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여자다움 (성 정체성-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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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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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여자로 삽시다.
헌금 :
예배를 위하여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특별히 여자다움에 대해 말씀 들을 때에 주의 성령께서 말씀을 이해하는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봉헌을 위하여
이 시간 우리의 귀한 물질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우리의 감사헌금과 십일조를 주님께 봉헌합니다. 이 물질을 받으시고 주의 일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찬양 : 약한 나로 강하게
본문 : 창 1:26-28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지난 주 남자다움,
남자란 무엇인가?
생물학적 성별,
성별적 존재,
남자는 누구인가?
대략적으로 나누었다면,
오늘은 여자다움,
여자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만드신 여자, 생물학적 성별, 성별적 존재로서 여자는 누구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다룰 텐데,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먼저 사회적 관계, 결혼관계 두 가지를 구분해서 보아야 하는데,
에베소서, 5-6장을 보면,
사회적 관계, 결혼 관계
따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에베소서, 5장에서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결혼관계에서 질서는, 남자가 머리이고, 아내는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라고 했는데,
이것 뭐냐?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듯이,
결혼관계에서 질서는,
남편이 머리이고,
아내는 남편을 주님을 대하듯이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결혼관계에서 그런 것이고,
사회적 관계는 그렇지 않은데,
사회적 관계에서 여자가 리더십을 발휘하면 안 되느냐?
그 뒤에 장에서,종들과 상전 관계가 나오는데,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여기서 사회적 관계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여자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어 있는 것이죠.
이게 다릅니다.
결혼관계에서 머리는 남편이고,
사회적 관계에서 머리는 상전입니다.
머리가 달라요.
이 차이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여자가 무조건 순종하고, 남자가 무조건 다스리고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는 사장이면 직원들이 순종해야 하는 것이죠.
부장이면, 부원들이 순종해야 하는 것이죠.
사회에서는 성별 차이가 아니라,
직급 차이있고,
계급 차이에 따라, 순종하고, 따르고 하는 것이죠.
이건 사회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관계에서, 남자란 무엇인가, 여자란 무엇인가?
지금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여기서는, 남자다움, 여자다움, 명확히 구분지을 수 있을 것 같고,
생물학적 성별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여자란 무엇이고
남자란 무엇인가
이 부분을 다룰 필요가 있고,
결혼이라는 것이 신성한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고,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머리 됨이 있고, 몸 됨이 있고, 그런 것인데,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순종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남자는 무엇인가?
남자는 생물학적 성별로, 결혼관계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측면에서
기억하는 존재, 흔적을 남기는 존재, 영향을 끼치는 존재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여자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
그래서 여성을 잘 보호하고, 필요를 잘 공급하는 존재.
이게 남자라고 했는데,
말 그대로,
남자는 권위를 가집니다.
그게 폭력성을 가진 권위가 아니고,
섬기는 권위,
배려하는 권위,
책임지는 권위,
가르치는 권위 등
보호하고 공급하고 책임지기 위한, 권위를 가진다는 것인데,
그래서
성경은
남편이 가정의 머리다.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면 여자란 무엇인가?
결혼 관계에서
여자다움이라는 무엇인가?
생물학적 성별에서 여자다움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측면에서
여자다움이 무엇인가?
이런 문제인데,
성경은 성별적 차등을 두지 않습니다.
본문을 보면,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의 형상이고,
남자나 여자나 바다와 하늘과 땅의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리더십적 존재다 라고 이야기하니까,
사회적 위치에서나
자연계적 위치에서
남자나 여자
또 하나님과의 관계, 대신관계적 위치에서나
남자나 여자는 차등이나 차별이 있지 않은데,
27절에,
“하나님이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게 이 뜻입니다.
존재론적 가치에서 차이가 없고 차별이 없는데,
지금 말하는 이게 뭐냐
결혼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측면에서
결혼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남자와 여자란 어떤 존재이며, 어떤 것이 남자다움이고 여자다움이냐, 이런 이야기입니다.
27절에 다시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고,
자기 형상은 ‘3인칭 단수’이고,
하나님의 형상은 ‘3인칭 복수’입니다.
같은 하나님인데,
단수로도 표현하고, 복수로도 표현하니까,
우리가 여기서,
삼위일체 하나님,
복수이면서, 단수이신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 단수이시면서,
동시에 복수이신 분,
그러니까, 일체이시면서,
동시에 삼위이신분.
성경 자체가,
하나님을 단수이자 복수이신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만드신, 남자와 여자는,
역시
단수이자, 복수인, 가정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그러니까,
둘이 한 몸을 이루는,
복수이자 단수인,
하나님의 형상적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복수인 남자와 여자가
단수를 이루기 위해,
둘이 한 몸을 이루기 위해,
남자다움은 무엇인가?
또 여자다움은 무엇인가?
여기서 지난 주,
남자는 ‘자코르’, 히브리어로 ‘자코르’라고 읽는다고 했고,
여자는 ‘네카바’,
그러니까, 열려 있다, 열려진 존재 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드셨고,
육체적으로도 다르고,
정서적, 영적으로도 다르게 만드셨다.
다르게 만드신 이유는
서로 보완하고
서로 하나되기 위하여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기 위하여
남자답게
여자답게 만드신 것이다.
그래야 둘이 하나가
성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는 것이 가능하기에 그렇습니다.
이어서,
여자는 어떤 존재인가?
열려있는 존재이다.
한 남편을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받아주고, 초대하고, 감싸 안는다.
그게 ‘네케바’입니다.
네케바는 요구하거나 통제하는 존재가 아닌데,
요구하거나 통제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초대하는 존재,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존재.
이런 존재가 네케바입니다.
네케바는 분별력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네케바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받아주지만,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은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네케바입니다.
네케바 라는 단어는, 특별히 헌금을 드리는 헌금함에 쓰인 단어인데,
헌금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드려진 것들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들,
더러운 이득이나 더러운 소득은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것인 헌금함의 목적인데,
그것이 ‘네케바’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드려지는 모든 헌금에 대하여
열려 있고, 따뜻하게 받아주고 초대하는 것,
그것이 헌금함이듯이,
여자는,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따뜻하게 받아주고, 열려 있고, 초대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가정 안에서
결혼 관계에서
네케바입니다.
아무것이나 다 받아주고 다 감싸 안는 존재는 아니고
따뜻함 속에 분별력이 있고, 분별력 있게 수용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그러나
‘네케바’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물론 이건 결혼관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요.
창세기 3장 16절에서,
타락 이후에 여자는,
요구하고 통제하는 존재로 변질됩니다.
본래의 네케바가 아닌 변질된 네베카가 되는데요.
이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여자는 오로지 남편을 통해서만
여러가지 필요를 공급받아야 했기 때문에
그것이 물질이든 정서이든 영적이든
관계적이든
모든 면에서요.
이제
두려움이 빠진 여자는, 항상 남편을 통제하려는 모습이 나타나죠.
그래서 16절에,
하나님이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린다고 한 것이죠.
남편과 여자가 갈등관계
서로 지배하려 하고
서로 통제하려 하고고
서로 자신을 위해 요구하는 관계가 변질되었다
라는 것이죠.
여기서 ‘원하고’라는 단어 ‘테슈카’는,
창세기, 4장에서
죄가 가인을 통제하고
죄가 가인을 지배하다
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죄가 가인을 ‘테슈카’, 지배하려고 했던 것처럼,
3장에서
여자는 남편을 ‘테슈카’,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죠.
이게 ‘테슈카’입니다.
본래
창조질서에서
결혼관계에서
여자는
‘네케바’
열려 있다, 열려진 존재로서,
남편을 따뜻하게 초대하고, 받아들이는 존재였는데,
타락 이후에 여자는
‘테슈카’
남편을 통제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존재로 변질되었다고
창세기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혼이 축복인데,
고통이 되고 상처가 되고 그렇게 되는 것이죠.
신약시대에도
남편은 ‘자코르’이고,
아내는 ‘네케바’입니다.
동일합니다.
아까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고, 아내는 남편의 몸이다.
권위와 순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죠.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자신을 모두 내어주듯이 사랑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향하여 범사에 복종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섬기는 권위, 희생의 권위, 책임지는 권위가 남편에게 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을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
이게 성경이 가르치는 남자다움, 여자다움입니다.
남편다움, 아내다움 이라고 해도 좋고요.
우리가 권위, 복종 이런 단어 잘 정의해야 하는데
권위가 악이다
가르치면 세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적 권위를 가르칩니다.
‘머리’
남편은 머리이고,
예수는 교회의 머리이고
머리를 가르칩니다.
신적 권위를 가르치는데,
이것을 악하다고 생각하면, 성경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복종
우리가 복종은 악이다.
복종은 나쁜 것이다.
자율성이 좋은 것이다.
이건 세상이 가르치는 것인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복종이 선이다.
복종은 좋은 것이다.
선한 것이다.
직장생활하는 직원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 그러니까 고용주들에게 순종하라.
복종을 가르칩니다.
그것이 선하다.
좋다.
복종은 선한 것입니다.
권위도 선한 것입니다.
악한 권위가 나쁜 것이고, 분별력 없는 복종이 나쁜 것이지,
권위는 좋은 것이고, 복종은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권위 있는 가정을 세워야 하고, 복종이 있는 가정을 세워야 하는 것이죠.
말씀의 결론입니다.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자코르,
가정의 머리로서,
권위를 가지고,
책임 지는 권위,
양육하는 권위,
보호하는 권위,
가르치는 권위로서
아내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는 것,
그것이 자코르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고요.
여자다움,
오늘 여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이야기할 때에,
네케바
열려 있어서,
상대방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초대하고, 받아주는 존재.
권위에 순종하고,
순복하고,
분별력 있게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
그것이 네케바이다.
사회적 관계나 다른 관계에서는 다릅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인데,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보여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머리가 있고,
몸이 있는 것인데,
머리가 누구냐 남편이고,
몸이 누구냐 아내이다 라는 것이고,
이 제도를 통해서,
예수가 보여야 되고, 교회가 보여야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보여야 된다.
이게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남자다운 사람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권위주의자를 만나지 말고,
권위가 아예 없는 사람도 만나지 말고,
예수님처럼, 희생하고 사랑하고 책임지는 십자가의 권위를 가진 그런 사람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자다운 사람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남을 통제하려고 하고 지배하려고 하고,
물론 완벽한 남자, 완벽한 여자는 없지만,
은근히 사람을 조종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 사람을 만나지 말고,
반대로, 아무 분별력 없이 무조건적으로 다 받아주는 사람도 만나지 말고,
비둘기처럼 순수하지만, 또한 분별력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 아는 여자다운 여자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 결혼 이루시는 은혜를 기원하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찬양합시다)
예수님의 순종이 있어서, 우리가 구원받았듯이,
순종은 좋은 것입니다.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인 것이죠.
우리가 권위가 악하다, 복종이 악하다 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돌이켜
선한 권위, 선한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약한 나로 강하게 찬양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만드신 성별에 따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건강한 가정, 건강한 결혼을 위해 지금부터 기도로 준비하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교회를 위해서
권위에 순종하고 권위를 존중하고 권위를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교회 안에 리더십을 위해, 담임목사님, 사모님의 영육의 강건함을 위해서. 병약한 자들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서. 8월에 있을 수련회 위에 하나님 크신 은혜 달라고. 기도합시다.
관찰
26 이르시되 / 만들고,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의 계획)
27 창조하시되 / 창조하시괴 (성별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심)
28 복을 주시며 / 이르시되 /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과 명령을 주심)
29 이르시되 / 주노니 되리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심)
26 우리가 아담을 만들고, 우리의 쩰렘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그들로 권력을 발휘하게 하자(라다). 바다 / 하늘 / 땅
27 엘로힘이 아담을 창조하시되, 그(단수)의 형상, 곧 하나님(복수)의 형상으로, 자카르와 네케바를,
하나님은 단수, 복수로 표현된다.
28 너희는 페레(열매를 맺다 / 명령 2남복)하라, 너희는 라바(번성하라, 많아지다 / 명령 2남복)하라. 너희는 말레(채우다, 가득하다 / 명령 2남복)하라. 너희는 카바쉬(밟다, 복종시키다 / 명령 2남복)하라. 너희는 라다(정복하다, 권력을 발휘하다, 다스리다)하라. 바다 / 하늘 / 땅
29 보라! 내가 주었다(나탄 / 완료)!, 먹을 것이 되기 위하여
남자/남편인 אִישׁ와 여자/아내인 אִשָּׁה를 사용한 창 2장과 달리 창 1:27에서는 זָכָר와 נְקֵבָה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전자는 사회적 용어이고 후자는 생물학적 용어입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가 그들을 창조하시되"라는 구절 뒤에 나옵니다.
연구
성서 속 여성
성서는 일반적으로 남성 지향적이나, 여성도 주요 서사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딸, 아내 또는 어머니로서 역할이 가장 일반적이다. 여성 학대는 종종 비난 받거나 사악한 행동으로 묘사된다(예, 창 34장; 삼하 13장). 성서 해석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 방식은 여성에 대한 성서적 묘사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성서에 비친 모습이 고대 가부장제 사회의 문화적인 가정들과 기대들을 얼마나 단순 반영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도이다(Exum, Plotted, 8).
여성과 젠더 이념
창세기 1-3장에서 남성과 여성의 창조와 인류 타락의 이야기는 젠더 이념과 성서 해석의 토대를 형성한다. 창세기 첫 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남성과 여성을 창조했다(창 1:26). 이 구절의 의미와 창세기 1-2장의 나머지 창조 기록은 자주 논의 대상이 된다. 이런 논의에서 파생된 의미를 따르는 젠더 이념이 성서에서 여성에 관한 주요 쟁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주요 견해가 있다.
첫 번째 관점은 창세기 2-3장을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권위가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로 이해하며, 결과적으로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킨다. 이 관점은 두 이해 정도로 나눌 수 있다.
1. 남성은 여성보다 존재록적으로 권위가 있다.
2. 이런 종속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다른 역할을 드러낸다.
이 견해를 옹호하는 이들은 다음 해석을 근거로 한다.
• 남성이 여성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므로 남성이 여성보다 권위가 있다(창 2:7, 18).
• 하나님이 남성에게 적합한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말씀했다(창 2:18).
• 남성이 여성보다 더 활동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동물 이름을 짓고, 여성을 보고 기뻐했으며, 여성의 이름을 짓고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한다(창 2:20, 23–24절).
• 여성이 먼저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남성에게 주었다(창 3:6).
• 이브는 열매를 따서 먹고 이를 남편에게 주면서 남성의 책임을 빼앗았다(창 3:6).
• 하나님이 남성에게 “네가 어디있느냐"라고 물었다(창 3:9). 아담과 이브에게 그들의 행방을 묻지 않았으므로 이는 남성이 머리였단 의미이다.
• 창세기 3:9부터 하나님은 남편이 종교적 결정에 대한 책임이 있고 부부의 대변인으로서 책임을 진다고 가정하면서, 남성에게 질문을 던진다.
• 창세기 3:17에서 아담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진술은 아담이 부부의 머리 또는 책임자였음을 드러낸다고 추론한다.
두 번째 관점은 창세기 1-3장이 동등한 상대로서 남성과 여성의 단결을 일관되게 묘사한단 점을 지지한다. 이 견해는 교회에서 역할 제한이 없는 남성과 여성의 완전한 평등을 강조한다. 남성의 여성 지배는 저주이자 타락의 결과로 간주되며(창 3:16),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역전됐다(갈 3:13). 이런 견해는 다음 해석을 기반한다.
•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습으로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셨다(창 1:26–27, 5:1–2).
• 하나님은 동물과 온 땅에 대해 남성과 여성에게 통치권을 주신다(창 1:26, 28).
•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여 땅을 채우고 정복하라는 동일한 복과 명령을 주신다(창 1:28-29, 5:1-2).
• 하나님은 여성과 남성에게 모든 식물을 먹을 것으로 주신다(창 1:29).
• 여성은 남성의 "도움"이다(창 2:18–20). 이 명사는 구약에서 한 번도 종속으로 사용되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람들의 도우미로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된다.
• 남성은 아내와 "연합"하며 이는 하나 됨을 의미한다. 남성은 아내와 "한 몸"이며 이는 연합을 뜻한다(창 2:24).
• 남성과 여성 모두 금지 된 과일을 먹는다(창 3:6). 둘 다 도덕적으로 나쁜 선택을 한다.
• 남성과 여성 모두 눈이 열렸고, 둘 다 벌거 벗은 것을 깨달았고, 둘 다 하나님에게서 숨었으며, 둘 다 죄책감을 경험한다(창 3:7–8).
•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직접 말씀한다(창 1:28–29, 3:9–13, 16–19절). 둘 다 하나님께 직접 가까이 갔다.
• 하나님은 남녀 모두 자신의 죄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게 했다(3:16-19; Payne, One in Christ, 41-54).
고대 세계의 대부분 사회는 가부장적이었습다. 하지만 몇 예외가 있다. 예를 들어, BC 3천년 동안 수메르 여성은 남성과 거의 평등했던 시기를 보냈다. 재산을 소유하고 교육을 받았으며 다양한 법적 권리를 가졌다. 하지만 다음 천년의 가부장 사회가 이런 보다 동등한 사회를 대체했다. 이집트의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남성과 거의 평등했다. 그리스 제국과 로마 제국(서방)은 이집트 문명의 이러한 측면의 영향을 받았다. AD 1세기까지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은 가부장적이었고 여성은 전적으로 종속됐다. 하지만 서부 지역은 여성에게 더 많은 사회적 자유와 기회를 제공했다. 이집트에서 여성은 여전히 교육을 받았으며 자유로웠고 남성과 다양한 면에서 평등했다(Tetlow, Women and Ministry, 5–6).
1 세기 유대교는 가부장적 전통에서 등장했다. 기독교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세기 동안 헬레니즘은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교차했다. 일부 유대인 집단은 가부장적이었고 강하게 남성이 지배해야 한다고 편들었다. 샴마이와 힐렐 학파 같은 다른 유대인 집단은 헬레니즘 본보기에 더 이끌렸다(Keener, TheIVPBackground Commentary, 96).
오늘날의 독립적인 문화에서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독립적인 성격과 "온유하고 조용한 영"(베드로전서 3:4)이라는 성경의 칭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할 때, 이 구절은 여성을 질식시키거나 여성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의도로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독특하고 동등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서로의 차이를 기뻐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상호 작용해야 하나요? 모든 상황은 다르지만, 성경적으로 모든 상호 작용은 상대방을 격려하고 세워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며, 죄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남성의 남성성이나 여성의 여성성을 비하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시시덕거림과 거친 농담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인 복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여성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남편에 대한 성경적 복종은 적절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남자가 아내보다 어떤 위계질서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이타적인 사랑은 지배, 통제 또는 두려움과는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섬김과 희생이며 상대방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독특한 통찰력을 가진 여성을 창조하셨으며, 하나님의 여성은 경건해지기 위해 자신의 성격을 억압하거나 욕망을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여성은 자신의 마음, 성품, 말, 행동, 관계를 하나님께 복종시킵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희망과 격려와 치유를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여성의 역할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종종 관점을 얻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많은 여성들이 빡빡한 일정, 역기능적인 관계, 친밀감 부족이 삶의 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변화를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딸들이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즐기지 못한 채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는 것을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여성이 일상적인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결심을 평가하도록 도와주세요. 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지금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 물어보세요. 여성이 자신의 삶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기 전까지는 기꺼이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계 설정은 여성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여성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서두르고,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한다면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모든 것을 해야 하고 모두를 도와야 한다"는 거짓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경계를 설정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순종하고, 열심히 일하고,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일을 다 하느라 지쳐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행동 단계
1. 하나님을 아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다.
-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평생의 여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면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영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2.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살기 위해 헌신하세요.
- 성경적 진리에 기초한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신념 체계를 파헤치고 모든 신념을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근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더 많은 통찰력을 얻으려면 잠언 31장을 공부하세요.
- 많은 여성들이 과거의 신체적, 성적, 정서적 학대로 인해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상담사는 과거의 범죄에 뿌리를 둔 신념을 파악한 다음 성경적 진리를 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3. 건강한 그리스도인 관계를 추구하세요
-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정체성을 확립하세요. 종종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의 긍정과 인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습니다. 이는 해롭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보다 우선시하는 승인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가족, 친구, 동료, 남편이나 남자친구, 그 밖의 모든 관계에서 인정이나 의미를 얻기 위해 관계를 이용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모든 관계의 중심으로 삼으세요. 여러분의 삶은 결국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다른 사람들을 사랑스럽고 격려하는 방식으로 대하고 항상 상대방의 최선의 이익을 염두에 두세요. 이성과의 상호작용에서는 특히 순수하고 의로운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주의하세요.
4. 경건한 멘토 찾기
- 그리스도 중심의 삶의 모범이 되고 하나님과의 동행과 여성으로서의 여정 모두에서 여러분을 격려해 줄 수 있는 멘토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 교회나 지역사회에서 경건하고 연로한 여성을 찾아 멘토가 되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세요. 가르칠 수 있고 겸손한 정신을 기르고 그녀의 통찰력과 조언에 귀를 기울이세요.
크리스천 여성들이 멋진 헤어스타일과 옷, 장신구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외적인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돌보며 투자하는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여성은 진정으로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나이가 들어도 퇴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감에 따라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에베소서 5:22-6:9
3가지 관계
남편과 아내 (부부관계) - 부부관계에서 머리는 남편이다.
부모와 자녀 (부모자식 관계) - 부모 자식 관계에서 머리는 부모이다.
종과 상전 (사회적 관계) - 종과 상전 관계에서 머리는 상전이다.
권위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나 권위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그리고 권위에 대한 제한이 있다. 하나님 아래에 있다.
에덴남녀
여자가 여성다울 때는 자신의 관계 방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여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매력, 곧 자신이 누리고 드러내도록 지음 받은 하나님의 관계적 속성을 보게 할 때다.
예수님은 인간(아담), 곧 남자들과 여자들(이쉬와 이샤)이 인간의 공동체 안에 신의 공동체를 재현하기를 위해 기도하셨다.
우리는 이쉬와 이샤라는 성별(섹스)의 존재다. 즉 육체적 존재로서 함께 말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함께 육체적 친밀함을 누리고, 함께 살고, 교회와 공동체에서 함께 섬길 수 있다.
우리는 관게적 성(젠더)의 존재요 또한 영적 존재다.
네카바 :
구멍이 뚫려 있다.
밖에서 들어올 수 있게 열려 있는 무엇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이시며, 그분의 세 인격체 사이의 관계도 육체적인 게 아니라 인격적인 것이다.
여성다운 여자란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여자다.
자신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즐겁게 에워싼다.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초대하고,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들여 감싸 안는다.
네케바는 요구하거나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초대하는 존재다.
하와야, 이제 너는 네 욕심대로 남편을 통제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네 남편이 따라 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통제할 수 없음을 입증하려고 그는 관계에서 손을 떼거나, 아니면 너를 지배하여 복종시키려 들 것이다. (창 3:16)
“원하나”
어떻게든 통제하려 든다.
그녀는 요구하지 않으며 예수님처럼 초대한다. 그분은 지친 사람들을 자신에게 오도록 초대하셨다.
그런데 더 이상 열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통제하려 든다.
하와는 타락 이후 이제부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했다.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누릴 수 없게 된 것을 아담에게서 얻어야 했지만 결과는 보장할 수 없었다.
하와는 더 이상 열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방어적인 자세로 악착같이 통제하려 했다.
요구하는 자세와 권리의식으로 오염되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가져다가 그것의 뚜껑에 구멍을 뚫었다. 사람들은 뚜껑에 뚫린 구멍으로 은을 넣었다.
이 구멍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넣는 것만 받아들였다.
네케바는 양방 통행이어서, 한편으로는 열고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기꺼이 내어준다.
텔루스는 여자의 젖가슴,
타인에게 양분을 공급하여 생명을 유지시키는 능력이다.
여자의 몸은 열려 있어 밖에서 들어갈 수 있고, 생식을 통해 생명을 낳을 수 있으며, 젖가슴으로 양분을 공급하여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다.
타인을 생명력 있는 연합으로 초대함과 동시에 타인 안에 생명력 있는 관계를 양육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