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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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야 하리라
[창11:1-9]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오늘 설교의 제목은 “무너져야 하리라”, “무너져야 하리라”입니다.
본문 속에서 필히 무너져야 하는 것은 바벨탑이라고 하는 상징으로 묘사된 우리의 헛된 인생입니다.
오늘은 말씀을 통해
1. 바벨탑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그리고
2. 우리 인생은 어떤 면에서 바벨탑과 같은지,
그래서
3. 우리는 어떤 결심을 통해 바벨탑과 같이 변질되었던 삶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이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바벨탑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온 땅의 언어와 말이 하나였던 때, 인류는 자기의 번영과 이름을 위하여 한 공동체로 모이고,
하늘 꼭대기까지 닿을 견고한 탑을 세워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습을 보시고 족속과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이 일이 벌어졌음을 말씀하시며,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인류가 한 행동을 잠시 생각해보면 꽤 바람직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하신 행동이 다소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시고, 함께하고, 연합하기를 원하시는데,
“어째서 하나로 연합했던 최초의 인류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다 흩어놓으셨을까요?”
이 질문이 오늘 우리가 해결해야 할 첫번째 문제입니다.
본문을 통해 바벨탑이 죄와 연결된다는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1절의 말씀을 보면 온 땅의 언어와 말이 하나였다고 합니다. 아주 긍정적이고 좋은 일입니다.
또 3절은 벽돌을 견고히 굽고 역청으로 접착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고급기술을 보유한 것입니다.
마지막 4절에는 바벨탑 건설의 이유가 등장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인류가 가지고 있던 문제는
언어와 말이 하나였던 것도 아니고, 노력을 통해 개발하고 습득한 좋은 기술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제 삼으신 것은 4절에 기록된 ‘인간의 의도’ 였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높고 견고한 탑을 쌓아서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 즉 흩어짐을 면하고자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교만이 모여서 바벨탑을 죄악으로 점철된 악인들의 본거지로 만들었습니다.
노아 때의 홍수 사건을 기억하면
오늘 바벨탑이 얼마나 큰 교만과 죄악인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7절에서 주님은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는 이 홍수를 경험하고 시간이 흐른 뒤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높은 탑을 쌓으면 홍수와 심판에서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 모릅니다.
또 어쩌면 함께 모여 있으면 하나님의 진노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생각이었든 중요한 것은 인류가 범죄 하지 않으려고 모이거나 힘을 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을 위하여 또한 안락한 삶을 위하여 하늘에 닿을 탑을 쌓아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탑은 그 자체로 인간의 죄악이 형상화된 열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두 번째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어떤 면에서 바벨탑과 같을까요?
우리 인생에도 제멋대로 쌓아 놓은 탑이 있다는 데에서 의미를 같이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자기 마음대로 쌓아 놓은 바벨탑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친구관계일 수도 있고,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예배태도나 언어습관, 인터넷, 스마트폰 사용습관, 생활습관,
혹은 학교 성적, 가치관, 정체성, 우선순위, 건강 등 다양한 분야일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인생의 탑이 내가 쌓은 탑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친히 빚어 가시는 거룩한 성전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의도’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의도가 어디로 향해 있는지에 따라 바벨탑인지, 하나님의 성전인지 판가름 될 것입니다.
단언컨대, 하나님 없이 세운 모든 계획과 습관과 가치는 결국 바벨탑과 같은 열매가 되어서
여러분의 발목을 붙잡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어야 하는 세상의 규칙 속에 살아갑니다.
죄를 뿌리면 죄를 거두어 먹어야 하고,
선과 의의 씨앗을 뿌리면 선과 의의 열매를 거두어 먹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삶 속에서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여러분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갔는지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살아 있음과 존재함의 의도는 무엇인지,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또 학교에 가고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지,
곱씹어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동안 우리 삶의 크고 작은 일들 속에 하나님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성실과 열심이라는 탐스럽고, 보기 좋은 핑계 뒤에 숨어
죄의 열매를 거두어 먹고, 견고한 바벨탑을 세워가고 있었던 것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이 중요합니다.
바벨탑이 하나님 앞에서의 죄악이고, 우리 인생도 크건, 작건 바벨탑을 세워가는 여정이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결심을 통해 바벨탑과 같이 변질되었던 삶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의 답은 오늘 설교 제목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무너져야 하리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성전으로 완성되기 위해
그동안 우리 스스로가 제멋대로 세워갔던 인생의 바벨탑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건축학에서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초기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반을 다지는 평탄화 작업 입니다. 이것은 건물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더욱 중요해집니다.
땅을 깊이 파고, 지반을 고르고 단단하게 다지면, 다질수록,
건물은 그만큼 더 안정적이고, 높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가 높고 튼튼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더 넓고 깊은 뿌리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원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더 깊이 내려가는 지난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땅을 파고 지반을 다지는 시간,
더 깊고 넓은 뿌리를 내리기 위해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웅크리고 있는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현실의 삶 속에서 이러한 시간은
학교와 학원에서 하는 공부이고,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입니다.
그 밖에 하기 싫은데, 마땅히 해야만 하는 모든 일들은 전부
높고 튼튼한 건물과 아름다운 거목으로 완성 되기 위해 웅크리고 있어야 하는 인내의 시간입니다.
또한 기독교 영성에서 이런 시간은
예배의 시간, 기도의 시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신지,
스스로 질문함으로써 그 답을 찾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성을 파악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사님이 거창한 말들을 잔뜩 쏟아 냈지만 사실 오늘 설교는 매우 단순합니다.
먼저, 여러분 인생의 바벨탑은 무너져야 하고,
또한 필히 무너질 것이라는 간단명료한 사실이 전제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의도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분명히 일어날 일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함으로써 인생의 바벨탑이 무너졌던 것처럼
혹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그 형벌로 스스로 세워갔던 바벨탑이 처절하게 쓰러져내린 것처럼
여러분 인생에도 스스로 쌓아 놓았던 욕심과 이기심,
하나님을 멀리했던 모든 순간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이 무너짐은, 우리 모두가 공평하고 동일하게 경험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언제 무너지느냐, 그리고 무너진 이후에 어떻게 회복하느냐 입니다.
빨리 무너지는 것과 제대로 회복하는 것이 곧 실력입니다.
무너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쓸모없는 것들을 다 버리고 바벨탑을 헐어버리는 것,
또한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땅 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지반을 다지는 노력,
그 열심과 의지가 여러분의 인생을 바벨탑이 아닌 거룩한 성전으로 만들어갈 것이고,
아름다운 거목으로 성장시켜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순간 이 결정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너진 터 위에 또다시 무너질 건물을 세우고,
썩어버린 토양 위에 또다시 거두지 못할 씨앗을 뿌릴 것인가,
아니면
당장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못할지라도 무너진 터를 정돈하고, 지반을 다져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전을 여러분의 삶 위에 건설해 나가고
썩은 토양을 갈고, 경작하여 씨를 뿌리고 깊은 뿌리를 내려서 높이 자라날 거목이 될 것인가,
지금 결정하시고, 예배를 대하는 여러분의 태도로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배 잘 드리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멋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벨탑은 하나님 없이 쌓아갔던 우리 인생의 모든 기록과 실력, 수많은 프로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바벨탑을 버리고, 거룩한 성전으로 완성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간직한 채로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엉망으로 지었던 건물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 다시 지어 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기도하는 실력, 말씀 읽는 실력,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실력을 길러서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또한 신앙을 갖는 것이
지금은 쓸모 없어 보이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보여도 이 시간이 진정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고,
단단한 지반을 다지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미시적인 시선으로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닌, 거시적인 시선으로 숲 전체를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굴러가고 있지만,
이 돈과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믿어지지 않는 상식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무너질 잘못된 습관은 지금 무너뜨리시고,
어차피 버려야 할 생각과 행동은 지금 버리시기 바랍니다.
지금 듣고, 오늘 행하는 것이 실력입니다.
끝내 가져야 할 신앙과 영성은 미뤄두지 말고 지금 쟁취하시기 바랍니다.
혼자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것이 어렵다면 수요예배와 금요심야기도회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없이 한 시간 더 공부하는 것보다 차라리 예배 드리는 게 백 배는 더 낫습니다.
하나님께 1도 관심 없을 때, 그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머물러 있는 것이 진정 실력입니다.
가장 바쁘고 치열할 때,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진정한 능력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을 그냥 살지 말고
하나님 제대로 만나 놓고 시작하세요
하나님을 만나야지 진정한 인생이 시작됩니다.
함께 주님을 구하는 기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