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 떠나 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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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views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삼으려는 자들과 그들의 의도를 아시고 그들을 떠나심을 통해 우리가 소망하는 바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비교를 통해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Notes
Transcript
기적을 베푸신 후의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신 후의 예수님은?
기도의 자리에 오신 성도님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너무나도 유명한 말씀입니다.어느 정도로 유명하냐면 믿지 않는 사람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오천명, 이 수에 들어가지 못한 여인과 아이 그리고 소외된 모든 사람들까지 추측하여 합하면 약 이천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말씀만 보았을 때는 이 기적이 얼마나 크고 말도 안되는지 짐작 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각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이 사진을 가득 채운 인원이 딱 이천명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 예배당의 최대 수용인원이 약 300명 정도로인데 그것에 7배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음은 오병이어를 상상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저 뒤쪽 언덕에 빼곡하게 서있는 사람이 보이시나요? 사진과 그림을 참고하여 오병이어가 펼쳐지는 당시의 장소를 한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음식을 나눠주시는데 이상하게도 음식이 줄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글자로만 오병이어를 생각할 때 그것이 와닿지 않지만 상상력을 더하여 당시의 일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말이 되는가 싶을 정도로 오병이어는 정말 엄청난 사건입니다. 추측컨대 아마도 그 자리에서 배불리 먹은 어떤 사람은 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고 이 일이 어찌된 일인가 하고 보고 있던 무리들과 제자들은 놀라서 예수님을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4절에서 15절의 말씀과 같이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세워드리자!” 무리가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그 때, 그들의 마음의 계획을 아셨던 주님은 무리를 떠나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습니다. 오늘은 이 무리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행하심 가운데 있었던 차이를 비교해보며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오병이어를 통하여
오병이어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 기적은 마치 구약 시대의 한 사건과 그 사건 속의 음식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것은 출애굽 사건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굶주릴 때 그들에게 주셨던 맛나입니다. 만나는 아침 이슬같이 내리던 신비한 음식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하나 아침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준비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나는 정말 신기한 음식입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의 기적도 비슷합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이천명의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배부르게 다 먹고도 열두광주리가 남았다고 말합니다. 이천명이 먹을 음식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요? 저는 이 기적에 대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함께 세상이 있기 전에 세상을 창조하셨던 분입니다.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셨고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에게는 배부르게 먹을 음식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어떻게 하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창조의 권세를 가지셨고 그것으로 무리들을 먹이셨으며 복음서의 기자들이 이것을 증언한다는 것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를 지니신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성자 예수님임을 믿습니다.
왜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셨는가?
왜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셨는가?
그런데 그 자리에서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품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단순한 예언자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현재의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줄 모세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삼으면 과거의 찬란하고 놀라웠던 이스라엘의 영광이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우리 함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의 말씀입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이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시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참 예배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신 목적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는 자로 회복시키시려고 또한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여 그 사랑과 보호하심 속에서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세상의 왕이 되셔서 무리들이 소망하는 바를 이루실 수도 있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소견에 좋아 보이는 대로 하는 것은 사람에게 순간의 만족과 위안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참된 만족을 줄 수는 없습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로 인하여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죽음이라는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 죽음에 대해 많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죽음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생명이 잉태되어 자라는 그 순간부터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인 문제가 됩니다. 죽음 앞에서는 부자도 가난한자도 똑똑한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가 평등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신 이유는 우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함입니다. 죄와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 천국의 기쁨,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자 주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무리들은 눈 앞의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추대함으로 현실 속의 여러가지 문제를 주님께 맡겨 해결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뜻을 이룸으로 순간의 만족을 누리고자 했습니다. 무리들의 의도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안타까워하셨지만, 그들과는 절대 함께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떠나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무리를 떠나셨던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 계획을 이루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곧 하늘에 오르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으며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모든 곳에 편재하시고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과 동행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우리 내면에 여전히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무리들이 간절히 소망하던 그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앞서 무리들이 의도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뜻과는 전혀 관계 없는 세속적인 것들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들의 의도와 마음의 중심, 그 동기를 아셨던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멀찌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살아갈 때가 왕왕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내 중심을 비춰 스스로 매일 겸비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을 주관하시고 계획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우리의 인생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의 삶을 추동하는 힘이라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 추동하는 힘 가운데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나 계획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로봇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지만 하나님께로는 한없이 가까워진 상태입니다. 구약의 모세를 비롯하여 여러 선지자의 모습을 성경의 말씀 속에서 찾아보면, 그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뜻과 계획이 아닌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살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 때로는 하나님께 따지기도 하고 화도 내며 마치 친구같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회개를 외치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로 인하여 모진 수치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주의 말씀이 타오르는 불길 같아서 그의 뼛속에서 사무치니 답답하여 하나님의 일을 멈출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자신에게 주어신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사도들과 제자들 또한 로마와 유대교의 핍박 속에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기쁨으로 이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삶을 살아내야 하기에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여러가지로 준비하고 계획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추동하는 궁극적인 방향이 무엇인지 우리는 확실하게 점검해봐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추동하는 힘인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망각한 체,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여 인생을 준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오늘 말씀의 무리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방향성, 목적성은 하나님 사랑,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명확히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이를 위한 유일한 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곡의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답을 찾은 한 사람을 소개시켜드리고자 합니다. 그 사람은 감리교의 아버지인 존 웨슬리 목사님입니다. 그가 감리교 운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개척되고 있던 미국 땅에 선교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선교지로 배를 타고 가던 중 그 안에서 독일에서 온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웨슬리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형제여, 주 예수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이러한 질문이 처음이었던 웨슬리 목사님은 “나는 그가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셨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독일 목사님의 질문을 통해 웨슬리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시고 예수가 나를 위해 피 흘리셨다는 사실을 믿는 확실한 믿음도 없고 자신의 마음속에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그후 그는 미국 선교지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도망치듯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웨슬리 목사는 자신의 믿음 없음으로 인하여 슬피 울며 처음으로 자신이 가련하고 연약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믿음과 구원을 갈망하던 어느 날, 불현듯 참여한 어떤 집회에서 한 사람이 읽고 있던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의 말씀이 웨슬리 목사님의 마음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이때 경험했던 구원의 기쁨을 웨슬리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주께서 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제거하셨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믿음과 구원의 확신을 얻은 후, 웨슬리 목사님은 복음을 듣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말을 타고 영국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증거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얻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에 쏟아 부웠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 속에서 사랑과 감사와 열심으로 화답했던 존 웨슬리의 기도로 지금의 감리교를 세웠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소망을 두는 무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주님의 날에 다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의지합니다. 맡기신 것에 성실과 열심으로 화답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곡 교회의 성도들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곡의 성도 여러분 무리들이 갖고 있던 죄의 본성을 벗어버리시고, 모든 것을 맑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 오실 그 날을 기대하며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