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님을 신뢰하는 이유는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7 views
Notes
Transcript
387장 멀리멀리 갔더니 / 찬335장 크고 놀라운 평화가
시편 16:1–11 (NKRV)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 서 론 ]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들 합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형식은 빈깡통과 같이 소리만 시끄럽게 울리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가진 존재들로 지어진 우리들은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 담아내는 도구로서 우리의 말과 행동들을 사용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형식을 갖추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잘 드러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형식을 갖추고, 갖추어진 형식은 우리의 마음이 잘 정리되고 표현되도록 도와주곤 합니다.
[ 쓰리하트 :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완전 사랑합니다 ]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마음들을 잘 표현하고, 나누며 살아가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이렇게 마음과 형식에 대해서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은 오늘 말씀본문이 시편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에는 특히 시편을 쓴 저자의 마음이 담겨있고, 그 마음을 읽는 것이 시편을 볼 때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시'라는 형식으로 그 신앙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형식 또한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언가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서 더 적합한 단어를 쓰려고 하고, 더 적절한 순서로 말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편에 있어서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가장 큰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서론을 길게 말하고 난 뒤에 결론을 ‘짠'하면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말이 길어질수록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핵심을 제일 앞에서 미리 얘기해주고 들어가는 것이 듣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곤 합니다. 오늘 말씀 1-2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16:1-2
시편 16:1–2 (NKRV)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여기 가장 중요한 핵심이 담겨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만이 자신의 복이며, 주님이시기에 ‘그분께로 피한다’고 말합니다. 환난의 때나 고통스러운 때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 우리의 주님이시요 복이신 분은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저자는 바로 그런 고백으로 오늘 시편을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면 하나님께서 나의 어려운 형편을 돌보아주시고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피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피난처로 삼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저자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신 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 시편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시편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비관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시편들이 자신의 비참함에 대해 말하고, 눈물로 애통하며, 대적들의 공격에 고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오늘 이 신뢰의 시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신에게 베푸실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소망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시편 말씀을 읽고 듣는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현실의 어두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분께로 피하여 안식을 누리고, 주실 은혜를 소망하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참으로 연약하고, 세상살이는 늘 어렵지만 우리가 피난처되시는 여호와를 신뢰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으로 인해 즐거이 노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 믿습니다.

[ 본 론 ]

자 그럼 이제 시편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세부적인 내용들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시16:3-4 입니다.
시편 16:3–4 (NKRV)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저자는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로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육신 가운데 이 땅에 아직 놓여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존귀함에 대해 말하는 저자는 성도가 어디에 속한 사람들인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존귀한 주님의 백성들은 같은 소속의 사람들에게 즐거움이요 기쁨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성도들의 모습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존귀한 자들이며, 하늘에 속한 자들이며, 그들로 인해 즐거워 한다고 말합니다. 4절 말씀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예배하는 자들에게 괴로움이 더해질 것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존귀한 성도들은 ‘즐거움'을 서로 가지고 나누지만, 우상 숭배자들은 ‘괴로움'이라는 대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우상숭배자들과는 다른 구별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5-6절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기업'이심을 고백합니다.
시편 16:5–6 (NKRV)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게 된 가나안 땅과 거기서 나는 모든 곡식과 열매들은 누가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자신의 복이라고 고백하는 저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산업과 잔의 소득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게 하신다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비록 어떨 때는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려도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시라면 나는 결코 비참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풍성하신 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은혜로 이끄시고 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특히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은혜의 몫에 대해 찬양합니다. ‘줄로 재어 준 구역'이라고 말하는 것은 보통 영토를 분배할 때에 사용된 표현으로써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나누어주신 몫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복이라고 고백하면서, 특히 이 땅에서 주신 몫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8-9절입니다.
시편 16:8–9 (NKRV)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 구절은 5-6절에서 주께서 주신 몫의 아름다움에 대해 노래했던 것과 연관됩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는 가나안 땅에서 그들 각각에게 분배된 몫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갈 뿐 아니라 이 구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몫을 주시고 그 안에서 알아서 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저자가 고백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자신 앞에 모시며 살아가며, 하나님이 붙들어주시는 삶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 가운데 살아가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서 하나님 안에서 살도록 하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주신 것들만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부르셨습니다. 은혜의 하나님께 합당한 영예를 올려드리며 살도록, 예배하며 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8-9절 말씀은 우리의 삶이 마땅히 그런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항상 모시며 살아가고, 그분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으며,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평강 가운데 사는 삶, 그것이 하늘에 속한 존귀한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몫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10-11절입니다.
시편 16:10–11 (NKRV)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3-4절은 하늘에 속한 자들이지만 이 땅에 있는 성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반면 10-11절은 성도들의 미래의 소망에 대해서 노래해주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여호와께로 피하며 신뢰하는 저자와 같은 성도들을 결코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어서 저자는 주의 앞에 있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 가운데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주님께서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저자는 노래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곤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세상적인 삶만을 애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로써의 삶까지를 모두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이 땅에서의 성도의 삶도 끝이 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부르심을 받은 자리에서, 허락하신 시간동안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기쁨이 되어지는 삶을 충성되이 살고자 할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수고가 끝나고 영원한 안식과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살아가게 될 날이 우리의 미래에 있을 것임을 저자를 통해 알려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에만 매달려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비록 이 땅에서 맡기셨던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 부르시면 언제든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하고, 새롭게 부르시면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기위해 안주하던 것에서 기꺼이 떠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며, 또한 그분의 부르심을 계속해서 따라 살아갈 때에만 우리는 주께서 예비하신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5-6절은 여호와께서 땅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신 몫의 아름다움에 대해 노래하며, 8-9절은 여호와를 모시며 사는 삶의 평안과 즐거움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은혜에서 영적인 은혜로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4절은 현재 땅에 있는 성도들이 존귀한 자들임을 말하고, 10-11절은 그 성도들의 미래의 영원한 소망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서 영원 가운데 살아갈 날들로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주어진 몫 가운데 살아갈 뿐 아니라 무엇보다 예배자로 하나님을 섬기며 주어지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강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영적인 은혜 또한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또한 사는 동안 계속해서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멈추어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끄시는대로 따르며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안식’과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결 론 ]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도들을 그렇게 살게 하실 것을 신뢰합니다. 그 신뢰의 이유는 7절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6:7 (NKRV)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여기 이 ‘훈계’라는 동사는 출18:19 에서 ‘가르치다'라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8:19 (NKRV)
19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네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당시 모세는 홀로 백성들을 재판하고 있었기에 일이 ‘너무 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드로를 통하여 어떻게 해야할지 방침을 ‘가르치셨'고 모세는 그 가르침대로 사람을 세워 일을 나누어 맡깁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이드로는 한 때 잠깐 모세를 돕고 가르치고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늘 함께하시며 계속해서 가르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저자는 ‘훈계하시는 하나님’을 송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매일같이 자신을 생명의 길로 가도록 교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한번 가르치고 안되면 포기합니다. 인생을 변화시키는 작은 조언 하나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금 같은 조언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떻습니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키시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같이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자녀들을 이끄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매일같이 우리를 가르치시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교훈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편은 여호와를 신뢰하며 그를 신뢰하는 성도들이 살아갈 삶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2절 말씀처럼 ‘주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주님 밖엔 나의 복이 없습니다.’하고 고백하게 된 마음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매일 같이 훈계하시고, 가르치시고, 돌보셨기에 그는 자신을 훈계하시는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그는 그런 하나님을 만났기에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의 고백에 담긴 것과 같은 그런 믿음을 주시고, 계속해서 믿음으로 살도록 매일같이 가르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런 하나님을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고, 앞으로도 경험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주를 신뢰하는 이 성도의 삶은 비록 땅에 있을지라도 하늘에 속한 존귀한 자로, 하나님을 항상 모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삶에 주신 몫을 넘어서 영원한 기쁨과 평강과 즐거움의 삶으로 인도함 받을 것입니다. 이 시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함을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살아갈 삶의 모습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비관적인 것은 없습니다. 기대와 소망이 가득합니다. 생명의 주께서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고 그 길로 계속해서 걸어가도록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시편말씀의 저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를 신뢰하는 성도들의 삶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될 것인지 그 은혜의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소망이 가득합니다. 저자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와 상관없이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신뢰하는 자들을 어떻게 해주실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소망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그의 신뢰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믿음을 주셨으며, 날마다 가르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제목을 이렇게 완성해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주님을 신뢰하는 이유는, 내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주님을 신뢰하는 이유는, 나를 매일같이 가르치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실 주님 주신 믿음 가운데 날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