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존재 목적

에스더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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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스더 9:20-32
제목: 교회의 존재 목적
주제: 교회는, 비록 연약한 교회도, 하나님의 증거이다.
목적: 연약한 믿음에 실망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증거라는 담대함을 갖고 살도록.
평형깨기
에스더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어요. 저번 시간 설교를 잠깐 복습해 보자면, 하나님이 문자적으로는 등장하지 않으시지만, 하나님께서 등장하시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구절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바로 에스더 4:14절이었습니다. 한 번만 다시 읽어볼까요?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여기서 “다른 데”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했죠.
그렇다면 오늘 알아볼 것은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질문을 바꾸어볼까요? 하나님께서 교회를 구원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을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갈등심화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교회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세상에 도움보다는 피해를 더 많이 끼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보호하시고 여러분을 보호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목적이 있지만 오늘은 에스더서에서 등장하는 교훈을 통해서 3가지 정도만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금 에스더를 살펴보고 있죠. 더 많은 이야기를 다루면 좋은데, 큐틴의 진도상 오늘이 마지막 에스더 설교가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극복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목숨을 걸고 나아갔습니다. 왕이 규를 내밀지 않으면 곧바로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에게 규를 내밀면서 에스더의 청원을 들어주게 됩니다. 에스더가 여기서 계략을 사용합니다. 왕에게 자신이 주최하는 파티에 하만과 함께 와달라고 초대합니다.
그리고 그 잔치에서 왕 앞에서 하만이 유다 백성들을 죽이려고 했다고 고발합니다. 이렇게 하만의 음모가 밝혀지고 그 즉시 하만은 처형 당하게 됩니다. 이후에 왕의 이름으로 유다의 대적들을 죽일 수 있는 법령이 제정되었죠. 그래서 유다 백성들이 오히려 그들의 대적들을 모두 죽이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유다 백성들이 대적을을 진멸하고 구원을 얻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부림절을 제정합니다. 유대력으로 12월 14, 15일이죠.
오‘부르’가 제비를 뜻하는데 ‘부르’의 복수형이 ‘부림’입니다. 이 부림을 뽑아서 유다 민족을 말살하는 날을 정했는데, 그날이 반대로 유다 민족의 대적들이 말살당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역전되었어요. 이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부림절이죠.
그런데 에스더서에서 이 사건을 절기로 기념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새롭게 정의 된 사건이기 때문인데요, 출 19:5, 6절 읽어보겠습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말씀은 약 천 년 전, 모세 시대 때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천년이 지나고 보니 지금 이스라엘 나라의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요? 멸망 당했습니다. 나라가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제국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셨다고 했는데, 나라가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죠.
그런데 이 부림절의 사건 통해서 이 의문이 풀립니다. 바로 이 제사장 나라는 옛날 다윗 시대처럼 왕정체제와 같이 어떤 정치적인 체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비록 나라가 없어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토도 없고, 그들만의 왕도 없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지켜졌습니다. 비록 페르시아의 통치를 받고 있었지만 대적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고, 신앙도 지키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페르시아가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 시대이든, 사사 시대이든, 왕정 시대이든, 어떤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완전히 말살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계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지금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가 어떤 정치 체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지켜지고 보호받는 은혜를 경험한 것이죠. 이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부림절 때 서로 기뻐하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시는 첫 번째 목적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릴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비록 신앙의 양심대로 완벽히 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지금 우리 열린하늘문교회에 모인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증거입니다. 물론 죄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신 것처럼, 지금 여러분을 통해서 교회를 구하시고, 또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고자, 지금 여러분이 교회로 모이는 것이죠. 여러분의 의지로 나온 것 이전에, 하나님께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시려고 여러분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 것만으로도 지금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금 하나님의 역사가 드러나는 겁니다. 얼마나 귀한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한 주 동안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곧 하나님 나라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우리의 믿음이지만, 끝까지 지키고 붙드는게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무엇이냐면, 기쁨과 평안을 열방에 전하기 위함입니다. 22절 읽어보겠습니다.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이 부림절에는 무슨 일을 행하냐면 유대력으로 12월 14일, 15일에 모여서 파티를 엽니다. 어떤 파티냐, 서로 기뻐하면서 예물을 나눠주고,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파티를 여는 것이죠. 이것이 부림절의 전통입니다.
그리고 30절에 보면 모르드개가 이 부림절을 지키도록 전국에 편지를 돌리는데, 그 편지를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화평”이 “샬롬”입니다. 전국에 “샬롬”, 평화를 전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축제의 장입니다. 다른 종교들처럼 우상 앞에서 중언부언 하면서 의식행위를 하면서 신비체험을 추구하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예배는 축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대해서 기뻐하며 서로 기쁨을 나누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에게 부림절은 무엇일까요? 바로 매주 지키는 주일입니다. 이날 모여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매여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자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1:3절에서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라고 말씀하시죠.
여러분,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구원을 얻은 것보다 더한 기쁨이 없습니다. 기쁨이 충만하면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전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입으로 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듣는 사람이 실감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구제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샬롬인 복음을 전하면서 이웃을 구제를 하면서 천국의 기쁨을 전하는 것이죠.
지금 당장은 우리가 제한된 환경에서 살지만, 천국의 기쁨은 아마 이러한 기쁨과 비슷할 것이라는 표현으로 우리가 복음의 기쁨을 전하며 구제를 하는 것이에요. 또 친구들을 돕고, 다투지 않고 화평한 말로 지내는 것도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게 해주는 역할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역할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만약 세상에 매여 살고 있다면, 기말고사로 인해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 받는다면, 이렇게 선포하세요. “난 예수님으로 인해 영생을 얻었다. 그러므로 자유하다. 너무 기쁘다.” 이렇게 스스로 고백하고 선포하셔야 합니다. 기쁘지 않다고요? 저번 주 설교에서, 우리의 믿음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죠. 그래서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존 파이퍼 목사님이 이런 말씀 하셨습니다. “기쁨은 의무이다”
이렇게 기뻐하는 성도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이 땅은 천국과 매우 닮아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떠한 효과를 누리게 되냐면, 마치 마지막 날에 이뤄질 하나님 나라를 앞당기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종말이 늦게 왔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전혀 그렇지가 않은 겁니다. 지금 이미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고 있으니 하나님이 지금 당장 오셨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생깁니다.
따라서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회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이 중요한 또 한 가지의 이유를 역사적인 배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에스더 전의 책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느헤미야서인데요, 시간적 순서로는 느헤미야가 에스더 이후의 시기를 다룹니다. 부림절이 제정되고 나서 약 30년 후에 느헤미야가 유다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하게 됩니다. 그때 외세에 의해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는데요, 느헤미야 2:17, 18절 읽어봅시다.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이 말씀이 왜 중요하냐면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 바로 에스더서 이후에 나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만에 의해 유다 백성들이 전부 죽었다면, 성벽을 재건할 수 있었을까요? 예루살렘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기 위함입니다. 느헤미야 세대는 부림절의 은혜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던 것이죠.
여러분이 학교에 있는 이유, 학교를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집에 있는 이유도 여러분의 집을 하나님 나라로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이 아주 조그만 믿음이라도 갖고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은혜의 말씀을 믿으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바다 위로 걸어보라고 부르셨죠. 베드로가 믿음을 갖고 바다 위를 걷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니까 바다에 빠지죠.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믿음이 작은 자여”
여러분, 이것을 책망으로만 이해하지 마세요. 혼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장면이에요. 왜냐하면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의심 많은 도마를 위해 못자국을 남기신 은혜를 기억하세요.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우리를 책망하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작은 믿음을 큰 믿음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비전제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교회 28주년 설립주일입니다. 감사하게도 오늘 본문 말씀이 설립주일과 어울리는 말씀이라서 준비하면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28년 전에 우리 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교회도 위기가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또 외부적인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제가 담임목사님의 마음을 잘 모르지만, 아마도 목회를 포기하고 싶으실 때가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지켜주셨습니다. 어떠한 위기에도 지켜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작은 믿음이라도 갖고 있는 것, 피곤하고 지치지만 그래도 교회에 나와야지, 그래도 섬겨야지, 이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 여러분의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따라서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증거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하시는 이유, 우리 열린하늘문교회를 지키시는 이유 3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증거하기 위해, 둘째로 기쁨과 평안을 열방에 전하기 위해, 셋째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입니다.
여러분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기뻐하고 계세요. 여러분의 존재 덕분에 하나님 나라가 앞당겨질 수 있는 겁니다. 정확하게는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하더라도, 여러분의 믿음을 도우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기말고사 기간에도 절망하지 말고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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