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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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말이 옳은 것인가?
누구 말이 옳은 것인가?
과거에 비해 우리 시대에는 무언가 일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는 대표자나 리더의 의사가 가장 중요했다. 사장님의 뜻, 가정에서는 가장의 뜻, 교회에서는 목사님의 뜻 등 대표자의 의견을 따라가다 보니, 일을 진행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하지만 이런 시대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 있었다.
각자의 마음과 각자의 사정이 무시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시대에는 구성원의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많이 한다. 물론 구성원들이 모두 같은 의견이면 너무 좋겠지만, 사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하나 되지 않는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목사가 생각할 때에 이것이 맞다고 여기는 데, 성도들의 삶이 또 쉽지가 않다. 그것을 무시하고 가면, 성도들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는 목회자가 되고, 또 전부 헤아리다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럴 때.. 가지는 질문이 생긴다. 무엇일까? “누구 말이 옳은 것인가?”
오늘 우리는 에스더의 시작을 보게 된다. 페르시아라는 제국에서 벌어진 이야기이지만, 여기에는 우리의 인간사를 담고 있다. 함께 살펴보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저녁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1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아하수에로(Ahasuerus) 인 אֲחַשְׁוֵרוֹשׁ(아하쉬예로쉬, ‘위대한 사람, 힘센 자’)
1. 헬라식으로는 ‘크세르크세스’(XerxesⅠ, 에1:1). 정복 왕 다리오 1세(다리오 히스타스페스)의 뒤를 이어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127도의 광활한 바사 제국을 통치했다(B.C.486–464년).
영화 300에 나왔던 왕이 바로 아하수에로 왕이다. 그가 왕이 되고 제 3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3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3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는 페르시아의 장수와 귀족과 지방관들 모두가 모여 있었다. 이 잔치를 얼마동안 했는가? 180일을 했다. 6개월간 잔치를 벌인 것에 대한 결과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 4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4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리라..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던 아하수에로는 백성들을 생각했다. 그래서 왕궁 후원 뜰에서 7일 동안 또 잔치를 베푼다.
이렇게 왕의 권위가 엄청나게 드러났던 것이 에스더서의 배경인 것이다. 그럼 이제 본문을 보자. 9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왕 뿐만 아니라 왕후인 와스디도 여인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 왕후에게 어느 정도 권한이 있었다는 것.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10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주흥이 일어났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11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12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13 왕이 사례를 아는 현자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14 그 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15 왕후 와스디가 내시가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까
16 므무간이 왕과 지방관 앞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했을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의 관리들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17 아하수에로 왕이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여인들에게 전파되면 그들도 그들의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18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지방관들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19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20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여인들이 그들의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하니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21 왕과 지방관들이 그 말을 옳게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22 각 지방 각 백성의 문자와 언어로 모든 지방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이 자기의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언어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여기에는 인간사가 들어 있다. 하나님이 이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세 가지로 알아보자.
1. 각자의 입장에선 모두가 맞는 말이다.
1. 각자의 입장에선 모두가 맞는 말이다.
아하수에로의 입장.
제국의 왕이다. 상식적으로 와스디가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10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일곱 명의 내시를 보냈다가 개망신을 당한.... 분노할 만 하다..
와스디의 입장.
12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19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므무간의 입장.
13 왕이 사례를 아는 현자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14 그 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지혜를 물었는데, 왕의 기분에 공감함. 이게 사건의 발단. 하지만, 므무간은 왕 앞에서는 파리 목숨과도 같다. 눈치를 볼 수 밖에.... 지혜를 발휘했다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왜? 왕이 분노했기 때문에....
므무간이 제시한 솔루션은 너무 과한 게 아니냐? 아니, 므무간은 왕의 가정보다는 나라의 기강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제일 옳은 말을 했는가? 각자의 입장을 보면, 다 맞는 말이다. 우리도 그렇다. 국가 위정자의 말이건, 국민의 말이건.. 직장에서 사장의 말이건, 직원의 말이건.. 가정에서 부모의 말이건 자녀의 말이건.. 교회에선 목회자의 말이건 성도의 말이건, 각자의 입장에서는 다 맞는 말인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하면,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이 시대의 진리이다.
2. 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
2. 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
오늘의 이야기를 보면, 누구 하나 과한 인물이 없다. 왕의 입장에서도.. 와스디의 입장에서도. 므무간의 입장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결과를 보도록 하자. 21-22절.
21 왕과 지방관들이 그 말을 옳게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22 각 지방 각 백성의 문자와 언어로 모든 지방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이 자기의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언어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왕은 아내를 잃었다. 와스디는 폐위가 되었다. 므무간의 말대로 했지만, 므무간으로 인해 왕의 가정은 파괴가 되었다. 우리가 에스더를 보면 알겠지만, 21절 이후로 더 이상 성경에서 므무간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히 최선의 결정이었다. 각 등장 인물은 자기의 입장에서 최고의 결정을 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떤가? 최악의 결과가 일어났다.. 왕의 가정은 파괴가 되었고… 한 신하는 왕의 가정을 파괴시킨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에스더 1장에 나타난 이 모습을 잘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만연한 개인주의와 상대주의의 결과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여기에 돈 없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인물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명예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다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만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정권? 희망을 가지지 마라. 거게에 답이 없다. 돈? 가질 수록 괴물이 되어 간다. 거기에 답이 없다. 유흥? 문화? 무언가 달콤하고 이게 답인 것 같지만.. 여기에 답이 없다는 것을, 주님은 에스더 서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신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에 희망과 소망을 두고 계십니까? 만약 그게 이 땅에 있는 것이라면,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있는 것들에 소망이 없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 밭에 새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3.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가지 질문? 이 본문에 하나님이 몇 절에 등장하는가?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없다. 우리가 이를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의 결론이 이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밤 우리 마음 밭에 강하게 심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나에게..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 나라에..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