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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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설교 본문-히브리서 10장 23, 25절
설교 날짜-2023.06.25.
설교문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존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인터넷의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온라인 게임이나 소셜 미디어 등에서 특정 목표를 달성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버"는 "존나 버티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존나"는 한국어에서 "매우"나 "정말"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버티다"는 "견디다" 또는 "참다"를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주로 게임에서 어려운 레벨을 클리어하거나 아이템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플레이어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됩니다.
"존버"는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며, 특히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높은 도전 수준의 게임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자주 사용합니다. 게임에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반복적인 시도와 실패를 견디며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존버의 결과로 성공적인 목표 달성이 이루어지면 보상을 얻게 되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존버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비롯되었지만, 현재는 온라인 활동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용어로 확장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 업무, 운동, 주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계속해서 노력하며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존버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러한 버티기가 필요하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버티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히브리서 10장 23-25절에서도 버팀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라고 기록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 신앙,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굳게 믿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히브리서의 기록 시기는 로마의 네로 황제가 이스라엘에 영향을 준 때였습니다. 그는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뒤를 이어 즉위한 로마의 5대 황제(A.D. 54–68년경)입니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이혼하고, 숙부이며 로마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와 재혼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네로는 황제의 양자가 되었고, 황제의 딸 옥타비아와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네로의 배다른 동생 브리탄니쿠스를 차기 황제 계승자로 지목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자기 남편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하고 당대의 철인(哲人) 세네카와 왕실 근위대장 부르스의 도움을 받아 네로를 황제로 추대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권력 하나에 이렇게 정신이 팔렸으니, 국가 정세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당연히 아니지요. 자연히 국정은 어머니와 세네카, 부르스의 3인에 의해 좌지우지가 됩니다.
이에 염증을 느낀 네로는 점점 사생활이 무질서해졌고, 통제 불능 상태로까지 치닫게 됩니다. 이를 본 어머니 아그립피나는 세네카, 브루스와 함께 네로를 몰아내고 네로의 이복동생 브리탄니쿠스를 황제로 추대할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이 됩니다. 결국 어머니 아그립피나는 살해되고, 세네카는 정계를 은퇴했으며, 네로의 아내로 이혼당했던 옥타비아마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네로는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쾌락을 추구하며, 전차 경주, 각종 향연, 문학 등에 몰두하게 됩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A.D. 64년 7월 19일에 로마시(市)의 거의 절반을 태운 로마 대화재가 발생하게 됩니다.
도시는 폐허로 변하였고, 로마의 중심 구역 세 곳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러자 네로가 새로운 궁궐이 들어설 자리를 만들기 위해 불을 냈다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하지만 네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화재를 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제국의 궁전에서 저녁 연회를 열 때 그들을 산 채로 인간 횃불로 태워 그곳을 밝히도록 명합니다.
네로와 같이 몇몇 로마의 문인들도 대중에게 악의적인 모략을 퍼뜨립니다. 이는 박해에 기름을 끼얹었죠.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전통적인 신과 신격화된 황제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신론자로 공격합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신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신다”라는 소문을 듣고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식인 행위자로 조롱합니다. 거룩한 예식인 성찬을 비방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자를 “형제와 자매”로 부르는 “애찬”을 두고도 비방합니다. 옛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당대의 문화에서 기독교는 무언가 위험하면서도 새로운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비(非)로마적인 것, 제국의 변방에서 일어난 외국의 미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인간성을 증오하는 자”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공인된 쾌락과 로마 사회의 관습을 버리고 십자가에 죽은 죄인을 하나님으로 예배하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우리의 상황을 뒤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말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다행히 종교로 인한 박해가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냥 매주 반복되는 주일이니 그냥 대강대강 하자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닌가요?
사실, 중고등부라는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저도 여러분 앞에서 설교하는 것도, 오늘 이 시간이 마지막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다시 부모님들과 함께 온 세대 통합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부서가 없을지라도, 선생님이 계시지 않을지라도, 친구가 곁에 없을지라도 끝까지 잘 드릴 수 있는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최고의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십니다.
25절 말씀을 잠시 보겠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 구절에서 면밀하게 살펴볼 구절은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자’,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는 것입니다. 먼저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자.’라는 구절을 보겠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박해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승리하신 주님의 재림 신앙을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그 문제는 바로, 곧 오실 것이라고 기대하였던 주님이 오시지 않고 하루하루 날이 지나간다는 것이었죠. 머지않아 곧 재림하실 것이라 믿었던 기대가 성취되지 않자, 차츰 늦어지게 되면서 일부 믿음이 약한 성도들 사이에서는 신앙생활이 흐트러지는 경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성도 간의 모임에 나오지 않으면서, 아예 ‘습관’(habit)이 되어서 교회에 전혀 나오지 않는 자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돌처럼 굳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성도들의 모임에 결석하는 일이 그만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참석을 중단한 자들의 경우에는 믿음이 작동 중지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죠.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이는 데에 힘을 썼던 이유는 ‘말세’가 가까이 온다고 생각하면서, 철저한 준비를 실천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가졌던 재림 신앙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매우 역동적인 삶을 영위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보다는 주님의 나라에서 살아갈 소망을 더 확실히 하고자, 모여서 힘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43-4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지막 때는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만 아십니다. 그러기에 끝까지 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교 도입부에서 말한 “존버”가 요구되는 것이죠.
저는 이제 이 설교를 끝으로 여러분과의 6개월 여정을 마칩니다. 부족한 사람이었으나 지금까지 온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요, 또한 여러분의 도움이 컸습니다. 부장님과 선생님, 시후, 해찬, 수아, 성은, 사라, 소라 각 모두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만, 그러면 설교가 너무 길어지기에 생략하겠습니다. 하여튼 다음 주부터 다른 곳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에서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실 것이고, 저는 또 다른 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신앙인으로 매일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 설교 후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 12월부터 오늘까지 인도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는 각자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저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래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더불어 혹시나 저로 인해 상처받았던 분들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이 시간 그 상처 모두 말끔히 치료해주세요. 전능하시고 치료의 하나님이시니 능히 하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의 앞길에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충만하기를 소망하며, 이 모든 말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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