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4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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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여러분~ 모두 함께 예배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다들 한주 잘 보내고 계시죠? 사실 저도 지난주에야 시험을 끝내고 나니까 마음에 조금은 여유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조금은 누려야겠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달력을 보니까 캠프가 정말 얼마 남지가 않았더라구요.
여러분들도 잘 준비하고 계신가요? 다들 필사도 하고 있으시죠? 저도 필사를 함께하고 있는데, 사실 저는 지난 신대원 1학년 때, 코로나를 겪으면서 학교에서 필사를 시켜서 로마서 필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필사가 쉽지 않다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하면서 느낀 것은, 물론 지금도 어렵지는 않지만, 저번에 억지로 했을 때와는 다르게, 조금은 말씀을 한구절씩 더욱 보면서 필사를 하게되니 또 다른 은혜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물론 힘들겠지만, 필사를 함께하면서 그런 은혜를 함께 누리시면서 이번 캠프를 준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을 오늘 필사 부분인 5장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물론 오늘 분량이니까 한 것도 있지만, 말씀을 준비하면서 보니 오늘의 이 본문이 로마서에서도 중요한 본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의 앞부분에서까지 어떤 내용이 나오느냐, 여러분들도 필사하면서 보았겠지만, 사람들이 행한 죄악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임을 제시하고, 그렇기에 그 모든 죄는 우리의 육신의 행동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한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말씀이 시작을 하죠. 그리고 어떤 내용을 말하냐, 우리가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있는 것이냐,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오늘 말씀 1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요? 앞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그러니까 너희가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졌기 때문에 너희는 이제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함을 누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영어로는 We have peace라고 번역을 하고 있어요. 결국 여러분들에게 평화가 있으니, 평화를 누리면 된다라는 거에요.
어때요 여러분들, 기쁘시지 않나요? 여러분들 가운데 평화가 있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은 샬롬하다라는 거에요.
여러분들 정말 그러신가요? 물론 화평함을 누리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아마 많은 분들은 동감을 하지 못하실 것 같아요. 왜냐, 당장 우리에게는 평화가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말이죠.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이하는 이 시기 속에서도 앞으로 계획하는 것들도 있고, 해야할 일들도 있고, 특히 우리 마음에는 어때요, 캠프에 대한 걱정과 근심들이 쌓여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화평과 평화를 누리느냐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바로 이 화평이 어떤 것이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말씀에서 평화, 복, 이런 것들을 보게 될 때, 어떤 것들을 생각하냐면, 세상적인 행복을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다 잘되고,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고, 재정적으로, 감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그러한 것들을 생각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내게 복에 복을 내려주신다고 했으니, 내가 이 코인에 투자를 하면 수익을 엄청 낼 수 있을거야’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라는 거에요.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아마도 수익보다는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또 뭐라고 하겠어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오게 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말씀에서 말하는 화평, 복, 이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화평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얻는 기쁨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고, 그렇기에 모든 것이 끝나는 종말의 때에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고, 그렇기에 그 자체가 화평이고, 기쁨이고, 복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세상적인 복을 아예 주시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라면, 분명 우리에게 아까 말했던 세상적인 복들도 허락해주시죠.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궁극적인 행복에는 발끝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바울은 이어지는 2절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믿음이라는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영광, 궁극적인 복을 소망하고 즐거워할 수 있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러한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가 반응했던 것처럼, 로마교회의 성도들도 어쩌면 비슷한 반응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 당시 로마교회 성도들 역시, 그들의 삶이 즐겁고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겪는 핍박과 고난들이 그들의 삶에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절에서 그러한 고난, 즉 환난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환난에 대해 뜻밖에 말을 꺼냅니다.
환난을 즐거워한다는 것이죠.
그때도 그랬겠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환난, 고난은 절대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죠. 왜겠어요? 당연히 힘드니까, 고통스러우니까 그러한 상황들을 벗어나고 싶어하고, 겪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환난을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왜그럴까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런 걸까요?
이어지는 구절에서 바울이 그 이유를 말합니다. 뭐라고 하죠?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난을 겪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자연스럽게 인내가 생겨나게 됩니다. 인내는 성령의 8가지 열매 중 하나일 정도로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죠.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구절에서도 고난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우리가 고난이 없는 삶을 살면 너무나도 좋죠. 하지만 그러한 삶이 오래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우리는 그 안에서 안주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짐승들 조차도 자신의 자녀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들의 생명까지도 위협할 정도의 자리로 그들을 내몰기도 하죠.
우리가 고난의 순간에 있을 때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지만, 그것을 인내함으로 이겨냈을 때, 우리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야구에서 타자가 스윙 연습을 하면서 손도 까지고 하지만, 그 이후 굳은살이 생기고 확실한 실력을 얻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에서 말하는 연단이죠. 그리고 그렇게 연단된 우리 자신은 더이상 세상의 자잘한 것들에 대한 관심을 끊어내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바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을 기록한 바울도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번 감옥에 갇히고 수없이 맞고, 심지어는 몸의 건강까지도 좋지 않았음에도,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삶을 싫어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바울이 이렇게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이 약한 것을 자랑할 수 있는 것도, 그에게 다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삶, 또한 이를 통해 결국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그 화평이 너무나도 기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5절을 통해 인내와 연단을 거친 소망이 헛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왜냐,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여러 고난을 겪고, 그 고난을 통해 인내하고 연단되는 과정이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에 있는 우리를 주님은 그저 바라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성령님을 통해서 크신 사랑을 아낌없이 부어주셔서 인내와 연단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성부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소망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지금의 이 삶은 힘들고 고통으로 가득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로 나아갈 그 때를 소망하며 기쁨을 누리고 준비해야 할 삶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이 캠프가, 그리고 그 준비의 과정이 어쩌면 그 성도의 삶의 축소판과 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이 캠프를 준비하는 이 과정 역시도 매번 순탄하지만은 않을 거에요. 일이 잘 안될수도 있고,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상황이 지속적으로 우리를 가로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이것들로 인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즐거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에 그러한 생각이 들 수 있겠죠. 왜 자꾸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실까. 우리가 캠프를 잘 이루어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그 모든 것들이 사단의 여러분들을 향한 공격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캠프를 이루어나가는 모든 순간을 막기 위한 공격일 수 있겠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공격까지도 허용하시면서 여러분들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왜일까요? 오늘 말씀에 나온 것처럼, 여러분들이 인내를 갖고, 연단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로서의 모습을 갖추기를 원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 모든 준비 과정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에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그래서 너무나도 은혜로울 캠프의 순간을 소망하며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캠프의 주제가 뭐죠? 그 누가 멈추리요 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와 하나님의 믿음을 통한 연합은 그 어떤 이들도 끊을 수 없습니다. 동일하게, 여러분들이 캠프를 향해 나아가는,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이 마음은 그 누구도 멈추게할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믿으면서, 캠프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그러한 의로운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찬양할까요?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라는 찬양을 함께하겠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함께하시기에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그 사실을 기억하며 함께 고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