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3 금요기도회 : 시편 9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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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거처가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주간 저희의 죄를 돌아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저희의 잘못된 욕망을 따라 살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저희는 연약하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강하신 줄 믿으니 인생의 연약함을 넘어 하나님의 강하심을 의지하는 저희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이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강하신 분이신지를 알게 해주시옵소서. 저희의 부르짖음과 간구를 들어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기도회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90 편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90 NKRV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시편 90편의 말씀입니다. 이 시편은 표제에서 볼 수 있듯이 모세의 기도인 시편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 전체가 간구의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시편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보자면 1-6절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고백, 그리고 7-17절은 간구 기도로 되어 있습니다.
각 부분을 또 두 개씩 나눠보자면, 1-2절은 영원한 거처이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며 3-6절은 하나님에 반해 연약한 인생에 대한 고백으로 되어 있고, 7-12절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는 지혜를 달라는 간구이며 13-17절은 하나님께 돌아와달라는 간구로 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대조시키면서 하나님의 강하심을 더욱 부각시키며 그것을 토대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세하게 어떤 내용을 시인이 기도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방금 말했듯이 시인은 우리 인간의 삶이 얼마나 연약한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3절부터 보시면 인간은 티끌에서 창조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티끌은 원어로 봤을 때 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은 창조하시고,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타락했다는 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6절에서 시인은 인생을 풀로 비유하며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방은 아주 메마르고 햇빛이 강한 지역입니다. 모세가 지난 세월 살았던 광야는 물조차 구하기 어려운 사막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풀이 아침에 자라지만 메마른 땅과 강렬한 햇빛으로 금방 시들어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인간은 언젠가는 이 땅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흙으로 돌아갈 존재이며 메말라버릴 풀과 같은 아주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처럼 일반적인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시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고백합니다. 7절부터 보시면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에 소멸되며 하나님의 분노하심에 놀라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에 소멸되며 분노하심에 놀라는 존재입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절인 8절을 보시면 시인은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은밀한 죄를 그분의 얼굴 앞에 두실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서 알고 계시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에 소멸되며 분노하심에 놀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여기서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연약한 존재임을 말합니다.
이러한 연약한 존재인 공동체는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년의 삶이 수고와 슬픔뿐이며 신속히 가기 때문에 날아간다고 10절에서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이 70년, 길면 80년까지 살 동안 어렵고 짧은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임을 시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30년도 채 살지 않았지만 긴 세월을 보내신 어르신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해가 지날 때마다 “시간 참 빠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빠르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인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처럼 삶이 어렵고 짧다는 것을 알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두고 기도하고 싶으십니까? 히스기야 왕처럼 죽음을 막아달라고 기도하거나 불행을 제거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저라도 그렇게 기도하고 싶을겁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인은 다른 것을 두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11-12절에서 영원히 사는 것처럼 살기를 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합니다. 지혜는 참된 방식으로 삶을 사는 능력을 말합니다. 시편 뒤에 있는 성경인 잠언은 지혜가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지혜라고 가르칩니다.
짧고 어려운 삶 속에서 이것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 바로 이것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거처이심을 고백합니다. 유심히 살펴볼 부분은 병행구를 사용하고 있는 1절의 ‘대대에’와 2절의 ‘영원에서 영원까지’라고 말하는 곳 입니다. 대대라고 번역된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사실 ‘세대에서부터 세대까지’입니다. 다시 말해 세대에서부터 세대까지, 그리고 영원에서 영원까지 라는 병행구를 사용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적, 그리고 초월적 영역들에서 창조 이후로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돕고 계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움은 단순히 창조부터가 아니라 2절에서 알 수 있듯이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주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유일한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처럼 하나님만이 피할 수 있는 거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13절에서 불쌍히 여기셔서 돌아와달라고 간구합니다. 돌아오여서 죄인인 자신들의 죄 때문에 고난당하도록 한 데서 돌아오도록 하고, 비참함에서 기쁨의 자리로 옮겨 주시기를 원합니다. 시인은 유일한 거처이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지 마시고 고통 속에서 구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정리하자면, 시편 72편의 기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짧고 비참한 삶을 허락하신 사실에 한탄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대가로 내린 심판의 결과라고 이해합니다. 그는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태도를 바꾸고, 이제 고통을 경험하는 곳에 기쁨을 허락할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려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삶은 짧고, 어려우며,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고통 속에 있는 것이 마땅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정해진 미래 속에서 허덕이고 살아야 할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이 무엇입니까? 바로 시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거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거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짧고 어려운 삶을 사는 동안 피할 곳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죄의 심판에서 구원해달라고 간구할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밝히 보이는 소망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1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또 14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니 자신을 믿으면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리스도께서는 부활과 십자가로 성취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통해 죽음 이후의 성도의 삶은 그대로 끝이 아니라 부활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에서 죄로 심판 받아야 할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짧고 어려운 삶 뒤에 부활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기쁨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예비하러 가신다는 그 거처를 우리가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모두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셔서 우리의 거처를 지금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죽음 이후에 우리의 거처가 되신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삶에 소망이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신 그리스도께 나아가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예비하신 거처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참으로 어렵고 짧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하셨다는 것을 감사한다고 기도합시다. 또한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는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두 가지를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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