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배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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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배하는 이유
[롬8:24-27]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오늘 설교의 제목은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고민해 봤습니다. “나는 왜 예배를 드릴까?” 근데 별로 오래 생각하지 않고 이 고민을 멈췄습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는데에 있어서 이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건 앞에 서서 설교하는 저의 이유가 아니라,
앉아서 듣고 있는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왜 예배를 드리십니까?
오늘 교회에는 왜 나오셨습니까?
뭐,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나왔다고 답할 친구들도 있고, 아니면 진짜로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왔다고 이야기할 친구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는 이 질문 자체를 진부하다고 여기고 속으로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곳에 나온 친구들에게 사과합니다.
오늘 설교는 예배 잘 드리는 사람을 위한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 예배 할 생각 별로 없이 와서, 봉투 주니까 헌금 하고, 찬양 시작하니까 일어서고, 설교 하니까 앉고,
결단기도 때 합법적으로 자다가 대충 주기도문 하고, 집에 가서 예배 드렸다고 말하는 사람,
오늘 설교는 그런 사람을 위한 내용입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늘 이 말씀과 설교를 통해 여러분이 “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찾게 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선, 여러분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예배를 잘 드렸건, 엉망진창으로 드렸건 상관없이, 여러분은 존중 받아 마땅하고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성경은 항상, 여러분이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설교가 여러분의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한다고 해도 너무 노여워 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그저 하심탄회하게 사실의 한 부분을, 가감없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통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님께 효도 하지 않고,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어쩌면 더 나아가서 부모님을 여러분 인생에 별로 필요 없는 존재로 여길지라도 여러분의 부모님은 변함없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지금 답하지 않았더라도 모두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하나님도 부모님과 비슷합니다. 사실, 비슷한 것을 넘어 훨씬 더 위대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물론 그 사랑의 표현이 여러분이 원하는 방식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건 부모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부모님의 사랑은 표현방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항상, 전적으로 옳게 표현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필요 없는 존재로 여기거나, 관심에 두지 않거나, 심지어는 욕하고, 귀찮은 존재로 생각할지라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 fact(펙트)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인격과 감정이 있으시기 때문에 마음 아프시고, 슬프실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본 배경으로 두고 다시 예배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고, 경배하는 것이고, 엎드려 절하는 것이며,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모든 행위와 생각과 삶은 예배가 됩니다.
그런데 질문은, 우리가,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예배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냥 기뻐하고 계속 그렇게 살면 됩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면 이 간단한 문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예배하지 않는 우리의 행위와 생각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겠습니까? 이게 오늘 질문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배하지 않는 태도는 우리 인생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독특하고 이상하게도 여러분이 원치 않는다면 딱히 변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즉 원치 않는다면 예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 소식이 기쁨이 되시나요?
예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까?
그래서 만약 하나님이 “너희 중고등부 앞으로 나 예배하지 않아도 돼 너희 예배는 받지 않을 게 그냥 안 해도 한 걸로 쳐줄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여러분들은 기쁨과 감격에 사로잡혀서 다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을 건가요?
아니잖아요?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창조되기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고 감격하게끔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예배하는 기쁨과 권한은 박탈당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혜택만 누리게 된다고 해서 행복에 도달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요? 인간인 여러분이요
그동안 제가 설교를 통해 우리 인생이 변해야 한다고 매주마다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주장을 번복하겠습니다.
사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의무가 분명히 있지만, 동시에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삶과 태도를 교정해야 할 의무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하는 사실은 이게 여러분에게 있어서 기쁜 소식일 이유도 단 한가지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요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변하지 않는 삶은 언제나 불행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삶과 태도가 있다고 해도, 그 삶과 태도를 교정해야 할 의무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변하지 않는 삶은 필연적으로 불행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는 우리 영혼의 죽음을 가져다 줍니다.
뭐, 어찌 되었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두 가지 입니다.
1.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예배 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2.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에 죽는다거나,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불행의 길에 드러서게 된다.
그리고 끝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을 시, 그 영혼은 멸망에 이른다.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죠?
그럼 이러한 이해를 공유한 상태에서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우리가 예배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 많지만, 하지 않아도 될 이유도 그만큼 많으니까 의미 없고,
우리가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고 적지만, 딱히 교정해야 할 의무도 없으니까 또 의미 없고,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별로 없지만, 어차피 부모님 때문에 억지로 끌려 나왔으니까 이것도 논외로 두고,
그래서 질문을 바꾸자면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여기에 있습니까?
부모님이나 보호자가 안 깨워주면 일어나지도 못하고, 평소에 하나님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예배 드릴 생각도 없이 와서 빨리 끝나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을 거면, 도대체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끝까지 버텨서 안 나올 수도 있었고, 잠을 더 자거나,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었는데,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너는 말해라 나는 잔다 라는 마인드로 앉아있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는 것입니다.
지금 전도사님이 혼내고 있는 것 같아서 억울하죠?
여러분 이건 혼을 내는 게 아니예요. 단순히 예배 똑바로 드리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마음이건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로 나온 것 자체가 너무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건 말할 것도 없는 기본 전제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해야 하는 본질적인 질문과 실천사항은 “그냥 나왔으니까 잘했다 땡”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오늘 혹시 자기 의지로 예배자리에 나온 친구가 있다면 자기 결정에 부끄럽지 않도록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열심히 예배 드리세요
그런데 혹시 내 의지가 아니라, 억지로 끌려 나왔다면, 그래서 지금도 언짢은 기분을 유지하고 있다면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를 이곳을 이끈 힘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내다 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여기에 왔느냐”보다
“하나님이 무슨 의도로 나를 여기로 부르셨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분명하고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끝내 여러분을 이곳에 앉혀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싫다고 하고, 죽을 표정을 지으면서 불평, 불만을 쏟아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앉혀 놓으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주님이 여러분을 여기에 앉혀 놓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시험기간이라서 공부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여러분의 상황과 컨디션, 감정과 일정 그 밖에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에서 이 시간을 확보해내신 주님의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 우리가 예배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
그 이유를 알고 경험하고 느낄 때,
여러분 마음에 있는 답답한 감정과 불평, 불만은 해결되고 묶였던 삶이 풀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는 오늘 본문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4-27절의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24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25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27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거예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누굴 만나고, 어떤 꿈을 꾸고,
어떤 희망을 품어야 잘 살 수 있을지 할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이 제기하는 우리 삶의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고, 예수의 이름에 모든 소망을 걸었는데,
내 인생을 들여다보니까 예수라는 이름만 있고,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안 하잖아요, 정말 여기에 올인 하면 내 인생 달라질까? 혹시 처참히 무너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괜히 예수쟁이 되어서 시간 낭비하고 시작도 못하고 끝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고 고민되잖아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 학교 가야하고, 학원 가야하고, 공부 해야 하는데
전도사님이 수련회 가자 그러고 제자훈련 하자고 하니까 마음에 부담 있을 거 압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수련회나 제자훈련이나 인생에 하등 쓸모도 없어 보이고, 별로 재미도 없고, 쉬고 싶은데
자꾸 뭔가 하자고 하니까 귀찮잖아요
근데 생각해보자고요
우리 인생이 그렇게 뛰어납니까? 여러분은 자신 있으십니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달려서 1등은 고사하고 결승선에 들어올 수나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럼 여러분은요? 학교가, 공부가, 시험과 스펙이 하나님보다 더 뛰어나고 능력이 있다고 믿으니까
예배고 수련회고 하나님이고, 나발이고 여러분 인생 책임져 줄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근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를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셔 여러분을 지키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예배를 지켜낼 수 있게 이런 설교라도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보이는 소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 소망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제발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중고등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왜 부르셨을까요? 특별히 왜 예배 자리로 부르셨을까요?
첫째로 주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는 “참으면서 기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십자가의 소망과 능력입니다.
예수께서 우릴 위해 죽으시고 구원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생명을 얻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황폐하고 어둡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의 어둠을 보고 포기하지 말라고 빛이 선포되는 예배 자라로 우릴 부르셔서, 다시금 소망을 보게 하시고,
아득한 한 줄기 빛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 포기하지 마세요. 꿈도 버리지 말고, 사랑도 놓지 마세요
제가 전도사가 되기 전부터 하나님 앞에 고백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주님 예배를 포기할 바에는 내 생명을 포기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고백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저도 무슨 생각으로 저런 어마어마한 고백을 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늘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알고 예배를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중고등부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시려고, 소금이 되게 하시려고,
참고 인내하고 용납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완성시키시려고 주님이 오늘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중고등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둘째로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참으면서 기다리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으며 기다리고,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의 생각과 힘과 능력, 나의 상식과 논리와 주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이끄심과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성경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라고 증언합니다.
여러분이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짜증만 나고 귀찮은 상황에서도 이곳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릴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는 성령님의 기도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고 알아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성령이 이끄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 상반절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여러분이 이곳에 나온 이유는 우리를 진리로 이끄시는 성령님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뜻을 구할 때,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사실은 여러분의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 그 응답은 매주마다의 예배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예배의 자리는 성령님이 우릴 초청한 자리이면서 동시에 성령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 성령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서 이곳에 나아 왔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은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진짜 예배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삶 속에서 드리는 삶의 예배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 중고등부 모든 친구들이 하나님을 기쁨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왜 여기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스스로 나왔든, 억지로 끌려나왔든,
그 과정 깊은 곳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찾음으로써 알게 됩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가장 완벽한 주님의 피조물로 완성시키고자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은 다소 간단합니다.
예배 안 하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모습으로 살아갈 거냐
예배 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거냐
두 가지 입니다.
예배한다고 돈 많이 벌고 떵떵거리며 사는 거 아니고,
예배 안 한다고 인격 파탄나고, 윤리적, 도더적, 사회적으로 나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지, 그렇지 않을지만 결정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 왜 예배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하나님을 조롱하고 무시하던 예배 태도를 변화시켜서 하나님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떠한 모습일지라도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품으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귀하게 여기시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기억하시며, 위로하시고, 안아주시고, 보듬어 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여러분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랑을 알기 위해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힘쓰는 중고등부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