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5 청소년 설교 (롬12:14-21) / 선으로 악을 이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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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 서론
기독교는 무엇을 행하는 종교가 아니라라하나님이 하신 은혜를 믿는 종교
행함 공부
로마서는 복음중에 복음이라고 불리는 성경입니다.
로마서는 16장까지 있는데
1-11장까지는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했다면,
12-16장까지는
그 복음을 가지고 ‘성도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말씀이죠.
그래서 로마서 12: 1 은이렇게 시작해요.
로마서 12:1–2 (NKRV)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거에요.
이것이 영적예배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죠? 2절에 나타나죠.
“이 세대를 본 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 하는 것이죠.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거에요.
이 세대의 가치와 생각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해야 돼” 라고 말할 때
여러분은 “NO”라고 말하는거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과 방식,
가치를 따를거야" 라고 선포하고,
그렇게 삶으로 살아가는 거죠.
그것이 살아있는 영적예배입니다.
2. 본문
2. 본문
1)인내하는 사랑(14절)
1)인내하는 사랑(14절)
그렇게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영적예배를 드리는 삶의 하나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무엇이죠? ‘이웃사랑하기'입니다.
사랑은 쉽기도 하지만, 매우 어렵죠.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짝사랑하는 것? 어렵지 않아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 대한 반응으로 사랑하는 것?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나를 미워하거나,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해요? 절대 사랑 안하죠. 그런데 14절에 말씀하죠.
해야되서 하면 종교인이죠.
수동적능동성
운전할때도 그걸 느껴요. 갑자기 끼어든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앞에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저도 고속도로에서
그런 얄미운 사람이 있어서 160km 넘게 밟아본적도 있어요.
로마서 12:14 (NKRV)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절에 또 하나의 사랑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2) 공감하는 사랑(15절)
2) 공감하는 사랑(15절)
사랑하는데,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거죠.
상대가 즐거워할 땐 즐거워하고,
우는 상황일 때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꼭 그런 친구들 있어요. 내가 잘되면 배 아파하고 질투하는 거죠.
상대가 슬프면 “에이 꼬소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하지 않고,
함께 공감하는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죠.
3)겸손한 사랑(16절)
3)겸손한 사랑(16절)
또 그리스도인은 어때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잘난척 하지 않죠.
“내가 너보다 나아,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옳아" 라는 전제로 말하는 사람들 있죠?
그런 사람들 대하기 싫죠.
그래서 성경은 스스로 지혜 있는 척하지 말라고 16절에 경고합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이렇게까지 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죠?
하나님 자리에 서서
스스로 무엇인가 해보겠다고 하다가 망한 것이잖아요.
이웃을 사랑할 때도 항상 ‘겸손함'이 있어야 해요.
어떻게 내가 겸손할 수 있죠?
“맞아, 나는 죄인이야.
내가 생각하는 말과 행동, 생각들이 결코 선하지 않구나" 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도 저 못되고, 미운 저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서 같은 죄인이구나”
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4)복수하지 않는 사랑(17~21절)
4)복수하지 않는 사랑(17~21절)
그래서 바울은 이웃사랑에 있어서
18절에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원수가 내게 잘못하면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말고, 어떻게 하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거에요.
복수극 영화가 참 많이 나오고 있어요.
칼을 칼로 복수하는 것이죠.
죽음을 죽음으로 복수하는 것입니다.
‘권선징악'의 영화를 보면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기도 하지만,
끝은 어때요? 마음이 좀 씁쓸합니다.
“악마를 보았다" 잔인한 사이코패스가
국정원의 아내를 묻지마살인으로 죽인 것에 대한 복수극이죠.
주인공 이병헌은 그 사이코패스를 한번에 죽이는 것으로 복수하지 않고,
차근차근 그를 괴롭히다가 마지막에
그의 부모와 자식이 보는 앞에서
사이코패스의 목이잘려서 죽도록 만들고
그것을 보게 만드는 방식으로 복수를 하죠.
사이코패스였던 최민식보다 더 사이코패스 같은 모습을
마지막에 보여주죠.
결국 그렇게 죽여서 복수했지만
이병헌에게 남는 것은 더 큰 죄책감과 슬픔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와 같은 악한 사이코패스가 되어 있었죠.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원수를 대하는 방식은
처벌과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친히 복수하지 않는 거죠.
친구가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다고 해서,
그대로 갚아주는 방식을 쓰지 않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가 갚는 방식보다
하나님이 갚으시는 방식이
훨씬 더 정확하고 무섭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힘이 있는 자에겐 복수도 어렵죠.
돈이 있는 자에겐 힘듭니다.
얼마전 진호선생님이 ‘사냥개들' 이란 영화때문에
예배 지각했다고 고백한적이 있으시죠.
그 영화가 궁금해서 저도 잠시 보았는데
가난한 복서가 거대한 사채조직의 두목에게
복수와 정의를 향해 끝까지 맞서싸우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못봐요. 19금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한 청년이 거대한 조직에 맞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무모하죠.
영화니까 가능할거라고 생각합니다.
효과적인 복수가 아니죠.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주인공이 끝까지 칼과 총을 쓰지 않고,
주먹으로만 싸워서 결국 그를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드는 것이었어요.
자기 얼굴을 칼로 찢어놓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몇사람이나 죽였지만
끝까지 그를 복수심에만 불타서 죽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갚는 것보다 법의 처벌로
죄의 값을 치르게 하고 원수를 갚는 것이죠.
우리는 못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저 버릇은 내가 고쳐주겠어"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잘 되던가요? 안돼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라는거에요.
내가 의인이 되기보다,
진정한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수를 갚는 방식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수를 친히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죠.
그리고 21절에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2:21 (NKRV)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우리가 악을 이기는 방법은
악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거짓을 거짓으로,
돈을 돈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요?
하나님의 성품인 ‘선'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내하는 사랑, 공감하는 사랑,
겸손한 사랑, 하나님께 원수를 맡기는 사랑 인 것입니다.
3. 이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가?
3. 이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렇다면 여러분, 이 사랑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울은 11장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줄기차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12장에 실천을 말하는 것이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의 은혜 없이는 이런 사랑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죠.
인간의 모든 것을 공감하고, 느끼기 위해서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시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셨습니다.
우리에게 공감하는 사랑을 던지셨습니다.
주님은 지혜의 원천이죠.
그럼에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셔서,
기꺼이 십자가에 자기 몸을 내 던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죠.
주님이 우리에게 겸손한 사랑을 던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셨죠.
십자가에서 내려와 능력을 써서
그들을 진멸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으셨죠.
자기를 미워하고, 욕하고 침뱉는 자들을 향해
도리어 주님은 기도하셨죠.
“아버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주님은 악을 선으로 이기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기꺼이 희생당하고 죽으시는 방식으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것일까요?
악에게 진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방식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방식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이죠.
말씀이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끊기는
음부,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과 악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원수를
그리고 죄인인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
이렇게 사랑하신 것을
깨닫고 신뢰 할 때,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변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 마음과 손과 발의 방향은
변화 될 것입니다.
실패해도 바른 길을 고수 할 것입니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삶으로
이웃을 향한 사랑의 삶으로
변화 될 것입니다.
수동적능동성
4. 결론 및 권면
4. 결론 및 권면
여러분, 예수님께로 오세요.
예수님을 믿고,
“나의 왕이 되어주세요" 라고 고백하세요.
내가 이루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신 삶에
기대는 삶을 사세요.
내 힘으로는 사는 삶은 감옥같아요.
공부감옥,
관계감옥,
결혼감옥,
친구감옥,
취업감옥,
물질감옥..
여기엔 자유가 없지만
주님께 맡길 때
진짜 자유는 여기에 있어요.
그 주님과 함께 하는거에요.
왜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야 하냐구요?
사랑하는 삶이
우리의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우리가 창조된 목적이기 때문이죠.
그 주님과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이죠.
그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만족과 사랑과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사랑을 배웁시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