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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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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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에서 가장 큰 계명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셨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마 22:37-39, 새번역)
다시 말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최우선순위에 두셨습니다. 십계명도 똑같습니다. 십계명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1-4계명)과 이웃 사랑(5-10계명)입니다.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일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가치를 두기보다는 세상에서의 성공과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에 시간과 돈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공이나 돈이나 명예나 업적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놓치면서 아무리 다른 좋은 일을 한들, 결국 우리 인생은 채워지지가 않습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16-19절)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그분의 임재를 체험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인데, 죽어서만 가는 천국이나 멀리 있는 곳만 말하는 게 아니고, 지금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장소와 시간이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내가 받고 살고 있다면 나의 삶이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따라 살고 있다면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따라 살고 있다면 우리 교회가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의 삶은 얼마든지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삶이 아니라 지옥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는 다니지만, 항상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는 않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그저 죽어서 천국에 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 땅에 살면서도 매순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살면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면서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면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고, 불안과 염려가 평안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과 예배가 믿는 사람들의 우선순위 아니겠습니까?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기도와 말씀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6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9절)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돈이나 어떤 일이나 가족이나 성공이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다스리시고 삶을 주관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서 내 주인이 되신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는 음성을 듣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는 늘 대화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대화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현재 내 삶을 다스리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초점을 두고 무엇에 시간과 돈을 사용하고 있는가? 어떤 일이 중요한 것인가? 성공이 중요한 것인가? 가족과 자녀가 중요한 것인가? 물론 다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나의 최우선순위가 정말 무엇인가? 나는 언제 움직이는가? 내가 시간을 사용하고 돈을 사용하는 게 무엇 때문인가? 그것을 살펴보면 내 인생을 지금 움직이는 주인이 정말로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바로 세워야 우리가 참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주신 것,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 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정말 하나님만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겁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가 따라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을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왜 성경에 그렇게 하라는 게 많고 하지 말라는 게 많은가? 그렇게 살면 우리가 정말 풍성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을 자꾸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데도 자꾸 하지 말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우리가 가장 최상의 상태가 될 수 있는가를 잘 아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하라, 또 이것을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인생이 제대로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시는 시간을 항상 가지며 살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 읽고 예배를 드리는가? 크리스천이니까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실까, 그분의 마음을 배우고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목사나 선교사나 직분자라 할지라도, 이런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 이런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마치 모양은 있지만 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내게 어떤 안 좋은 습관이 있을 때 ‘내가 이걸 안 해야지, 안 해야지, 안 해야지’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이 땅에 사는 한 죄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습니까? 자꾸 없애겠다고 할 게 아니고, 좋은 것으로 자신을 채우면 됩니다. 그러니까 없애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겁니다.
더 기도하고, 더 말씀 읽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또 이렇게 예배드리고, 그러다 보면 그런 나쁜 것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진정한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약해지면 또 그런 게 슥 들어오는 겁니다. 하지만 또 나를 좋은 것으로 가득 채우면 또 그런 것이 물러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주님 앞에 선다는 것이 어떤 억지로 하는 것이나 의무나 옭아매는 게 아니라, 정말 즐거움이 되며 기쁨이 됩니다. 정말 자유를 주는 것이 됩니다.
2. 이웃을 사랑하는 삶 (20-21절)
예수님이 가장 큰 계명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는 것이 첫째라고 하셨습니다. 동시에 둘째 계명도 말씀하시면서 “둘째도 이것과 같은데” 즉 둘째도 첫째와 똑같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순서는 있습니다(첫째,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져야 그 다음에 이웃과의 관계가 세워집니다. 그런데 둘째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이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입은 자는 또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20-21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 특히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데 어떻게 사랑이 안 나오겠습니까? 하나님을 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그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표현할 때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주님’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단순히 사랑이 많으신 분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가 감히 측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런데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정말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도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때로는 우리가 넘어질 수 있고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의지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감정적으로 좋아하지는 못할지라도, 의지적으로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의지로 사랑을 하다 보면 감정도 따라옵니다.
사랑은 소중한 것이며, 사랑이 없는 삶은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삶입니다. 내 삶에 사랑이 없다면 이건 정말 가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가 아닌가는 사랑을 하는가 아닌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신 하나님을 모신 사람으로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합니다. 여기도 그것을 경험을 한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실천했을 때 정말 기쁜 삶이 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일들 중의 하나는,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만 살면 살수록 오히려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고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집중할수록 이상하게 일이 더 안 됩니다. 그런데 이웃에게 눈을 돌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시간을 사용하고 돈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찾게 되고 인생의 행복을 맛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남에게 주면 줄수록 내 것이 더 커집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진리입니다. 다른 사람을 성공하게 만드는 것이 자기가 성공하는 비결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왜 그토록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하나가 되라고 하셨겠습니까? 그것도 그냥 세상의 사랑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하시며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결국은 희생의 사랑입니다. 그냥 말로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이 있으면 사랑하고 시간이 없으면 안 하고 적당히 내 것을 챙기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희생의 사랑입니다. 바로 그런 희생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적당히 눈치 보고, 될 때 하고 안 될 때 안 하는 사랑이 아니라, 안 될 때에도 자신을 희생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이야기하셨겠습니까? 그렇게 나를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럼 내가 망하라고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셨는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런 사랑을 할 때 거기에 참된 만족과 기쁨과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 진짜 사랑이며, 하나님이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알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적당히 하는지 진짜로 하는지 다 아십니다. 그런데 그런 희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정말 좋습니다. 하나가 되면 하나 됨을 이룬 사람들에게 진정한 유익이 있는 겁니다.
21세기는 바야흐로 과학기술 문명의 시대입니다. 놀라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가정이 무너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개인주의화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환경은 점점 나아지고 있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는지 몰라도,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더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외로움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SNS가 발달되었지만, 사실 그것 때문에 더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직접 만나서 교제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은 정말 완벽한 곳이었고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아마 인류역사상 가장 환경이 좋았던 곳이 에덴동산이었을 것입니다. 가난, 아픔, 고통, 싸움, 갈등, 눈물, 수치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천국에 가면 바로 천국이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남자 혼자 있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주셔서 온전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애초에 사람을 공동체로 살게 해주셨습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의학의 통계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혼자 외롭게 사는 사람이 수명도 더 짧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행복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이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행복합니다. 사실 아주 많을 필요도 없습니다. 몇 명만 사랑을 나눌 사람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진심으로 내가 사랑하거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외롭고 불행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성공하고도 비뚤어진 관계로 나아가는 사람들, 일탈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뉴스에서 많이 봅니다. ‘왜 저 정도 된 사람이 왜 저럴까?’라고 이해를 잘 못하지만. 그 내면에 있는 외로움을 못 견디고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사람은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받을 때에만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이기적인 사랑이나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 자기를 희생하면서 섬기는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는 정말 교회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백성인 교회 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이후 시작된 초대교회는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물론 문제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것을 다 내어놓아도 아깝지 않은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바로 그러한 공동체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더 고립되어 가고 더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신뢰할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는데, 특별히 제자들의 하나 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을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부르는데 거기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 17:21-23, 새번역)
그토록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교회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3.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 공동체가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사실은 정상이고 그런 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참 드뭅니다. 삶을 나누고, 감사의 제목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격려해주고, 일주일 살다 와서 어떻게 되었는가 체크하여 잘되었으면 기뻐하고 잘 안 되었으면 또 격려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공동체,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는 나 자신의 가면을 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가면을 쓴 채로 만나면 만남의 깊이가 없고 서로에게 아무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가면을 벗을 때 자유가 있고, 아주 깊은 것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교회들을 보면, 적당히 자신을 가린 채 형식적인 만남만을 가집니다. 그렇게 하면 파워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말씀대로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사랑을 나눌 때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무조건 나 자신의 연약함을 100% 다 열어 보이라는 것이 아니라, 거짓 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서로 끌어안고 기도하며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 5:16)
여기서 말하는 “병”은 실제 몸이 아픈 병도 말하지만 마음의 병도 말합니다. 마음에 병이 생기면 실제로 몸에도 병이 생깁니다. 마음속에 고백되지 않은 죄가 있고 컬컬함이 있고 해결되지 않은 게 있기 때문에 병이 납니다. 고백을 할 때 치유가 됩니다.
또한 교회에서 우리가 서로를 세워주어야 하겠습니다. 사탄이 역사하는 공동체는 서로 고발하고 파괴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는 공동체는 서로 고백하고 나누며 서로를 세워줍니다. 사탄의 특징을 한 마디로 하면 관계를 파괴하는 자입니다. 사탄은 관계를 깨는 자입니다. 거짓의 아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관계를 세우십니다. 예수님은 늘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하는 말로 공동체를 세워주고 있는가, 아니면 자꾸 무너뜨리고 있는가? 이것을 꼭 체크해야겠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은 아닌가? 사탄의 도구가 아니라, 상대방을 격려하고 사랑하고 세워주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아야겠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신앙을 잘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나 혼자 개인이 싸우는 게 아닙니다. 군대가 같이 싸우는 겁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같이 싸우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의 신앙도 잘 지켜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