가 서양의 교회들보다 음주나 흡연에 있어서 더 보수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서양의 문화에서는 권유하지 않고 개개인이 음주의 양을 조절하는 분위기라면 한국은 다르지요.
다 같이 마셔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울리기 힘들어지고 맙니다.
때문에 많이 취하고 방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처음 온 선교사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불가피하게 교회에서 금주운동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취지를 알고 있는 지금의 한국 성도들도 금주를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한국의 문화에서는 속 이야기를 하거나 친해지기 위해 술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관계와 연합에 있어서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술을 의지한다면 성령님을 대체하는 것이 되겠지요.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엡5:18)
더욱 성숙한 자세
바울이 이웃을 배려하는 모습을 봅시다.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고전8:13)
정말 멋지지 않나요?
술이나 담배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신앙을 방해하거나, 또는 건강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숙해 갈수록,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나와 내 이웃을 지키고,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술, 담배를 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 Drinking & Smoking|작성자 180초 바이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