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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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신약에 나오는 단체 급식 사건
모든 복음서에 나옵니다.
먹은 사람 남자 성인 5천명
어마어마한 군중들
이것을 사실로 믿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성경본문을 통하여 기적이라는 것을 간접경험합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초월주의로 빠지면 안됩니다. 기적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문제가 되죠.
성경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접근해야 합니다.
기적이라는 것은 현대적인 시각으로는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현대적인 해석으로 오병이어를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해가 지도록 고침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대인은 철저하게 계산하는 사람들이기에 먹을 것을 모두 준비하고 왔을 것이다.
먹을 것을 내 놓으시오 라고 할때에는 내것을 다 빼앗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으로 자신의 도시락을 숨겼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어린 소년 하나가 자신의 도시락을 내놓고 그 도시락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숨겨놓은 도시락을 다 내놓고,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제자들이 기록할 때 5천명을 예수님이 먹이셨다고 기록했다는 것이죠. 어때요? 이렇게 하면 무언가 설득력이 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진짜로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일까요?
만일 예수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일만을 하신다면 왜 우리가 믿어야 하는가? 나랑 예수님이 다 같은 분이라면 뭐 하러 믿습니까?
그것은 바른 해석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곳곳을 통해 압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그 분이 그 기적을 당연히 일으키셨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우리가 그것을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배고픈 군중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얻을 교훈이 있습니다.
말씀을 한번 같이 봅시다.
13절 말씀을 보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라고 나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라고 시작합니다.
이것은 앞 절을 보면 세례요한이 죽은 소식을 들으시고 나서 예수님이 배를 타셨다는 것을 봅니다.
세례요한을 보면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것 자체도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빈 들로 가십니다.
그때에 예수님에게로 무리가 따라옵니다.
그 무리가 얼마나 되느냐? 바로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것처럼 남성만 5천명이었고, 여자와 아이까지 합하면 1만명이 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 무리가 찾아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14절 말씀을 한번 같이 읽어봅시다. 시작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동사입니다.
‘스플랑크논’이라는 명사에서 나온 단어인데, 스플랑크논은 연민, 동정, 자비로 번역되지만 원초적인 뜻은 ‘창자,내장’이라는 뜻입니다. ‘내장학splanchnology’이라는 의학용어도 이 어원에 근거합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우리말로 바꾸면, 예수님이 무리를 보자 ‘예수님의 애간장이 떨리고,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르신들이 ‘애간장이 탄다’고 하실 때, 그것이 바로 ‘스플랑크니조마이’인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동사가 기적을 베푸시는 동기로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29-37절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도 ‘측은한 마음이 들어’라는 말이 등장하는 데 그것 역시도 ‘스플랑크니조마이’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내장이 떨려서, 애간장이 녹고 끊어져서 그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들은 그 불쌍한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내장이 떨리지 않습니다. 애간장이 끊어지는 아픔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5:11-32절에도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탕자가 가산을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그 못된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엽니다. 여기서 ‘측은히 여기다’라는 말로 ‘스플랑크니조마이’입니다.
측은한 마음이 들고, 불쌍히 여기는 상태, 그것은 바로 내장이 활동한 결과요, 창자가 뒤틀려 참을 수 없게 된 결과입니다. 애간장이 녹고, 끊어지고, 창자가 꼬이고 뒤집혀서 생기는 마음이 ‘불쌍한 마음’이요, ’사랑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무리를 보실 때 늘 불쌍히 여기는 마음,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이 불쌍히 여기심은 인류의 모든 구원의 기초가 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기적, 역사, 구원은 이 단어가 뿌리입니다.
사랑하는 데트몰트찬양교회 성도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면 끝나는거에요.
최고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달려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제 딸이 잘못을 하고 나서 제가 혼을 내면 눈치를 보다가 제 품으로 쑥 들어와요~
아빠 화내지마 잘못했어~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게 어디서 똑바로 서! 라고 할까요?
아니에요. 이미 제 품으로 들어오는 딸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풀려요.
그래. 다시는 그러지마! 라고 이야기하고 꼭 안아주죠. 그리고 아빠도 화내서 미안해!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품으로 가야합니다.
우리를 보실 때 정말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 같은 아픔으로 보신다고요. 왜 일까요? 사랑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자신에게 달려오는 사람에게 오늘 예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14절 말씀 하반절을 보니 병자를 고치셨다고 나와요. 고치십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마을로 들어가서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로 와서 무리를 생각하며 이야기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쵸?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다르게 쓰여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입니다. 읽습니다. 시작!
요한복음 6장 3-5절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5절 말씀을 띄워주시고, 5절 말씀을 한번 보세요.
하반절에 보니까 예수님이 제자들 중에 재정을 담당하던 빌립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이 말씀을 보면 우리 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으로서 보면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어디서 라고 나와요.
어디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약간 이상하지 않나요? 떡을 어떻게 구입하면 되는지 물어봐야 할텐데 어디서라고 말하고 있어요.
어디서
이것에 대한 답을 예수님께서는 6장 후반에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31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요한복음 6장 31-35절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그 떡은 하늘로부터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에게로 오면 너희는 주리지도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오병이어의 사건은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주셨던 것을 보여줍니다.
오병이어는 단순히 하나님의 기적을 나타내는 수단이 아니였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무리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참 떡을 주시는 분이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떡을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주고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는 것을 봅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이 시대에 제자들은 하나하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16절 말씀을 한번 읽어봅시다.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사랑하는 데트몰트찬양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무리를 먹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무리들은 누구입니까?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에요.
이 무리들의 성격을 따로 성경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추측해보면 이럴꺼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소문을 들었으나 의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냥 궁금한 사람들. 그 외 등등등..
수 많은 성격과 종류의 사람들이 왔을 꺼에요.
그 사람들에게 오늘 예수님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여러분들 주변의 사람들이에요.
교회 친구들이에요. 학교 사람들이에요. 교수님들이에요. 직장 동료 직장 상사들이에요.
우리에겐 수 많은 무리가 있어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우리는 또한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참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먹이시는 예수님은 먹이시는 것과 동시에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주십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채워줄 때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에요.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도와주게 되요.
저도 사실 독일에 온지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 막 독일에 온 친구들을 보면 다 도와주고 싶어요.
핸드폰, 집구하는 것, 은행업무, 비자 신청하는 것, 잘 못하지만 독일어를 알려주는 것 까지 말이죠.
이건 어찌보면 당연한 마음일 수 도 있어요.
저도 그 때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까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온 마스터 1학기 학생들 데리고 이케아도 다녀오고 했던거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1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읽어볼까요?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이 구절은 아주 중요한 영적 질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다보면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될 때 “너희가 주라” 라고 마음을 주실 때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형편을 보니 절대 하기 어려운 상황인거에요.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보통의 사람들은 에이. 내가 도와줄수가 없어. 어쩔수 없지 뭐. 라고 생각하고 끝낼 때가 많아요.
그런데 오늘 말씀처럼 예수님에게 그 문제를 가지고 가면 그것은 예수님이 해결해주시는 문제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중보기도에요.
그렇게 예수님에게 가져가서 기도하다보면 그 사람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독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이기에 여러가지 문제나 고충, 어려움에 대한 것을 듣게 되요.
그때마다 상황이 안될때가 너무 마음이 아픈거에요.
제 차가 조금 더 컸다면, 제가 돈을 더 벌 수 있었다면, 제가 체력이 되었다면 등의 생각이죠.
그리고 그것을 놓고 제가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목사님 해결했습니다.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저는 정말 하나님께서 그렇게 채워주신다고 믿습니다.
저는 요즘 들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무엇인지 다시 경험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금요기도회였어요.
16일에 진행했던 금요기도회 속에서 기도하러 오신 분들을 위해서 기도 할 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눈물이 나고 저 사람이 잘되었으면 좋겠고, 잘 풀렸으면 좋겠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으면 좋겠고, 기도가 막 나오더라고요.
그러면서 나의 삶도 하나님이 따뜻하게 만져 주심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먹이시는 예수님께로 달려가십시오. 말씀을 통해, 찬양을 통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자연스럽게 채워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여러분 되시길 바래요.
여러분들이 가진 경험한 체험한 은혜를 나누는 것은 정말 기쁨이 되요.
만약 여러분들이 나눌 대상이 없다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누구보다 그 은혜를 듣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여러분들 앞에 있으니까요.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몇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넉넉하게 채워주신다.
넉넉히 채워주심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2광주리가 남았다고 하잖아요.
그게 바로 그 의미입니다.
채워주십니다. 할렐루야!
그 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삶 속에서 어려움도 힘듦도 수 많은 기도제목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서 힘든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 오병이어의 이야기처럼 해보세요.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을 믿고 여러분들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기도로 드리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받은 것들은 나누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들의 삶을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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