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3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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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

여러분 모두 이 자리에서 만나 반갑습니다. 우리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인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읽었던 말씀 마지막 구절에 나온 것처럼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인사해볼게요.
네. 여러분들 지난 한주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마 대부분이 지난주에 시험을 끝내시고 종강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다들 이제 고생들은 마무리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만을 누리는 방학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방학을 그저 놀면서 누리기 전에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 하나 있죠? 바로 27차 하임 캠프입니다. 이제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모임도 시작하고 캠프 준비모드로 들어가게 될 것 같아요! 아마 여러분들도 이에 대한 기대감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캠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로마서 말씀인데요, 이번 주제 말씀이 또 로마서이고, 그래서 우리가 로마서를 또 열심히 읽을 것이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로마서를 여는 개론?의 느낌으로 함께 로마서의 세계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자, 오늘 말씀, 로마서를 시작하는 1절의 말씀은 어떻게 시작하나요?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 로마서는 편지글이잖아요? 대부분이 편지글이 그렇듯이, 발신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사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보는 1절부터 7절까지의 말씀은 모두 바울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이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가 알아야겠죠?
사도 바울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다른 성경말씀을 함께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뿐만 아니라 다른 서신에서도 자신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사도행전 22:3 NKRV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빌립보서 3:5 NKRV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이 구절만 보더라도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잘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울은 말 그대로 엘리트 유대인이었어요.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나 바로 할례를 받을 정도로 율법에 열심이 있는 집안이었고, 심지어는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율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이 되었죠.
결국 이 바울이라는 사람, 아니 당시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이었죠. 이 사울이라는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가장 최고의 교육을 받고 지위도 상당한 말그대로 금수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이 있다고 하니, 정말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춘 상류층 유대인의 모습을 갖춘 사람이 이 사울이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이 사울은 청년시절 유대교 이단을 처단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바로 예수라는 자를 믿고 다닌다는 그리스도인들이었죠.
그가 얼마나 열정이 있었는지,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이라는 곳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 다녔을 정도였던 것을 보면, 그는 유대인으로서 앞장서 행동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예수님을 만나게 되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눈이 멀게 되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시력을 회복하고 그 자리에서 회심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도 바울이 탄생했죠. 유대 사회에서 가장 기대받는 엘리트 금수저가 갑작스럽게 그들 입장에서는 이단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죠.
그러면서 바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이전 사울의 시기 자신이 가졌던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엄청난 일이었어요. 아마 그대로 사울의 모습으로 그가 살아갔더라면, 유대 사회에서 고위직은 당연하고, 아마 로마제국에서 고위관리로 살아갔을 수도 있었을거에요. 심지어는 유대 총독도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다 내던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말씀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말이죠.
이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사울이었을 시기 그는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다스리는 자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종이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죠. 이어서 나오는 말씀구절처럼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모든 남은 삶이 사도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될 것임을 바울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주신 복음 단 하나때문에 그는 모든 보장된 세상적 즐거움을 버리고 고난의 길, 종의 섬기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사명으로 그가 여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이었길래 바울을 그 자리로 이끌었을까요. 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자신을 변화시킨 복음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합니다.
2절을 보면 이 복음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하죠.
그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유대적 교육을 통해 구약의 말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메시야의 존재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그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합니다.
이어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울은 설명합니다. 3절에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절에서 영으로는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두 가지 성품, 인성과 신성을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 그 자신이시지만, 분명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죠. 바로 다윗의 혈통으로 말이죠.
다윗의 혈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선지자들로부터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 즉 이스라엘의 왕족일 것임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울이 인식한 예수님은 말씀에 예언된 그대로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영으로는 부활하셔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간단하게 보면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는데 부활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이것은 그러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러한 하나님으로서의 신성을 부활하심으로서 우리에게 확실히 나타내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몇몇 제자들을 제외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대단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겠지만, 그분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면서 그러한 이들에게까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3절과 4절을 통해 간단하게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정리합니다. 또한 이를 통해 예수님이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사역을 함께 이루시는 분이심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당시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 출신과 이방인 출신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이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사역들을 분리하여 생각하려는 이들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적용하려 했을 것이고, 이방인들은 그것보다는 예수님의 사역만을 바라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구약과 신약을 모두 관통하여 이루신 사역임을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서 로마의 성도들에게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울은 그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로마의 성도들과 같은 이방인들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음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자신이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사역동안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났기 때문에 자신도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다른 사도들과는 다른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역한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사도로서 이방인인 로마 성도들에게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드러냅니다.
말씀을 잘 알아도 예수님의 존재를 몰랐던 유대인 엘리트 사울에서,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진정으로 알게 된,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사도로서 나아가는 바울의 모습을 성도들에게 보인 것이죠.
그리고 바울은 6절과 7절을 통해 그 복음이 자신 뿐만이 아니라 이 말씀을 듣는 로마의 성도들에게까지 부르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이전까지는 예수님을 몰랐기에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갔겠지만,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믿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작정했던 것이죠.
당시 로마지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마이너리티 중에서도 마이너리티의 삶을 사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로마가 어떤 곳이에요. 제국의 수도입니다. 제국이라는 것은 수많은 나라들을 거느린 국가입니다. 그 나라들의 수많은 종교들도 함께 들어오게 되겠죠. 그래서 판테온이라는 만신전이 로마에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러 종교들 중 하나인 유대교, 또 그 유대교에서 이단으로 여겨지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으로 그들이 살아간다라는 거에요. 당연히 비주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겠죠.
아마도 그들은 로마 제국 속의 삶에서 어쩌면 이해받지 못하고 고난을 당하는 삶을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사는 그들에게 바울은 마지막 7절에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합니다.
비록 세상에서의 삶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성도로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변화된 삶을 살기로 작정한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와 평강을 주실 것임을 바울이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전하는 인사의 말입니다.
검증된 유대 금수저의 삶에서 이단의 사도로서의 삶을 택한 바울, 그리고 이전의 즐거운 삶에서 벗어나 작은 이방의 이단 종교를 따르기로 한 로마의 성도들, 모두 세상이 바라지 않는 비주류의 삶을 택한 이들입니다.
이들이 그 길을 걷도록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바로 단 두글자.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이끌었던 이 복음의 진정한 내용을 로마 성도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어지는 말씀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1장 17절의 말씀으로 대표되는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짐, 이신칭의라는 복음의 정수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뒤이어 성도로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또한 살아갈 로마의 성도들에게, 어떠한 삶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인지를 나타내고,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며 말씀을 기록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바라볼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어떤가요 여러분, 여러분들은 로마서를 마주하면서 어떠한 마음을 갖고 계신가요?
어쩌면 그냥 어려운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인식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성경의 말씀이 그렇듯, 이 로마서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이 말씀의 수신자가 로마교회의 성도들 뿐만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어쩌면 각자의 삶에서 정말 좋은 삶들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나름 공부도 괜찮게 하고, 가슴 속에는 웅대한 꿈을 품고 있고, 심지어는 정말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서 부러움을 받는 위치에 설 수도 있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남부럽지 않게도 살아갈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여러분들,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이 종강 후 불타는 금요일의 밤에 여러분들은 이 교회에서 그렇게 막 재밌지도 않은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누가 칼들고 협박을 했나요? 아니죠. 여러분들께서 스스로 택하셔서 이 자리로 왔습니다.
바울이 그랬고, 로마의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마이너리티의 자리를 찾아 나아온 것이죠.
여러분들을 이 자리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요? 돈? 명예? 아니죠. 그런 것을 좇았다면 지금 홍대에 가있겠죠.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이끈 것은 바로 바울을 이끌고 로마 성도들을 이끌었던 ‘복음’입니다.
여러분들은 복음 이 두글자 때문에 자신의 즐거운 삶을 내려놓고 스스로 고난의 자리로 나아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그럴지 모르나,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은혜와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울과 로마 성도들에게 명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 복음을 선포하고 전하도록 명하시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자리를 마련하셨습니다. 바로 어디죠? 그렇습니다. 우리의 27차 캠프의 자리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복음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시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은혜와 평강을 우리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 자리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약 한달여 남은 기간동안 우리가 캠프를 위해 준비할텐데요, 저는 준비팀이 아닌데요? 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준비팀들이 모여서 여러가지로 노력하여 준비하기도 하겠지만,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모여 기도로 준비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기계신 모든 분들, 함께 기도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캠프를 놓고, 캠프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로마의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또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복음이라는 이 두 글자의 말씀을 통해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로 준비하며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에게도 주셨던 것처럼, 모든 캠프의 자리에 은혜와 평강으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 주님의 함께하심을 믿으며 앞으로의 모든 준비가운데 기도로 동역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찬양하겠습니다. 주님이 이 자리에 부르신 것, 주님의 크신 실패하지 않으시는 계획이라는 것을 함께 고백하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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