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하지 아니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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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98장 어둠의 권세에서
대표기도 : 김순단 권사(다음주:김정숙 권사)
[ 교회소식 ]
[ 말씀봉독 : 렘5:1-9 ]
Jeremiah 5:1–9 NKRV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 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 여는 말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어떤 가치관과, 어떤 만남들을 통해서 지금의 모습이 이루어졌는지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어떤 사람들은 먹는 것에 예민합니다. 유통기한이 조금만 지나도 불안해서 먹지 않습니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유통기한을 조금 지나도 상하지 않았다면 어느정도 먹을 수 있다고 말해주어도 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해가 갑니다. 장이 약한 편인데 유통기한을 지난 음식을 먹고 고속버스에서 탈이 나서 끔찍했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던 것이죠.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면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더 조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직업병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죠. 자신이 맡은 일에 열심을 다해 임하며 살아가다 보면 말과 행동방식이 거기에 맞춰지곤 합니다. 무언가를 볼 때마다 자신의 전문분야가 먼저 보이는 것은 열심히 살아온 증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악기를 전공하신 분들은 악기가 연주되는 것이 먼저 들리고 보이실 것이고, 건축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은 건축물의 구조와 기능적인 부분이 먼저 보일 것입니다. 위생을 관리하시는 분들은 위생상태에 대해 먼저 보일 것이고, 섬김에 힘쓰시는 분들은 섬길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먼저 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계속해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무엇보다 예배에 자리에 나아오셨을 때 먼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실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전문분야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서론적 배경 ]

제가 이렇게 배경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린 것은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두가지 배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첫번째 배경은 성령께서 본문을 기록하게 하신 예레미야 선지자의 배경입니다. 예레미야는 약 40년정도 사역했는데 요시야 왕 때부터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시기에 유다의 멸망을 직접 보았던 선지자인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요시야 왕 때에 ‘율법서'가 발견되면서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이 죽고 난 뒤 그의 후대 왕들은 개혁을 무효화시켰고, 애굽의 봉신이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거부하고 말씀을 담고 있었던 두루마리를 불태워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었던 유다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영적간음을 저지르며, 자신들을 책망하는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평강하다, 평강하다'라고 말해주는 거짓 선지자들을 좋아하며 따랐습니다. 유다는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전철을 밟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했고,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배경 한가지는 오늘 말씀 1절을 통해 보겠습니다. 렘5:1
Jeremiah 5:1 NKRV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혹시 이 말씀을 보면서 생각나시는 구약의 역사가 있지 않으십니까?
Genesis 18:25–26 NKRV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본문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실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만듭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있어서 최후의 통첩은 무엇이었습니까?
Genesis 18:32 NKRV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바로 의인 10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고 용서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평가된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풍요로웠지만 악하고 음란한 도시로, 롯이 영접했던 손님들을 강간하기 위해 그 도시 사람들이 몰려왔던 것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 열명이라도 있으면 멸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를 대상으로 한 하나님의 말씀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어야 우리는 오늘 말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본론 ]

그럼 이제 본문 말씀을 2-3절을 보겠습니다. 렘5:2-3
Jeremiah 5:2–3 NKRV
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백성들은 거짓된 삶, 속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맹세를 지키지 않기 일쑤였고, 애초에 속이기 위해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행동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모욕하는 행위였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과 견책하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거짓된 삶을 계속해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 진실된 삶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이득을 위해 팔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모욕하는 것인 것처럼, 여호와의 살아계심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믿음으로 맹세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의 죄악된 백성들의 모습처럼 완악한 마음 가운데 놓여있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던 것처럼 ‘부드러운 살 같은 마음(11:19)'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고백과 삶의 모습이 분리되어버린 거짓된 삶을 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과 일치하는 삶으로 우리의 고백이 진실됨을 보여주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이 완악함 가운데 놓여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상태에 놓여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 안에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믿음으로 받고 회개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붙들며 회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부드러운 살 같은 마음을 가진 주님의 자녀들임이 분명할 것이고, 우리의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모습일 것입니다.
다음으로 4-6절 말씀입니다. 렘5:4-6
Jeremiah 5:4–6 NKRV
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배경에서 우리는 유다 백성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을 후대가 무효화시키고, 애굽의 봉신이 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불태워버리고, 참 선지자들을 죽이며, 거짓 선지자들을 기뻐하며 따랐던 그들의 모습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어서 고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비천한 유다 무리들은 여호와의 길로 가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지도자들 마저도 ‘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들도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로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법’을 표현하는 단어는 앞서 1절에서 용서의 조건으로 찾아야하는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에서 ‘정의'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은 정의를 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정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패역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정의를 알지 못하고, 따르지도 아니하고 불의와 악을 저지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속박되지 않고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었습니다. 이러한 찬양이 있습니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거룩한 땅에서 주께 예배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주께 매여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요, 우리에게 마땅한 길이요, 가장 안전하며, 평안하며, 풍요로운 삶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는 무언가에 속박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결혼하지 않는 청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의무에 속박되는 것이 싫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것을 포기하기 싫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속박되는 것이고, 그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고, 자신을 내어놓고 지켜야 할 것을 지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매여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온갖 의무들 가운데 희생과 헌신만을 요구하는 불합리한 속박과 불행인 줄로 아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담대히 선포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은 사랑의 의무와 헌신과 희생 가운데 가장 주 안에서 행복하며, 즐거움이 가득하며, 영혼의 흘러넘치는 풍요로움과 평안함과 소망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 우리를 부르셔서 사랑으로 속박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진정한 안식과 평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피할 피난처가 오직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6절 말씀은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과 기타 이방나라들을 의지하려고 했던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고발해줍니다. 사자와 이리와 표범들이 그들을 찢고 죽일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Jeremiah 5:7–9 NKRV
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 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만연한 우상숭배와 영적인 간음과 도덕적 부패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1절 말씀과 결부하여 생각할 때에 더욱 강력해집니다.
Jeremiah 5:1 NKRV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소돔과 고모라는 몇 명의 의인이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까? 10명입니다. 그런데 여기 예루살렘 거리는 어떻습니까? ‘한 사람'입니다. 그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열 명’이었는데, 예루살렘은 ‘한 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준을 낮게 부르십니까? 거룩한 도성이라고 불리었던 예루살렘에 하나님께서는 ‘열 명' 이상을 부르셔야 하지 않습니까? 한 ‘백 명', ‘천 명'은 부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루살렘 체면이 뭐가 됩니까. 하나님의 이러한 표현은 우리에게 유다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해줍니다.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으로서 그 특권을 얼마나 많이 받아누렸습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법이 있었고, 성전이 있었고,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저 멸망당해 마땅했던 소돔과 고모라보다 못한 상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의 침공에 멸망당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셨던 소돔과 고모라보다 못한 것이 유다의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오늘 본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의 심각한 영적 상태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심판의 마땅함에 대해 말씀하시는 이 말씀에서 마땅하지 않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유다는 70년의 유배가 끝나고 다시 귀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노하시지만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남기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구원의 약속이 계속해서 흘러가게 하셨습니다. 그 긍휼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 살았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마땅하지 아니한 구원의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를 주시고, 부드러운 살 같은 마음, 회개하는 심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되게 하셨고, 거짓된 인생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삶을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주의 사랑에 매여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우리는 즐거워하며, 풍요로움을 누리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참 행복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 오실 그날 우리는 완전한 지복의 상태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 결론부 ]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Romans 5:20–21 NKRV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죄악된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깨닫게 될수록 주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더욱 알게 됩니다. 유다의 심각한 타락의 상태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보복하시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한지를 물으셨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마땅하지 아니한 긍휼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더욱 크게 다가와야 마땅할 것입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 주의 긍휼의 풍성하심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 풍요로우심 가운데 더욱더욱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삶의 모습들이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배경으로 이루어져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여호와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 곧 의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배경으로 그를 힘입어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기 위해 주께 헌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들을 여전히 찾으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 주기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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