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미치는 하나님나라의 영향력<L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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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복음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연합, 그리고 세상에서의 책임감 있는 봉사 등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정치적 참여 모두가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확증합니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우리의 믿음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필수적인 표현 방식입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구원은 개인과 사회 전체를 변화시켜야 하는 통전적인 복음입니다.
여기에서의 포인트는 우리가 선포하는 구원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변화시켜하는 통전적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전도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의 책임감 있는 봉사, 사회적, 정치적 참여 모든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제가 심방전화할때, 어떤 지체가 정치계 쪽에서 일하시는 분이였어요. 그런데 그분이 기도제목을 낼때 세속적인 영역에서 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잘 따라가게 해달라고 기도부탁을 하셨어요. 그래서 어떤의미로 기도제목을 말씀하셨는지는 알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체님이 일하시는 영역은 세속적인 영역이 아니라, 그곳도 하나님의 통치와 나라가 임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따라가는 것이 너무 귀한 것 같습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교회에서의 일은 거룩하고 세상은 세속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곳이죠.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가 오게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오게 하는 통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로잔언약 13항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주되신 영원한 한 분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과 목적에 따라 만물을 통치하십니다.
그는 자기를 위해 세상으로부터 한 백성을 불러내시고 다시 그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어 그의 나라를 확장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그의 부름 받은 백성을 그의 종과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 동화되거나 세상으로부터 도피함으로 우리의 소명을 부인하고 우리의 사명에 실패하였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이를 고백합니다. 그러나 비록 질그릇에 담겼을지라도 복음은 귀중한 보배임을 기뻐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 보배를 널리 선포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하려고 합니다.
로잔알아가기 1번 질문을 봅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선택하시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를 세상으로 부르시는 이유는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증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보내시는 이유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의 몸, 교회로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고 세상으로 나아가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인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온전히 받을때, 세상 가운데에서도 그분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올 수 있도록 온전히 쓰임 받을 수 있겠죠. 그러나 때론 우리는 연약하여 오히려 세상의 동화되거나 세상으로부터 우리의 소명을 부인하고, 사명에 실패하여 부끄럽게 여길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잔알아가기 2번 질문입니다.
질그릇 안에 담겨진 귀중한 보배는 무엇인가요?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쉽게 깨지는 질그릇과 같은 존재일지라도, 우리안에 그 귀중한 ‘복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교회는 이 ‘복음’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 있습니다. 비록 연약한 질그릇에 담겼을지라도 복음은 귀중한 보배임을 기뻐하며,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선포되는 일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하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 되신 것과 예수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의 종 된 것을 전파합니다.
“어둠에서 빛이 비치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는데 이는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방으로 환난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1번 질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무엇을 전파한다고 말하나요?-5절
5절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선포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무엇인가요? ‘주'는 헬라어로 ‘퀴리오스'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분의 ‘주인되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죠.
온 땅과 만물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삶에, 내삶에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주인되었고, 그렇기에 이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복음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주인되심에 순복할때, 하나님 나라가 우리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내려오심으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통해서 사탄의 죽음과 모든 악 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사탄과 죄로부터 오는 모든 죄악의 권세로부터 해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분이 내삶의 주인되심을 선포하며 그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신학적 용어로 Already but not yet이라고 합니다. 이미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분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될 것입니다. 아직 우리는 불완전합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죄가 팽배하고, 어둠은 짙어지고 세상의 거친 폭풍에서 우리는 깨지기 쉬운 연약한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그릇 안에 담겨진 보배인 복음을 바라볼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주인되심 앞에 순복할때,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이 땅에서 연약하여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들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위대한 사도바울조차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비유합니다. 지난주에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도바울은 말도 잘하지 못했고, 대머리 였고, 건강이 좋지 못했습니다. 육체의 연약함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간구했었습니다..
이런 연약함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연약한 육신인 질그릇안에 담겨진 복음의 광채,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며 나아갈때 바울은 놀라운 복음의 사도로 쓰임을 받습니다..
첫번째 적용질문입니다. 1 질그릇인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질그릇은 실제적으로 고대 근동 지역의 각 가정마다 구비된 평범한 물건이었다고 합니다. 그 그릇은 값이 나가지 않았고 잘 깨졌다고 합니다. 수리가 가능한 금속 그릇이나 녹여서 재활용이 가능한 재질로 된 유리 그릇과 달리, 질그릇은 한 번 깨지고 나면 버려져야 하는 그릇이죠. 그리하여 질그릇들은 값이 저렴하고 본질적으로 귀하지가 않은 그릇이었습니다. 바울은 시장에서 값싸게 팔리는 작은 질그릇 등잔을 염두에 두고 표현한 것이죠.
우리가 이런 연약한 질그릇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환난과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7-8절을 다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영광스러운 복음을 연약한 질그릇인 우리 안에 품고 있는데.. 그 이유를 지극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세상에서 환난과 답답한 일들 당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죠.
디모데후서 1:8 (DKV)
그러므로 너는 우리 주에 대해 증언하는 일이나 주를 위해 내가 죄수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아라.
사도바울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요구되었듯이, 고난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우리의 선교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것 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좁은 문, 좁은 길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기 이 땅에서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된 존재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고자 할때 많은 환난과 답답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정에서, 우리의 일터의 각 영역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고자 할 때에 고난이 있을 수 있지만,, 사도바울은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사도바울은 두려워하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1:7 (NKRV)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아들 디모데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움이 아니란다. 두려움에 머물지 말아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사랑의 마음을 주시고, 절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들고, 사회의 모든 영역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열방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그것이 사회 속에서는 억압받는 자들을 위하여 주는 모습일 수 있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정의를 실천하는 것 또한 복음의 요소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4:17–19 (NKRV)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영역과 모든 문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깊게 스며들게 해서 그 문화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광채의 충만함이 드러나게 해야합니다. 그렇게 구현된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모든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상황에서 복음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통해서, 복음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영역 에서 사랑의 삶과 섬김의 모습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 나라가 모든 문화와 사회의 모든 영역속에서도 그분의 나라가 통치가 임하게 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적용하기 2- 지금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하나님께서 질그릇인 나를 복음 전파를 위해 사용하고자 하시는 곳은 어디일까요?(가정, 직장, 학교 열방 등)
찬양 - 주의 나라가 임할때
기도
주님 연약한 질그릇인 저를 통해 복음이라는 귀한 보배를 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비록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일지라도,, 질그릇인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한번 복음 앞에 서기 원합니다.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머리로 아는데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랑의 넓이와 높이 깊이의 풍성함을 경험케 하옵소서..
연약한 질그릇으로 깨어짐을 경험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다시한번 그안에 담긴 복음,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일으켜 주옵소서. 복음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
2. 주님, 이 복음과 함께 우리의 삶의 각 영역으로 나아갑니다.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열방으로 나아갑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난을 돌파하게 하옵소서. 각 사람 위에 성령의 기름부음과 충만함을 허락하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의 곳곳에 복음의 증인으로서 나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정의와 통치가 이땅에 임하게 하도록 우리를 사용하옵소서! 나를 보내주옵소서 라고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