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5. 주일3부예배. 환난을 당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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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1–8 (NKRV)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혹시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나 재해를 경험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아픔과 시련을 경험해보신적은요?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는 누구나 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단 한사람도 예외가 없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흔히 항해에 비유하곤 합니다. 항해를 하다보면 늘 날씨가 좋지만은 않은 법이지요. 맑은 날이 있다가 흐린 날도 있는 것이고, 바람이 잔잔한 날이 있다가 바람이 거센 날도 있는 것이고, 기분좋은 봄비가 내리는 날이 있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맑은 날만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바다에 적조가 발생할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태풍이 한 차례 일어나면 한바탕 요란법석한 소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물이 섞이면서 적조가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워보이는 문제를 한 번의 태풍이 말끔하게 해결하는 셈이지요. 자연의 이치가 이렇게 놀랍습니다. 억수같은 장맛비도, 타들어갈듯한 햇살도 다 어딘가에 쓰임이 있고 필요가 있어요. 이 모든 것이 상호작용을 해서 만물이 생동하는 자연을 이루는 것입니다. 장마가 지속되면 우리로서는 우중충하고 찝찝함에 기분이 좋지 않지만, 장마가 있어야 가물었던 논과 밭에 넉넉히 물을 댈 수 있는 물이 확보가 됩니다. 만약 장마가 없다면 곧 찾아오는 가을의 뜨거운 햇살에 모든 농작물이 쉬이 죽어버리고 말죠. 또 타들어갈듯한 햇살이 지속되면 우리로서는 빨리 그늘을 찾아 햇살을 피하기 바쁘지만, 햇살이 뜨거울수록 과일의 맛이 더욱 깊어지고 당도가 높아진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밝은 날,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의 인생에는 유혹도 찾아오고 시험도 찾아옵니다. 고난과 환난은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불청객처럼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를 힘들게 하지요. 고난과 환난은 제 인생에서도 가장 반갑지 않은 손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로서는 참 당혹스러운 바울의 고백과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롬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는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너무 큰 환난을 당해서 미쳐버린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환난 중에서, 환난의 정가운데에서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난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환난을 마주하는 자세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영상)
환난. θλῖψις.
이 명사는 신약 전체에서 환난을 묘사하기 위해 등장합니다. 이 용어는 종말론적 맥락에서 심판 이전의 기간에 고유한 환난을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됩니다(예: 마 24:9, 21, 29). 이 용어는 일상 생활의 고난을 묘사할 수도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21, 막 4:17)에서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θλῖψις(thlipsis)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θλῖψις(힙시스)는 주로 적들에 의한 박해로 묘사됩니다(행 11:19). 바울은 인생의 고난과 관련된 일반적인 어려움을 나타낼 때 이 용어를 선호합니다(롬 5:3, 8:35, 고후 1:4, 4:17). 이 용어는 종말론적인 "큰 환난"을 나타내는 기술적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θλῖψις μεγάλη, thlipsis megalē, 마 24:21; 계 2:22; 7:14).
루터는 시 119편에 근거하여 신앙 성장의 비결을 다음 세 가지 단어로 요약합니다: ‘기도’, ‘묵상’, ‘시험’(혹은 ‘유혹’). 첫째로, 기도(Oratio)는 성령 하나님의 주권을 명심하는 자세입니다. 대(⼤) 신학자였던 루터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신학을 배우는 학도들이 그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지하는 대신, 성경의 참된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하는 자세로 말씀을 대해야 한다. “마치 동냥하는 거지와 같은 심정으로’ 기도하라.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지 않으면, 내게 말씀의 빛이 결코 비치지 않을 것이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라.”
둘째로, 묵상(Meditatio)입니다. 말씀을 읽고 혹은 설교를 듣고는 그 메시지를 마음 속에 거듭 반복하여 깊이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바로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이 보여주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자세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는 말씀으로 표현했습니다.
세 번째가 아주 독특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반드시 ‘시험’(Tentatio, temptation: ‘유혹’)을 통하여 성장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시험은 흔히 ‘고난’의 모습으로 성도들에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고난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들을 의지하게 만들어 줍니다. 고난 속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닻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효용을 깨닫게 해 줍니다. 즉 성도들을 구원하고, 새롭게 하고, 소생시키며, 다시 활력을 얻게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체험하게 해 줍니다.
1532년의 어느 날 밤, 동료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한 식탁의 대화에서 루터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을 “마치 의학과 같아서, 경험을 통하여 평생에 걸쳐 배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자신 역시 한꺼번에 신학을 배우지 않았고,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한걸음 더 깊 이 그 말씀을 추구하며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 과정에서 ‘유혹과 시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가르칩니다. 그 어떤 사람도 유혹을 거치지 않고서는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체험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확인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여기서 ‘고난’은 시련과 환난을 말합니다. 또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시련과 환난을 통하여 낮아진 마음, 곧 겸비해진 모습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에게는 고난이 커다란 은혜의 방편으로 작용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잘못이 교정되고, 악한 습관이 바뀝니다. 경건에 어울리지 않는 삶의 방식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버립니다.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고 남을 멸시하는 교만한 마음이 낮아지고,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뜻을 받드는 데 민감해집니다. 태만했던 기도를 다시하게되고,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이 아니라 더 좋은 하늘 나라로 고정되기 시작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성도의 영혼은 부드럽고 고요하며, 순수하고 경건해집니다. 그래서 고난이야말로 은혜의 수단들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환난을 마주하는 자세가 바뀔 수 있을까요? 아까 말하였듯 환난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과 나의 관점에서 나의 인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의 인생을 바라보게 되면 환난이라는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을 시작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구원, 가장 귀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이신칭의라고 부르는데요, 하나님께서는 의롭지 않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희생을 근거로 모든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1절에서 이러한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던 우리가 이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던 우리가 이제 마음껏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이 구원의 시작도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였고, 이 구원의 완성도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1:6 NKRV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의 구원은 분명 그리스도 예수의 날,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완성됩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받을 만한 자격없는 우리에게 값없는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완성 또한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2절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내용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이 될 것,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을 소망으로 품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새번역으로 2절을 한 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6)자랑을 합니다.

이제 3절과 4절을 들여다보아야 할 차례인데요, 3절과 4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5절부터 8절까지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대표적인 샌드위치 모양의 짜임새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샌드위치의 빵과 빵 사이에 맛을 내는 토핑들이 들어있는 것처럼, 오늘의 본문도 1-2절과 5-8절 사이에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 즉, 3-4절이 들어있는 셈입니다.
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는 은혜를 베푸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증거합니다.
마태복음 7:11 (NKRV)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로마서 8:28 (NKRV)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루터는 신앙성장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 으로 ‘시험’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곧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 는 성령의 능력은 시험 속에서 가장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고 또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옳고 진실되며, 달콤하며 사랑스럽고, 강력하고 위로를 주는 것 인지, 모든 지혜 위 의 지혜인지, 우리로 하여금 깨닫고 이해하게 도울 뿐만 아니라 또한 체험하게 해주는 시금석(touchstone)입니다.”
로마서 8:38–39 (NKRV)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인생에 우중충한 장마와 같은 날이 계속되고 있는가? 내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이 가득 채워지고 있음을 믿으라.
인생에 타들어갈듯한 햇살이 계속 내리쬐고 있는가? 내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더욱 깊은 맛을 내도록 자라나고 있음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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