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5 새벽]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7 views
Notes
Transcript
찬송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
본문 눅 22:24-38
자비하신 하나님, 늘상 넘어지고 실패하는 연약한 인생들임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은혜로 붙드시며, 날마다 선하신 손길로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하늘보좌 우편에서 중보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이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게 하시고,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셨던 겸손의 삶, 섬김의 삶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눅22:7 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고, 이어서 주님께 닥칠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말씀하신다. 이제 십자가의 순간이 성큼 다가왔다. 그 고난의 길을 앞두신 주님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주님도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와 동일한 감정을 느끼셨다. 따라서 매우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이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자들은 누가 크냐는 다툼을 벌이고 있다. 높은 자리를 탐하는 제자들의 욕심을 보신 예수님은 더욱 마음이 심란하셨을 것이다. 예수님과 3년간 함께 했던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정말 기대했던 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고,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되며, 주님을 섬기던 자기들도 뭔가 한 자리씩 맡아 높은 자리에 군림하게 되는 것이었다. 기다리던 순간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한 그들은 자신들의 공로를 내세우며 다른 형제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다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한심한 모습인가? 정작 주님은 왕으로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종으로 죽기 위해 이 땅 가운데 오셨고, 그 수치과 고난의 죽음의 순간이 코 앞까지 다가왔거늘, 제자들은 주님의 의중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에 급급해 있다. 그런데 여러분, 어쩌면 이러한 제자들의 한심함이 오늘 우리 속에서도 발견되지는 않는가? 어쩌면 우리들도 주님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산다고는 말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얼마든지 나의 유익과 이익을 추구하고 나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서로 다투고 경쟁하려는 모습들이 있지는 않는가?
겉으로는 헌신과 봉사를 한다고 하면서, 겉으로는 선행을 한다고 하면서, 겉으로는 경건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서, 어쩌면 우리의 본심은 높은 자리를 추구하고,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 사람들에게 뭔가 인정을 받으려고 하고,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더욱 움켜쥐려 하고, 현실의 이익에 집착하는 모습들이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던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어쩌면 동일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을 하신다.
진정한 큰 자란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섬기는 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그 나라의 가치나 판단 기준이 이 세상과는 정 반대라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과는 전혀 반대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실제로 이 교훈의 말씀을 그저 말씀으로만 가르치지 않으시고 직접 그분의 삶으로 보여주셨다. 우리의 중보자이시며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께서 낮고 천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죄인이고 무가치한 우리를 섬겨주셨으며,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완전한 희생제물로 내어드리시지 않았던가?
따라서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서 높은 자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이 세상의 원리를 따라서 높임을 받고자 하고, 인정을 받고자 하고, 섬김을 받고자 하는 모든 생각들을 온전히 내려놓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며,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섬기고, 나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것처럼 겸손하게 사랑의 섬김을 실천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다.
예수님은 이어서 베드로를 반복해서 부르시고 그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시는 과정에서 누가복음의 저자는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주변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배신한다. 그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3년간 예수님 곁에서 많은 기적을 눈으로 봐 왔고, 많은 가르침들을 받은 그들인데 어떻게 예수를 부인하고 배신할 수 있는가 하고 그들에게 책망할 자격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왜인가? 저들이 우리의 기대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들의 이와 같은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인간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를 철저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 역시도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얼마든지 그들처럼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이제 시작될 상황들은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던 지난 3년의 상황들과는 많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전에 필요없던 것들이 이제는 필요하게 될 것이고, 전에 포기했던 것들이 이제 준비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예언의 성취를 위하여 37절 말씀처럼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아무도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지금 자신들이 갖고 있던 두 개의 검에만 관심을 두었다. 개인적인 욕망과 이기적인 욕심에 완전히 사로잡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전혀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말씀을 이어가시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질 못하고, 여전히 자기의 아집과 교만함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다. 이것이 사실 주님 품에 안겨 있는 우리의 실상 아닌가? 늘상 주님은 그분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아집과 교만에 사로잡혀서 그분의 말씀을 내가 듣고싶은대로 듣는다. 나에게 편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고, 흘겨 들을 부분은 과감하게 흘려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이처럼 무능한 제자들을 오래 참아주시고 그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오래 참아주시고 끝까지 사랑해 주신다는 것이다. 31-32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원수 사탄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넘어지게 하려고 애쓴다. 죄로 물든 세상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를 모욕하고 계속해서 믿음의 시련을 전해 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도저히 버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읽은 말씀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이,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를 실족하게 하려는 사탄의 공격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하나님 앞에 우리를 변호하신다. 우리를 지극히도 사랑하시고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만큼이나 우리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용기를 주는 것이 또 있겠는가?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때로 실패하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죄로 넘어지는 경우들도 물론 있겠다. 연약한 인생인데 당연하지 않겠나?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저도 실패하고 넘어지는 순간들이 왜 없겠나? 그러나 여러분,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게 실패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하늘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분이 계심을 기억하라.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지쳐도 새 힘을 얻을 수 있고, 낙망하여도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찬송하며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의 소망이 누구인가? 우리 주 예수 밖에 없다. 우리의 위로자 누구인가? 우리 주 예수 밖에 없다. 우리의 힘과 능력 누구인가? 우리 주 예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소망이 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라. 능력이 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새 힘을 얻으라. 위로자 되시는 우리 주님으로 인하여 평안을 누리라.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만 의지하여 오늘 하루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자.
1.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고 중보하시는 주님을 힘입어 오늘도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하루 되게 하소서
2. 큰 자는 섬기는 자임을 기억하며 주님 몸소 보여주신대로 겸손하게 섬기며 살아가는 자들 되게 하소서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