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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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주일
골로새서 3장 1-4절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은 오직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새기고,
그분의 모든 생애와 십자가 죽음, 부활과 승천하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기뻐하는 날입니다.
다른 말로는
우리 인생을 그리스도의 인생과 통합하고, 세상 속에서 통합의 과정을 이루어가며,
우리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살아내신 삶의 형태를 드러내고, 증명함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 그리스도께서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해 나가길 결심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 승천과 함께 발 맞추어 이루어집니다.
이 말은 곧 우리 삶에도, 수난, 죽음, 부활, 승천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야 하며,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논리와 개념은 오늘 설교의 제목과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오늘 설교의 제목은 “그리스도와 함께”입니다.
인생을 통합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삶에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을 받아들이고, 해석해내고, 끝내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표현이 세 단락에 나뉘어서 나타납니다.
1절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3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절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은 ‘함께’입니다.
‘함께’라는 말은 그리스도교 전통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표현입니다.
바로 ‘공동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두 가지 질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시는 부활의 의미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교회 공동체와 함께 맞이하는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
둘째, 그리스도와 함께 맞이하는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
먼저 첫번째 질문, 교회 공동체와 함께 맞이하는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든 것을 다 공동의 것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흩어져 있던 인생들을 십자가 위에서 하나로 모으셨고,
각기 제 길로 걸어가는 양 같던 우리의 목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양 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비유됩니다.
[눅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배타적인 사상과 문화속에 살아가는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한 마리 양을 위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버리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생각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속에 켜켜이 쌓인 수많은 세월과
그 시대를 이끌어온 사상은 우리의 상식을 변형시키고
성경이 말하는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연약한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하는 바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만이라도
의식적으로 이타적인 시선을 가지고 읽어내기 위해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이타적이라 함은,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가능하면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랑해보면 좋겠습니다.
방금 읽은 누가복음의 말씀 역시도
보다 이타적인 시선에서 읽어보면 이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흔아홉 마리 양으로는 도저히 완벽해질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백 마리 양이 함께 모여 있는 공동체를
‘완전하다.’ 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잃은 양 비유가 조명하는 바는,
한 마리 양을 찾아서 무리에 합류 시키는 것으로, 완벽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라는 말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세상과 공동체와 인생은, 어차피 마지막 한 마리가 더해지고
백 마리의 양이 전부 모일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단순하고, 비효율적인 논리는 우리 인생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공동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운명 공동체로 존재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공동체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엡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
각 사람들의 인생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아름답게 완성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수련회 때 나눴던 느헤미야 말씀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4: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구약시대의 성벽과 성전은 야훼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을 상징하고
신약시대의 성전은 건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렇든 저렇든,
연결되다. / 연합하다. / 하나가 되다. / 통합되다. / 일치되다. 와 같은,
여러 객체가 모여서 하나를 이룬다는 갖가지 모~든 표현들은 전부
하나님이 인간에게 개입하신 것을 나타내며,
또한
인간이 자기 이외의 또다른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내포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경이 사람과 교회에 관하여 늘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어야 하고,
또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부활주일이 우리에게 의미 있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옆 사람과 함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원하고 바라기는,
우리 중고등부가 부활주일 예배를 통해 아흔아홉 마리의 불완전한 무리가 아닌,
백 마리의 온전한 공동체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와 함께 맞이하는 부활은 어떤 의미입니까?
부활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역사적인 날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죽음이 되고, 주님의 부활하심은 우리의 부활이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5절의 말씀은 우리 가운데 이렇게 선포합니다.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주님의 죽으심을 본 받는 자가, 주님의 부활의 영광도 맞이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 예수님은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죽으면 끝나는 인생을 살던 우리는, 이제 죽음 뒤 부활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오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와 함께 죽고, 끝내 예수와 함께 부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살다가, 그냥 그렇게 죽고, 예수 없이 부활해서 심판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 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예수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그곳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너희의 생명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기로 결심한 우리의 생명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선포는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져냈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이상 우리의 아픔은 나 혼자만의 아픔이 아닌,
주님의 아픔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역사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누가복음 9장 23-24절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부활주일을 맞이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체와 함께
주님이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신 것처럼, 다른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죽으심에 뛰어들고
다시 사신 놀라운 영광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무너진 우리의 인생을 다시 세우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의 무너진 인생을 세워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제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마을 골목에 작은 빵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이곳을 찾아와 빵을 사갔습니다.
이 빵집의 주인은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빵집에서 빵을 즐겨 사는 이유는
단지 주인이 선량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빵집의 주인은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주인을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빵 집 주인을 지혜롭고 아주 친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빵집 주인을 선지자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버스 운전사가 우연히 빵집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 운전사의 얼굴을 본 빵집 주인은
"어떤 힘든 일이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버스운전사가 대답했습니다.
“저의 어린 딸 때문에 걱정입니다.
어제 우리 아이가 그만 이층 창문에서 떨어졌거든요.."
빵집 주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이런,, 아이가 몇 살입니까?"
버스 운전사가 대답했습니다.
"겨우 네 살입니다.."
그러자 그 빵집 주인은 빵을 하나 집어 들고서 둘로 쪼갠 뒤
한 조각을 버스 운전사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이 빵을 나눕시다. 내가 당신과 당신의 딸을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버스 운전사는 이런 일을 처음 겪었습니다.
하지만 버스 운전사는 그 빵집 주인이 자신에게 빵을 건네주며 했던 말이
이내 곧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빵 한 조각씩을 나눠 먹었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병원에 있을 아이를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처음엔 버스 운전사와 빵집 주인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한 여성이 빵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여성은 가까운 시장에서 우유 두 병을 산 뒤,
이제 빵을 사려고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이 빵을 주문하려고 하자 빵집 주인은 빵 한 조각을 떼어
그 여성분의 손에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와 함께 빵을 나눕시다. 이분의 어린 딸이 심하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네 살 밖에 안 됐는데, 창문에서 떨어졌다고 하네요.
우리가 이분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해줬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 여성은 빵 한 조각을 받아 두 사람과 함께 먹었습니다.
빵집 주인과, 버스 운전사와, 우유를 들고 있던 여성은 함께 빵을 나누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기억해주기로 했습니다.
(빵 먹을 준비)
이제 우리도 함께 이 빵을 나누어 먹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 빵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이제 모두 앞으로 나와 한 줄로 서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빵을 나누어 드리며
“우리 중고등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면
여러분은 빵을 받으시면서
“중고등부 공동체의 아픔은 나의 아픔입니다.”라고 대답해 주시고 자리로 돌아가셔서 빵을 드신 후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빵을 다 나눈 후)
이제 우리 각 개인의 아픔은 혼자만의 아픔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빵을 나누며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짊어지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된 것을 기억하며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하심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공동체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부활하심을 기뻐합시다.
함께 사랑의 나눔 있는 곳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