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7 금요철야, '기사봉 교회(주제: 마지막 때, 세상 속에서 사랑과 회복이 있는 공동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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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한주간 세상 속에서 살다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상한 마음과 몸을 이끌고 이 자리에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심령 가운데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시옵소서.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것을 이미 아시는 주님께 고개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고 간절히 나아갑니다.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켜주시고, 세상 염려를 벗어내고 주님의 은혜로 옷입게 하소서.주님의 사람으로 일어서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성경 본문

1 Peter 4:7–11 NKRV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서론: 디데이, 마감시간

우리는 어떤 시험이나 업무의 마감시간, 디데이가 다가오면 긴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의 집중력이 올라가고 일률은 상승합니다. 일률 상승 그래프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디데이가 오기까지 여유가 있을 때는 나태하고, 여유롭습니다. 그래서 일률이 낮았다가, 점점 디데이가 다가오면 집중력이 올라가고 일률 곡선이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이런 경험을 학생들은 주로 시험기간에 하게 됩니다. 시험 전날 엄청난 집중력으로 밤을 새서 공부하게 되죠. 취준생들 같은 경우엔 서류 마감날이 되면 어디서 생기는지 모르는 집중력으로 자소서를 마무리 짓습니다. 직장인들은 퇴근시간이 되면 누구보다 더 빨리 퇴근하고자 하는 집중력이 발생합니다. 그보다 결제 서류를 내기 직전이나 프로젝트 마감일에 집중력이 수직적으로 상승합니다.
우리에게 디데이, 마감시간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참 은혜입니다. 게으른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고 초인적인 집중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마감시간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오실 마지막 때가 그러합니다. 만약 우리 인생의 마감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정말 허랑방탕하게 살지 않을까요? 인생 무상을 외치며 허무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은 정말 미련한 것이 될 것입니다. 선을 행하거나, 예배를 드릴 이유가 없어집니다. 이 시간에 모여 기도하는 것 자체가 쓸모 없는 일이겠지요. 세상 사람들처럼 불금을 즐기거나, 집에서 한주간의 피로를 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마감시간을 주셔서 우리가 이 땅에 잠시 있다가 갈 것임을 잊지 않게 해주시고 그래서 정신을 차려 살아갈 수있게 해주셨습니다. 오늘 베드로도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모든 인생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고 말하며,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고 당부합니다.

본론:

1) 베드로가 기대한 공동체의 모습: 위로와 회복의 공동체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재림하기 전까지의 기간인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뤄질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때가 가까워 올수록 교회가 더욱 분열하게 하고 신자들에게 믿음을 떠나도록 만드는 고난과 시험이 자주 찾아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그럴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수신자들은 1장 1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라는 지역에 흩어진 나그네들입니다.
1 Peter 1:1 NKRV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이 지역은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당시 로마제국이 식민지로 개척한 지역들입니다. 다른 여러 나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로마도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서 제국에 충성하지 않는 자들을 강제적으로 보내거나 또는 식민지역의 귀족이 되고자 하는 자들을 자발적으로 이주시켜서 살게 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자들은 그 지역에 강제적으로 보내졌는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이사를 갔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로마지역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후 그곳에서 수십만 키로나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하게 된 이방인들이자 나그네들이었습니다.
로마 지역에는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비교적 많은 신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정착하게 된 지역에는 마을도 몇몇 없었을 뿐더러 신자들은 자신들말고는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만약 그런 곳에서 서로를 위하지 않고 분열하고 갈등하게 된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믿음을 지킬 수도 없고 믿음을 전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잊고 그곳에서 이방인들과 같이 그들의 풍습을 따라 살아가게 되겠지요.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하는 모습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주의해야 할 모습입니다. 교회가 분열된다면, 그들의 신앙 또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 땅의 이방인임을 잊어버리고 타성에 젖어 살아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선교적 사명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그들이 서로를 더욱 사랑하며 하나되길 바랬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이방인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흡수되지 않고,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길 바랬습니다. 또한 세상으로부터 받는 고난과 아픔을 그들의 공동체를 통해 위로받고 다시 회복받아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이방인임을 잊지 말며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기억하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며 사랑하고 봉사하라’고 권했습니다.

2) 그런 공동체가 되기 위한 조건: ‘기도’

특별히 저는 오늘 베드로가 강조하고 있는 세가지 모습 중에 ‘기도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7절 말씀 한번더 읽어보겠습니다.
1 Peter 4:7 NKRV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제가 ‘기도와 사랑, 봉사’ 중에서 ‘기도’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 이유는 바로 기도가 성도의 모든 행위의 첫단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위해 대접하고 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행함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가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뜻이며, 또한 그분의 뜻을 행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할 수 있게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직접 우리의 환경과 상황을 바꿔주시기도 하지만 신자인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베드로 전서 2장 9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행할 선택받은 족속이자, 왕같은 제사장들이며, 그분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당신의 뜻을 드러내길 원하십니다.
저는 고등부 아이들과 함께 바른 기도란 무엇인지를 알고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인 주기문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기도문에는 총 여섯개의 기도가 나옵니다. 이 기도들은 모두 명령형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하나님께 강하게 요청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나라 임하소서, 뜻이 이뤄지게 하소서, 양식을 주소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이렇게 하나님께 강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들은 요청의 성격만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3절의 주기도문 내용이 나온 이후 이어서 나오는 14-15절에는 다섯번째 기도인 ’잘못을 용서하소서‘에 대한 해설이 나옵니다. 이 구절들에는 ‘너희가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지 하나님 또한 용서하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시지요. 이 부분은 단순히 다섯번째 기도제목에 대한 해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든 기도가 다 이런 원리이다라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기도하지만 기도한 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리해보자면 기도는 하나님께 요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요청과 동시에 서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해주십시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 해주십시오. 저 또한 그렇게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이 함께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3) 기도의 예시: 믿음과 행함이 함께

우리는 종종 기도만 하고 하나님께 ‘알아서 해주세요’ 라는 식으로 맡길 때가 있습니다. 정말 신실해보이는 멘트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고등부 아이들에게 기도와 행함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 뒤 이런 예시를 들어줬습니다.
우리 고딩이들은 시험기간만 되면 정말 피곤해집니다. 피로의 영이 아이들을 온 육신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주로 시험이 월요일에 시작할 때가 많아서 특히 시험 전날 주일에는 밤을 새고 오는 아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때 아이들의 눈을 보면 정상적인 눈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거의 없습니다. 다들 영혼이 반쯤 빠져나가 있는 상태로 예배를 드리는데요. 근데 간혹 그러한 상황에서 정신이 썡쌩한 아이들이 몇몇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주로 공부에 대한 마음이 없는, 남들보다 속 편한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성격도 참좋습니다. 그녀석들은 믿음도 참 좋아서 시험 전날이 되어도 공부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예배 마치고 저에게 와서는 꼭 이런 말을 합니다. ‘아 전도사님 내일 시험인데 저 잘 할 수 있겠죠?’ 이미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들은 예배를 마치고 학원이나 스터디카페에 가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시험 전날이 되었지만 교회에 남아서 외롭고 불쌍한 저와 놀아줍니다. 저는 그 친구들에게 ‘제발 오늘은 성경공부 쉴테니까 가서 공부를 좀 해주라 공부도 안하고 점수 잘받게 해달라니 그러면 하나님 마음이 어떻겠느냐’며 타이르고 보냅니다.
이 친구들은 참 너무 귀한 친구들이죠. 고등부 아이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정말 짠합니다. 그 아이들에게 저는 열심히 기도하며 또 열심히 공부도 하라고 말합니다. 만약 이 아이들이 하나님께 성적 잘 받게 해달라고, 모르는 문제도 맞힐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친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물론 들어주시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공부 열심히 한 다른 애들보다 그 친구의 성적을 더 잘 받게 해주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지 못한 분이 되거나 비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했으면 그 다음은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맡겨드린다는 의미가 정말 말 그대로 ‘나 아무것도 안해.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줘요’ 이런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당신의 뜻을 펼치실 하나님을 믿으며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과 우리에게 모자란 모든 것들을 가지신 풍성한 분이심을 믿으며 우리의 기도로 그분께 있는 보화를 캐내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2절의 말씀처럼 의인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믿음으로 행하는 우리의 삶에 그분의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1 Peter 3:12 NKRV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4) 기도하고, 사랑하고 봉사하자

우리는 지난 6월 한달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 시간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도 기도했고요, 무엇보다도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되게 하소서, 교회에 부흥을 주소서, 교회에 사랑이 넘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한 뒤에 우리는 그저 기도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 기도했다면, 이제 우리는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을 행해야 합니다. 교회에 사랑이 넘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 우리는 교회에 사랑이 넘칠 수 있도록 사랑을 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말하는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뜨겁게 라는 표현이 붙었다고 해서 이를 마치 연애 초기의 남녀간의 불붙는 사랑만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뜨겁게 라는 의미가 물론 열심히 사랑하라는 의미도 포함하지만, 이는 ‘사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꾸준히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하고 있는 이 사랑은 그가 젊은 시절 예수님을 향해 품었던 불같은 사랑보다는 노년 시기의 진득한 사랑, 양떼를 기르고 먹이는 사랑, 어른스러운 사랑, 마치 부모님이 못난 자식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가슴으로 품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성은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 없고, 파악한다고 해서 이성적으로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성과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지성과 이성, 감성은 모두 다 타락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다 타락했습니다. 우리는 거듭난 성도들이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죄의 습관들이 남아 있어서 우리가 재림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온전히 거듭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죄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성도 간의 관계 속에서 ‘어 저사람 왜저래, 성도 맞아?’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비판하게 되고 정죄하게 되고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어집니다. ‘나도, 저 사람도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은 죄인이다’ 라는 마음을 갖고 교회 안에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찬양하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설교하는 모습 모두 다 거룩해보입니다. 여기 앞에 서있는 제가 얼마나 제가 거룩하고 젠틀해보입니까? 정말 서울 사람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실상은 타고난 경상도 사람입니다. 저도 굉장히 쪼잔해 질 때도 많고 죄를 사랑해서 추악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 타고난 죄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우리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모남을 품으며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도록 합시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행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행함의 모습은 본문 9-10절에 기록된 것처럼 환대와 봉사로 나타날 것입니다.
1 Peter 4:9–10 NKRV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사랑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서로를 원망없이 대접하며, 각자 받은 은사를 나만을 위해 나만을 높이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환대와 봉사는 서로를 높여줍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런 모습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경험합니다. 형제 자매의 모습 속에 보이는 예수님을 보게 되고 각자가 신앙의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저 사람도 저렇게 살아가는구나. 나도 한번 저렇게 살아봐야지’라고 도전 받으며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이런 도전들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속에서 환대를 베풀면 그 환대가 우리에게 잘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을 행한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며 의심하기도 하도 하고, 또는 순진한 사람으로 비춰져서 등쳐먹으려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믿음의 환대와 봉사를 행할 때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의 하림 공동체는 세상 속에서 선한 행동으로 어려움을 겪은 서로를 사랑하고 환대하고 섬기므로, 다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회복시켜주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모습이 11절 마지막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결론: 기사봉 교회서로를 위하며, 회복시켜주는 기사봉 교회

이 모든 일에는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답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봉사하는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기와 질투, 분열,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를 본받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우리가 이 땅의 나그네이자 이방인임을 기억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며, 봉사하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가 신앙의 보루이자 방주로서 서로의 어려움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며 봉사하므로 다시금 회복받고 도전받아 이 땅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침 기도

사랑하는 주님,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분열하고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사랑 봉사로 더욱 하나되게 하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하시고 나의 힘을 붙잡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으며 기도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기도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하시고, 그 힘으로 서로를 대접하며 섬기게 하소서. 이 시대 속에서 우리의 교회가 서로를 사랑하므로 회복받고, 위로받고, 도전받는 신앙의 베이스캠프, 신앙의 보루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찬양인도&기도제목

찬양은 곡조있는 기도라고 하지요? 우리 함께 이런 찬양의 고백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넘치기보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섬김을 원하기보다 섬김의 기쁨 알아가는 교회, 세상이 주목하기 보다 주님이 주목하시는 교회, 화려한 겉모습 보다 중심이 주를 향한 교회, 주님이 피로 사신 아름다운 교회, 서로를 사랑하므로 하나되는 교회, 주님이 머리되신 거룩한 교회, 우리 함께 만들어가요. 설교의 말씀과 찬양의 가사를 생각하시며 함께 믿음으로 고백합시다.
*기도제목
1. 우리 하림교회가 기도하고 사랑하며 봉사하는 교회 되게 하소서
- 우리가 이땅에 이방인이자 죄인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 서로를 위해 기도하므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되게 하소서.
- 서로를 향한 대접과 봉사를 통해 서로를 높혀주며, 다시금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도전과 회복이 있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신앙의 보루, 신앙의 방주, 신앙의 베이스캠프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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