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형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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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형성하라
사도행전 11장 19-26절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랑하는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 오늘 함께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당신은 존귀하고 특별한 사람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특별하고 존귀하게 지음받은 여러분과 함께 예배할 수 있음에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지난주에는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지난 설교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꿈과, / 하나님의 비전을 품게 되면,
우리의 인생 그 자체는 하나님의 꿈과 비전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선포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의 삶은 승승장구하기 이전에 고난이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종적으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되어봅시다.
이것이 지난주에 우리가 함께 나눈 설교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리스도를 형성하라”, “그리스도를 형성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은 본문 26절이 증언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 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름이 갖는
무게와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 1절의 말씀을 보면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스데반의 순교 사건은 예루살렘교회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왔을까요?
함께 사도행전 8장 1절 하반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의 순교는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을 흩어지게 만들었습니다.
12명의 사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 각기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간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도망이라 하면,
긍정적인 인식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이 들곤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의 도망은 부정적인 것일까요? 긍정적인 것일까요?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을 위협받게 되니까 무서워서 도망을간 것,
부정적입니까?
어쩌면 이 질문의 답이 지금 읽을 말씀에 담겨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오늘 본문 19-21절을 읽겠습니다.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말씀을 자세히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이 어딘가 어색한 것 같지 않습니까?
도망을 갔으면 숨 죽이고 목숨을 부지하며 숨어살면 되는데,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흩어진 이들이 예수를 전파했다고 증언합니다.
특별히 아까 읽은 8장 1절의 말씀은 이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
곳곳으로 흩어져서 예수를 전파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유대인의 박해가 두려워했고,
그래서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을 갔는데,
도망을 간 그 곳에서도 또다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번에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 즉 헬라인에게까지도 복음을 전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사도들의 걸음을 기록하며 가장 먼저 이렇게 선포합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도망을 가긴 갔는데,
도망을 위한 도망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망을 간 것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 도망을 위해 도망을 간 것이었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을 선포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요셉과 같이 말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복음이 너무 좋았나 봅니다.
복음이 너무 좋고, 복음이 너무 값지고, 소중해서
두려워서 도망자 신세가 된 상황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좋은 복음이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복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복음이
기쁜 소식, 아름다운 소식, 복 된 소식으로 새겨지면 좋겠습니다.
시편에 보니까
너무 두려워서, 또 많이 무서워서 도망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다윗입니다.
함께 시편 34편 8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용을 조금 설명드리겠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아비멜렉, 즉 아기스 왕에게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 도망을 간 그 곳에서도 뭔가 심상치가 않음을 느꼈습니다.
여우를 피했더니 호랑이를 만난 것입니다.
다윗이 눈치를 보니까
여기 있으면 딱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든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살기위해 어떤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자 문제,
과연 다윗은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정답은
‘미친 척’입니다.
함께 사무엘상 21절 12-13절의 말씀을 새번역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12 다윗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 그는 가드 왕 아기스 옆에 있는 것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3 그래서 그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미친 척을 하였다. 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그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성문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기도 하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던 아기스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21장 14-15절의 말씀입니다.
14 그러자 아기스가 신하들에게 소리쳤다.
"아니, 미친 녀석이 아니냐? 왜 저런 자를 나에게 끌어 왔느냐?
15 나에게 미치광이가 부족해서 저런 자까지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왕궁에 저런 자까지 들어와 있어야 하느냐?"
다윗은 미친척을 한 후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직후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도 가보고,
상황과 환경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본 후
이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주관 아래에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전도사님이 2주전에 워크북을 주면서
시편, 잠언을 매일 한 장씩 읽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요,
항상 장미빛일 수 없고요, 언제나 반짝이는 보석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역전하시고,
승리하시는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시편에는 그러한 인생의 고백이 담겨있고,
잠언에는 그러한 인생의 지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이 시편과 잠언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아직 일주일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친구들이 워크북을 성실히 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품은 상태로 수련회에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을 기대하기만 하고, 마음을 열고만 있어도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갈 때
상황과 환경과 사람이 아닌,
수련회때 만난, 그 하나님께로 피하는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다윗도,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도망자가 신세로 살았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도망의 끝에서 아둘람 공동체를 형성하여
훗날 자신이 왕위에 앉을 때, 왕권을 견고히 할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또 초대교회 성도들은
도망의 끝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습니다.
다윗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모두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단어의 쓰임을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전도사님은 /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어지기까지 겪게 되는
삶의 모든 여정을 ‘인생’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뭐라고 명명 한다고요? ‘인생’
맞습니다. 우리가 삶의 모든 여정 속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은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뒤집에서 정리하면
우리의 인생은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말의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은
단 한번의 순간속에서 펼쳐지는 / 일시적이고, 환상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인생을 관통하는
지속적이고 오랜 시간이 소모되는 역사의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긴~여정을 함께할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전도사님은 그 동역자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해야 합니다.
지난 금요심야기도회 때 중1 친구들 몇 명이랑 잠시 이야기를 나눴지만,
전도사님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그 십자가를 알고, 체험하고,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알고, 체험하고, 경험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예수님의 눈물과 상처와 애통함이
나의 눈물과 상처와 애통함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십자가로 인하여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시대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세상 가운데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친구들에게 교회 가자고 당당하게 말하는 멋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못하겠죠?
하기 싫죠?
어차피 말해도 교회 안 올테니까, 말도 꺼내기 싫죠?
괜히 전도한다고 놀림 당할 것 같죠?
맞아요.
이해하고 공감해요.
그래서, 복음 전하기 싫습니까?
잘 들으세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20절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절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6절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복음 전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기 위해 우리가 견뎌야 할 무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복음을 전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십시오.
십자가를 묵상하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세상은 예수 이름의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말하지만,
제발 여러분 만큼은 예수 이름의 진정한 능력이 있음을 경험하십시오.
여러분이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예수님은 응답하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