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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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Notes
Transcript
사도바울 육신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
Philippians 1:22–30 NKRV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도입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원하는 일과 해야할 일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보통의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하고, 게임을 하고 싶어하고, 만화영화를 보고 싶어합니다. 밥을 먹어도 자신이 원하는 반찬을 즐겨 먹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놀고 뛰고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이 아이들이 원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반찬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골고루 먹어야 합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야채도 좀 먹어야 하고, 야채를 좋아하는 아이는 고기도 좀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3종 세트를 해야 합니다. 3종세트는 아내가 아이에게 집에 오면 시키는데 수학문제를 풀고, 한자를 쓰고, 국어 문장을 따라씁니다.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씻어야 하고 너무늦지 않게 자야 합니다. 이게 해야 할 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해야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삶이 건강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만 원하는 일과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도 원하는 일이 있습니다. 어른들의 원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한 기사에 보니 외국의 어떤 어른들은 유엔에 가입한 국가들을 다 방문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나라씩 방문을 해서 꿈을 다 이루니 이제는 나라를 건립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미국의 사막에 큰 땅을 사서 자체적으로 나라라고 선포했다고 합니다. 국기를 만들고, 여권을 화폐를 만들고 나라의 규정도 만들었습니다. 특이한 규정들도 있는데 크록스라는 슬리퍼 같은 신발을 착용하면 불법으로 여기는 등 자칭 술탄이라는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나라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어른의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죠. 어린이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직장생활 등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가정을 돌보고 아이들을 돌봐야 합니다. 이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입니다. 어른에게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일과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삶을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어있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도 원하는 일이 있고, 또 해야할 일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갈등도 존재함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사이에서 갈등이 깊어지지 않고 번민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은 원하는 것과 해야할 일이 끼어있는 삶에서 균형잡힌 삶을 살 수 있었을 까요?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원하는 것과 해야할 일 사이에서 괴로움에 빠지 않고 건강한 삶,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두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2. 본론
1) 첫번째 사도 바울은 원하는 일과 해야할 일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22절에서 3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2절에서 23절 말씀 저 한절 여러분 한절 읽겠습니다.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아멘.
22절을 다시 보시면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 일진대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이 말은 21절을 보면 해석이 됩니다. 21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것을 필립스 신약성경으로 해석하면 “내게 삶은 오직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만약 죽는 다면 그것을 더욱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는 온통 그리스도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원함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하는 것을 그리스도를 더욱 누리는 것이 그가 원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장 누리는 방식이 무엇인가 하니 ‘죽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을 마감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죽든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당하든 죽음이라는 방식이 예수님을 누리는 가장 최고의 방법임을 그는 고백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었던 것이요.
그런데 22절에 ‘그러나’라고 시작합니다.
필립스 신약성경으로 22절을 계속 보시면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22 이 세상에서 삶을 이어간다면, 선한 일에 쓰이겠지요. 나는 선택을 내리기가 매우 힘듭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더욱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에 있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삶을 이어간다면 하나님 앞에 선한 일에 쓰임 받을 것을 알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일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선택을 내리기 매우 힘들다고 고백합니다. 원하는 것과 해야할 일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가 매우 힘들다는 것 입니다. 그러한 삶을 사도 바울은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어있다”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끼어있는 삶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한 요구와 또 해야할 사명 사이에 끼어있는 존재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갈등과 고민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원하는 일과 해야할 일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크게는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 끼어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그 갈등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갈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기 위한 갈등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 사이에서 끼어 갈등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갑니다. 여러분 안에 믿음의 가치과 세상의 가치 사이에서, 원하는 일과 해야할 일 사이에서 갈등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나아가시는 귀한 통로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2) 두번째 사도 바울은 둘 사이에서 선택하고 더 좋은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결정 장애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2010년대에 젊은 사람들이 중요한 상황에서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문화나 모습들을 빗대어 심리학 용어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이 말은 원래부터 의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된 질병이 아니라고 하며,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사전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질병은 아니지만 선택의 순간 선택하지 못해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일을 그르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선택이 ‘결정장애’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쉽지만은 않습니다.
샴푸하나도 수십 수백가지입니다. 식당도 무수히 많습니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선택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선택했습니다.
선택의 지점에서 선택했습니다. 더 좋은 것을 가늠하고만 있지 않고 더 나은 것을 향해 선택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그것을 분명하고 인식하고 선택했습니다. 왜 입니까? 더 나은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24절과 25절을 다시 보시면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사도 바울 자신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그리스도를 더욱 누리는 것이 좋았지만, 더 나은 것은 자신이 육신으로 있는 것이 빌립보 교회에 유익함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육신으로 있음을 통해 그들을 그리스도인 답게 살도록 도울 수 있고,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사도 바울을 처럼 선택의 순간이 언제나 찾아옵니다. 그리고 선택과 선택 사이에 끼어 갈등하게 됩니다. 어떻게 선택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안에서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고 선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의 진보와 유익함이 더 나음을 바라보았기에 그것이 나은 선택임을 확신하였습니다.
3. 결론
여러분의 삶에는 어떤 선택의 순간들이 있습니까?
어떤 선택과 선택 사이에 끼워있습니까?
믿음의 진보로 나아가는 귀한 시간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더 나은 것을 바라봄으로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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