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호세아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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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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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키워드 : 말씀에 반응합시다.
신앙고백: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하나님 말씀 : 호 2:1-23 (6-7)
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나만 알고, 남은 모르고
나만 알면 고통스럽죠.
남은 모르는데
나만 아니까 그렇습니다.
호세아도 그렇습니다.
다 모르는데, 호세아만 압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이죠.
이 지식을 호세아만 알고,
이스라엘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만 이 지식을 주신 것이죠.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논쟁하는 장면입니다.
2절입니다.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나는 아는데,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답답한 것입니다.
아무도 음행 안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과 호세아만 이스라엘이 음행했다고 생각하면서,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라, 논쟁하고 논쟁하라
음란을 제하게 하고 음행을 제하게 하라
반복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이런 신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 삶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우리 인생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나만 이런 신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음행이란 말인가? 아무도 하나님 떠난 사람이 없는데. 아무도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았는데,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데, 무슨 음행이란 말인가?
이런 신적 지식을 가진 호세아는,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굉장히 외롭고 고달팠던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음행이란 말인가?
여러분, 그래서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고달픔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토록 외로우셨던가?
하나님이 이토록 버림받으셨던가?
하나님의 외로움, 하나님의 고달픔을 깊이깊이 인식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깊이깊이 알아가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알수록, 우리 인생은 더 깊은 내면의 고독 속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내면의 고독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눈물을 읽어내게 된다는 것이죠.
호세아는 경고합니다.
다시 벌거 벗기겠다.
다시 도로 찾아서 가져가겠다.
하나님이 주신 옷들, 하나님이 주신 물건들, 하나님이 주신 보물들, 하나님이 주신 모든 먹을 것들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멀리게 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생기게 하니까,
다시 벌거벗기겠다.
다시 도로 찾겠다.
빼앗으리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내가 도로 찾겠다.
내가 도로 찾으며
내가 다시 빼앗으리라
하나님은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십니다.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다시 그녀를 되찾고 싶으신 것이죠.
아니, 음란한 여인인데, 자신을 배반한 여인인데, 뭐하러 다시 찾으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다시 되찾고 싶고, 그녀와 다시 관계 맺고 싶고, 다시 친밀해지고 싶으신 것이죠.
그러니, 하나님은 몸부림을 치시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녀는 나를 떠나는 것인가?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인가?
고통에 몸부림치시면서, 그녀를 되찾기 위한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시는 것이죠.
그게 9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하나님은 곡식도 포도주도 양털과 옷들도 하나님이 주신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것이죠.
내 곡식이고,
내 포도주이고
내 양털이고
내 삼이다.
다 내가 준 것들이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니까 도로 찾을 수도 있고, 도로 가져가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우리를 굉장히 겸손하게 만들고, 조심스럽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이며, 어떤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받았으며, 누구로부터 공급받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정말 나는 하나님을 주권자로 신뢰하고 있는가?
정말 나는 하나님을 공급자로 믿고 있는가?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이 공급자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 지식이 우리를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5절을 보니까, 이스라엘의 생각이 나옵니다.
아니다. 이거 내가 스스로 받은 거다.
이거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얻은 것이다.
5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준 것이다.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건 하나님의 떡이 아니고 내 떡이다.
하나님의 물이 아니고 내 물이다.
하나님의 양털이 아니고 내 양털이다.
다 내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대답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자기의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라고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제적 능력과, 무역 능력과, 자산을 운용하는 실력을 더 신뢰했던 것이죠.
이게 이스라엘의 안타까운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 수단을 쓰십니다.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서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시는데,
누구 것인지를 정확히 보여주시는 퍼포먼스를 행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주권을 실제로 드러내시는 방식입니다.
이게 네 것이면, 네가 지켜보거라.
그러나 내가 가져가보겠다.
하나님의 주권을 실제로 드러내시는 퍼포먼스를 행하시는데,
9절을 보시면,
내가 도로찾으며, 내가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삼을 빼앗으리라
10절을 보시면,
내가 그를 벌거벗기리라
11절을 보시면 내가 폐하리라
12절을 보시면 내가 들짐승들에게 다 먹게 하리라
13절에는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도로 찾으리라 빼앗으리라
벌거벗기리라
폐하리라
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사실을 실제 행동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이죠.
떡도 니꺼고, 물도 니꺼고, 양털도 니꺼고, 삼과 기름도 다 니꺼라고?
그래 그러면. 내가 한번 가져가볼게. 못 가져가게 막아보거라.
도로 찾으며, 도로 벗기며
도로 폐하며
짐승들 먹이로 내가 다 주겠노라 하신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말씀에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최후 통첩,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시기 전에,
말씀을 통해 회개하는 것이 가장 큰 은혜인 것입니다.
말씀에 반응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은 최후통첩을 받습니다.
내가 도로 찾으며,
내가 도로 빼앗으며
내가 도로 벗기며,
내가 벌을 주리라.
최후통첩을 받습니다.
그런데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반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처음 위치로 이스라엘을 옮기십니다.
그게 3절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다시 옮긴다.
처음의 자리로, 처음 위치로 내가 다시 옮긴다.
그게 3절입니다.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옷 입기 전 상태로 옮긴다.
내가 그를 광야가 되게 하여서 약속의 땅에 오기 전 상태로 옮긴다.
내가 그를 목마르게 하여서, 풍부한 수자원이 있기 전 상태로 옮긴다.
이게 3절인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경고에 반응해서, 하나님의 최후통첩이 임하기 전에, 스스로 고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은혜인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끄이 없어서,
최후 통첩 이후에도 희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14절을 보니까,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최후 통첩 이후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멸망한 그에게 다시 한번 다가가십니다.
다가가서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다시 한번 소망의 문을 열어주시고,
또, 그의 남편이 되어주셔서, 그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겠다.
네가 진실함으로 장가 들어 너를 영원히 버리지 않겠다.
그것이 19-20절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최후 통첩 이후에
멸망한 이스라엘에게 다시 다가가셔서,
그에게 말로 위로를 전하고,
가장 끔찍한 기억도, 소망의 기억으로 바꾸어 주고,
그에게 영원히 장가들어서,
그를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끝이 없기에, 우리에게 끝없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반응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회개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내 떡, 내 물, 내 기름, 내 양털, 내 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떡, 하나님의 물, 하나님의 기름, 하나님의 양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신뢰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이십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그것을 믿지 않는 삶을 돌이키는 것이 말씀에 반응하여 회개하는 것이죠.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의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말씀이 들려지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의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역사의 주인도 인간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고,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이 믿음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
*특별히 우리 다음세대 아이들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성경적 세계관을 갖춘 다음세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고 하나님이 공급자이시고 하나님이 통치자라는 사실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인본주의는 인간 자신이 주권자이고 인간 자신이 공급자이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통치자라고 가르치는데, 세상 인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영적, 신학적, 실천적 지식을 갖춘 인물들이 다 되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우리의 주권자이시요, 공급자이시요, 통치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고 높여드립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어서 진심으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늘 하나님을 의식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약한 지체들의 질병을 치료하여 주시고, 그 약함 위에 하나님의 친밀하심의 은혜가 부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관찰
2:2-13 불충실함으로 인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2:14-3:5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
불충실함에 대한 이스라엘의 심판 (2:2-13)
미래의 긍휼의 약속이 있지만, 이스라엘이 아직 야훼께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은 여전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이미지를 계속 이어가면서 야훼는 아내 이스라엘에게 간음을 멈출 것을 요구합니다. 그녀의 죄가 드러나고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그녀의 불충실함은 그녀를 야훼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자신의 쾌락과 욕망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야훼의 축복을 죄의 길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녀는 야훼 대신 자신의 연인인 거짓 신들을 쫓아다닙니다. 심판에서 그녀는 자신이 추구한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첫 남편인 야훼에게로 돌아갑니다. 그 동안 야훼는 계속해서 그녀를 추적합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 (2:14-3:5)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야훼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찾지만, 야훼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야훼는 계속해서 자비를 베푸시며 이스라엘을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하려고 노력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야훼께로 돌아오면 야훼는 이스라엘의 삶에서 죄와 거짓 신들을 제거하여 정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관계가 회복되면 이스라엘은 충실한 아내가 될 것입니다. 그녀의 죄에 대한 심판이 뒤바뀔 것입니다. 이 약속된 진리의 또 다른 묘사로, 야훼는 호세아에게 간음한 아내를 다시 데려와 충실한 아내가 되도록 격려하라고 지시합니다. 이 미래의 회복에 대한 그림은 야훼께서 보다 즉각적인 심판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면서 희망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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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심판한 고멜 (2:2-13)
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다(2:2). 이 구절은 법적 이혼 판결문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간음에 대한 언어와 마찬가지로 연인에 대한 시적 언급(2:5, 7, 10, 13; 참조. 8:9)은 확립된 관계를 깨뜨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불법적인 관계를 나타냅니다.
바알... 바알(2:8, 13). 바알은 가나안어이자 히브리어로 "소유자", "주인", "남편"을 의미하며 신 또는 인간을 묘사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가나안 판테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 중 하나의 이름입니다("가나안과 가나안 종교" 기사 참조).
이스라엘의 미래 회복 (2:14-23)
너희는 나를 "나의 남편"이라고 부르고 더 이상 "나의 바알"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2:16). 호세아 2:8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십시오. 이것은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 변화를 강조하기 위해 "남편"(이쉬)을 "주인/바알"(바알)과 대조하는 시적 어법입니다(참조, NIV): "너는 나를 '나의 남편'이라고 부를 것이며, 더 이상 나를 '나의 주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아내로 삼겠다(2:19-20). 약혼은 결혼에 대한 계약적 약속이었습니다. 신부와 그녀의 가족에게 주는 선물은 결혼 계약의 일부였습니다. 여기서 주어진 선물은 주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긍정적인 특성을 나타냅니다. 두 자녀의 이름을 바꾸는 문화적 관습(참조, 1:10-2:1)도 이스라엘의 긍정적인 신분 변화를 나타냅니다.
암미 / 루하마
논쟁하고 논쟁하라 / 제하게 하고 제하게 하라
벌거벗김 : 에덴동산
찾지 못하게 하리니 / 찾을지라도
그가 알지 못하도다
도로 찾으며 / 빼앗으리라
벌거벗은 몸 : 에덴 동산
먹게 하리라
벌을 주리라
그러므로 보라
거기서 비로소
그 날에
그날에는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그 날에
응답하고 / 응답하리라
심고 / 긍휼히 여기며 / 내 백성이라 / 내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은 누구신가?
말씀하시는 분
분노하시는 분
입애굽 / 출애굽 : 땅을 주셨다가, 땅을 빼앗기도 하시는 분
관계에 집착하시는 분 / 관계를 중요하시는 분
언약을 중시하시는 분
이스라엘의 음행을 막으시고, 음행의 값을 빼앗으시는 분
이스라엘의 공급자 : 내가 준 것이요, 내가 더하여 준 것이거늘
공급을 차단하시는 분 : 내가 도로 찾으며 빼앗으리라
이스라엘의 삶 전반을 통치하시는 분
징벌을 주신 후에 회복케 하시는 분
그날에는, 그 날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