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홉 번 : 예수 닮기4] 양선

하루 아홉 번 : 예수 닮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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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6월 18일 주일 청년부
시리즈 : 하루 아홉 번 : 예수 닮기
제목 : 아버지 뜻에 벗어나기를 거절하다
본문 : 시편 15:1-5
결단 : 욥의 고백
#설교 전 중보기도 제목
1) 예배를 위해 : 찬양의 기쁨이 있는 예배, 말씀에 은혜로 소망하는 예배, 기도로 주와 연합해 가는 예배 되게 하소서
2) 찬양팀을 위해 : 리더와 싱어, 그리고 세션으로 섬기는 자들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짖으며 기도합시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가지고 나아온 자들이 섬김의 자리 위에 있기에, 그 섬김을 주님께서 그 무엇보다 가장 귀하게 받아 만사형통의 은혜를 허락하소서
[선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착한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 참 선하다.’ 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합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션’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모든 남자가 션처럼 살 수 없음을 세상 모든 민족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보며 ‘선하다.’ 또 ‘저 사람 처럼 되봐라.’ 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선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선함’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나눔)
대부분 생각한 결과를 보면 ‘구제’, ‘배품’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담 여러분들이 생각한 정의는 자비일까요 양선일까요? 이 둘은 매우 비슷해보이지만, 정확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자비는 저번 주 우리가 나눈 것처럼, 죄 지은 사람이나 잘못한 사람을 향해 베푸는 것입니다. 그것이 용서든, 사랑이든 말입니다. 하지만 양선은 비슷하지만 대상에서 차이가 납니다. 양선은 어려운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 아주 작은 사람을 도와주어 그가 위로를 얻어 새 힘을 얻게 하는 것이 바로 양선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생각한 대부분의 결과들은 자비 라기보단 양선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담 선은 착한 것인가?]
그런데, 여러분. 잘 됩니까? 어찌보면 자비보단 양선이 더 해볼만한 것 같지만서도, 그렇다해서 양선이 마냥 잘 되는 것은 또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악하기 때문에 양선 또한 쉽지 않은 것이지요.
물론 이리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쟤는 법 없이도 살 놈이야” 물론 그런 사람들의 행실을 보면 선합니다. 그러나 그게 곧 양선이라 정의 내릴 수도 없습니다. 소위 ‘착한 것’과 ‘성령의 열매’는 다릅니다. 천성적으로 착하다? 그런 사람도 모든 순간 착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선함, 중요하나 어려운 일]
듣다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자비도 어렵고 양선도 어렵고, 우리보고 어쩌란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드는 것 조차, 이유를 우리는 본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결코 착하지 않고, 뿐만 아니라 내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이유도 있을겁니다. 세상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들 안도와준다고 경찰서에 가기를 합니까? 아니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어 수감이 되기를 합니까?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아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을 때, 그런 자들을 향해 ‘심판’ 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꼭 악한 일을 해야만 벌을 받음이 아닌, 선을 행하지 않아도 마치 악한 일을 행한 것처럼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리 듣는다 해도 어렵습니다. 선을 베푸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어렵다보니 또 우리는 삶에서 자연스레 선을 행해야 함을 잊게 되고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오늘 날 선을 행하는 것에 무관심한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하지 않는데 구원 받을 사람도 없다.” 라고 말입니다. 선한 일을 하는 것은 구원과 별개의 문제지만, 그렇다하여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한 번 점검해 봅시다. 나는 정말 괜찮은 그리스도인인가? 건강한 그리스도인인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내가 진짜 그리스도인인가?’를 꾸준히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말씀 위에 세워져 있는가? 나의 오늘 하루는 말씀을 붙들고 산 하루였는가? 오늘 하루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있었는가? 그래서 나는 성령의 열매를 맺었는가?
[어떻게 선할 수 있는가?]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이제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여전히 오해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윤리적으로 선함을 추구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와 착함과 분명한 차이가 있기에,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이 말하는, 또 성령의 열매에서 다루는 선함, 양선을 우리가 얻게 됩니까? 매주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나는 못합니다.’ 이를 인정해야 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누구에게요?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하십니다. 또 하게끔 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주님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곧 우리를 선하게 만들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이 곧 복음 아닙니까? 그것이 곧 진리고 구원의 유일한 길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고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은 선하지 않지만, 우리가 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든 이유가 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을 우리가 ‘아멘’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본성이 비록 악할지라도 우리가 육신의 본성대로 살지 않고 주님의 마음으로 선한 일을 행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례 : 1. 머시 굿페이스(goodfaith)]
우리의 인생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예수에 사로잡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의 삶은 어쩌면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불안보단 희망과 소망이 예수를 믿는 자들의 결말일 것입니다.
어느 한 이야기를 해드리려 합니다. 오래전 이름도 모를 어느 한 사람이 고아원에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을 아이가 있습니까?” 그 물음에 원장은 망설임 없이 “네, 그럼요. 당연히 있죠.” 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여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열살 짜리 여자 아이인데 매우 흉한 꼽추에요. 이름은 머시 굿페이스(goodfaith)이구요.” 그리곤 찾아온 사람은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런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아이를 데리고 떠나 33년이 흘렀습니다.
아이오와 주 고아원 감사실의 실장은 한 고아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 가정은 매우 특별한 곳인데 깨끗하고 음식도 훌륭하며 특히 그곳 원장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이곳에 수용된 어린이들은 모두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원장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저녁 식사 후 피아노 앞에 모여 섰을 때, 나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를 느꼈다. 나는 그 원장의 눈처럼 아름다운 눈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내가 그 원장의 외모가 보기 흉한 꼽추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 원장의 이름은 머시 굿페이스이다.”
33년 전 이름도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결정과 결단 무엇보다 사랑과 양선이 추하고 보기 흉한 고아를 보살펴 줄 용기를 내었기에 머시 굿페이스는 사랑을 배웠고 양선을 배웠고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랑을 백 배로 증식시킬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동일한 원리와 개념으로 우리도 이와 같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향력이라 해서 유명해지라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사례를 찾기 전까진 굿페이스에 대해 알던 것은 없습니다. 단순히 유명해지는 것만이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받은 그 무한한 사랑을 그대로 이웃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어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사례 : 2. 이국종 교수]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삶에 찾아와 ‘성경책’ 한 권만 딸랑 던져주고 가신게 아니라는 겁니다. 자신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여주셨고,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책 한 권 주시면서, “야, 잘 살아봐.” 라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 옆에 앉으셔서 “잘봐. 이럴 땐 이렇게 행동하며 살아야 하는거야.” 보여주시고 “자, 그럼 이제 너도 해볼까?” 말씀해주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드라마를 잘 보지 않습니다. 몰아보기나 요약을 선호 합니다. 그래서 스포를 당해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왠지 모르게 시간 세이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제게도 참 귀감이 되고 기회가 되면 풀 영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낭만 닥터 김사부’ 입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실제 주인공 이국종 교수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 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6.25 전쟁에서 눈과 팔 다리에 부상을 입은 장애 2급 국가 유공자입니다.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이지만, 그런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 날 우리가 있기에 참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국종 교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장애물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별명은 ‘병신의 아들’ 이었기 때문입니다.
국가 유공자의 결말은 너무 처참했습니다. 너무나 가난했고 차가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늘 술을 달고 살며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술주정처럼 반복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국종 교수도 혼란스러웠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국종 교수가 중학교 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자 병원에 가 국가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내밀자 간호사들의 반응이 싸늘해졌고, 다른 병원에 가보라며 내쫓고 그렇게 몇몇 병원을 돌았지만,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 반응은 전부 문전박대 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돌다 어느 한 병원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의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 의사는 의료복지카드를 보자 이국종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그렇게 그는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을 다해 치료해주었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격려도 해주었다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그의 한마디가 이국종 교수의 인생을 바꿔 버렸습니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 그리고 그의 삶의 원칙 또한 이 때 탄생하게 되었다 합니다. “환자는 돈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 받아야 한다.”는 삶의 원칙. 그렇게 그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칼잡이의 삶을 살게 됩니다.
도전도 되고 감동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선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그 사람 또한 선을 베푸는 건강한 순환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보세요. 더 뛰어났고 더 감동이 있고 만인을 살리신, 이를 위해 직접 뛰어든 가장 아름다운 분 아닙니까? 근데 그 분을 볼 때, 그 분의 이야기인 성경을 볼 때, 도전이 되시고 감동이 되십니까? 그 분의 사랑을 입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 사랑을 순환시키는 자로써 살아가십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본 시편의 말씀들을 보십시오. 남의 일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또 우리에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요? 예수를 볼 때, 내가 죽고 그 십자가를 볼 때.
[결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내가 죽기를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내가 모든 걸 잃는 것 같아도 잃지 않습니다. 오히려 얻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해 불이익을 보는 것 같아도 불이익이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우리를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 주를 볼 때,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영원한 주를 볼 때 가능케 됩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눈 들어 주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죽어 주로 살 때, 그렇게 주님을 볼 때 우리는 양선의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주님은 늘 아버지 뜻에 벗어나는 삶을 거절하셨습니다. 어떤 유혹에도 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늘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것이 불편을 주어도, 그것이 고난을 주어도, 그것이 죽음으로 내몰아도 주님은 늘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기를 거절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자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도 그러길 소망합니다.
[결단찬양 : 욥의 고백]
#말씀을 가지고
1) 마음의 눈 들어 주를 보는 자 되게 하소서
2) 주를 닮아가는 자 되게 하소서
#하올공동체를 위해서
3) 청년 공동체가 주님 말씀 위에 세워진 건강한 공동체 되게 하소서
4) 성령의 열매를 위해 서로 연합하게 하소서
#수련회를 위해서
5) 주께서 준비하시는 수련회가 되게 하소서.
6) 주님을 만나는, 주님을 보는 수련회 되게 하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 충만하심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겠노라 다짐한 자들과
예수께 받은 사랑, 선함을 이제는 우리가 베풀며 순환시킬 수 있도록 매순간 주님의 뜻에 벗어나기를 거절하기로 결단한 자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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